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백일법문] 제6장 천태종사상
3. 일념삼천
천태학(天台學)에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 뜻은 한 마음, 한 생각 속에 무려 삼천 가지의 법계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천태종에서는 법계를 십법계(十法界)로 분류하는데, 그 십법계는 윤회하는 육도(六度)의 세계인 지옥계 · 아귀계 · 축생계 · 아수라계 · 인간계 · 천상계와 성인(聖人)의 경지인 성문계 · 연각계 · 보살계 · 불계입니다. 그리고 십계호구(十界互具)라 하여 십법계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한 법계 가운데 나머지 구법계가 모두 구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백법계(百法界)가 됩니다. 예를 들면 지옥계에 지옥외에도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상 ·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의 구계(九界)가 갖추어져 있고, 불계에도 불계 외에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상 · 성문 · 연각 · 보살의 구계가 본래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법계의 근본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법화경의 방편품(方便品)에서 설해지는 십여시(十如是)가 있습니다. 십여시는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입니다.
여시상이란 현상적으로 나타난 모든 형상을 말하고, 여시성이란 모든 법에 구비된 내적인 본성을 말합니다. 여기에 주체가 있는 것을 여시체라 하며, 제법이 역용(力用)을 지닌 것을 여시력이라 합니다. 이 역용이 작용하여 여러가지 업을 짓는 것을 여시작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근본적 원인이 있고 또 조연(助緣)이 있으며 반드시 어떠한 결과가 따릅니다.
이 근본 원인이 여시인이고, 조연이 여시연이며, 그 결과가 여시과입니다. 여시보는 인과에 따르는 과보를 말합니다. 여시본말구경은 십여시 중에서 처음의 여시상을 본(本), 마지막의 여시보(如是報)를 말(末)이라 하여, 이들이 전체적으로 궁극적인 구경이 되어 동등한 것을 뜻합니다.
이상의 십여시가 백법계 속에 각각 다 구비되어 있으므로 마침내 천법계(千法界)가 됩니다. 그리고 이 천법계에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 오음세간(五陰世間)의 삼종세간(三種世間)을 곱하면 결국 삼천법계(三千法界)가 성립됩니다. 삼종세간 중에서 오음세간은 중생세간과 국토세간을 구성하는 물심(物心)적인 요소이며, 중생세간은 중생의 정보(正報), 국토세간은 의보(依報)를 말합니다.
이와같이 십법계가 소로 구족하여 백법계가 되고, 백법계가 십여시를 갖추어 천법계가 되며, 천법계가 삼종세간을 구비하여 삼천세계, 삼천법계가 성립하는데, 이 삼천세계가 일상생활에서 늘 생각하는 우리들의 한 생각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 삼천세계가 존재하므로 여기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게 융화되고 보살과 마구니가 자리를 같이하여 아무리 다르다고 하여도 모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一切法皆是佛法)' 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한 마음이 십법계를 구비하고 한 법계가 또 십법계를 갖추니 백법계며, 한 세계가 삼십 가지 세간을 갖추니 백법계가 곧 삼천 가지 세간을 갖추며, 이 삼천이 한 생각 마음에 있느니라.
夫一心이 具十法界하고 一法界具十法界하니 百法界며 一界具三十種世間하니 百法界卽具三千種世間하며 此三千이 在一念心하니라.(摩詞止觀;大正藏 46, p.54 上)
십여시에 삼종세간을 곱한 것이 삼십종세간(三十種世間)입니다. 따라서 한 법계가 삼십종세간을 갖추므로 백법계는 곧 삼천종세간을 구비하게 됩니다.
만약 한 생각 번뇌심이 일어나면 십법계, 백법계를 구비하니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며, 비록 많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하나라도 없는 것이 아니니라. 많다고 쌓이지 아니하고 하나라고 흩어지지 아니하며, 많다고 다르지 아니하고 하나라고 같지 아니하여 많은 것이 곧 하나요, 하나가 곧 많음이니라.
若一念煩惱心起하면 具十法界百法界하니 不相妨碍하여 雖多不有하고 雖一不無라 多不積一不散하며 多不異一不同하여 多卽一이요 一卽多니라.(摩詞止觀;大正藏 46,p.104 上)
우리가 성불하여 대원경지의 무애지(無碍智)를 갖추어야만 부처의 성품을 구비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중생심 가운데에도 모든 여래의 지혜덕상이 완전히 구비되어 있어 한 생각 번뇌심 그자체가 십법계, 백법계, 삼천세계를 다 구비하고 있습니다. 즉 부처의 마음(佛心)이나 중생의 마음(凡心)이나 그 자체는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심이나 범심이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여 그 자체가 아무리 많아도 많은 형상을 찾아볼 수 없고, 하나라 해도 시방세계에 가득 차 있어서 적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근본 자성은 있고 없음을 떠나 있으므로 아무리 형상이 많다 해도 형상을 찾아볼 수 없으며, 하나라 해도 찾아 볼 수 없는 그것이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광명이 법계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제(眞諦)인 동시에 속제(俗諦)이고 속제인 동시에 진제입니다. 차별이 즉 절대요, 절대가 즉 차별이므로 일 · 다(一多)가 원융하고 유 · 무(有無)가 무애하여 모든 것이 원융무애하게 성립됩니다.
마음이 일체법이고 일체법이 마음이다.그러므로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며, 동일하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하며, 극히 묘하고 깊이 단절되어 식(識)으로 알 바가 아니고 말로써 말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부사의 경계라고 말한다.
心是一切法이요 一切法是心이라 故非從非橫이며 非一非異하며 玄妙深絶하여 非識所識이며 非言所言일새 所以稱爲不可思議境이니라.(摩詞止觀;大正藏 46, p.54 上)
마음 밖에 일체법이 따로 없고 일체법 밖에 마음이 따로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은 비단 사량분별 뿐만이 아니라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까지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볼 때에 아뢰야식은 무기식(無記識)으로 분별(分別)이 없는 것 같지만 부처님의 대원경지(大圓鏡智)에서 볼 때는 중생의 분별심과 마찬가지로 망상입니다.
'식으로 알 바가 아니다' 라는 뜻은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이고 일체가 곧 하나(一切卽一)라는 일심법계(一心法界)의 도리는, 그 이치가 깊고 깊어서 제8아뢰야식까지도 완전히 뿌리 뽑아야 알 수 있으며, 그 이전에는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량분별로써 알 수 없는 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경지는 오직 깨쳐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하기를 부사의경계라고 하며 묘법(妙法)이라고도 합니다.
세로이며 또한 가로라도 삼천법을 얻을 수 없으며,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라 해도 삼천법을 얻을 수 없으니,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소멸하므로 부사의경계라 이름하느니라. 열반경에 말하되 나고 남(生生)을 설할 수 없으며 나고 나지 않음(生不生)을 설할 수 없으며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不生生)을 설할 수 없으며 나지 아니하고 나지 아니함(不生不生)을 설할 수 없다고 함이 곧 이 뜻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제일의(第一義)가운데에서도 한 법도 얻을 수 없거니와 하물며 삼천법이리요.
亦從亦橫이라도 求三千法不可得이며 非從非橫이라도 求三千法不可得이니 言語道斷하고 心行處滅일새 故名不可思議境이니라.大經云生生不可說이며 生不生不不可說이며 不生生不可說이며 不生不生不可說이라하니 卽此義也라 當知하라 第一義中에 一法도 不可得이어니와 況三千法이리요(摩詞止觀;大正藏 46 p.54 中)
'세로이며 또한 가로다' 함은 쌍조(雙照)를 말하고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다' 함은 쌍차(雙遮)를 말합니다. 쌍차쌍조가 된 자리에서는 한 법은 물론 삼천법을 얻을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량분별로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하므로 삼천법이 마치 손으로 잡을 수 있듯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완전한 오해입니다. 말로 표현하자니 삼천법이지 삼천법이란 실로 얻을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한 그 자체는 중생이 깨쳐야 비로소 알기 때문에 부사의 해탈경계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전체적으로 논하면 십법계가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한 법이니라. 이 인연은 즉공 · 즉가 · 즉중이니 즉공은 진제요, 즉가는 속제요, 즉중은 중도제일의제이니라.
若通論하면 十法界가 皆是因所生法이니라 此因緣이 卽空卽假卽中이니 卽空은 是眞諦요 卽假는 是俗諦요 卽中은 是中道第一義諦니라.(觀音玄義;大正藏 34, p.885 上)
이것은 공(空) · 가(假) · 중(中)의 삼제를 각각 진제(眞諦) · 속제(俗諦) ·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에 배대시켜 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연으로 생한 십법계가 공.가.중의 삼제를 갖추고 있으므로, 이로부터 파생한 백법계 · 천법계 내지 삼천세계 또한 삼제를 그 속성으로 삼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일념 삼천의 근본원리가 바로 삼제원융(三諦圓融)에 기초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일념삼천이라 하므로 한 생각 속에 부처와 중생이 공존할 것이요, 심법계가 서로 포섭하여 백법계가 되므로 여기에도 십법계의 가장 하위인 지옥계에 불계(佛界)가 포함되고 불계에도 지옥계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중생의 경계는 엄연히 격별한데, 이제 이 일념삼천의 법문에 의거하면 부처님과 중생이 조금도 다르지 않아 서로서로 자리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부처님의 경계와 중생의 경계가 서로 다른 줄 알지만, 근본자성은 중생의 경계나 부처님의 경계나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지옥중생의 경계라 해서 자성이 더 더럽혀지지 않고 부처님의 경계라 해서 그 자성이 더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근본자성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청정하고 무구해서 십법계 중생은 지옥중생이나 불계중생이나 다 같습니다. 부처가 지옥중생이고 지옥중생이 그대로 부처이며, 외도와 마구니 어떤 존재할 것 없이 모두가 서로 원융합니다.
그러므로 지옥하면 거기에 축생으로부터 불 · 보살이 전부 다 구비되어 있고, 부처하면 거기에 지옥 · 아귀 · 축생 등이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부처님 속에 지옥이 들어갈 수 있고 지옥속에 부처님이 들어갈 수 있나 하며 의심하는 것은 변견(邊見)에 의지해서 보는 것이요, 삼제원융의 사상을 모르는 데서 하는 소리입니다. 일체만법이 다 삼제가 원융한 도리에 서 있는 만큼 십법계, 백법계도 원융무애해서, 한 법계 가운데 다른 법계가 다 갖추어져 중생과 부처가 자리를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과 부처가 원만하게 융화되고 보살과 마구니가 자리를 함께하여, 아무리 다르다고 하여도 조금도 모순이 없습니다. 일체법이 불법 아님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를 때는 예수교와 유교, 불교가 각각 다르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전체가 다 큰 바닷물의 짠맛 하나뿐입니다. 이것이 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인 것입니다. 이것을 천태종에서는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 하고 화엄종에서는 법계연기(法界緣起)라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