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 조씨"(神定王后 趙氏, 1808~1890)는 23대 "순조"(純祖)의 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빈"(嬪)이자 24대 "헌종"(憲宗)의 어머니다.
남편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왕으로 즉위(卽位)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
일부에서는 독살설(毒殺說)이 있었으나 과로(過勞)가 원인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후 "순조"(純祖)도 일찍 승하(昇遐)하여 아들이 "헌종"(憲宗)으로 즉위(卽位)하자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익종"(翼宗)으로 추존(追尊)됨으로써 "신정왕후"(神定王后)는 왕대비(王大妃)가 된다.
헌종(憲宗)과 철종(哲宗)이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하자 "조대비"(趙大妃)는 왕실 최고 어른의 자격으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을 선택하여 양자로 삼아 고종(高宗)으로 즉위(卽位)한다.
헌종(憲宗)과 철종(哲宗)의 죽음으로 "사고무친"(四顧無親)이 된 조대비(趙大妃)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결탁한다.
두 사람은 당시 나라를 휘어잡은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로써 60년간 이어온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勢道政治)는 고종(高宗)의 즉위와 함께 끝이 났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흥선대원군"은 화려한 "자경전"(慈慶殿)을 지어서 "신정왕후"(神定王后)가 생활하도록 하였다.
자경전(慈慶殿)의 정문은 "만세문"(萬歲門)으로 "대비마마(大妃媽媽)의 만수무강(萬壽無疆)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계단 옆에는 내력을 알지 못하는 "서수상"(瑞獸像)이 하나 서있다.
"자경전"(慈慶殿)의 우측으로는 여름철 주거 용도로 "청연루"(淸讌樓)가 돌출된 누마루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뒤로는 "신정왕후"(神定王后)가 주로 머물던 침방(寢房)인 "복안당"(福安堂)이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청연루"(淸讌樓)옆으로는 "상궁"(尙宮)과 "궁녀"(宮女)들의 처소인 "협경당"(協慶堂)이 있다.
자경전(慈慶殿) 십장생(十長生)굴둑(보물 제810호)
십장생굴뚝에 묘사된 십장생 무늬가 특히 주목된다.
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굴뚝을 만들고 처마와 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고 그 위에 "연가"(煙家)를 10개를 올렸다.
중앙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 문양(紋樣)과 연꽃과 포도 등을 그려넣었다.
"자경전"(慈慶殿) 서쪽의 꽃담도 유명한데 공사중이라 가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