문학과 비문학
북은 자기 가슴을 쳐서 남의 가슴을 울린다. 감동적인 글을 쓰려면 먼저 내 가슴을 울리는 소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그리고 그 감동이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표현과 형상화란 고된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금을 탈 때 농현(弄絃)하는 일처럼 이게 또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우리 수필의 대부분은 작가가 "나는 감동 했다" "나는 슬펐다" “나는 깨달았다”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 이는 자기감정을 설명한 것이지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글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몰라도 “나도 슬픔을 느꼈다.” “나도 공감한다”는 식의 댓글을 달지만 실제는 글을 쓴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일 뿐 그 문장을 읽고 자신이 슬픔을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수필 작품들 중에 이런 표현만 삭제하여도 훌륭한 작품으로 탈바꿈 될 수가 있다.
비문학적인 문장은 사람의 이성에 호소하지만 문학적인 문장은 사람의 감성에 호소를 한다. 그래서 전자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라야 잘 쓰인 글이고, 후자는 형상화가 잘된 감동적인 글이 잘 쓰인 글이다.
우리 인간은 화자가 위대한 종교가나 큰 스승이 아닐 경우, 직설법으로 말하면 옳은 말도 배척해 버리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 문학작품에 형상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소재(또는 스토리)의 특수성이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성을 얻어 독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그 속으로 빠져들게 하여 그들의 가슴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부활되도록 하고자 함에 있다. 이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 작업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기에 작가는 작가라 칭함을 받는 것이고 독자는 작가를 경배하는 것이다.
감동과 형상화, 이 두 가지가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을 한다. 초기에는 감동적인 글이면 문학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수기는 글 감동이 굉장한데 왜 수필이 아니라고 하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수기의 대부분이 형상화 작업(새로운 의미로 부활)이 이뤄지지 못한 때문에 문학작품이라고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글의 주제가 서정이든, 서사이든 또는 깨우침이든 무엇이든 간에 "감동(울림)과 형상화" 란 이 두요소가 제대로 갖춰졌을 때 비로소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은 이성보다 훨씬 흡수성이 좋고, 전파력이 빠르고, 폭발력이 크다. 섹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작가의 체험이 작품에 어느정도 형상화되어 있느냐에 따라 예술적 감동도 다르다. 특히 수필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형상화 되지 못하면 그건 사생활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 남의 문장을 가져가서 쓸 경우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글 도적은 영혼을 속이는 일입니다.
첫댓글 우와~~문학과 비문학의 정리를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ㅎㅎ깨우침이라는 말만 빼면요~~
애지랑날 에 (2) 잠깐 카페에 들어 왔습니다.
눈이 번쩍 뜨입니다.
번개도 치지 않았는데 말라꼬 번쩍 뜨니야고 질문 할 것입니다.
정임표 회장님 께서 아주 쉽게 한단계 업 그레이드 된 글쓰기 법을 알려 주신 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