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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보기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매바우
제3회 테헤란 영화제 출품.
전화 속에 헤매던 고아 침애는 서산사의 고승 무불당에 구출되어 입산수도 하게 된다. 모든 일에 탁월해서 덕망있는 젊은 승으로 성장한 침애는 법통을 이어받기 위해 마지막 시련이 가해진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심리탐구이다. 고승은 그에게 니암의 절세미녀 묘향을 접근시켜 인연을 맺게 했으나, 침애는 재빨리 여성고뇌를 청산하고 단식으로 수도해서 이 난관을 이겨냈다. 그러나 고승은 젊은 두 사람사이에 싹튼 사랑의 생명을 짓밟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범했던 파계를 인정하고 정체를 꺼리김없이 침애에게 보여줌으로써, 침애와 묘향를 속세로 떨어지게 하였다. 법통은 마땅히 다른 제자에게 돌아갔다.고승은 죽어 말이 없다. 그러나 그의 높은 자비심은 남은 불도에게 크게 빛난다.
고 김기영 감독은 <하녀> <화녀> 시리즈로 한국영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장이다. 인간의 잠재적 심리와 욕망을 추구하던 그가 불교에 관심을 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파계>는 불법에 뜻을 둔 젊은 선승의 방황을 통해 계율과 인간적 가치의 충돌, 파계와 불법의 수행, 사랑과 진리의 탐구를 보여준다. 임예진의 옷 벗는 비구니 연기는 파격적이어서 놀랍고, 또한 희생적이다. 또한 원작인 스님 출신의 시인 고은의 소설이 말해주듯 6.25 전쟁이 배경인 급박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한계 상황을 뛰어넘는 해답을 찾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배우의 연기가 교과서를 읽는 듯 낯설고 딱딱해서 소외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김기영 감독이 아니라면 이런 연기법은 매우 유치하게 보일테지만, 일관성있게 사용해온 터라 코믹하기도 하고 뜻밖의 독특한 효과도 발생한다. 가령, 최불암이 침애가 늦자, 걱정하며 읊는 장면은 단적이다. 즉 왜 이렇게 늦게 오는지 찾아가 보거나 라고 하니, 행자승이 혹시 범에게 물려간 게 아닐까요? 라고 한다. 그러자 최불암은 이놈, 너는 어찌 먹는 것과 연관시키느냐?란 불가사의한 선문답을 보여주는데, 혹시 이 때문에 최불암 시리즈가 여기서 발생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아래 클 출처: 법보신문에서 무작정 영화평론가라 합니다.
법통 전수와 파계…두 축으로 전개
한국영화 전공자가 60년대를 한국영화의 전성기라 말한다면 그 주연급은 단연 유현목, 신상옥, 이만희, 김수용, 김기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기영 감독은 1955년 ‘주검의 상자’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지속적으로 언론에 가십거리를 제공해왔다. 그의 영화는 관객에게 눈물과 웃음을 주면서 주머니를 터는 주류 상업영화와는 색다른 세계를 줄곧 카메라로 채집해왔다. 소수의 관객은 김기영이 만들어낸 그의 영화 세계를 열람하고 한국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숭배하였으며, 게으른 관객들은 상업영화 관습과 거리가먼 세계에 대해 불편해하면서 개운치 않은 시선을 던졌다.
감독 스스로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을 피력해왔으며, 인간 무의식의 어둡고 칙칙한 창고 안에서 눈에 거슬리는 그림자들을 영화세계로 부지런히 운반해왔다. 이 같은 작품세계는 ‘크로테스크한 영화세계’, ‘마성의 미학’, ‘인간 무의식의 조명’ 등으로 그럴듯한 의미로 포장되기도 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은 ‘충녀’는 남녀간의 문제를 다루었을 뿐이라고 의미부여에 대해 변죽을 울리셨다. 감독은 평자들의 과대포장을 걷어내고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포즈를 취하셨다. 하지만 한국영화계에서 김기영의 영화세계가 이채로운 파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계(破戒)’(1974)는 한국영화계의 파격인 김기영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영화다. 평범한 소재도 공포스럽고 난해하게 프레임에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김기영 감독이 일반 관객에게 일정한 정신적인 노동을 요구할 불교의 화두와 법통 전수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중의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내용은 의외로 단촐하다. 즉, 법통 계승을 둘러싼 올깍이와 늦깍이 간의 경쟁과 비구 침해와 비구니 묘혼의 사랑을 다룬다.
서산사의 조실인 법연 스님(최불암 분)은 입적을 앞에 두고 법통을 이을 후계자를 물색한다. 그 과정에서 조실 스님의 시봉인 침해와 경원스님, 도심행자가 경쟁을 한다.
법통은 석가여래께서 염화미소로 화답한 마하가섭에게 물려주셨으며, 그후 선불교에서 달마대사 이래로 의발(衣鉢)을 통해 전수되어왔다. 법통 전수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은 속세에 널리 알려져지지 않았지만 일정하게 존재했었던 것 같다. 5조 홍인(弘忍)은 장작을 패고 절구질하는 6조 혜능(慧能638-713)에게 법통을 전수해주었다. 홍인은 혜능을 한밤중에 불러 ‘예부터 교법을 이어받은 사람은 목숨이 실 끝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웠다’고 주의를 준다. 그리고 나서 빨리 떠날 것을 당부했던 사실을 통해 헤아려보면 법통을 둘러싼 갈등의 수위를 짐작할 만하다.
‘파계’ 역시 법통 전수를 중심으로 신구의 두 세력의 일촉즉발의 대결구도로 몰고가면서 선불교의 화두와 승자와 패자를 둘러싼 경쟁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간다. 불가의 가르침 보다 법통을 둘러 싼 권력 다툼과 묘혼과 침해의 만남에 포커스를 맞춰간다.
김기영감독 특유의 남녀 간의 문제라는 오랜 화두는 ‘파계’에서도 역시 관철되어 무불 스님 침소에 잠입하여 시험하는 여승의 유혹과 물리침, 침해와 묘혼의 만남을 통해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법통 전수와 파계는 영화 ‘파계’의 소재로 차용되면서 흥미와 불가의 가르침을 동시에 전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법통 전수는 신구의 갈등과 승패를 가르는 경주를 지켜보는 재미를 제공하며, 침해와 묘혼의 만남과 파계의 과정은 금기 위반을 지켜보는 맛과 계율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구도행각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성찰의 기회를 준다.
영화평론가
아래출처: 하재봉의 영화사냥 카페 글쓴이: 디스테파노
1970년대 한국영화계는 그 활력을 잃고 양적, 질적에서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말이 정말로 공감이 간다. 1960년대 걸작을 만들어내던 감독들도 1970년대에는 신파조가 다분한
어설픈 범작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사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196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영화들은 정말 완성도 높고 세련된 (오히려 오늘날 영화들보다 더) 것들이다.
이 시기 영화들이 우리나라 영화사의 황금기라고 불리우는 것도 괜한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김기영감독이 1950년대와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영화들이 극단적으로 다른 예가 아닐까 한다.
김기영감독의 난삽한 어법과 일관성 없는 주제의 추구는 이어도같은 훌륭한 결과를 낳았기도 하지만,
감독이 주제를 소화하고 지탱할 만한 역량이 없을 때는 이 영화 파계의 경우처럼 범용한 괴작을 낳기도 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감독은 불교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영화 첫머리에 두 대학생들이 방학 동안 "취미로" 참선을 배우러 머리 깎고 장삼 입고 절을 찾아간다.
취미로 참선 배우러 간다면서 머리를 왜 깎고 장삼은 왜 입는가? 그리고 삭발한다거나 장삼을 입는 것은 절에서 다른 중이
일정 조건을 채운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취미로 방학 동안 신학을 공부한다고 신부복을 사서 입고 성당으로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기영감독은 영화 만들기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자조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사회에
조소를 보내는 심정으로 영화를 자포자기의 한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그가,
그렇게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웬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귀에 익다 했더니, 전에 보았던 잘 만든 불교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에서 사용하였던
고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보였던 선의 본질과 진리에 다다르려는 중들의 고행,
치열한 노력같은 것이 완전히 배제된 채 본능과 투쟁만이 남아 있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로 가득 찬 전형적인
김기영식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김기영식으로 본다고 해도 어설픈 감이 많이 느껴진다.
이것은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영화같다.
이런 식으로 소재를 다루려면 딱히 불교일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절은 두 계파의 중들로 나뉘어서
서로를 쫓아내려고 모략을 꾸미고, 주지승은 법통을 계승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중들에게 단식대결을 지시한다. 단식대결을 해서 이기는 사람이 득도한 것으로 인정받고 법통을 차지한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단식기도해서 오래 한 사람이 교황이 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 아닌가?
중들이 모여서 매일 하는 이야기가 절에 식량이 얼마나 남았지? 나는 배고픈 것은 못참아 하는 것도
보아주기 힘들다. 그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중심주제는 불교라는 소재에는 별로 먹히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선문답이 나오는 장면은 더 웃긴다.
마치 서부에 나오는 총잡이들의 대결처럼 서로 선문답을 하면서 대결한다. 이 중에 뭐라고 하면, 다른 중이 총에 맞은 듯이 비틀비틀,
그러다가 그 중이 답변하면 이번에는 다른 쪽이 비틀비틀, 이것이 김기영감독이 이해한 선문답이다.
그리고 무슨 선문답이 두뇌싸움이다.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 트릭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꼼짝못하게 하면
선문답에 이긴 것이란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작품성을 논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 같다.
뭔가 심오한 것을 만들려고 애는 쓰는데 김기영감독의 불교에 대한 이해부족과 맞물려 치기어린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손이 오그라들다 못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가끔 본인도 그랬겠지만.......
그렇다면 이 영화가 어설픈 영화라는 전제를 깔고 김기영식의 본능과 투쟁 그리고 소통문제라는 관점에서 보아 보자.
우선 영화가 뚝뚝 끊기는 부분이 많으며 (의도적으로 그런 것같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이 뒤죽박죽 섞여서
행동의 원인과 결과 자체를 아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김기영감독 특유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못할 뿐더러 성격 자체가 모호하다.
행동의 일관성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령 법통을 갖고 있는 노승은 법통의 계승자를 찾기 위해
시험을 한다. 여기까지는 도통한 승려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가면 노승은 법통은 자기 것이라며
너희들이 피를 흘리고 박살이 나기 전까지는 못 줘 이건 내 꺼야 하고 비명을 지른다.
더 나중에는 죽어가면서 여자를 극복해야 도통하는 건데 나는 여자를 보지조차 못했으니 도통했나 시험한다고 묘은이라는
여승의 옷을 벗게 한 다음에 죽어가는 노인이 성욕이 동하여 난 안 돼~~ 하고 죽는다. 치밀하게 노승의 심리 변화를
구축했으면 모르겠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전부다.
남기남식의 대범성이랄까.......
침해라는 중과 묘은이라는 중의 관계는 무엇인가?
뭐 심리묘사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저 그로테스크하고 이해 불가인
그런 장면들만 나오니.......묘은이라는 여승이 손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손하고만 이야기하자 침해가
침으로 이를 고치기 위해 파견된다. 그리고 침을 놓으니까 소리가 안 들린단다.
묘은이 침해가 있는 절까지 쫓아와서 물어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더니 두번째 찾아올 때는 사랑해서 찾아왔단다.
그러니까 침해도 사랑한단다. 그런데 둘이 관계까지 맺고 난 다음에 묘은은 침해더러 법통을 차지하라고 한다.
파계를 한 이후에도 둘은 아무 고뇌도 없다. 무슨 대선 치르듯이 노승에게서 법통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엄청 투박하게 묘사된 장면들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지. 애기티나는 임예진의 연기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애기가 옹알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 자연스럽게 연기를 못한다.
그리고 노승과 침해 사이에는 득도한 승려와 구도하는 승려 사이의 스승-제자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위 설명들을 듣고 그런 것이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면 짐작이 얼른 갈 것이다. 이 두 특이한 인물들은 소통이라고는 전혀 불가능한
따로 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서로 법통을 주느니 마느니.......
영화는 천박한 양철조각들로 산산이 흩어진다.
이쯤 되면 그의 영화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파산하게 되었는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배우들조차 건성으로 연기하는 것 같다. 1980년대 비디오영화감독 정도로 전락했던 김기영감독의
미래가 웬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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