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한 가족
“축하드립니다. 마크 경찰청장님. 자문위원으로 이렇게 유능한 존을 곁에 두게 되어서요. 존. 이 친구 세상을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닙니다.”
“챵시밍 의원님. 감사합니다. 의원님이야말로 이런 인재를 처음 발굴해 특별 보좌관으로 함께해 오고 있는 점, 그 혜안도 특별합니다.”
“호호. 청장님도.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존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친구는 하나를 이야기 하면 몇 개를 알아들어요.”
“하하. 의원님이 저에게 연결시켜 주셔서 자문위원으로 함께 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비행기에서 졸도한 제 아버지를 존이 살려냈으니, 보답해야지요.”
민재를 가운데 두고 국회의원과 경찰청장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갔다. 민재는 두 거물의 이야기만 들어도 배가 몸 둘 바를 몰랐다.
“의원님과 저도 좋은 관계로 국정 운영과 사회 안전을 위해서 서로 돕고 하나 되는 거 아닙니까? 존까지 합세해서요.”
“그럼요. 존은 지금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보드멤버로 일하고 있는데요. 향후, 택시 회사 설립과 버스 사업도 계획하고 있어요.”
“의원님 말씀처럼 앞으로 존이 운수사업을 하고 싶다니. 그 업종관련 분들과 연결 다리도 제가 놔줄 수도 있습니다.”
‘아, 이게 무슨 소린가? 총리 손을 잡기 전에 왜 이렇게 다른 분들이 손을 잡으면서, 내가 감동을 하는지 모르겠네. 인연에 인연이야.‘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 민재가 음료수를 한잔 더 마셨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뉴질랜드에 와서 요즘 참 좋은 분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만나 받은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알리고 나누며 살아야지.’
챵시밍 의원과 이야기하다 마크 경찰 총장이 다시 민재의 손을 잡았다.
“존. 자문위원역 제안에 이렇게 선뜻 응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경찰총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총장님이라고 부르니까. 좀 엄격한 조직 상관 같아요. 외람되지만, 전 그냥 속으로 아버지라고 여기고 싶은데요.
총장님께는 아들 나이 정도로 어리니까 말씀도 낮춰 주셔요. 그래야 제가 좀 편할 것 같아요.
챵시밍 의원님도 이제는 이모라고 불러요. 필요시 스스럼없이 편하게 이야기 하거든요.”
옆에서 듣고 있던 챵시밍 의원이 웃으며 마크 총장에게 이야기했다.
“총장님, 존을 자문위원으로 선정한 지금, 존 이야기도 들어주셔요. 공식 석상에서는 예를 갖추고, 개인적으로 대할 때는 편하게 해 주셔요.
총장님께서 조금 전 들은 대로, 존은 가족이 없어요. 가족이라 여기는 사람의 응원을 받으면 능력발휘도 한결 나을 거예요. 제가 그 산 증인이잖아요.“
“의원님. 그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내가 나은 자식만 아들이 아니지요. 내 아들 또래의 젊은이도 아들로 여길 수 있어요.
자, 그럼 이제 부턴 사적인 자리라 보고 말을 놓겠네. 존. 어떤가?“
“좋습니다. 총장님. 듣는 제가 편하네요.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말을 놓는 날은 편했어요. 수업 분위기도 자유스러웠고요.
같은 교수님이 존대 말을 쓰는 날은 분위기가 무거웠어요. 불편했어요. “
“허허. 존. 자네는 문학을 했나. 예를 들어가며 말도 잘해. 아내도 자네한테 굉장히 고마워하더라고. 자네가 아들 같대.
난 사실 딸만 둘 있거든. 큰딸은 시집을 갔고, 작은 딸은 아직 시집을 안 가네. 어쨌든 나는 아내의 의견에 대부분 따르거든.
아버지를 살려냈다고. 젊은이가 다시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한 아내 말을 듣고 처음엔 고마운 젊은이로만 생각했지.“
“만나보니 아내 분 말이 확실히 맞지요? 청장님. 아내 말 잘 따라해, 하는 일 마다 잘 되지 않았어요? 맞지요?”
챵시밍 의원이 웃으며 청장에게 물었다. 청장이 여유 있는 얼굴로 민재에게 말했다.
“좋아요. 의원님. 아버지 건강도 존 덕분에 회복됐고. 그걸 아내나 아버지도 알고. 청장 자문위원도 됐고.
좋아. 존. 자네를 아들로 생각하겠네. 가족처럼 여기며 살자고. 어떤가? 존. 자네는.“
“총장 아버지. 아니지. 아버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오클랜드에서 할아버지 은퇴마을도 자주 들르겠습니다.
아빠 잃고 정말 해보고 싶었던 말이, 아빠. 아버지라는 단어였어요. 오늘 이렇게 아버지라고 부르니, 가슴이 울컥해요.“
민재가 목이 메듯 이야기 하자, 마크 총장이 민재를 꼭 안았다. 한참을 안아 주었다.
‘돌아가실 번한 아버지를 살려냈던 젊은이, 존을 아들로 받아들이는 일이 어디 그냥 우연은 아니지.’
“존. 아들. 좋은 날이다. 오늘은. 몸은 웰링턴과 오클랜드에 살아도, 마음은 함께 사는 거다. 남자란 바깥일도 소중하지만, 집안일도 중요하다.
가족이 있다는 건, 언제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거다. 이 인연에 감사하자.“
“네, 아버지. 깊이 새길게요.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면서 저도 기쁨을 느낄게요.
마크 청장이 민재의 등을 토닥여 줬다. 지켜보던 챵시밍 의원이 두 사람에게 축하의 선물 박수를 쳤다.
“청장님, 이제 우리 셋은 다 가족이네요.”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의원님.”
“내가 사적으로는 민재 이모잖아요. 청장님도 사적으로는 민재 아버지고요. 그럼 민재, 이모, 아버지. 이 셋은 남인가요? 청장님.”
“허허. 의원님도. 남은 아니지요. 맞아요. 패밀리, 가족이군요.”
민재 얼굴이 환해졌다. 민재가 손뼉을 쳤다.
“호호. 청장님. 인정하셨어요. 좋아요. 우리는 가족, 패밀리입니다.”
민재가 재빨리 테이블위에 손을 올렸다. 옆에 챵시밍 의원을 향해 윙크했다. 챵시밍 의원이 손을 뻗어 민재 손위에 얹었다.
챵시밍 의원이 마크 청장에게 눈을 깜빡였다. 마크 청장이 손을 들어 민재와 챵시밍 두 손위를 덮었다. 뜨거운 세 기운이 움직였다.
순간, 민재 코에 그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기, 장미 향기가 주변에 가득 깔렸다. 챵시밍 의원이 처음 발굴한 원석이 빛을 발할 일만 남아 있었다.
***
바람의 도시, 웰링턴도 밤 속으로 사위어 갔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민재가 호텔 침대에 드러누웠다. 바로 잠이 들지 않고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만나 한 가족 패밀리임을 인증한 챵시밍 이모, 마크 아버지.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
‘가족처럼 서로 챙기며 살아가자. 졸도해서 일어난 할아버지는 괜찮으실까.’
가족이란 말만 되뇌어도 몸이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생각 흐름이 잠깐 멈췄다. 졸도한 할아버지를 살릴 때, 민재 온 몸에 흘러내린 땀.
‘손의 능력을 펼친 게 이번이 두 번째다. 결과는 좋은데 웬 그리 땀이 많지? 보는 사람한테 민망할 정도야. 땀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는 안 될까.’
‘지나친 욕심인가? 아, 모르겠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민재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여러 상황과 장면이 스쳐갔다.
영화의 극적인 장면, 녹화 현장 앞에서 멈췄다. 여배우가 잠시 감정을 조율하더니 눈물을 계속 흘렸다. 가슴이 울컥 했다. 명연기였다.
‘눈물은 연기가 가능 하구나.’
다음은 남자 배우가 기계 작업에 열중하느라 땀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바로 땀을 흘리지 못했다.
이마에 물기를 조금 적시고 연기, 컷, 다시 더 적시고 연기, 컷, 이렇게 인위적으로 연기를 끊어가면서 물기와 물의 양을 늘려갔다.
연기하다 컷하고, 땀나는 것처럼 한 걸 찍어서 편집했다. 편집한 장면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땀은 연기가 불가능했다.
민재가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다. 호텔 창 커튼을 젖혔다.
‘아, 그랬구나.’
땀 흘리고 씻고 난 후처럼 시원했다.
뇌진탕의 새끼 고양이와 졸도한 할아버지 구할 때, 지나친 양의 땀 때문에 불편했던 생각이 싹 걷혔다. 개운했다.
‘눈물은 즉석 연기가 가능해도, 땀은 즉석 연기가 불가능하네.
나는 땀 흘리는 장면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진지하게 보여준단 말이야.
이것도 이채로운 능력이네.‘
땀. 감동 그 결정체 아닌가? 사람들은 연기 보다는 진실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땀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
땀은 노동이었다. 그 노동은 신성했다. 신성한 일에 땀은 축복이었다. 민재가 비로소 깊은 잠에 푹 빠져 들었다.
***
뉴질랜드 행정 수도 웰링턴에 있는 총리 관저. 정부 주요 인사와 관계자 그리고 수상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년 말을 맞아, 한 해 동안 뉴질랜드를 위해서 각 분야에서 모범적으로 일한 올해의 인물에 대한 수상이 있는 날이었다.
사회봉사, 노인 복지, 의료봉사, 기술개발, 학술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국민들에게 공감과 희망을 준 일에 대한 표창이 있었다.
여러 수상자가 상을 받고 마지막 차례였다. 올해의 인물, 의로운 시민상 수상자, 존 민재 강이 여성 총리 앞에 섰다.
총리가 민재 목에 올해의 인물 수상 메달을 걸어 주었다. 자비로운 미소로 민재를 바라보며 악수했다.
여성 총리로서 당당히 국정을 이끌고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 존경스러웠다. 총리가 축하의 말을 했다.
“존. 진심으로 축하 드려요. 존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 뉴질랜드는 희망을 갖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 수가 있어요.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어려운 위기 순간에 처한 할머니를 위해 내 몸을 던져 구한 존의 희생정신. 자랑스러워요. 이런 일들이 많더군요.
듣자하니 어제 웰링턴 오는 비행기에서도 졸도한 할아버지도 살렸다면서요. 존 같은 젊은 분이 제 곁에서도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어요.
여러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어, 정말 기쁩니다. 생각 같아서는 나한테도 특별 보좌관 일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욕심이겠죠.
제 마음이 이 정도라는 것만이라도 알아줘요. 자랑스럽습니다.“
총리의 덕담이 끝났다. 바로 이어 모든 수상자에 대한 꽃다발 증정이 이어졌다. 관계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 해당 수상자에게 건네며 축하했다.
누군가 탐스러운 꽃바구니를 들고 나와 민재 왼쪽에 안겼다. 창시밍 국회의원이었다. 서로가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포옹도 했다.
장군 기풍을 풍기는 분이 고풍스러운 꽃다발을 들고 나와 민재 오른쪽에 건넸다. 마크 경찰청장이었다. 셋이서 손을 잡고 패밀리를 외쳤다.
수상식장 포커스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여성 총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다가와 넷이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번쩍!”
“찰칵!”
세상에! 민재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아니, 웬 복을 나 혼자 이렇게 과분하게. 민재가 머리 숙여 참석자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한 기족입니다.” *
56화 끝 (5,119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