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돌로 풀 눌러놓은 착각일 뿐”
<49> 부추밀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②-1
[본문] 매일매일 이 큰 일 인연을 마음에 두어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순일하게 잡념이 없음을 마음속으로 깊이 알고 그 기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능히 하루 12시 가운데 치연하게 邦㎸求� 중에 반드시 상응합니까? 잠을 잘 때나 깨어 있을 때 한결같습니까?
만약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절대로 공적한 곳에 잠기고 고요한 곳에 나아가지 마십시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은 “캄캄한 산 밑에 있는 귀신이 사는 집의 살림살이로서 미래가 다할 때까지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강설] 부추밀에게 보낸 두 번째 답장이다. 이 큰 일 인연이란 생사대사며, 확철대오(廓徹大悟)며, 견성성불을 말한다. 진정으로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을 다 바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그 길을 가는 대혜선사로서는 그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도를 닦는 길이 실로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인가. 세상사에는 벗이 많지만 깨달음을 향한 길에는 참으로 외롭다. 그런데 부추밀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열심히 용맹스럽게 정진한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실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잠깐 무사 ‘구경 안락’으로 오인
“미군이나 외도들이 즐기는 경지”
또한 공부에 대해서 두 가지를 물었다.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열심히 전개하는 중에 화두가 계합이 되는지? 또 화두가 잠을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같은지를 물었다. 즉 오매일여(寤寐一如)다.
이 문제는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기본이다. 만약 아직 그렇지 못하면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공적함을 즐기고 있지 말라는 것이다. 생사를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라 하였다.
[본문] 어제는 보내온 편지를 받고 사사로이 생각하기를, ‘그대가 반드시 이미 고요한 삼매를 탐착하고 있으리라’고 여겼었습니다. 그러다가 직각공(直閣公)이라는 사람에게 묻고 나서 과연 생각했던 것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대개 세상에 묻혀 사는 선비들이 오랫동안 세상진로 가운데에 빠져 있다가 문득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요하고 묵묵한 곳에서 공부하라’는 지도를 받고는 잠깐 동안 가슴속이 무사함을 얻으면 곧 오인해서 그것을 구경의 안락으로 여깁니다.
결코 돌로써 풀을 눌러놓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비록 잠깐 동안은 소식이 끊어진 것을 느끼지만 그 뿌리는 오히려 남아 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래서야 어찌 적멸한 경지를 깨달아 사무칠 기약이 있겠습니까?
[강설] 세간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등등의 일에 골몰하다보면 산속의 고요한 환경이 너무나도 좋게 여겨져서 출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신 외적인 감정이다.
진정으로 마음이 온갖 번뇌 망상에 이끌려 살다가 다행히 잠깐 번뇌도 다 사라지고 마음마저 적정하여 텅 빈 경지를 맛보게 되면 실로 이것이 열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최상의 안락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불교도 아닐뿐더러 마군이나 외도들이 즐기는 경지이다. 첫째 그와 같은 경지가 영원히 지속하지 않는다. 마치 돌로써 풀을 눌러놓은 것과 같아서 번뇌의 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진정한 적멸의 경지가 아니다.
요즘도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좌선을 하여 혹 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맛을 한번 본 사람은 어떤 가르침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실로 불법은 저 바다보다도 저 허공보다도 더 넓고 넓은데 말이다. 마치 목석도 아니면서 목석을 닮아있다.
[출처 : 불교신문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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