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없는 사나이 살리에리*
장의순
모차르트는 35세의 짧은 생애에 8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천재성을 아까워 하던 사람들이 살리에리*의 질투심이 모차르트를 독살했을 꺼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 전설적인 소문을 모차르트가 죽고 8년후에 태어난 푸쉬킨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을 써서 세상에 내 놓았다, 푸쉬킨이 죽고 7년 후에 태어난 림스키 코르샤코프가 그 희곡을 오페라로 작곡 하였다.
누군가 함부로 내 뱉은 말이 씨가 되어 현대에 와서 '아마데우스' 라는 거창한 뮤지컬까지 만들어졌다 (20세기 들어서 영국의 피터 쉐퍼의 희곡이 "아마데우스" 다)
과연 살리에리가 질투심으로 모차르트를 독살했을까
살리에리는 베토벤과 슈벨트와 리스트까지 지도한 음악교육자다. 그리고 당시에 명망높았던 궁전 악장이었다.
모차르트를 질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단지 그의 천재성을 부러워 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요절한 모짜르트가 아까워서 뜻밖에도 그 화살이 살리에리에게 날라갔던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천재를 잃어버린 안타까움을 위로 받았든 것이리라. 오히려 안정적으로 수입이 있는 살리에리가 부럽다고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에게 보낸 아들 모차르트의 편지도 발견됐다.
모짜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살리에리가 초연으로 빈에서 지휘했다. 둘 사이가 그렇게 나봤다면 40번의 교향곡을 살리에리에게 맡겼겠는가 40번은 단조로서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애절한 비애가 담겨져 있는 빼어난 수작이다. 질투심으로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살리에리는 참으로 억세게 운이 없는 사나이다. 살리에리는 가난한 음악도들을 무료로 지도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딸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쉴새없이 많은 작곡을 하였고 연주여행으로 누적된 과로사였다. 모차르트의 무덤은 없다 악천후의 날씨에 공동묘지에 묻친 모차르트의 시신은 도시계획으로 자주 이장하다 실종돼 버렸다. 결론적으로 그는 가난했다는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작곡가 베버의 딸 넷 중에 셋째 딸이다. 모짜르트는 오페라 가수였던 베버의 둘째딸을 좋아했으나 받아주지 않아 셋째 딸과 결혼하게됐다. 그들 사이에 자녀가 여섯 명이나 태어났으나 넷이 어릴 때 사망하고 두 아들이 성장해서 쉰 살, 칠십살 까지 살았으나 모두 독신으로 지내 후손이 끊어졌다. 두아들은 아버지 뒤를 이어 음악을 하였으나 아버지 볼프강 모차르트의 재능에 미치지 못하였다. 여기서 잠간, 아버지를 일찍 잃은 모차르트의 두 아들도 어릴 때 살리에리에게 음악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아내였던 콘스탄체는 남편이 죽고 10여년 뒤에 재혼하였다. 두 아들마저 먼저 보내고 만년에 잘츠브르크에서 자매들과 모여 80세 까지 장수 하다 그곳에 묻혔다. 그녀는 사치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아름다운 젊은 날의 초상화가 말해준다. 모차르트가 수입이 괜찮을 때는 파티를 열곤했다.
남편 모차르트 보다도 45년은 더 살았기에,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는 없었던 사진이 그 많은 세월속에 그녀의 만년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35세라는 짧은 생애에 다양하고도 많은 작품을 작곡한 모짜르트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40개가 넘는 교향곡과 22개의 오페라와 여러개의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여러 종류의 관악기 협주곡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별별 악기를 다 다루었다. 모차르트는 어떤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악기와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썼다 성악과 종교음악까지도 넘나들었다.
모짜르트가 죽고 35년이나 더 살은 살리에리는 만년에 정신착란 증 속에서 자신이 질투심으로 모짜르트를 독살했다고 말한다. 어디까지나 푸쉬킨의 희곡에서 기인하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2인자의 고뇌를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접근할 수 없는 천재의 영역앞에 자기 스스로 위축되는 열등감이다.
모차르트는 궁정 작곡가인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에게 어릴 때 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요한세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서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어릴 때 부터 번뜩이는 재능을 발휘하여 신동으로 불러졌다. 6살 때 부터 작곡을 하였고, 17세 때 벌써 유명한 교향곡 25번을 작곡할 정도였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공통점은 작곡하고 연주하고 지휘까지 했던 것이다. 그들의 아버지가 음악가였기에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선천적으로 갖게됐고 일찌기 발굴했다고 본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1750~1825 이탈리아 작곡가 >
첫댓글 그럴수 있습니다. 때론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는듯 합니다. 무엇이든 타고 나기도 해야 겠습니다. 만, 자기개발도 필요하겠지요.. 누구나 신 앞에는 평등하다 하였으니 각자의 재능을 주셨겠지요.. 장문의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 하였으니 장선생님도 신이 내리지 않고 이 장문을 쓰셨겠습니까? 35세에 800곡이면 영혼을 쏟아부은거지요..
2024.6.18 창장시 7379 동시 1527 디카시 207 시조 146 수필 76 시란무엇인가 277 성시 58 동화 20 짧은시 146 웃음에 대한 연작시 207 죽음에 대한 연작시 24 //// 오늘보니 10067편이네요.. 에고 다 버릴것이지요.. 하지만,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괴물이 되었을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뿔이 삼백개 정도 달린 괴물말입니다. 시와 산문 그 경계 때문에 시인은 산문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산문의 심부를 뚫고 들어가서 보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 심부를 뚫고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산문은 얼음위의 스케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구나 다 그 개념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800곡이라는 말에 저도 얼마나 미쳤나 한번 헤아려 봤습니다. // 보신뒤 이글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놀랍습니다. 절대로 윗 댓글을 삭제하지 마세요. 오 작가님의 열정을 본 받아 배워야합니다. 저는 마음뿐입니다.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렵습니다. 윗글 쓸 때의 열정도 식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일 만으로도 버겁습니다. 지난번 일본여행에서 느낀 단상을 메모한 글 마저 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미완성입니다. 오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음악에 관한 지식이 1도 없는 제가 이 글을 읽고 그랬었구나 하고 습득하고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 시인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시인님은 때묻지않는 자연속에서 자연의 음악을 늘 들으시면서 순수한 시를 만들어 내시지요. 때로는 부럽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까지 고향 시골에서 살았지요. 저의 문학의 뿌리도 그곳에 있어, 늘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