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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평
울보 노시인 박용래
--전민 시 쫌쫌이 읽기
1부: 사랑의 언어
1. 사랑의 언어.2
2. 사랑의 언어.10
3. 그 이후
4.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
5. 산사 풍경
6. 부부의 길
7. 엄마가 그립다
8. 3월에
9. 빗속의 계절 여행
10. 선 언
11 늘 푸른 세월 속에
12. 중생에도 법어가
13.농가 일기
2부:삶의 자투리
14. 삶의 자투리
15. 바닷가에
16. 착 각
17. 버리는 연습
18. 난(蘭)
19. 김두환 지프
20. 아버지의 일생
21. 50회 생일에
22. 거울
23. 늦은 성찰
24. 인생론(人生論)
25. 인생통장
3부:달걀 장사 사모님
26.지는 벚꽃이 더 아름답다
27.시인
28.감나무
29.잡초
30.6월의 산하에는 –비무장(DMZ)지대
31.바람이 떨어뜨린 쪽지
32.울보 노시인 박용래
33.봄비
34.단풍꽃
35.도망친 암소
36.움직이는 풍경화
37.달걀 장사 사모님
4부:어떤 고해성사
38.국민
39.바 다
40.국 화
41.단 풍
42.판도라 상자
43.수통골 연달래
44.미세먼지 공화국
45.대나무
46.어떤 고해성사
47.한파주의보
48. 배추
49.승부시대(勝負時代)
50.흑백사진 한 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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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랑의 언어
사랑의 언어.2
1
누에는 제 몸을 뽑아
껍질을 직조(織造)하지만
사랑은 영혼을 뽑아
진실을 가두는 자선(慈善)을 베푼다.
2
내어주는 아량보다
베풀어 받는 은헤(恩惠)의 색깔
잃은 것을 그리워하기보다
아까와만 하는 그물에
밀물이 썰물을 덮쳐
네 마음 걸려 들어오고.
3
바랐던 것, 실뿌리
잎마디 숨소리까지
보듬고 가꾸기를 원했던 것은
네가 나의 봉오리로
여직껏 머물러 준
고마움 때문이었다.
4
돌개바람 이었다
산파도 소리 때문 이었다
외로운 님의 무덤가에
영혼 되어 돌고 돌다가
남은 것은 알갱이
빈껍데기만 날아갔다.
전민 시에서 하나 주목할 점은 시의 서정성의 힘이 그의 독특한 운율 의식과 결합함으로써
미묘한 심미성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 고 월터 페이터가 말햇듯이 사랑의 감정을 새싹이 돋는 자연현상에 비유하고 있는 이 시는 감각적이면서도 독특한 운율을 지니고 있다 강약약 전통시가 음보의 운용법를 익힌 듯, 간결하면서도 운치있는 시상의 전개는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첫 행에선 ‘깊은 가슴’ 뒤에 에’라든가 ‘을’과 같은 격조사를 생략함으로써 ‘깊은/가슴/숨긴/가생쟁이/언질없이로’ 이어져 나가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그 시각을 파격없이 이끌다가 ‘솟은/싹 한 촉’으로 일단 템포를 완화시킨 후에 ‘봄비/흙비/눈비 받아’ 의 반복의 묘를 실린 3음보격으로 율죠를 고조시킴으로써 그의 운률의 운용이 얼마나 정교한가를 보여준다
첫 행의 격조사 생략은 ‘깊은 가슴의 숨긴 가생쟁이’ ‘깊은 가슴을 숨긴 가생쟁이’ 인지 모를 이미의 多義性(다의성)을 가져다줌으로써 운율이 그이 시구조를 떠받치는 중핵 요소임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의 시가 지닌 운율미는 이처럼 그의 시적 감수성과 결합됨으로써 보다 심미적인 가치를 확보해 주는 것아다
-손종호 시인 (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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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言語.10
철철 끓는 쇳물도
빨갛게 달아오른 인고의 터널을 지나야
무서운 힘, 강철로 굳어지고
혼 깊은 불씨 한덩이
춥고 어두움 속에 남모르게 싹 터
불붙은 가슴 아침해로 떠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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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언어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있을 법한데 이 시에서 그런 의식이 드러나는 시가 사랑의 언어다 인고의 터널이야 말로 시작의 과정이며 모든 단련과정이며 부활을 준비하는 동굴이다 시가 감정의 표출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과잉된 감정이나 감상의 표출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고 숭고한 방향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심미적 효과를 이루는 방향으로 조직될 때에만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인용했듯이 시적인 마음이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표출이 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인 역시 이것을 통절하게 인식하고 있다 철철 끓는 쇳물이 강철로 굳어지기 위해 인고의 터널이 필요하듯 혼깊은 불씨 한덩이 불붙은 가슴 아침해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춥고 어두움 속에 남모르게 싹 터야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혼 깊은 언어로 이루어진 시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하고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내적성숙이기도 하다 그런 인식을 시로 구성하는데는 aa형을 사용한다 aa형중에서도 ab형. 즉 같은 의미를 가진 행을 대립병렬로 구성하는 것이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그 이후
1
막차가 떠난 철길
반대쪽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꽁무니에서 내뿜던
매캐한 애증도
북풍받이 언덕에서
훔쳐본 뒤통수의 매무새도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그늘 짙게 깔려오는데
칠팔월 복중에도
어김없이 찾아들던
오슬오슬 살 추위.
2
때로는 앞보다도 더
뒤를 돌아보았다
때로는 빈자리
메꾸며 마냥 서있었다
얼마고 서있었다
꽃불 난 봄 동산
불사르는 사르비아꽃 여름
타고 남은 재 알 모으던 가을
텅 빈 가슴 불타고 있는 두 장작
모든 것 다 버리고 나도
더욱더 세게 불어오던 바람
세월과 거래하지 않으며
삥삥 돌아오던 바람.
전민의 시적 출발점은 어디에 있는지 시의 특성은 무엇인지를 이 시에서 단초(端初)를 밝히는데 많은 것을 시사해본다 왜냐하면 때로는 앞보다도/더 뒤를 돌아 보았다 는 그의 진술로 그대로 그의 상상력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치우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는 빈자리/메꾸며 마냥 서 있었다/얼마고 서 있었다 라는 진술 그대로 그의 시는 현실속에 뛰어 들어가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고 사물의 진면목과 해후하기보다는 정관(靜觀)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에에 있어서 사르비아꽃 여름/타고 남은 재 알 모으면 가을과 같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에 지나지 않음은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시상은 텅빈 가슴 불타고 있는 두 장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텅빈 가슴 불타고 있는 두 장작이 모든 것 다 버리고 나도 고개를 쳐드는 시인의 남은 집념 혹은 내면욕구의 객관적 상관물이라면 더욱 더 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그러한 시인의 욕구를 부추기려하는 시인을 둘러싼 현실세계의 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의 타오름이 모든 것 다 버리고 나도/ 더욱 더 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결합되면서 상승의 이미저리로서의 불타오름으로 확산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월과 거래하지 않으며/삥빙 돌아오던 바람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면 세월과 거래하지 않으며/삥삥 돌아오던 바람의 역설은 무었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결국 더욱 더 내면욕구를 부채질하는 바람에 휩쓸리기를 거부한 <그 이후> 그가 선택한 자신 삶의 표상인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세계관의 변화에 결정적 힘을 가한 어떤 계기라는 것을 유추할 뿐이다
-손종호 시인 (충남대학교 교수)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
밤꽃 향기 음악 되어 흐르는
가난해도 흡족한 내 고향, 금국리
깜장 고무신짝에 파닥이던 피라미는
지금도 솔밭 건너 긴 모랫벌
겨울 소나무 내품는 깊은 소리
산파도 몰고 오는 쌍류(雙流)골짜기
여름밤 돌 틈에 가재 찾아가듯
꺼져가는 추억 속에 불 붙여 들고
남의 부인이 되어 버린 옛 여자를 잠시 훔쳐
희미해져가는 자욱들을 찾아보고도 싶고.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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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보여주는 감각적 표현은 그 기법상 높은 수준을 견지한다 활달한 시상 전개의 묘미는 그의 시적 재능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깜장 고무신짝에 파닥이던 피라미로부터
산파도 몰고 오는 쌍류(雙流)골짜기에 이르는 시상 전개는 매우 독특한 점층적 수법을 활용함으로써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편에 드러나는 관능적 이미저리인데 이것은 그의 시선이 무욕의 정관에 기울어저 있음을 감안할 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종호 시인 (충남대학교 교수)
산사(山寺)풍경
저녁노을 침묵으로
나비 되어 산사에 내려앉고
외진 승방 감아 도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외지에서 찾아온
수녀 한 분이
동양화 한 폭으로 머물러 있다
-석가여래상과 동안의 이 수녀님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도수 높은 안경을 눌러 쓴
무척이나 키가 큰 스님 한 분
다갈색의 바리때 닦아들고
승방 안쪽 문을 들어선다
수녀님과 스님의 두 눈 빛은
한 점에 멈춰 포개지고
무섭게도 조용한 시간은
어둠처럼 덮여가고
불교학원을 나와
수녀가 된 그녀와
수도원을 나와
스님이 된 그이의 그 이후는
서로가 말하지 말자는
오직 하나의 그 무엇으로
화석 되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노을 나비 되어
동양화 한 폭에
말없이 내려앉는.......
이 시에서 관조하는 시인의 시선이 닫힌 것이 아니라 열린 시선임을 확인할 때 우리는 시인에 대한 더 큰 기대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에서 전도(轉倒)의 묘미를 살린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소 감각적인 회화라고도 할 만하다 이 시는 우선 수도원을 나와 스님이 된 이와 불교학원을 나와 수녀가 된 그녀가 상황적 아이러니로 제시되며 그 둘의 만남이 저녁노을로 표상되면서 어떤 이심전심의 경지를 암시, 저녁노을이 나비 되어/동양화 한 폭에 /말 없이 내려 앉는... 이라는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저리로 그 결구를 맺고 있다 삶은 변화난측하지만 결국은 한마당 꿈과 같다는 도가적 사상이 한 마리 나비로 표상되며 오직 하나의 그 무엇으로 /화석되어 굳어저 가고 있음은 애초 무엇이고자 하지만 언제나 어긋나버리는 부조리한 인간 삶의 상징적 제시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손종호 시인 (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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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길
고속도로에는
오름과 내림 차선이 있다
생명선인 차선의 경계는
냉정하고 확실할수록 좋다
도로에 진입한 차들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야 한다
삶의 현장인 가정에도
부부간의 길 점선이 있다
쌍방통행인 부부의 길에는
경계선보다는 조심선이 있다
부부의 길도 한 방향을 향하여
동감하며 동행함이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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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를 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부부간의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첫째 연에서 ‘고속도로’라는 사물을 등장시키고 ‘차량들’도 등장 시킨다. 이 부분 때문에 독자들은 시적 사유를 할 수 있다. 부부간의 관계를 고속도로의 차량에 비유한 시인들은 많지 않다. 부부간에도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주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양왕용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엄마가 그립다
팔십 줄에 들어서면서
치매기가 조금씩 나타나
자식과 피붙이들을 만나도
그 누구시냐 묻는 어머니는
본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으셨을 때의 엄마는
그 어느 친구의 엄마보다도
정이 많으시어 자식 걱정
손주들 사랑, 이웃과도
사이좋게 어울려셨는데
정월 명절이 지난 어느 날부터
맏며느리 노릇 너무 힘드시다며
교회로 피신해 출근하신 후부터
동네 교회 권사 직책도 맡으시고
성경책도 간간이 읽으시면서도
집안의 큰 행사인 기제사는
빼놓지 않고 정성껏 챙기시다
치매 양로원에 입원하신 후부터는
자식과 손주들, 이웃까지도
영육과 물질까지 모두 다
기억 속에서 빼어 팽개치시고
하늘나라로 이민 가버리신
무소유의 우리 엄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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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인의 가정사가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전 시인의 어머니는 80을 넘긴 후 치매요양원에서 돌아가신 것을 이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시의 시적 묘미는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엄마’라는 시어를 사용한 점이다. 시어 ‘엄마‘ 때문에 훨씬 친근감이 드는 상태에서 전 시인의 어머니의 생애를 알게 하는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전 시인의 어머니는 젊은 날에는 인정 많고 자식과 손주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다.
그러나 치매가 들고 나서는 가족들을 못 알아 보셨다. 이러한 현실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전 시인은 안타까움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생애에 들어 있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시인은 이 시의 끝부분에서 치매라는 안타까움을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는 무소유의 행위라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젊은 날에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주고 늙어서는 무소유의 상태로 돌아가신 것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하늘나라로 이민 갔다고 표현하여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시적 형상화로서 성공한 부분은 마지막 두 행인 ‘하늘나라로 이민 가 버리신/무소유의 우리 엄마 그립다’라는 부분이다.
-양왕용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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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오기만 살아
더 빳빳해진 청솔가지
흰 구름 쫓다 돌아와
통 굵어진 나이테
세상은 머리칼 흩트린 채
회색 벌판에 누워
오늘을 넉살떨고
봄비 내려 좋네
대지의 물 온몸에 뽑아
망울망울 순 내놓고
초록빛, 얼레 빗, 마음 빚
거울 찾아 가꿔가며, 갚아가며
작은 바람에 크게 움직이는 잔가지
가지마다 포롯포롯 피어오르는 안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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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의 시는 친자연적이다 순수서정을 노래한 시들은 거의가 다 섬세한 눈길로 자연을 관찰하고 잘 고른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 봄이 시작하는 계절 봄비에 움터오르는 새순을 바라보며 나무의 꿈을 묘사하는 이 시에서 나무의 꿈은 곧 서정적 자아의 꿈이 된다 초록빛 얼레빗,마음빛/겨울 찾아 가꿔가며, 갚아가며에서 같은 발음으로 빛과 빗과 빛을 섬세하게 배열하면서 쉼표를 절묘하게 사용하여 나무와 서정적자아를 병치시키면서도 서술어를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조금씩 싹터 오르는 순의 움직임이 동시에 꿈의 피어오름으로 연결되어 꿈과 실천이 동시에 진행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병치시켰던 자연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합일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곱게 표현해 내는 것은 이 시인의 장기로 보인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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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계절 여행
봄비 갠 뒤
타는 저녁놀은
연분홍 영산홍
라일락 꽃내음
포도빛 그림자
여름비 갠 뒤
바라본 하늘은
하늘하늘 치마폭
선보인 꽃唐鞋
드러난 외씨버선 코
가을비 촉촉한
내마음의 뜨락은
그네줄 잡은 손
힘차게 잡아당기자
飛翔하는 새
겨울비 촉촉히
그대 머무는 곳
울리지 않는 종소리를
캔버스에 담아 그리고 있는
눈먼 화가의 純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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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미지의 선명한 아름다움과 신선하고 절묘한 비유가 생명으로 일반 독자들이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것을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해주는데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끼며 표현된 시속의 대상이 아름다워 즐겁기 마련이다 비 내리는 봄,여름,가을,겨울의 특색을 포착한 위의 시가 이런 유형의 전형을 보인다
4연의 이 시는 한 연은 5행으로 , 한 행은 2음보로 이루어저 단순하다 거기에다 봄과 여름은 비가 갠 뒤의 노을과 하늘이라는 유사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반복적이고, 가을과 겨울은 비 내려 촉촉한 느낌을 이미지로 환치시켜 포착하고 있다 봄은 타는 저녁놀,연분홍,연산홍,포도빛으로 연붉은 색채 이미지가 주조적인 가운데 꽃내음이 가세한다 영산홍은 영산백의 한 종류로 담홍색이 피는 영산홍을 지시하는 것이겠으나 연분홍과 운을 맞추기 위해 연산홍으로 표기한 듯하다 여름하늘은 치마폭, 꽃당혜,외씨버선 코로 치환 되는데 보조관념끼리는 한 벌을 이루고 있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가 다소 뜨악해 보인다 비유보다는 하늘을 표현한 의태어 하늘하늘이 관심을 끈다 가을비의 촉촉함이 비상하는 새의 이미지와 연결된다면 겨울비의 촉촉함은 눈먼 화가의 순정으로 연상되는데 이 연상은 계절의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가을이 박차고 오를 듯한 청량감을 주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눈 뜬 것과 눈 먼 것의 거리가 멀지 않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선 언
낡은 의식의 꼭지로
빨아 마시던 도회의 숲
고정관념의 뜰을 벗어나
그리움의 깊이 가슴 한 복판에
한 줄기 물꼬를 트고 싶다
일상의 틀에 녹쓴
세월의 빗장을 제치고
굳어버린 위선의 각질을
벗기고 씻기워
잠겨있는 삶의 물길 깊이보다
떠내려온 목표의 위치보다
더 깊게 , 멀리 흘러보내고 싶다
나 추워 하나 걸치고
남 부끄러워 또 주워입고
관객 눈치보다 불어난
삐에로의 패션무대
베르린장벽의 써치라이트
조명되어 다소곳해질 때
모두 벗어 내던지고 싶다
설원으로 달려간
겨울나무의 순수처럼
싸락눈 휘몰아 쌔리는
세태의 허허벌판에서
겹겹으로 껴입은 가식과
마지막 숨긴 변명까지
벗어 버리고, 내품어
태초의 나이고 싶다.
시인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 시를 통해 시인의 꿈을 엿보기로 하자
이 시는 4연으로 이루어저 있는데 인용 부분은 1.2연이다 연의 마지막 행을 –싶다로 통일해 자신의 소망을 반복병렬하면서 선언하는 형식이다 서정적 자아의 꿈은 도시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흐름이 막힌 물줄기로 형성화 되는데 물꼬를 트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2연의 위선을 씻기는 일 또한 가능해진다 즉 물은 정화의 대표적 이미지로 일상의 육체적인 더러움을 씻어낼 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세례를 상징하게 된다 그런 물은 소이면 썩는 것으로 흐름을 생명으로 한다 흐름에 맡겨 위선의 각질도 정화되는 삶이야말로 서정적 자아가 소망하는 본래적 자아의 모습으로 마지막 연에서는 태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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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세월 속에
-생략
눈, 비, 바람 많이 타
휘어진 알가지
너처럼 찾아내
눈꽃송이 함빡 피워놓고
어름깡 밑으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소리
가슴속 깨끗이 씻어 놓고
유년의 텃 밭
마음속 깊은 곳에
봄의 씨 뿌려놓고
꽃과 열매
벌과 나비
함께 어울리는
늘 푸른 세월 꿈꾸며
오늘도 내일처럼 살아 보겠네.
시간적으로 태초,공간적으로도 도회의 숲을 벗어나고 싶은 꿈은 <늘 푸른 세월 속에>서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 표출된다 전체가 8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인용부분은 5.6.7.8연이다 앞의 1.2.3.4연은 양보절로 이루어저 있다 즉 전반부는 –아니다(못한다)해도를 반복병렬시켜 aaaabbbb형으로 구성된 셈이다 양보절의 내용은 늘 푸른 하늘이 내 차지만이 아니고 곧게 뻣어가는 나뭇가지 내 몫이 아니고 향내 짙은 열매 한 알 내 것이 아니고 날개 찢겨 새처럼 훨훨 날지 못한다 해도 이며 인용부분은 주절에 해당하는 그 뒷부분이다 현실에서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해도 소망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비,바람 등 생의 부정적인 요소들로도 눈꽃송이 함빡 피우고,어름깡 밑의 시린 물로 가슴속 깨끗이 씻고, 유년의 텃받에 씨 뿌리고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늘 푸른 세월 꿈 꾸며 오늘도 내일처럼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겠이 미래를 나타내면서 의지를 드러내는 어간이라면 –네는 감탄의 의미를 풍기는 어미다 현실은 눈과 얼음으로 상징되는 고난의 연속이라고 소망속에서 그 현실은 유년의 텃밭이 드러내듯 자족적이고 편안한 서정적 자아의 체험적 유토피아가 되며 늘 푸른 세월속에서 오늘은 내일이 된다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의 꿈이 단순히 유년기를 동경하는 과거로의 회귀나 추억에 잠기는 회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내일을 오늘로 앞당겨 실천하는 현재성이야말로 우리들의 꿈이 단순히 꿈꾸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으로서의 미래가 아니고 현재에 실천하는 의지의 다짐이 되기 때문이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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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에도 法語가
하늘 아래
산
산 그 아래
나
바다 저 아래에서
움 돋는 빛이여.
바다 위애
너
너 그 위에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여.
빛과 소리는 하나다
하늘과 바다도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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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인간들의 삶속에 있다 이 시는 진리가 중생의 삶을 떠난 출세간에 있는 것만이 아님을 비유언어로 간명하게 설득한다 이 시 역시 aab형이다 이때 aa는 대칭병렬로 하늘/바다, 아래/위,나/너, 움 돋는/울려 퍼지는.빛/소리다 이 병렬 구조는 3연에서 종결된다 대립되는 것들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이원적인 것들을 일원적인 직관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가 나와네가 만나서 이루는 우리의 세계이며 그것이 중생들의 삶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가에서 오도송으로 일컬어지는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다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라는 철저한 부정의 과정을 거친 뒤에 보이는 사물의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경지가 되어야 할 터, 3연의 하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리는 단순간명하여 에돌아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수사학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구두선에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으리라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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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일기
-생략
지금부터라도
고향 하늘 지키던
농사꾼들 모두 모여
「나이프」「 쿠크」 휘젓는 연습하고
트럼프놀이도 배우며
캉캉춤도 출 수 있어야 된다고
촌티 못벗은 사람 골라
까닭도 없이 을러 보기도 하고
겁주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고
겨드랑에 성경책처럼 끼고 다니던
삽과 곡괭이 자루를
마음은 태평양 한가운데
하낫, 둘, 셋 집어 던지고
도회지 네온싸인 불빛 아래로
날파리떼 되어 날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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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일기는 일기라는 제목처럼 우르과이 라운드로 어쩔줄을 몰라하는 농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세계화란 우리의 것을 팽개치고 이룰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우리의 현실은 세계화를 목표로 삼아 달려가고 있다 소값 파동,돼지 파동,우유 파동은 신문기사로 늘 듣는 농민들 삶의 현실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온 농민의 마음이 갈팡지팡 하고 있는 사회는 틀림없이 농경사회가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의 진입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면서 심정적으로는 농경사회의 윤리와 가치를 지니고 있어도 사회의 제 현상은 앞을 내다볼 수도 없이 빠른 속도로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서고 있어 전근대,근대,후기근대가 뒤죽박죽된 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현실적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농민들이기도 하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한국인으로서의 삶, 인간다운 삶,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드러낸다 농민들이 마주친 새로운 삶의 당위성은 두 가지로 서양사람들의 문화를 익혀야만 된다는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무한경쟁 속에서 상대방을 위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란 사람들 삶의 양식을 벗어 던지고 풍토에 맞지 않는 문화를 습득해야하고 ,힘 없는 사람일수록 오순도순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으름장을 놓고 협박해야하는 삶이란 이미 인간다움과는 멀어진 모습이니 필경 네온싸인 불빛에 모여드는 날파리떼로 표현되고야 만다
-정순진 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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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삶의 자두리
삶의 자투리
조그마한 화단 안의 풀꽃들과
눈싸움을 즐겼다
때로는 고집스러운 담벼락을 뚫고
나는 새의 깃에
하늘 가슴 깊이 안겨도 보고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 위에
또 다른 무게로 내려앉는 상(像)
눈물의 한 올을 찾아 백두산 천지로
한라산 백록담에서 캐낸 기쁨의 한 올로
숨겨둔 보물 상자를 찾아가듯
삶의 자투리를 찍어내며.
이제 전민 시인도 후반부 인생을 사는 사람.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고 있고 오늘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오늘의 인생을 ‘자투리’로 인식하고 있다. 자투리란 본래의 것을 떼어낸 나머지 부분을 말한다. 자투리땅. 자투리 옷감 그렇게 말하는 바로 그 자투리다. 그렇지만 그는 그 자투리 인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귀하게 소중하게 대하면서 잘 써먹겠다고 다짐한다.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눈물의 한 올을 찾아 백두산 천지로/ 한라산 백록담에서 캐낸 기쁨’은 자기의 지난 인생에 대한 총평이다. 보람이다. ‘숨겨둔 보물 상자를 찾아가듯/ 삶의 자투리를 찍어내며’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망이고 나름대로 각오다. 이 또한 좋은 일이고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의 인생이라도 여벌의 인생은 없다. 누구나의 인생도 급하고 소중하고 엄중한 것이다. 인생을 엄중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그의 인생은 엄중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바닷가에
미역 냄새 해초 내음 갯골 타고
촉촉이 불어오는 솔숲 언덕에다
행주치마 너비만 한
초집 한 채 오뚝이 마련하고
둘이는 하나처럼 살겠네
토방 위엔 세파에 깎인 조가피와
천년 씻긴 조약돌이 가득하고
나는 철없는 내 아이들처럼
맨발로 모래밭을 휘젓다가
개흙이 묻은 손끝으로
원고와 책들을 매만지며
책갈피 작은 바다 파도 따라
갈매기 되어 나를래
뭍을 떠난 꿈의 통통선
피안에 와 닿을 때
밤 파도 소리는 일기 시작하고
비워둔 또 하나의 방에는
상현 달빛 외줄기
멀리서 들려오는 영혼의 속삭임을 부르며
가냘픈 맨살을 창틀에 부벼대며
제 몸 앓고 있을걸세.
바다는 시심의 안식처이다. 삶의 무게를 의식할 때,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때, 또는 현실을 보는 착각의 눈을 의식할 때, 바다로 간다. 바다에는 고향 냄새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원시성의 순수가 있다. 바다는 곧 영혼의 태반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시인은 마침내 바다(海) 속에 어머니(母)가 있음을 설파한다. 어머니는 곧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자비의 손결로 상징된다. 이제는 어머니의 가슴속에 하늘과 바다가 들어와 있게 된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들어온 그 하늘과 바다는 사랑과 은혜로 점철된다. 끝없는 연모의 세계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 세계를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 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착 각
신부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거울을 보고 또 보면서
저의 미모에 자만해서 우쭐했습니다
제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어떤 중년 부인이 고해성사를 했다
생각은 죄가 아니고 착각일 뿐이지요
혹간 착각을 죄로 착각하는 분도 있지요
자매님은 걱정 안하셔도 되겠네요
부인의 고해성사를 경청한 신부님은
칸막이 커튼을 조금 들어 올려
그녀를 훔쳐보며 이제 안심하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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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 없다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까. 현실을 보고 그것만 믿는다면, 또 자신의 생각은 미루고 남의 말만 믿는다면 살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착각 때문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생각만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기는 착각에서 나온다. 적진에 뛰어들어 무찌를 수 있다는 착각이 없다면 용기가 없어 패하게 될 것이고 어떤 것을 발명하는 기초적인 생각도 착각에서 시작된다. 착각은 상상으로 모든 생활의 기본이 되기도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적 출발이다.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상상도 착각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사람의 대표적인 착각은 짝사랑이다.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도 좋아 할 것이라는 생각, 또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위험에 빠진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을 방관하는 생각, 남이 인정하지 않아도 자신이 제일이라는 생각 등등 정신적인 착각이 있으며, 자연 속에서도 많은 착각이 있다.뻘에서 잡는 조개가 모래 속에서 사는 줄 알지만 물이 들어왔을 때는 밖으로 나와 먹이 활동을 하는데 사람은 조개가 모래 속에서 사는 줄 착각한다.자연에는 그런 예가 무수히 많다.그런 착각의 현상을 전민 시인은 해학과 교훈적인 안목으로 읽어 내었다. 사람의 내면 깊숙히 들어있는 상상의 세계는 자신에게는 정상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웃음거리다. 일상에서 그런 예는 많이 노출되어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준다. 고해성사의 장면을 창조하듯 읽어내어 실제인지 아닌지 또는 그럴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읽는 이에게 보여준다. 이말을 듣는 사람은 듣자마자 웃을 것이다. 그러나 웃지 말자. 우리 모두는 착각에 빠져 살고 나는 정상이라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착각일 수가 있다. 착각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교훈적인 가치가 있다는 전민 시인의 혜안이 넓다
- 이오장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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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연습
살아온 나이
살아갈 나이보다
중간은 넘었다 생각되면
차지하는 것보다는
이제 버리는 연습으로
마음을 비워가야 할 때다
어깨 끈을 짓누르던
잡다한 삶의 방정식과
애증의 찌꺼기와 분노를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지나간 시간을 새겨보다
잔직하고 싶은 것 하나
내 남은 생애 속에
쉼표 하나를 찍어두고
숨 고르는 연습하는 거다
일생동안 모으고 가지려는 자기 욕망의 헛됨을 지적하고 자신을 사로잡는 소유를 줄이고 비우는 일들로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렇다. 이러한 욕망이 얼마나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는가. 우리도 비우고 비우는 생의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만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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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한 세상
욕심 채워 살면
못할 일 뭔가
모래 섞인 물에
눈부신 빛 막아 줄
벽 하나 있으면 되지
짧은 생애
광내며 살려면
못 살 거 뭐 있나
곧은 줄기
있어서 흐뭇한 친구
꿈의 향기 찾아주면 고만이지
젊은 문지기가
아무도 모르게
공주님의 머리에
꽂아준 선물
난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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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기개는 꿋꿋한 의지에서 나오고 여인의 절개는 깊이 품은 향기에서 나온다는 말은 청초한 난초의 초연한 자세에서 비롯되어 선비와 여인의 절개에 비유되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회자 된다.
과거와 현재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난초를 곁에 두고 자신을 바로잡는 지표로 삼는 것은 곧게 뻗어나가 허공을 갈라도 직선의 날카로움을 버리고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우주의 미학을 깨우쳐주는 포용의 자세에 있다. 그 모습에서 선비는 기개를 품고 여인은 절개의 향기를 품는다. 한데 전민 시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인생의 참모습과 우정의 진실을 찾았다. 누구나 욕심으로 가득 차 가진 만큼보다 더 크게 가지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데 모래 섞인 맑은 물에 햇빛 가리개 하나 있으면 되고 곧게 뻗은 줄기 내밀어 진실하게 손잡아줄 친구만 있으면 된다는 일갈은 경쟁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를 말한다. 삶에 있어 친구만큼 귀한 존재가 있을까.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떠올리기만 하여도 흐뭇한 친구, 그런 친구가 없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친구는 자기를 비춰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을 비춰볼 수 없다면 과거를 잊는 것과 미래를 넘겨다볼 희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인은 말한다. 꿈의 향기를 현실에서 얻으려면 진실한 친구를 가지라고 그러면 인생길의 동반자인 공주를 만나 비교하지 못할 행복을 가진다고. 난초 한포기를 큰 폭으로 그려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움으로 화폭을 채웠다.
- 이오장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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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 지프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홍성 내 고향 옆 동네에는
우리 가족이 사는 초가삼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기와집을
부러움의 눈으로 신비롭게 바라보았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집이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인 것 같다
친구들과 하굣길에 지프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한길을 지나갈 때
코찡찡이들은 뒤를 따라 마구 쫓아 달렸다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지프였다
갑자기 차가 후진하더니 나만 골라 태웠다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는 부러워 차 뒤를 쫓고
왜 나만 찍어서 태웠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퉁퉁하지만 키는 별로 크지 않은 신사
무뚝뚝한 쉰 목소리의 그 아저씨는
고향에 돌아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2등으로 낙선한 김두환 주먹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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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적 구조는 그 집단이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을 구성할 뿐 아니라 집단 그 자체를 재현한다 (정현목 2013,Bourdieu 1977) 이처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장소가 되는데,이는 구체적인 사물과 대상이 함께 존재하는 물리적인 기반이 된다 공간은 고정되고 죽고 정지된 것 이라는 푸코의 말과 달리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공간에서 한걸음 나아간 의미로서의 장소에서 우리는 현실과 유추적 관계를 지닌 채 살아가며 이에서 삶의 총체적 의식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 특히 문학작품 내에서 드러나는 장소의 의미는 단지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어떤 장소에 존재하며 그 장소는 자신이 석한 가치관과 융합되는 한편 ,작품에서는 특정한 구체적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장소를 선호하느냐에 다라서 그에 적합한 문화도 함께 받아들이는 한편 그러한 특성들이 모여 객인의 정체성은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에서 화자는 어릴적 살던 동네에서 김좌진 장군이 살던 집과 마을 주변에서 김두환의 지프를 탄 일화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기억의 기능을 통해 선별적으로 추려 좋은 것만 남기려한 긍정적인 의미를 띤 것으로 보인다 추억은 기억하려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늘 아름답고 좋은 기억만 남기기도 하고 나쁜 기억만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려는 의도는 긍정적인 삶의 삶의 자세를 지니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과거의 좋은 기억을 떠올려 위로받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점도 없지 않다 화자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과거의 기억 속의 사실을 떠올린다 다른 아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유독 화자만을 차를 태운 사실적 기억은 어린 시절의 특별하고도 기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다른 대우를 받았던 상황인데 이는 김두환 주먹왕의 손을 잡고 그의 차를 타고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기억을 떠올린 점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느꼈을 우월감은 현재의 상황에서 떠올려 봐도 자신이 선택된 이유는 정말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힘든 삶에서 가끔은 이유를 모르는 행운의 손이 선뜻 다가온 그 순간과 같은 따뜻한 위로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추억 속의 작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다시 현실의 삶으로 다가서는 용기를 갖기도 한다 -
- 김지숙 평론가
아버지의 일생
팔순 가까이 까지는 건강하시더니
무릎 아파 침대에 누어지낸 8년여
고통과 무기력한 노년시대 보다 더
한참 꿈도 많았을 청장년 시절에는
향유할 자유도 일제 치하에 빼앗겨
징용으로 징집된 군노무자로 사셨다
그래도 아버지 일생 중 최 전성기는
황무지에 옥토 몇 평 손으로 개간해
아들 딸 낳아 기르시며 손주도 보고
밭에다 수박과 딸기 심어 돈 모아
자식들 학비와 용돈도 마련하시던
40대 70대까지가 전성기이셨다
나도 이제 80에 접근한 노년기 인생
아버지의 일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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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인의 아버지의 일생을 짐작할 수 있다. 전 시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징집되어 군노무자 생활을 했으며 40대부터 70대까지는 개척적인 농부로 사셨다.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자행한 제2차 세계대전의 징용 노무자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아버지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시절의 젊은이 가운데 특히 피해를 많이 본 아버지인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가 해방 이후에도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삶은 희생되고 만다. 그러나 이 시절이 전 시인의 판단에는 아버지의 가장 최전성기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삭막했던 삶을 80을 눈앞에 둔 지금에야 아들 전 시인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전 시인의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회한悔恨은 아버지의 삶이 어떠하든지 아들로서는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시인의 경우 아버지의 젊은 날과 장년과 노년기 특히 8년 동안 농사지은 후유증으로 8년을 누워계셨으니 그 회한의 정도가 남달랐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절제된 감정으로 드러내는 이 시에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50회 생일에
더도 덜도 말고
딱 오십 년 후에
제 발로 떠나버린 사람
등 밀어 보내버린 사람
돌 던저 과녘 맞춘 사람
맞은 사람 가리지 말고
눈자위 맴도는 사람
뒤퉁수마져 멀어저간 사람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지난날에 입었던
헌 누더기 옷 과감히 벗어버린 채
알몸으로 이 자리에 다시 만나
가슴속에 깊이 묻어둔
우리들의 이야기 모두 꺼내
막소주나 한 잔 곁들여 나누며
과거 여행 떠나보면 어떨까
내 귀빠진 턱
톡톡히 한 번 낼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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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 생일이 지나간지도 몇해나 되었습니다.
전민 시인님도 우리와 비슷하시지요.
시인은 참 욕심도 많으십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50년후에....
100살 생일날의 만남을 꿈꾸시네요,
문학은 원래가 허구를 기초로 하는거니까.
꼭 그대로 이해해야 되는건 아니죠.
그러니까 오랜 세월이 지난 훗날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선도 의미없을 그런날에.........
이승의 가지가지 만남과 헤어짐으로 뒤엉킨 인연들
스스로 혹은 억지로 떠난 사람이나,
마음 아프게 했던사람,
아픔을 받은사람,
그리운사람들까지 다 만나보고 싶다.
일생동안 갖가지 영욕이 어쩌면
누더기 아니겠어요?
벼슬도,지식도,돈도 한 50년후에 보면 누더기에 불과하죠
그 누더기 다 벗고,태어날 때의 모습으로 만나서
진실한 이야기나 해보자.는거죠?
하필이면 그 많은 술중에도 막소주를 생일턱으로 내려 하지요?
그렇군요.
그런 만남에 막소주가 제격이겠네요.
기름진 안주에 향기로운 미주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요
장가들고 어른이되어 맞은 서른살 생일과 마흔살 생일보다도
쉰살 생일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죠.
살날이 훨씬 적으리라는 생각과,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
아직 쉴 수도 없고,정력적으로 일할 수도 없는 나이 쉰살.
사회에서는 빨리 비켜달라고 밀어내는 나이.
몇해전 쉰살의 내 생일날 나는 무슨생각을 했나요?
전민시인의 "50회 생일에"를 읽고 쓰는 넉두리입니다
배경음악은 문주란이 부르는 '하숙생"입니다
전민시인은 유성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 정희태 시인
거울
웃는 사람 보며 울지 않았고
우는 사람 향해 웃지 않았다
너 안에 내가 있어 행복했던
한 번도 역행하지 않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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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시인의 인생론을 펼치고 있는 단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면 ‘거울’이라는 사물은 한국 현대시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이다. 그리고 기존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내면성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전 시인의 경우 내면성보다 거울의 정직하게 보여주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이 점은 전 시인 나름의 삶이나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이고 이면에 감춘 것이 없는 순수성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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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성찰省察
인생 팔십 가까이 살다보니
사는 거 참 별거 아니더라
돈과 인연 없는 시나 쓰다가
끼니 챙기며 사는 게 다더라
시 「늦은 성찰」의 경우에서 평생 돈 안 되는 ‘시’만 쓴 노시인의 독백이자 인생에 대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삶 자체에 대한 가벼움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돈과 명예 등으로부터 초월한 무소유로서의 인생에 대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전 시인의 시작 태도는 윤리적 실존으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달리 표현하면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문학관이라고 볼 수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인생론(人生論)
용돈을 쓰듯
많이도 써버렸다
반은 썼을까
그 이상을 써을지도
남은 생애(生涯)
존졸히 써봐야 할 텐데
누가 보태 줄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 썼다고
나무랄 것도 아니고
인생은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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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의 시간도 누군가에게 받은 용돈 같은 것이라는 게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몇 푼 안디는 돈은 호주머니 속에서 금방 바닥이 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인생도 그와 같은 것일 것이다. 용돈은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내 마음의 부(富)를 가꾸고 키우는 것은 내 노력의 땀방울이 아닌가. 인생론이란 사람마다 각자 다른 지표가 있을 터이다. 전민 시인은 그 인생론의 지표가 용돈가 같다고 하였다. 반쯤 써버렸을 것 같은 인생이란 용돈, 잘 못 써도 잘 써도, 그 용돈이란 인생이 줄거나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긴 시간도 방탕하게 살다 보면 지나간 줄 모르는 것이고, 뜻있고 알차게 써도 모자라는 게 시간이다. 아쉬움이야 물속이나 물 밖이나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도 뜻있고 아름답고 진실하게 땀 흘려 사는 그런 삶에서 우리들 삶에 주어진 시간이란 용돈은 천금일 수도 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있을 것이다. 뜻있고 아름다운 삶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만큼 보람된 인생의 용돈을 쓰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화답을 보는 것 같다.
-풀과별 엮음 지하철 시집 『 희망의 레시피 』,《문화발전 》에서
인생통장
내 인생의 수입과 지출은
고희를 막 넘기고 나서야
어느 정도 셈 할 듯도 한데
여생의 잔고는 통 알 수 없네
흐른 물은 다시 역류하지 않고
지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데
투억의 카펫을 뒤 밟아 가며
세월 속에 더 밀리어 떠나는 길
저축한 시간의 용돈이 앞으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만
아침에 일어나 항상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점검해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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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장에 저축해 놓고 쓴다? 좀 엉뚱한 생각 일지 모르나 전민시인은 우리가 태어난 시간부터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갈 때까지는 통장 속에 들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시작하고 있다. 인생을 통장 속에 맡겨 놓고 쓴다? 일반적으로 돈 같으면 버는 대로 통장에 수시로 넣고, 쓸 일이 생길 때마다 필요한 만큼 꺼내 쓰고, 다시 돈을 버는 대로 수시로 또 넣고 또 빼 쓰고를 반복하면서 그 통장의 칸 수가 다 차면은 새 통장을 발급 받아 또 돈을 넣고 빼 쓰고를 반복하는 것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한 번 통장에 부여 받은 인생의 시한은 언제 바닥이 날지 아무도 예상을 못하고 하루하루 빼 쓰기를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수가 정지 되고 통장은 거래가 중지 된다. 이것이 돈을 넣고 빼 쓰는 통장과 인간이 태어나 인생이란 시간을 넣고 날마다 하루씩 한 시간씩 일분씩 일초씩 빼 쓰는 인생통장과 다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은 금이다.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라, 나는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등의 말을 통해서 시간이 중요하고 귀한 것이라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실제로 시간의 분,초를 아껴 쓰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연습이 없이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이기에 하루,일분,일초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돈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권력을 위하여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 누구는 말하는 기술,글쓰는 역량,농사 짓는 방법,컴퓨터 다루는 능역, 각종 운동 등 수없이 많은 영역에서 수없이 많은 전문적 기술과 일하는 능력을 키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 승진하고 정년이 되고 돈을 벌고 권력과 명예를 추종하면서 현재를 살아 간다. 그러다 보니 전민 시인이 말한 것처럼 태어나 저축해 놓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아침에 일어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저녘이 되면 현재까지 잘 살아 왔는지를 점검해 본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이를 들어가며 변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종교를 갖게 된다. 그건 종교를 통해 복음을 듣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함이리라. 복음이라고 말하니 전쟁의 공포 속에 살던 마을 사람들 생각이 난다. 모두 그 때 멀리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한 마리의 말, 그 말에 탔던 병사가 우리가 이겼다 하는 소리에 마을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그리고 축제가 버러지게 된다. 바로 복음이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겼다는 소리가 바로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 말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면했고 젊은이들, 사내들은 억지로 군에 가는 것을 면했으니 이 보다 큰 복음이 어디 있으랴. 인생에 있어서의 복음은 무엇일까? 안 죽는 다는 것? 인생통장에 시간을 더 넣어 주는 것? 글쎄 그건 불가능한 것이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보람되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산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다. 골라서 살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현실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순간순간 현실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운명이란 것을 필연적으로 만나면서 현실의 바다에서 헤염 치고 사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을 벗어 날 수 없기에 순간순간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전민 시인은 이것을 미리 알고 오늘 삶을 점검해 보고 살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명수 시인 (충남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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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달걀 장사 사모님
지는 벚꽃이 더 아름답다
절정에
사정하고
한꺼번에만
거두어주는 너
누가
사꾸라라
이름 붙였나
하얀 꽃 태워
깜장 믿음 버찌
품지 못할 향기는
탐내지 않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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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봄에 피는 가장 화려한 꽃이다. 4월의 눈꽃, 하얀 드레스의 신부, 흩날리는 명예 등 우수한 메타포나 상징어들도 많이 있다. 꽃말로도 결백, 순결, 절세미인, 정신의 아름다움 등 화려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4월이 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벚꽃구경, 벚꽃나들이, 벚꽃여행, 벚꽃축제 등등의 소문 소식들이 벚꽃처럼 화려하다. 물론 부정적인 말들 또한 적지 않다. 벚꽃의 꽃말을 ‘중간고사’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경우나 ‘잔인한 4월’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취업준비생들의 경우 벚꽃은 압박 긴장 초조 위험 등 각종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시어로 차용한 ‘사꾸라’는 모호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관련, 부정적 관점이 일반적 견해일 것으로 생각해본다. 본래 벚꽃, 벚나무를 일본말로 사쿠라 라고 했다. 이 사쿠라는 공식적인 일본의 나라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일본의 상징이었고 천황의 꽃이었다. 눈부시게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꽃눈처럼 흩날려 버리는 단명의 꽃이지만 중세의 사무라이들은 그들의 정열과 목숨을 사쿠라에 오버랩 시켰다. 이때 사쿠라는 다시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새겨져 ‘문명의 상징’ ‘인간으로써의 명예로운 삶의 절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맨몸으로 최후를 장식하는 가미가제의 용사들, 통곡하며 배를 가르는 충직한 신하들에 대한 ‘미학적 죽음의 형상화’에 이 꽃이 또 기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또 다른 사꾸라의 의미영역이 확대되었다. 사꾸라는, 여기 와선 이사람 편 인척 하고 저기 가선 저 사람 편 인척 하며 애매하게 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숨어서 공작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가짜, 사기꾼, 간첩 등 부정어로 변하여 심한 거부감을 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중대’의 의미를 내포한다.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일중대와 뒤에서 협력하고 뒷받침 해주는 조력 역할의 이중대란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중대’를 거꾸로 하여 ‘대중이’라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로도 사용했지만, 그것도 물론 아니다. 똘마니부대, 병신부대, 때로는 빨갱이 의원들을 지칭했지만, 사꾸라 이중대는 또 다른 의미로 더 확산될 것이다.
<지는 벚꽃이 더 아름답다>고 시인은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내놓았다. ‘사꾸라’라고 하는 이 거부감의 낱말이 시어로 포용되면서 이 시의 의미는 더 크게 확산된다. ‘절정’ ‘사정’ ‘깜장 믿음’ 과 같은 시어는 ‘사꾸라’와 더불어 전민 시인의 종심의 언어로 값을 더할 것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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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사환, 평사원, 사장님도
임시직 정규직 고위직도
농부 어부 상인 공장장도
시 안에서 만나면 다 친구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시인이겐
계층과 계급 빈부의 차이가 없다
가난뱅이나 부잣집 마님
죄인은 죄를 뉘우치며 새 삶을
깡패는 약자를 도우려 할 때
가슴이 얼음장인 사람도
시를 읽고 쓰면 시인이 되어
가슴이 따듯해지고 선인이 된다
연약하고 아픈 사람과
살아 있는 동식물을 좋아하고
권력의 칼 앞에서는 방패로
새 인간과 사물을 재 창조하며
수백 년 좋은 시 남겨 사람받는
자유인, 철학자가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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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의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문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를 말한다. 시인은 그런 시를 짓는 사람을 칭하며 삶의 전부를 비춰낼 수 있다면 어떠한 직업을 가졌든 시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소설가, 화가, 음악가, 예술가 등의 가家 라고 하지 않고 영원한 사람人이라는 뜻으로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시는 정답이 없이 무궁무진하게 확장되어 가는 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시인이 되는가. 이것 역시 정답은 없다. 삶의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과 그것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다면 무슨일 하고 있든 시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쓰는 일은 아무나 하지 않는다. 시는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라 삶을 비춰내는 거울이라서 자신의 삶이든 남의 삶이든 이해하는 과정을 모른다면 단 한 편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희노애락만을 그려낸다면 시라고 할 수는 있으나 공감을 얻지 못하여 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전민 시인은 이것만을 한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아무나 될 수 있고 어떤 삶도 그려낼 수 있는데 간판도 아닌 시인의 자격요건을 굳이 내세우는 현실을 지적한다. 사환, 평사원, 사장님도 쓰고 임시직이든 정규직이든 어느 자리에 있어도 시를 쓰면 시인이라 불리는데 학력을 자랑하는 것도 모자라 문학박사를 내세워 만인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때만 되면 문단의 감투를 하나 더 쓰려는 이합집산의 무리에게 점잖게 나무란다. 시는 삶을 비춰내는 거울이다. 진실한 삶으로 남이나 단체를 위하여 살아간다면 그 만큼의 작품이 나온다. 시는 감투에서 오는 것도 학력과 학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시인의 진심이 문단에 통하여 시인의 정의가 바로 서기를 기대해 본다.
-이오장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감나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이치인데
감씨 묻은 곳에
고욤나무 태어나고
본가에 감나무 생가지 양자 보내야
혈손 닮은 자손, 감이 열린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사람다운 인간이 다 되는 건 아니다
생가지를 칼로 베어 뽑은 핏줄로
접붙이는 아픔을 겪으며 환생한
감나무에서 인간도 배워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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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인이 시적 제재로 삼은 감나무는 씨로 심으면 열리는 것은 감이 아니라 고욤이 된다는 속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나무 묘목은 씨로 성장한 것보다 접을 붙이는 바탕이 되는 대목臺木에다 접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즉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단감나무를 접붙이는 경우도 있고 돌감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대봉감 나무를 접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씨를 심으면 먹은 감이 아니라 대목의 감 즉, 고욤이나 돌감이 열린다고 한다. 이러한 식물재배의 원리에서 감나무 심으면 고욤 열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전 시인은 이러한 속설을 바탕으로 인용한 시 「감나무」에서 전 시인 나름의 윤리적 인식을 한다. 즉 다른 식물들인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진리를 반하여 감씨를 심으면 감이 아니라 고욤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을 열거 하고 결국 씨로 수확하기보다 다른 감의 생가지를 양자로 보내야 온전한 감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그런 후 둘째 연에서 전 시인 자신의 윤리적 의미를 감나무의 접붙이는 것을 비유로 하여 살핀다. 인간을 태어난 그대로 두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육을 통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고 살아온 과정의 우여곡절에서 점점 쓸모 있는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감나무’의 속성을 시적 제재로 삼은 전 시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잡초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
논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차지할 자리를 가리지 못해서
뻗어 나갈 내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하늘 바라보다가
잡초가 돼 뽑혀 버려진 인간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무명초도 소중한 인간이 된다.
산삼도 태생은 잡초
애초에 잡초는 없었듯
뽑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태양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우리는 산삼보다도 더 귀하고
태양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
나만의 타고난 자질을 맘껏 펼쳐
지상에 풀꽃 향기롭게 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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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잡초」의 경우는 특정한 잡초를 시적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다. 잡초를 전 시인 나름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태어날 곳이 아닌 곳에 태어나면 벼나 산삼도 잡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첫째 연부터 전 시인 나름의 윤리적 실존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성이다. 인간들 가운데는 뻗어 나갈 자리가 아닌 곳에서 허황한 꿈을 꾸다가 잡초가 되어 퇴출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적성이나 분수를 잘 파악하여 능력을 발휘하면 누구나 그 나름의 소중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첫째 연부터 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애초에는 잡초도 없고 뽑혀 나갈 사람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전 시인의 휴머니즘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 즉 ‘나’ 한 사람 한 사람은 산삼보다 귀하고 태양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직설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타고난 자질을 마음껏 펼치면 풀꽃도 향기를 피우듯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6월의 산하에는
–비무장(DMZ)지대
6월의 산하에는 멧돼지와 산양, 고라니 가족들과 기러기떼만 날고
산 능선 따라 동의나물. 산딸기와 평야의 초지엔 크고 작은 야생초
돼지풀, 개망초, 양지꽃. 원추리, 양지 언덕엔 할미꽃, 노랑 제비꽃
계곡습지에는 무당개구리 알알이, 산 복판엔 싱싱한 습지 식물들과
땅과 물 사이에 작은 생명체들이 6월의 사연을 담아 꽃으로 피어난.
갈까마기 몇 마리만 자유롭게 날고, 연어는 남북을 지나 태평양으로
음지가 된 민통선 이남에 핀 양지꽃, 꼬리조팝나무. 벚꽃, 복사나무
늪지, 건습초원, 관목습지, 산림습지, 유월의 총탄에 유린당한 국부엔
자궁을 지켜온 토종 생명체는 숨고 외도로 유입된 외국산 동·식물들이
외아들 바친 할머니, 새신랑 보낸 새 새댁 가슴밭을 글로벌화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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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인간이 아닌 모든 평화와 안존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있다. 평화란 천국이 아니요, 인간이 아닌 원시의 모습도 아니다. 오직 가장 원시적인 삶과 삶끼리 가장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에 존재한다. 비무장(DMZ)지대인 <6월의 산하에는>‘멧돼지와 산양, 고라니 가족들과 기러기 떼’, 그리고 ‘동의나물. 산딸기와 돼지풀, 개망초, 양지꽃. 원추리, 할미꽃, 노랑 제비꽃’, ‘계곡 습지에는 무당개구리 알알이, 산 복판엔 싱싱한 습지 식물들과 땅과 물 사이에 작은 생명체들이’각자의 삶을 누리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의 자리가 되어 그곳에서는‘유월의 총탄에 유린당한 국부엔 자궁을 지켜온 토종 생명체는 숨고 외도로 유입된 외국산 동·식물들이 외아들 바친 할머니, 새신랑 보낸 새 새댁 가슴밭을 글로벌화 해 가고’있다.
-구재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
캄캄한 밤보다는
대낮이 더 무서워요.
맹수보다는
인간이 더 무서워요.
자연 파괴범이 들어왔어요
못된 인간들이 몰려와
하늘이 내려다보고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린 풀꽃의 목과
나뭇가지를 비틀어 꺾으며
나의 온몸을 더듬고 있어요
치마폭을 헤집고 있어요.
현대 문명으로 얼룩진 인간의 붉은 정액이 녹색 대지의 온몸 구석구석을 꿈틀거리며 헤집고 오는 세월마저 나의 목을 바짝바짝 조르고 있어요. 살려주셔요. 자연이 인간에 보내는 이 쪽지를 보시는 대로. 어서 빨리요 하느님.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를 시인이 먼저 보고 있다. 편지 용이 곧, 못된 인간을 고발하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으로 자연은 여성으로 나타나 있으며, 인간은 맹수보다 더 무섭고 벌건 대낮에 목 꺽기, 비틀기, 강간 행위를 일삼는다. 인간의 붉은 정액은 현대문명의 산물이다. 역시 자연 파괴범이며 살상범에 속한다. 결국은 하느님에 호소하며 절대의 힘을 요구한다.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전하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지만, 우리는 그 메시지를 읽고 있어야 할 것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울보 노시인 박용래
계룡산 가을 갑사의 저녁 정취는
젊은 노시인 박용래의 울음바다다
토박이 윤석산 시인이 자리를 펴자
반포 이장희 시인이 흥을 돋우고
한성기 시인이 펼친 민화투 판으로
젊은 시인들이 대부분 모여들지만
막걸리 잔에 시를 탄 박용래 시인은
깊어가는 밤을 시로 마구 부벼대면서
유성 터미널에서 천안 쪽으로 가는
금남 여객 버스 뒷좌석에서 졸다가
딸이 짜서 만들어준 털모자를 쓰고
앞문 쪽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버스로 오르고 있는 늙은 젊은이를
끌어안고 마구 흐느끼며 울었지
이렇게 너를 여기서 만나 반갑다고
승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조치원역 앞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현지인 강금종 소설가와 장시종 시인을
불러내 주어라 마셔라 어깨동무하고
막걸리 사발에 눈, 콧물이 다 빠저도
몇 번이고 부딪고 또 부딪치며
볼과 볼을 비벼대며 부둥켜안고
젊은 노시인은 춤도 추며 울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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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관희) 이 작품을 금호(산문의 시-이야기시-작품과 작법 49) 첫 번째 편집 자료로 삼은 것은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보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 작품이 나에게 오랫동안 말못하고 살아왔던 개인적인 서글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30년> 이야기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시인들의 노는 이야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노는 것은 일반적으로 논다고 할 때의 그런 노는 것이 아니다 흔히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고 할 때의 , 당해 봐야 알 수 있는, 즉 시인이 되어서 시인 친구들과 놀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놀이인 것이다 내 가슴이 아픈 까닭은 나도 한 사람의 시인인데 그리고 나이도 30도 아니고 5,60도 아닌 80이 넘은 노인인데 시인들과 놀아본 일이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름을 밝히고 있는 시인 작가만 일곱이다 박용래 시인 윤석산 시인 이장희 시인 한성기 시인 강금종 소설가 장시종 시인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전민 시인 그 외 젊은 시인들 대부분 모여든다고 한 젊은 시인들 다수가 포함된다 불과 3연 밖에 안되는 짧은 시 한 편속에 마치 탁자가 서너개 밖에 놓여 있지 않은 시골 막걸리집에 손님이 미어터지게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풍경과 같은 형세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시인 작가들이 막걸리 사발에 눈,콧물 다 빠트려 가며 거기다 볼과 볼을 비벼대면서 부등켜안기까지 하며 노는 그 놀이가 대체 무엇인가? 어린 시절 딱치치기 놀이인가 말타기 놀이인가 아니다 막걸리잔에 시를 타 마시는 놀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느낀 서글픔이 바로 이것이다 중학시절부터 문학작품아 아니면 보이지도 않고 생각나지 않는 일생을 살아 왔는데 나는 이런 시인 친구들과 막걸리잔에 시를 타 마시는 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시를 쓴다고 하니 내 시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아이들은 싸우면서(놀면서)자란다고 하는데 시인들도 놀아야 시가 자라는 법이거늘 나는 왜 시인 친구들과 놀아보지 못하였는가? 막 놀기 시작할 나이 30에 밥 얻어 먹으러 미국 이민 가서 놀이가 끝난 60이 넘어서야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이민 생활 30년은 마치 이산가족이 만나지 못하고 산 30년 세월과 같은 잃어버린 30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도 되돌릴 수 없는 쇠는 쇠로 벼리는 법이거늘 친구들과 막걸리잔에 시를 타 마시는 놀이 없이 시는 결코 날카롭게 벼릴데가 없는 법! 진정으로 문학에 살고 문학에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굶어 죽어도 모국어 환경은 떠나지 마라 물고기가 물을 떠나 어찌 살겠다 하는가?이런 연유로 금호는 어쩔 수 없이 필자의 개인적인 잃어버린 30년 이야기로 감상문을 열게 되었다 시인 친구들과 이런 시를 쓸 정도로 놀아 본 전민 시인은 참 행복한 시인일 것이다 시인 친구들과 놀아본 그것이 곧 즐거운 시의 삶이 었을 테니까. --이관희 시인 (산문의 시 발행인)
봄 비
미나리꽝 몸 푸는 기지개
안개는 버들강아지를 품고
속살 깊이 스며드는 봄 향기
귓불을 간지럼 태우는 봄비
눈꽃 가지에 숨겨놓았다가
봉긋이 기어 나오는 홍매화
화신을 꿈꾸는 꽃술 머리에
봄의 숨결 한 움큼 뽑아내
폭죽 터지듯 꽃망울 톡톡
눈시울 뜨거워지는 한 몸
겨울 나뭇가지의 봄노래
휘감겨 오는 축제의 행진
꽃씨 하나 묻어놓지 못한
고희의 문 윙크하며
은신을 곱게 벗어놓는 봄비
연초록 보따리 풀어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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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봄의 전령이다.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살펴보자. 미나리꽝이 기지개를 켜도록 한다. 버들 강아지 속살 깊이 봄 향기 스미도록 한다. 만물의 귓불을 간지럼 태운다. 그리고 홍매화가 기어 나오게 한다. 봄의 숨결 한웅큼 뽑아낸다. 겨울 나뭇가지에는 봄 노래를 매달고 축제의 행진을 벌인다. 그러나 꽃씨 하나도 묻어놓지 못한 내 고희의 문 앞에 와 윙크하며 은신을 곱게 벗어놓고 연초록 보따리 풀어 놓는다.
의인화된 봄비는 입춘대길의 희망이며 희망을 전해주는 메신저이다. 특히 시인의 칠십 고희를 연초록 희망으로 축하하는 위대한 시심의 주인공이다.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며 참 지식에 통달한다는 저 격물치지의 경지에 이르는 시인의 서정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단풍꽃
이순耳順의 텃밭을
뛰쳐나간 내 삶의 불씨 하나
고희고개 갓 넘어가
가을 산에 불을 붙인다
파란 청춘의 잎도 태우고
노란 장년의 줄기도 태우고
노년의 가지로 타고 내려
유년의 실뿌리까지 태운다
석양에 붉게 색칠해놓은
무지갯빛 추억은 그대처럼
단풍꽃 다소곳이 피어
빈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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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은 예순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역시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 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 이순의 텃밭을 뛰쳐나간 삶의 불씨 하나가 고희 갓 넘어선 가을산에 불을 붙인다. 유년의 실뿌리, 청춘의 잎, 장년의 줄기, 노년의 가지까지, 단풍꽃 다소곳이 피어 시인의 빈 가슴속에 꼭꼭 묻어둔다. 석양에 붉게 색칠해 놓은 무지갯빛 추억이 오버랩 된다. 시인의 일생을 단풍에 비유한 것이다. 그 단풍도 꽃이 되었다. 단풍꽃, 그것은 곧 시인의 고희, 메타포인 것이다. 아름다움이며, 희망이며, 일할 수 있는 여유이며 자유로움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도망친 암소
내가 무슨 큰 죽을죄를 지었나요
가해자를 들이받고 도주한 정당방위인데
가산 늘려주려고 아기 낳아 주었고요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온갖 힘든 논밭 쟁기질 혼자 다 하며
한평생을 주군에 충성을 다 바쳤는데
나이 들어 기력이 좀 떨어졌다고
돈벌이 아이도 낳을 수 없을 거라고
형장으로 무작정 끌고 가 , 토사구팽
목숨 보전하기 위해 도주한 죄의 대가를
인간들의 맛 감으로 갚으려 하고 있어요
새소리와 물소리만이 내 친구인 숲속에서
인간악마가 쏜 저주의 마취 총에 맞아
정신은 몽롱해지고, 푸른 하늘은 노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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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으로 한편의 시 제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고 또 그 제목이 시 일족을 아우르고 대표하는 명패로 내걸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요 이 시집에는 시의 소재부터 표현방식, 시의 양식 등이 뚜렷이 다른 다양한 시들이 숨쉬고 있습니다 . 시 속에서 말들이 만나 호응하고 투쟁하며 의미생산을 주도하는 언술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전선에는 아이러니로 위장 매복시킨 전사가 아주 쉬운 시적 진술을 역설적 방향으로 끌고 가 시의 영토를 확장 합니다 "도앙친 암소"는 부정적 정서나 선입견으로 작동되던 도망, 도주의 의미를 정당성의 의미망에 전속시켜 생명의지의 당당성을 언표하는 탈주의 의미로 전복 시킵니다 새 세계를 획득하기 위한 탈주의 의미 창출이 시의 힘 이지요
이 시집 의 시를 배열한 시인도 우화 성격의 민담 류 담시 연작 계열이나 기행시 등의 그룹에 동물(암소 )이 등장하는 시 "도망친 암소"를 배치하지 않았지요 이 시는 우화나 담시 류가 아니기 때문인 거죠 이 시에서 도망은 역설적으로 전복된 탈주 의미의 키워드입니다.
한 세상을 얻고자 하는 당당한 진술의 어조도 의미전환에 적절히 기능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 이 시집에서 중요한 시적 담론성을 보여주는 시가 "시간 "인 것 같습니다 시간만은 평등 분배라는 시간 인식은 인생이라는 시간의 통장잔고를 가늠할 수 없다는 불안 의식에 빠지게도 하지만 시인이 쓴 시간의 잔고가 통장에 남는 방식은 시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쓰고 쓰고 또 써도 시로 쓴 시인의 시간 계좌에선 안 쓰고 안 쓴 인생의 시간계좌보다 오래 오래 끊임없이 시간의 잔고가 인출 될 겁니다 도망친 암소의 시간도 도망중인 동안의 시간이 계속 녹원의 시간 통장에 입금되지 않을까요? - 이채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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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풍경화
글방 훈장도 하고
갱엿도 고아 파는
웃뜸 김 선상님 댁, 상뜸 조 씨네
큰 아들 서울 나가
미장공 되어 까딱없는 방 서방 댁
속바지 속속 깊이
고린 지전紙錢 숨겨 있을 거라고
냉천 빨래터 뒤뚝이는 바윗돌 위
윤 초시 맏며느리는
깊은 한숨 꺼내 헹궈 빨다가
구 구장 만나러 지나가는
면서기 박 주사 자전거 뒷바퀴 따라
굴렁쇠 되어 쫓아가고 있었다
… 중략 …
어렵게 넘어가던
목 부러진 성황당 고개 위의
헹가래 치던 뭉게구름
송이송이 꽃송이
송이구름 피어나고 있었다
- <움직이는 풍경화> 앞부분과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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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에 전개되는 이 촌락은 시인의 옛 정이 서린 그리움의 정착지이며 성숙한 감각의 고향이다. 어떤 승지도 승경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움직이는 풍경화로 채색되고 있는 것은 굳센 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활력있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속바지 속속 깊이 / 고린 지전 숨겨 있을 거리고 / 냉천 빨래터 뒤뚝이는 바윗돌 위 // 윤초시 맏며느리는 / 깊은 한숨 꺼내 헹궈 빨다가’ … 같은 표현을 보면 기법의 수려함을 인지할 수 있다. 가난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풍경화로 승화시킨 시인의 지혜를 또한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생략된 부분에서의 산밭, 참, 능정이, 보리감자, 면서기, 조합서기, 새경, 금송아지, 옥양목, 뒤주, 맷돌, 도구통 … 같은 낱말들은 시골 정서의 귀중한 품목들이며 움직이는 풍경화의 주제어 이고 주인공이다. 꽃송이 된 뭉게구름의 헹가레도 의인화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풍경화에 한 몫을 한다.
버몬트 출신 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가 어떤 한 연설에서 “나는 버몬트의 언덕과 계곡, 풍경과 상쾌한 기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불굴의 주민들 때문에 버몬트를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문단 활성화에 앞서가는 시인 전민은 충청도 홍성의 고향마을, 불굴의 주민들 때문에 걸작의 <움직이는 풍경화>를 남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달걀 장사 사모님
아내는 달걀 장사 사모님
나는 수박 장수 선생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양계장 집 아줌마 좀
도와주며 살고 싶다며 몇 번 거들더니
아내는 아파트 통로의 달걀 장사 사모님이 되었고
트럭 운전수와 눈 맞아 도회지로 줄행랑친
수박밭 며느리의 홀시어머니 사정이 하 딱해서
스무 나문 통 남짓 사다가 인심 좀 썼더니
그 이튿날부터 나는 수박 장수 선생님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의 젊은 주부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최고만 찾기 때문에
알이 굵은 달걀과 조금 싱싱한 수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뽑혀서 나가고
작은 것, 깨진 것, 꼭지 빠져 시든 것 만남아
중년 부부인 우리들의 마지막 차지가 된다
사실은 가정에서도 매한가지다.
이 시는 시인이 도회의 아파트에 살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 사람들을 도와준 일을 소재 삼아서 쓴 작품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며 미소로운 작품이다. 부창부수라고 시인의 부인도 무척이나 인성이 느긋하고 좋은 사람인가 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양계장 집 아줌마 좀/ 도와주며 살고 싶다며 몇 번 거들더니/ 아내는 아파트 통로의 달걀 장사 사모님이 되었’다는 얘기다. 좋은 이웃이다. 여기에 더하여 남편 되는 시인은 어떤가. ‘트럭 운전수와 눈 맞아 도회지로 줄행랑친/ 수박밭 며느리의 홀시어머니 사정이 하 딱해서/ 스무 나문 통 남짓 사다가 인심 좀 썼더니/ 그 이튿날부터 나는 수박 장수 선생님’이 되었노라는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이웃으로서 이만한 좋은 이웃은 더 이상 없는 일이다. 이러한 선량과 우애가 우리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역시 시문장의 기본 심정은 선량(善良)에 있다. 선량 하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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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어떤 고해성사
국민
할인 상품이 아니요
헐값으로 팔지 마시오
가판대 위에 내어놓고
국민이 원한다면 하면서
간 빼놓고 할인 행사하는
정치인들, 시위대 무리들
국민은 그렇게 가볍게
함부로 세일 물품이 아니요
이제 특상품이 장사치들을
교체 떨이 할 작정이라오
전민 시인이 인식하는 사물과 현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도덕적이었다. 그러나 그라고 해서 그의 앞에서 전개되는 부조리까지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현실을 비극적이고 풍자적으로 보는 작품들도 많이 있다 요즈음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니 국민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리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시위를 하면서 국민을 빙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풍조는 비판한 시가 바로 「국민」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비판하지 않고 상점들의 할인 행사를 가져와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실감나게 읽히고 있다. 마지막 셋째 연의 끝부분 ‘이제 특상품이 장사치들을/교체 떨이 할 작정이라오’하는 부분에서 국민들을 특상품으로 정치인들을 장사치로 비유하여 선거를 통하여 심판해야 된다는 당위성도 밝히고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바 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가슴이 답답하여 올 때
야위여 가는 오늘의 그믐달을
어제의 보름달로 잘못 바라보다가
고향 냄새가 못내 그리워 올 때엔
태초의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잉태한
영혼의 태반, 어머니, 저 바다로 가자
바다 해(海)자에는 어미 모(母)자가
바닷속에는 자비의 손결이 있다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바다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다소곳 여민 가슴속에는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가 있다
天地가 하나로 만나는 수평선 위에는
사랑과 은혜가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바다는 전민 시인의 시심의 안식처이다.
삶의 무게를 의식할 때,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때, 또는 현실을 보는 착각의 눈을 의식할 때, 그는 바다로 간다. 바다에는 고향냄새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원시성의 순수가 있다. 바다는 곧 영혼의 태반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시인은 마침내 바다(海)속에 어머니(母)가 있음을 설파한다. 어머니는 곧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자비의 손결로 상징된다. 이제는 어머니의 가슴속에 하늘과 바다가 들어와 있게 된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들어온 그 하늘과 바다는 사랑과 은혜로 점철된다. 끝없는 연모의 세계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 세계를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바다>에서 어머니의 가슴을 찾은 시인은 <菊花>에서 자신의 마음을 인지한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국 화
내 너를 좋아하는 연유는
사라지는 계절의 뜨락에서
삶 자체가 표현이기 때문
눈물겨운 가식과의 전쟁이
그대만의 색깔과 향기만이
마음밭 풀숲의 한 모퉁이에
의미다운 꽃으로 피기 때문.
화려한 보상을 꿈꾸지도 않고
픙성한 열매를 목표하지도 않고
짧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세속적인 잔치도 아닌 것이
마음과 가슴의 텅 빈 자리에
고집스런 삶의 향기론 의미로
꽃답게 다가와 피어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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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국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이 시는 곧 시인의 마음이라 해도 좋을법하다. 소박한 삶을 가식 없이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풀숲의 한 모퉁이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의미있게 지니고 있다는 점, 화려한 보상 풍성한 열매 세속적인 잔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곬로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런 점이 곧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전민 시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국화가 곧 그 시인의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면 전민 시인이 곧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단 풍
지천명(知天命)의 텃밭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
가을 산을 태운다
잎도 태우고
줄기도 태우고
뿌리까지 태운다
석양에
추억만, 그대처럼
가슴속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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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天命은 나이 50을 가리키고 텃밭은 집터에 딸린 밭이다. 따지고 보면 知天命의 텃밭은 50대 시인의 마음밭인 셈이다. 그 마음밭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가 불이 붙어 들어가는 듯이 가을 산을 태운다고 했다. 잎도 태우고 줄기도 태우고 뿌리까지 태운다고 했으니 온 몸을 온통 다 태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타는 듯한 가을 산의 짙은 단풍은 시인의 가슴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곧 시인의 마음과 불타는 듯한 단풍은 동일시(identification)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단풍은 다시 시인의 가슴으로 회귀(回歸)한다. 석양에, 추억으로 말이다. 모든 부끄러움과 미망(迷妄)의 세월을 다 태우는 듯한 가을산 축제의 교향악이 시인의 마음을 더욱 휘젓고 있는 것이다. 자기응시의 공간을 넓히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해가는 시인의 마음이 잘 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판도라 상자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건네준 선물상자 속에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모든 죄악과 재앙이
여직껏 보석처럼 숨겨 있었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는
정품(精品)으로 포장되어 쌓였던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등이
바람 따라 온 세상을 덮어가고.
맨하탄의 아침
인류의 최고 자존심
쌍둥이 건물이 날아가자
하얀 터번과 콧수염을 찾아
카불의 밤은 반딧불 폭격 먼지만 일었지
우리는 이제
열린 판도라 상자를 덮고
힘에 눌려 튀어나오지 못한
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를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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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는 현대의 극단적 테러에 대한 비유적 고발이며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화해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다. 전 세계 인류를 경악케 했던 2001년 9월의 110층 쌍둥이 건물의 증발, 그 건물은 미국의 부와 번영의 상징이요 여기 시인이 말하고 있는 대로 ‘인류의 최고 자존심’을 세워 놓은 것이었지만 고속 제트기가 그 건물을 들이받는 비극 속에 세상은 충격의 늪에 빠져 들었다. 하얀 터번과 콧수염의 오사마 빈 라덴 이라고 하던가, 근원적 원흉을 찾아 카불의 밤은 정말 반딧불 폭격 먼지만, 일은 것이 되었다. 보복이나 응징의 전과에 대한 효력을 따질만큼 시인의 마음은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불행을 초래한 판도라 상자의 현대판 죄고(罪苦)는 곧‘폭격, 부패, 기아, 전쟁, 등이고 이것들이 바람따라 온 세상을 덮어가고 있는 것을 한탄하지만, 그러나 시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희망은 판도라 상자를 급히 닫는 통에 튀어나오지 못하고 남아있던 것이며 곧 이 시에서 나타난‘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답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하늘나라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상자를 열은 에피메테우스는 형제간이었고,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남편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판도라 상자의 비극속에 묻혀있는 희망의 끈을 잡고 시인의 사유세계는 깊어가고 있다.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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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통골 연달래
싸락눈 내리듯
쏟아져 내리는
푸른 별빛이
여린 가슴을
빗질해 가는 그믐밤
온몸에
열꽃이 난 수통골의
열아홉,진달래는
인고(忍苦)의 아픔을
분홍빛으로 뽑아내는
산 아래 마을
골목골목마다
흥건히 적셔놓은
지난 밤 대자연의
흥겨운 잔칫상
붉은 피.
수통골 열아홉 굽이 깊은 골짜기에 분홍빛으로 흐드러지게 핀 연달래꽃. 연달래는 '연분홍'과 '진달래'의 합성어로 시인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붉은 면사포 쓴 4월의 신부(연달래)는 혼례 잔칫상이 차려진 흥성한 축제의 밤 후 붉은 피를 흘린 채 골짜기마다 분홍빛으로 피어난다. 얼마나 흥겨운 대자연의 향연인가! 현란한 수사 기교를 부리며 에로틱하게 잔치 풍경과 왜 붉은 꽃으로 피어났는지를 장난끼 부리며 능청스럽게 잘도 썼다. '내리듯'의 simile며, '대자연의 흥겨운 잔칫상'의 metaphor, '붉은 피'의 환유 등은 축제의 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장치다. 전민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다. -윤 길 평론가
미세먼지 공화국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세상이
언제 어디서부터인가
흑백텔레비전 속으로 피난 나갔다
높고 파란 하늘도
도시의 건물과 거리까지
울창한 숲과 맑은 시냇물을 몰고서
세상 구경나온 사람들을 유혹하여
어제까지 말짱하던 대낮이
아침부터 어둑어둑 물들어오고
사람들의 폐 속에서
심장과 머리통까지 붉은 먼지가
핏줄에 업혀 핑핑 돌아가고 있으니
숨쉬기 힘든 공화국에 태어난
간난 아기가 빨강 오줌똥 싸며
어른으로 커갈까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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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시에는 침체된 시단의 분위기에 활력을 주기위하여 시로 형상화한 「미세먼지 공화국」을 발견할 수 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대나무
나에게는
한 송이 화려한 꽃도
한 알의 틈실한 열매도
약속되어 있지 못합니다
언젠가 에는 꽃이 필 수 있고
정말로 언제쯤엔 열매가 열릴 수 있는지
자신도 모르며 살아오고 있는 오늘
비바람이 씻고 지난
몇 십 년 후에는
꼭 한 번 쯤
사랑의 꽃몽올도
믿음의 열매 알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른다며
잎 떨어져 가는 아픔을
마디마디에 숨기고 있는
인고(忍苦)의 긴 세월
기도의 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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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형상화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부분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대나무」에서 ‘인고의 긴 세월’을 견뎌내는 지혜를 발견한다. 시에 등장하는 자연은 그것이 꽃이든지 바람이든지 현란한 이미지보다 중후한 정서와 그것들 속에 내포한 관념의 깊이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어떤 고해성사
신부님 제가 백주 대낮에
눈먼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눈 뜨고 몰래 들어가서
말린 고추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양심이 널을 뛰어
잘못했음을 고해하러 왔습니다
회개 하십시오
십계명에 도둑질하지 말라 했지요
도둑질은 형제님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순간의 잘못으로 큰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요
깊이 반성하며 흔적을 지우겠어요
할머니가 볼 수 없을 거라 믿고
고추를 지고 나오며 남긴 발자욱을
성사 끝내고 가서 지워야겠어요
오점을 닦아야겠어요
아멘
코믹하기까지 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해학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해학은 능청에 그 본질이 있고 심각하고 헝클어진 현실이나 대상을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않고 비꼬아서 표현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고해성사’가 그렇고 고해성사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반응이 그렇다. 본말이 전도되어 있음을 은근슬쩍 비꼼이다. 그리하여 사실이나 대상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고자 한다. 어둡고 화가 나고 개탄스런 현실 앞에서 이렇게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전민 시인의 품도요 국량(局量)이다. 국량이란 말을 사전으로 풀어보면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 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이 된다. 아량과 통하는 말이다. 그만큼 전민 시인의 아량이 넓은 것이다. 이러한 아량으로 세상을 볼 때 그의 세상과 그의 시는 더 높고도 깊은 세계와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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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주의보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겨울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지면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고
밖에서 들여다보는 안채도
안갯속에 먼지 없는 세상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
손쉽게 풀고 뛰쳐 나와도 좋고
꿈꾸다 산타할아버지도 만나는
혹한에 또 제설 주의보
잠시도 버티기 힘든 빙판길
하루벌이 일용 노동자
고시 텔의 독거노인들
지하 단칸방의 신혼부부
대출 이자만 눈처럼 쌓이는 상공인
미끄러지면 낭떠러지 힘든 세상
매일 TV는 사람 잡는 영상뿐
시 「한파주의보」는 시적화자이기도 한 전 시인의 현실 비판의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장면만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현실비판의식을 전혀 감지할 수 없지는 않다. 「한파주의보」는 첫 연과 둘째 연의 대조적인 두 장면을 제시하면서 현실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은 비록 겨울이라 눈이 펑펑 쏟아지지만 다소 환상적이고 행복한 풍경이다. 그러나 둘째 연의 경우 그러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용 노동자. 고시 텔의 독거노인, 지하 단간 방의 신혼부부 은행대출이자가 눈처럼 쌓이는 소상공인. 게다가 TV에는 살인 사건만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비극적 풍경이 청산돼야한다는 신념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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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다섯 번이나 죽어야
배추는 김치로 환생한다
밭에서 팽 당하며 죽고
뱃살에 칼날이 갈라 치면서 또 죽고
잘린 몸통에 소금을 뿌려 다시 죽고
고춧가루와 젓갈에 범벅돼 또 죽고
장독에 담긴 시체로
땅에 묻히거나 김치통에 갇힌 채
냉장고에 수장되어 죽은 듯 살아나야
양반 본래의 김치맛을 낸다
우리 인간의 생애도
배추의 일생과 비슷하다
맛깔난 김치처럼 숙성된 삶을 위해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죽여야 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챙기는
허망한 욕망도 죽여야 하고
자신만 손해 본다는 생각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도 죽여야 한다
수시로 욕망의 분출구를 닫아야 산다
시 「배추」의 경우는 배추가 밭에서부터 김치가 되기 위하여 변신하는 과정을 배추의 죽음이라고 인식하는데서 시적 사유는 출발한다. 첫째 연에서 배추는 밭에서 팽 당하면서 죽기 시작하여 칼로 갈라짐, 소금뿌림, 고춧가루와 젓갈로 범벅, 장독대에 담긴 시체가 땅이나 김치 통에 갇힘 등을 모두 죽는 과정이라고 보아 다섯 번이나 죽어야 맛깔스러운 김치로 변신한다고 보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우리 인간도 배추처럼 죽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죽음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결점은 외고집, 고정관념,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싶은 욕망, 자기만의 피해의식,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 등이다. 이러한 결점을 버리는 단계를 거쳐 인간은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인간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배추의 김치 되는 과정과 대비시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 시인의 지극히 도덕적인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며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배추’를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양왕용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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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시대(勝負時代)
자선을 베풉니다
원하는 분은 모이시오
소낙비 몰고 올 먹구름처럼 모이시오
받으려는 욕망은 베풀려는 의욕보다
한 발 치 앞에 서 있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돌아보지 못하는 땅은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전투에서 이긴 자에게는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는 하나의 완벽한 몫을 부여 합니다
몫이 없는 자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빼앗긴 이름은 꽃이 필 수 없습니다
이름이 붙여진 꽃은 청구서를 내시오
자선사업에 나타난 청구서의 위력을 아십니까
돌아서는 지성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왼쪽 날개에 붙은 불꽃은 비상이 될 수 없습니다
갈대밭에 파닥이는 날개를 찾으셨습니까
고정관념의 줄을 잡은 구원의 손에 갈증 품은
연대의 화살촉이 날라갑니다
양보는 패배보다 더 약한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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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동안 모으고 가지려는 자기 욕망의 헛됨을 지적하며 자신을 사로잡는 소유를 줄이고 비우는 일로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짐, 이러한 욕망이 얼마나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고, 비우고 비우는 생의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 문제를 더 많이 포용하고 문명추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기능의 인간성을 현대적 맥락의 주제들을 밀착해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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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한 장이
내 나이 아주 어려
철 아직 나지 못했을 때
내 나이 조금씩 더해
턱수염 까칠까칠해 올 때
내 나이 한참 들어
고향 박차고 뛰쳐나올 때
한 장의 흑백사진에 그려진
숨은 그림은 그대로의 명암(明暗) 밖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숨어버렸지
내 나이 혼자는 어려워
아내 얻어 같이 섞을 때
내 나이 이제는 부끄러워
어린것들 마주보기 민망할 때
내 나이 올해로 마흔 넷
돋아나는 새치 자꾸 덮고 싶을 때
묵은 책갈피 속에서 뛰쳐나온
흑백사진 한 장의 숨은 그림이
총천연색 활동으로 돌아가며
가슴 촉촉이 젖어들고 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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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추억이며 향토적 순수성, 건강한 인간성을 심어내는 온후한 사진 1장의 아름다움이며, 추억이며, 일할 수 있는 여유이며 자유로움이다.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 추억이며 ,촌락의 이야기이며 ,향수처럼 아름다운 고향의 옛 풍경에서 옛정이 서린 그리움의 정착지 .성숙한 감각의 고향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움직이는 풍경화로 채색되고 있는 흙백 사진 1장속에는 굳세게 살아온 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활력 있게 가슴속에 총천연색으로 펼쳐지고 있다. 속절없이 그리웠던 유년의 추억은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