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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00X34>
강소진
나는 유독 비 오는 날씨를 싫어했다. 물웅덩이에 신발 빠져 양말이 축축해지는 느낌도 싫었고 비가 오는 밤에 번쩍이는 번개 불빛도 무서웠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비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너에게 말해주고자 자판에 손을 올렸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어린 시절 늘 어른들은 이 질문을 던졌다. 그들에게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질문을 왜 항상 질문했을까? 하지만 난 기다림도 떨림도 망설임도 없이 늘 말했다.
“아빠요.”
당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우상의 인물이었다. 당신은 강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또한,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을 주는 보급자였으며 당신은 내가 사는 세계의 왕이었다.
난 말수가 많은 천방지축의 꼬마였다. 당신은 날 보조석에 앉히고 당신의 어머니 댁 가는 걸 좋아했다. 나는 유치원에서 배운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노래를 반복했고 노래가 끝나자 내가 다니는 유치원 단짝부터 좋아하는 사내아이의 성격과 행동 묘사. 진달래 반 선생님의 어투와 끝 반인 개나리 반 선생님의 남자친구가 찾아온 얘기까지 당신에게 말했다.
그런 나를 당신은 싫어하지 않았다. 나의 종알종알 소리가 잠이 깬다고 했고 휴게소를 들러 한입 베면 뜨거운 팥이 입술에 닿아 놀라게 되는 뜨거운 호두과자를 사주는 것이 당신의 어머니 댁 가는 길의 코스였다.
당신은 항상 친절한 아버지고 자상했지만 당신의 어머니 댁에 도착하면 변했다.
“엄마 나 진희랑 왔어.”
“아구, 바쁜데 어뜩케 요까지 용케 왔냐? 오면 온다고 전화하면 괴기라도 사서 구워 놨을텐디, 울 강아지 더 예뻐졌네. 시장할텐디, 네 좋아하는 술상이나 쪼카 줄까?”
“나 매주 토요일이면 오는데 전화 안 해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몰라 배고파. 술이랑 생선 팔다 남은 거 있으면 좀 구어서 갖다 줘. 진희 먹을 것도 좀 챙겨주고.”
나는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 앞에서 누구보다 칭얼대는 어린아이였다.
“요즘은 허리는 괘않냐? 또 침 맞으러 자주 댕기구 한약은 진희 애미가 챙겨주냐?”
“몰라. 이게 다 엄마 닮아서 허리 아픈 거잖아. 나도 늙으면 엄마처럼 허리 굽는 거 아니야?”
“미안타, 애미가 잘못이지. 빨랑 술상 차릴테니께 안채 들어가서 좀 누워.”
당신의 그 집에서 내내 투정거리는 말투였고, 항상 가도 아빠의 행동에 대한 영문도 모르고 그저 수다나 떨고 배를 채웠다. 그 집이 당신의 어머니 때문에 따뜻했는지 온돌로 거멓게 색이 변한 장판에서 허리를 대고 잠을 많이 자서 따뜻했는지 꼬마시절 그 집을 기억하면 따뜻했다.
당신이 호두과자를 챙겨주던 아버지에서 변한 건, 비가 오던 추운 겨울 새벽이었다.
당신은 전화를 받고 한동안 정지된 사람마냥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의 아내가 그 이유를 물었고 당신은 당신의 아내와 나에게 검은 옷을 입으라고 했다.
당신은 당신이 운전하지 않았다. 몸이 떨려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고 당신의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제법 평탄한 느낌이었다. 정상적인 속도로 운전을 했고 아이 같은 당신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했다. 당신은 도착했을 때도 정신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피곤해서 칭얼거렸지만 당신은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장례의 순서를 밟아나갔다.
당신도 당신의 행동을 알았나보다.
당신은 태평한 당신의 아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었지만, 당신에게 화를 내고 싶었던 것을 지금으로서 안다.
당신은 한 번도 따뜻한 말을 따뜻한 당신의 어머니에게 한 적이 없었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숨긴 채 토요일마다 당신의 칭얼거림을 받아주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을 당신은 포근한 눈도 아닌 좁쌀비가 오는 추운 겨울, 하얀 덮개 옆에 흘러나온 차가운 하얀 손을 보고서야 알았다.
당신은 그 이후로 변했다.
당신은 화가였다. 그리고 당신의 아내도 화가였다. 당신 아내보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전시회를 열었던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그동안 무시하고 살았다. 당신의 아내는 알 수 없는 당당함이 멋있어 당신과 결혼하였지만 당신의 당당함이 당당함을 넘어선 무례함임을 너무 늦게 서야 깨달았다.
당신이 그토록 의지하던 당신의 어머니가 떠나고 당신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당신은 비만 오면 당신의 아내의 전시회에 찾아가 술병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의 아내는 그런 당신을 처음엔 불쌍하게 나중에는 너무하게 생각하였지만 곧 저주스럽게 생각이 변했다.
어느새 나는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당신은 양복을 입는 날보다 집안에서 속옷차림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일상으로 되었다. 당신은 더 이상 자동차에 나를 앉혀 데려갈 곳이 없었다. 당신은 더는 투정부릴 수 있는 어머니도 없었고, 한약 챙겨주는 당신의 아내도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우산을 챙겨 등교하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다.
나에게 당신은 더 이상 왕이 아닌 부끄러운 동거인일 뿐이었다.
나는 꼬마였을 때처럼 말수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늘 잠을 자거나 멍하게 창문만을 바라봤고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과 수면제를 먹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덜 고통스러운가를 고민하는 우울한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엷은 빛이 비춰진 건, 비가 오는 날의 새 학기였다.
우리 반 담임은 임신한 여자 선생이었다. 아랫배가 나온 건지, 임신한 건지 아이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던 그녀는 육아휴직으로 구설수의 막을 내리고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났다. 그리고 기간제교사로 바로 그가 왔다.
그는 양복의 분홍 넥타이가 하얀 피부색과 잘 어울리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선생이 되고 처음 맡은 반이 우리 반이었고, 열정과 패기가 넘쳐보였다.
난 담임이 바뀌던지, 반 분위기가 변했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처음 맡은 반이기 때문인지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관심이 많았고 창문을 보며 우울한 생각만 하는 나조차도 그의 제자 속에 포함되었다.
“진희! 창문 밖에 누구를 매일 보는 거니?”
내 이름이 불리자 반 아이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내 이름이 교실에서 불리는 것이 낯설기도 하였지만 주목 받자 더욱 깜짝 놀랐다.
“진희!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도록!”
그는 꽤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생활에 관심이라니, 처음 맡은 반에 대한 담임의 책임감에 나를 생각하는 것이 헛웃음만 자아냈다.
수업이 끝나자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내 발걸음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2학년 생활기록부라고 쓰인 파일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옆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진희 왔네? 오면 인사부터 했어야지, 언제부터 옆에 있었니?”
“지금 왔어요.”
짧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상담하려고 하는데, 편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진희한테도 좋겠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동의의 뜻으로 여겼는지 내 등을 떠밀며 휴게실로 데려갔다.
“아버지랑 둘이 살지? 혹시 뭐 도움이나 어려운 일 없니?”
“없어요.”
내 치부를 들킨 것 마냥 불쾌했다.
“선생님이 온지 얼마 안 되었지만, 봤을 때 진희가 어울리는 친구가 없던데, 괜찮니?”
“네. 괜찮아요.”
“선생님은 진희랑 친해지고 싶은데 진희가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불편한 모양이구나. 진희야 선생님 텔레비전에도 나온 적 있는데, 혹시 시간나면 인터넷에 선생님 동영상 한번 봐줄래?”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나를 데려온 건가 황당한 한쪽 입고리가 올라가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가볍게 들썩였다. 그리고 하교 후 집으로 가려고 나왔다.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있지도 않는 술 냄새를 맡고 있었다. 비가 내려 더욱 불쾌했고 선생이 내 치부를 알았다는 느낌은 비오는 날에 벌거벗겨진 느낌이었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당신보다 일기예보를 보고 떠나버린 엄마가 더욱 미웠다.
당신의 아내는 꼬마 시절 당신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남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당신은 매일 다투었다. 전시회를 망치는 것 외에 당신과 같은 전공의 엄마의 그림이 더 잘 팔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면 당신은 처음에 욕만 했지만, 어느새 식칼을 들고 캔버스를 찢고 있었다. 비가 오면 엄마는 전시회 문을 잠그고 뒷마당으로 나가 어깨를 들썩였다.
엄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쌍 하다긴 보단 한심했다. 엄마를 그렇게 만들게 선택한 사람도 엄마이고,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도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엄마가 떠난 이후로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어느새 빗줄기가 굵어졌다. 나는 미세먼지가 많다는 아침 뉴스 속보를 생각하지 않은 채 우산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의 아내를 생각했다. 비가 내릴 때 느꼈던 비와 섞여있는 눈물의 맛을 생각했다.
짰다.
아니다.
이건 짠 맛이 아니라
살을 깎는
아픈 맛이었다.
저녁때가 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하루 종일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아침에 치웠던 술병들이 아침때보다 늘어난 숫자로 굴러다니고 있었고 나는 치우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궜다.
비에 맞았기에 걸을 때마다 축축한 발자국이 방안에 남았다. 신경 쓰지 않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답답한 컴퓨터는 인내심을 길러주는 듯 천천히 화면이 들어났다.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했다.
-안 아프게 죽는 법
당신의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어도 아프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한심했다. 이미 가슴부터 속 깊이 아파있는데 마지막이라도 아프고 싶지 않는 것이라고 혼자 대변했다.
검색창들을 보다 낯익은 이름이 보여서 커서를 멈췄다.
그리고 클릭했다.
우연일까. 학교에서 보았던 그 선생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동영상이 있었다.
그는 지금보다 어린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식도 호수를 갈아 치워드리며 가래를 빼어내고 자신이 쓴 동화를 읽어주며 아버지의 희미한 미소를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잠에 들고 그가 밖에 나왔을 때 제작진은 그에게 인터뷰를 했다.
“아버지를 간호하며 동생 키우기도 힘들 거 같은데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그는 말했다.
“아버지가 아프시지만, 같은 하늘 아래 함께 계신다는 것만으로 저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아직 미성년자라 돈을 벌기도 어렵고, 선물을 드리기도 어렵지만 아픈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선물이 성적표라고 할까요?”
그가 신기했다.
그래.
그는 아픈 아버지였기 때문이야.
술주정뱅이 망나니 아버지는 아니잖아.
애써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방에서 나와 욕실로 가서 젖은 옷을 벗어 빨래를 하고 씻었다. 화장실에 나와 베란다에 가서 빨래한 옷을 널었다. 밖은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펴 있었다.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 뒷마당에서 그녀가 운 이유는 비 때문이 아닌 비가 내리고 있는 내 마음과 달리 예쁘게 피어있는 밝은 무지개 때문이 아니었을까.
거실로 들어와 좁은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깨진 술병을 치우다 손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무지개를 본 것처럼 더 아픈 일은 없었다.
거실을 치우고 안방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당신은 접이식 침대에서 누워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가까이 가서 소리를 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 진희엄마.”
당신은 너무 늦은 사과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꿈속에서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세상이 희미해졌다. 차가웠다. 울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은 소리를 생각하며 내가 펑펑 울고 있었다. 조용히 거실로 나와 된장국을 끓여 저녁을 차리고 잠시 밖으로 나와 무지개를 보았다.
석양이 늦게 뜨는 긴 여름날 저녁, 어느 때보다 크고 진한 무지개였다.
첫댓글 오랜만에 작품을 보네요.
근데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이번 6월 행사 때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네 시간되면 꼭 가서 인사드리고싶습니다^^
아하~ 무지개를 보기 위해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군요.
무지개를 보며 아프다고 하셨나요~ 역시 동화작가다운 신선한 역설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무너져내리는 당신을 보며 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저도 몇 년 간 무너졌었거든요. .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다시 재건축 되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강 작가 보면 '바다왕자' 생각납니다. ㅎㅎ 🎶
내내 문운이 활짝 열리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되시길 바라며 제 글을 기억해주시니 감동입니다^-^
잘 읽었어요. 글을 보니 작가의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겠죠. 애완모기 쓰신 분 맞나요? 그 동화도 잘 읽었습니다. 저도 동화와 소설(문봄 47호, 침묵의 ...)을 쓰는데요. 기회가 되면 젊은 분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