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고향하늘 아영언덕 원문보기 글쓴이: 心鄕(문성환)
설악산 백담사 코스 산행 일기
일 정 : 2013년 6월22일 토요일~6월23일 일요일(1박2일)
중요코스:동서울~용대리(백담사입구)~백담사~영시암~오세암~수렴동대피소1박
~봉정암~소청봉~중청봉~대청봉~오색 (산행거리 약 25킬로)
일 행: 2명 유한우 문성환
백담사 코스로 설악산를 등산 해 본지도 십 여 년 이상이 된듯하다.
직장 동료 3명이 이 코스로 등산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1박2일 일정으로 설악산을 다녀오고자 중청산장 소청산장 등 여러곳
살펴보았으나 산장 예약 하기가 어렵다
몇 일 동안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검색한 결과 수렴동대피소에 예약이
가능 하다고 하여 우선 예약부터 하고 보았다. 산장1일 8000원
원래는 혼자 산행하고자 했는데 19일 수요일 퇴근전 검색을 해보니 대기가 2명 가능하단다
산행을 좋아하는 한우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해보니 같이 동행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온다
퇴근 후 곧바로 인터넷으로 부랴 부랴 예약을 확정 지었으며 동서울 터미널 홈페이지에서
속초 행 백담사 경유 시외버스를 검색해보니 06시30분이 첫차였다
부천 집에서 1시간이상 소요가 되기에 대중 교통편으로 출발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아
07시20분 으로 예약을 완료하였다 승차권 동서울~백담사 입구까지 15900원
(요즈음엔 예약시 자기가 앉고 싶은 좌석까지도 지정 예약이 가능하다)
산행에 필요한 품목을 알려주면 준비하도록 하겠다 이로소 산행준비가 완료되었다.
6월 20일 목요일
바쁘게 하루가 지나간다
오후에 마누라로부터 전화가 온다 처형 시어머님께서 오늘 별세하셨는데
전주 전북대 병원 영안실이라면서 조문 언제 갈거냐 고 묻는다
내일은 금요일 회사 동료들 모임이 18시 30분에 발산동에서 있는 데다
산행준비가 않되어 있기에 저녁에 오늘 갔다 오자고 하였더니 19시40분에나 일이 끝난다고 하여
잠시 집에 들렸다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 회사 앞으로 나가서 곧장 출발하기로 했다.
김포공항 출발 외곽순환도로~서해안 고속도로거처 영동고속도로 진입 판교에서 경부고속도로
천안에서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 전주 전북대병원 영안실 도착하니 22시였다.
조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전주에서 사업하고 있는 홍직이 선배 부부가 가 자리하고 있었다
처형과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마음은 좀더 머물고 싶었지만 내일 출근이 염려되어 처고모부님 과 처남 를 태우고
23시경 전주를 출발하였다
차는 평일이라 막히지는 않았지만 화물트럭이 많았다
신림동 내려드리고 집에 도착하니 02시 40분경이 되어 있었다
사람에 운명이란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한번 돌아 가시고 나면
보고 싶어도 다시는 뵐수가 없는 길이기에 이별에 슬픔은 더 크리라 생각된다.
6월 21일 금요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인지 05시25분이 되니 눈이 떠지며
습관적으로 핸 폰 시계를 본다 05시30분 알람 아직 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바쁘다 면도를 하고 아침세수를 서둘러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출근
06시40분경 집을 나선다 약간은 피곤하다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 컴 을 켜고 메일을 확인하니 급한 특이사항은 없다
애써 눈을 감아본다. 한번 깬 잠은 올 것 같지는 앉으나 눈을 감고 조용히
하루 일을 계획 해본다.
오후가 되자 피로가 밀려온다.
하던 일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커피를 연속 마셔본다.
퇴근시간은 언제 오는 거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흐른다고 했던가
이것을 상대적 시간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17시 퇴근 김포공항 이 마트로 가서 필요한 품목을 먼저 구매 한다
햇반 라면 양갱 포카리 육포 소주도 사고 이것 저것 준비 매번 느끼지만
마땅히 살만한 것이 없다 산 것이 없는데도 금액이 3만원이 넘는다.
이마트 주차장에다 차를 둔채로 발산역 모임 장소로 간다
발산역 3번 출구 인근 이라고 했는데 한 300여 미터는 떨어져 있다
상호가 어서 오리 오리고기 주물럭이 주 메뉴인가 보다
오랜만에 회원 선후배간에 웃고 떠들며 근황도 묻고 한잔 하자 더 먹자 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모임에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김포공항 인천공항 각부서 별로 상주 하는 곳이 틀리기에 합류시간이 차이 난다.
한 20여명이 모였다 1차 식사가 끝나고 2차는 생맥주 집 시원한 맥주가 한순배 돌고나니
벌써 밤 10시 더 있다가는 내일 산행에 차질이 있을까 봐 자리를 슬그머니 떠나온다.
집에 도착하니 집사람 피곤하지도 않느냐 내일 산행 준비는 다 되었느냐 묻는다
준비한 준비물을 꺼내 놓고 이것 저것 베낭에 담아본다
버너 코팰 은 필수 이번에는 카메라도 챙겨본다 지리산 종주때 짐이 많은 관계로
카메라를 못 가져 아쉬웠는데 망원 랜즈도 챙겨 넣는다
1박2일이라 저번 지리산 종주 때 보다는 부피 와 무게가 적다.
집사람 더러 산에 같이 가자고 했더니 여름에 생고생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여름 산행 더위 땡볕에 땀 과의 전쟁이라고 할까 고생길 인줄 알면서도
등산 베낭을 꾸리는 나 힘들게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서 맞이 하는 상쾌함
높은 곳에서 산밑을 내려다보는 성취감 이라고 해야 하나 딱히 표현하기는
힘든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설악산에 꼭 가야 할 것 같은 생각
절박함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정상이그립다 또 한번 가보는 거야
누가 산행에 이유를 묻거들랑 “나에 존재감을 찾아서라고 하자”
6월 22일 토요일
산행 출발일 04시30분경 눈이 떠진다.
일어나자 마자 세면장으로 달려가서 세수를 하고 어제 준비 못한 산행 품목을 마저 챙겨본다.
집사람이 챙겨놓은 반찬를 비닐 봉투에 (김치 멸치 매실 장아치)참외 몇개 간식 등 챙겨본다
아침밥을 먹기에는 식욕이 없어 압력 밥솥에 밥을 비닐에 2그릇 분량을 담아본다
냉장고에서 얼린 물 1병 포카리 한 병 등 이것 저것 넣어보니 베낭 무게가 상당하다.
지리산 종주시 저녁 무렵 추웠던 기억이 있어 자켓도 챙겼으며 여벌 옷을 챙겨 넣는다.
미처 준비 못한 품목들을 점검하여 베낭을 꾸리고 있는데 6시경 한우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디서 합류 하느냐고
화곡에서 동서울까지는 2호선 전철로 1시간 정도 가 소요된다.
05시40분 집을 나선다.
화곡까지 부천 고강동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 가야 하기에 시간을 예측 하기가 어렵다
가는 길목이 신도림이기에 신도림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을 나선다
07시20분 출발이기에 20분전에는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해야 할 것 같다.
신도림에서 만나 동서울로 향했다.
동서울 터미널 도착 07시05분경 예매했던 승차권을 수령하고 약 10여분 여유가 있다.
운전석 바로 뒤 좌석 3번 4번이다.
착석하고 부족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눈만 껌뻑 껌뻑
달리는 차량에 행렬을 보니 경춘 고속도로에 차량이 많다
휴게소에 한번 들리고 백담사 입구 09시50분 에 도착 했다
날씨가 좋고 상쾌하다 황태에 고장 용대리 백담 황태구이 식당에 들려 아침 식사를 주문한다.
황태구이 정식 1만원 더덕구이 정식 1만2천원 주문했다 산나물이 주재료인데 맛이 담백하다.
용대리 오는 길이면 이곳을 몇 번 들리다 보니 단골이 된 듯 익숙하다.
아침식사를 든든히 해야 산을 타는데 힘들지 않는다며 가능한 한 반 찬류까지 다 먹는다
반찬량은 적당한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좌측 풍력 발전기가 여러 개 돌고 있으며 여기가 용대리 황태마을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으며 최근에는 식당들이 많이 생겠다
건물들은 저마다에 특징을 있고 깔끔하게 단장하고 손님을 맞고 있다
어느 식당이나 음식 종류는 비슷하나 음식맛은 어떤지 모르겠다 다 가볼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 한곳을 정하면 계속 같은집을 찾아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일이 없는한 같은집을
계속 찾아가다보니 얼굴이 익숙해져 편하게 느끼게 되고 단골로 된 경우라 생각된다.
용대리 상징인 백담마을 광고물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백담마을 추억의 백담사 노래비가 서있다 노래를 들은적은 없지만 금방울 자매가 불렀다고 되어있다.
베낭을 메고 힘차게 출발 전에 길가에 자두가 상큼하게 익고 있었던 기억에 찾아보니
아직은 자두가 덜 익어 파랐다 시었던 기억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한 백여미터 전방에 밤나무가 멋있게 서있다 바로 앞이 백담사행 마을버스를 타는 정류장이다
주차장에는 버스 를 비롯하여 승용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다
마을버스는 1일당 편도2000원 주민들이 운영한다고 하는데 18시가 백담사에서 나오는 마지막 버스라 한다
줄이 ㄷ 자 형태로 100여미터 정도는 늘어서 있다
등산을 계획한 사람과 당일 백담사를 관광 온 사람들 과는 복장에서 차이가 확연히 들러난다
등산객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으며 전국108사찰 순례단이란 리본을 부착한 사람들도 다수 보인다
저마다 일행들과 웃고 떠들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배차 간격이 30분이라 했는데 미니 버스가
여러대가 운행되는가 근방 근방 줄이 줄어들고 있다
한 20여분 기다리니 버스에 탑승 베낭을 무릎에 올리고 베낭을 끓어안고 차를 타고 이동
버스가 산길을 오르니 심하게 요동친다
버스가 잠시 쉬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버스가 비껴간다 도로가 좁아 두차가 교차하기가 어려워
조금 넓은곳에서 기다렸다가 교차 하는 것이다
차측으로 기암괴석 사이로 계곡의 맑은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주변 산에는 수목이 푸르렀다 매미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한 십여분 달리니 백담사 주차장이 나온다
백담사 수심교 다리를 지나니 금강문에 이른다 사천왕상 금강역사가 눈을 부라리며 우리를 위협한다.
천왕문은 사천왕상이 배치된 곳으로 사천왕상은 말 그대로 불교세계의 동서남북 방위를 지키는 존재이다. 동쪽은 지국천왕(持國天王)이라고 하여 칼을 쥐고 있고, 남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고 하여 용과 여의주를, 서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고 하여 탑과 깃발을, 북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고 하여 비파를 들고 있다. 사천왕상은 모두 눈이 부리부리하게 튀어 나올 듯 묘사되었고 발에는 악귀를 밟고 있는 형상이다
이곳를 지나니 이곳이 백담사임을 알리는 솟을문 지난번에는 보수중이 었는데
지금은 보수가 끝난 상태 다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백담사 경내를 두루 한바퀴 돌아 본다 그다지 규모가 큰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만해 한용운 님에 침묵으로 익숙하고 전 전두환대통령이 이곳에서 잠시 은둔 생활을 했다 하여 유명세를 타게 된 것 같다 아직도 기거했던 방에 옷가지 생활 물품이 전시되고 있다
각 전각들을 두루 살펴보고 범종루에서 사물(범종 운판 목어 법고)를 찾아보고
연못에 이르니 수련 몇 송이가 단아하게 피어있다
너와를 덮은 헌다실에는 쌍화차 인지 한방차 냄새가 진하게 전해온다
잠시 머물다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냇가쪽으로는 방랑시인 김삿갓 시비, 고은 시비, 오세영 시비, 이성선 시비 등이 나란히 배치되어있으며 냇가에는 수많은 돌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백담사를 찾은 사람들이 백담사 관광을 마치고 냇가에 앉자서 물소리를 들의며 저마다
하나에 염원을 담아 쌓은 것 인가보다 수천개는 되어 보인다
냇가에는 이끼가 끼지 않고 돌들이 깨끗하고 매끈하다.
백담사를 뒤로하고 숲길로 접어든다
막 숲길을 들어서는데 몇 사람이 수풀속을 보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호떡집에 불났나 하는 호기심으로 다가가보니 멧돼지 한마리가 수풀속에서 풀뿌리라도 캐먹는지 땅을 헤집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유유히 제할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을 촬영 했는데 멧돼지 얼굴은 찍지 못하고 뒷모습만 찍혀 회색 바위처럼 보였다
야생동물들이 이제 사람을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것 같다
길가에 다람쥐가 무척이나 많았다
생김새가 귀엽다고 하여 사람들이 먹이를 자주 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 상쾌하다 무성한 나뭇잎을 햇빛이 차단되어 시원했으며 걷기가 좋은 흙길 이다
이정표에 봉정암 까지는 10.6킬로라 되어 있으나 오늘 목표는 수렴동대피소 거리는
약4.7킬로 15시정도는 도착할 것 같다.
우측으로는 맑은물이 폭포같이 계곡을 따라 흐르다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온다
웅덩이 처럼 패여있는 것을 담 이라고 하는데 물웅덩이가 백여개에 이르러 백담계곡이라고 한다
물이 무척 맑다 바닥이 휜히 들어다 보이니 그 깊이는 가늠이 않된다.
물고기에 노는 모습이 보인다.
이따금씩 나뭇잎이 수면으로 떨어지면 먹이 인줄 알고 그 주변으로 모여든다.
에머랄드 물빛 계곡에 물이 쉬어가라고 유혹을 하여 우리도 물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베낭에서 토마도 과자 맥주들을 꺼내 목을 축여본다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다
하늘은 파랗고 산 바람은 시원하게 우리에 땀을 식혀준다.
신선노름이라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생각된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매미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직 맴~맴~ 소리가 아닌 불완전한
소리라 말을 배운다 하여 말매미라고 하던가 그 소리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가 보다
길가에서 뱀딸기가 먹음직스럽게 빨갛게 익어있다 사람들은 왜 않 먹는 것일까
계곡물을 보니 명경지수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에 유혹을 떨치지 못해 기어이 등산화을 벗고 물에 발을 담가본다 시원하다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파란하늘 햐이얀 구름 멋진 소나무 숲 단풍나무 등
눈의 피로가 말끔하게 가시는 듯 하고 스트레스가 확 날아 가는듯 시원하고 상쾌하다.
오늘은 산행이 여유롭다 소청 중청산장을 예약할 수가 없어 약간은 어쩡쩡한 시간
그래도 하루에 백담코스를 가기에는 무리이기에 수렴동에서 1박 하기로 한것이다.
백담사에서 3.5킬로지점 길 좌측으로 영시암이 있는데 아직도 공사중이다
벌써 몇 년째 공사중 인데 건물이 몇 채 더 들어서있어 제법 절로서의
본 모습이 갖쳐지는 것 같으나 아직은 정비가 더 되어야 할 것 같다.
14시 45분경 오세암 과 수렴동 갈림길 1.2킬로만 가면 수렴동인데 너무 이른 시각이다.
오세암을 갔다 오려면 왕복 5킬로미터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거나 공릉능선을 등산하는 사람들이나
용아장성으로 봉정암 가는 등산객이 주로 오세암 코스를 타기도 한다
친구야 언제 다시 와 보겠냐 여유 있을 때 가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
오세암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길은 고개마루 오르막 길이다 한낮에 열기로 이미 옷은 땀으로 축축히 젖었다.
베낭 무게로 인해 어깨에 통증을 느낄 정도 속도가 줄어들고 흐르는 땀은 연신 흐른다
베낭이 닿는 등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속옷까지 젖었다
주변은 숲속길 원시림 아름드리 삼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빽빽하다
머루 넝굴이 뱀처럼 나무를 휘감고 있다
산은 점점 깊어지고 산을 오르기를 40여분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들리어온다
다람쥐에 환영을 받으며 산길을 돌아드니 색색에 연등이 우리를 맞이한다
오세암 이 멀지 않은듯하다 가파르게 오르던 언덕이 끝나고 약간은 내리막 오솔길 연등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드니 전각들이 보인다
여기가 오세암에 전설이 깃든 다섯살 동자승을 봉안한 동자각 오세암이라는
이름를 얻게 되었다 한다
범종루가 먼저 나를 반긴다 법고 와 목어가 있고 운판 과 동종이 금도금이 되어있다
천진관음보전에서 스님에 염불소리가 산에 울려 퍼진다.
관음보살님이 자비로운 미소로서 우리를 반긴다
동자전에도 스님 한 분이 예불을 올리고 있다 예불에 방해가 될듯하여 멀치 감치서 사진을 찍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설악의 모습 일부를 볼수 있는듯 웅장한 바위들이 즐비하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관음보살 옆 모습를 닳은듯한 바위가 수렴동 쪽을 응시 하는 듯 하다
천진관음보전에 들려 참배를 하고는 밖으로 나와 감로수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16시경
오세암을 뒤로하고 하산길을 제촉 한다
17시 30분경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여 예약사항을 확인하고 자리 배정를 받고
담요4장 (1장당2000원)받아 자리에 깔아놓고 취사장을 나가 저녁준비를 한다
김치 참치 찌게 소주 맥주를 한잔씩 곁들이고 하루를 마무리 해본다
18시 30분경 갑자기 소나기가 오기 시작한다
취사장 넓지는 않고 지붕이 플라스틱 스래트 으로 되어있어 비오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산하던 사람들이 일부 비를 피해 대피소로 들어와 라면 를 끓여 먹거나
우의 를 준비 하느라 취사장이 소란해진다.
3~4팀이 삼삼오오 모여 제각기 준비해온 음식들을 조리하여 식사를 하고 있다
비는 제법 굵어지고 천둥까지 들리는듯하다 계곡이라 이내 어둠이 내린다.
대피소 실내는 어둠 컴컴하고 비좁아 답답하다 한동안 취사장에 앉아 노닥거렸다
21시에 소등 하기까지 하산하는 등산객을 맞이했다
70세 된 장모님 과 중3 학생과 봉정암을 다녀 온다는 젊은 부부
공릉능선를 타고 하산했다는 여자3명 남자 4명에 등산객들 남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4명
우의를 입고 하산 하거나 봉정암을 향해 등산하는 사람들이 다수 눈에 들어온다
계곡물에 들어가 씻고 싶었는데 국립공원에는 계곡출입이 금지되어있다고 못들어 가게하여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치약을 없이 맨치솔로 양치질을 하고 숙소에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서울에 날씨는 어떠냐고 전화 했더니 덥고 흐리다고 답해온다.
6월 23일 일요일 아침
일어나니 목이 약간 칼칼하다 대피소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담요를 덮지 않고 잠을 잔듯하다
오전 5시경 베낭을 들고 취사장으로 나온다
오세암 쪽 산을 처다 보니 구름이 휩싸여 있다
비는 많이 오지는 않은듯하고 아직도 비는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코팰이 좁아 햇반를 데울수가 없었다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퍼서 코팰에 물을 약간 첨부하여
죽 끓이듯 하여 아침식사를 마쳤다.
비가 점점 꿁어 지고 있다
비가 오는 상태에서는 산행하기가 어려울 듯 하여 잠시 갈등
설악산은 바위가 많아 등산로가 미끄러워 실축 할수도 있으며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워 비가 그치기를 잠시 기다리기로 한다.
한 30여분을 기다렸으나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등산을 하기로 결정하고 우의를 입고
07시경 베낭을 매고 수렴동을 나선다
비가 오는 탓인지 하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주로 50~60대 여자분들이 많은데 어제 봉정암에서 자고 하산한다고 05시경에 출발 했다고 한다
피난민 행렬처럼 수 백명에 이른다
하산하는 사람과 마추쳐 등산하기가 쉽지가 않다
습기가 많은데다 우의까지 입고 있으니 옷은 이미 비 와 땀으로 온통 젖어 버렸다
계곡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올라 간다
힘이 든다 비는 약해지고 하늘이 개일듯 하지만 나뭇잎에 맺혀있던 빗물에 옷이 이미 젖어버렸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기로 한다 과일을 꺼내 먹고 우의마저도 벗어버렸다
비닐 우의라 땀 배출이 않 되니 우의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여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기온은 그다지 차지가 않아 기분은 상쾌했다
산은 점점 깊어지고 오르막 길 바위가 많다 한 두시간 정도 걸었나 봉정암 0.5킬로
오르막길이 나온다 일명 봉정암 깔딱고개 이제 하산하는 사람들은 뜸해졌다
비가 많이 올것으로 보고 하산을 서둘렀던 것이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미끄러 지기라도 하면 치명상이다
전에 비온날 사진 찍는다고 하다가 카메라 내부에 빗물이 침투하여 수리비가 30여만원이
나왔던 기억이 있어 카메라를 베낭 안에 넣었는데 주변 경관을 보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워 카메라를 목어 걸고 걸으니 카메라가 걸을 때 마다 요동를 쳐
복부를 과격 한다
스틱이 거추장스럽다 한우는 핸폰 으로 사진을 찍으며 저만치 앞서간다
나는 설악산에 모습을 한 컷 이라도 더 담기 위해 샷을 날리니 발길이 더디기만 하다
내설악에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카메라로 다 담을수 없어 아쉽다
구름속에서 언뜻 언뜻 들어나는 기암 괴석 멋진 풍경 과연 설악산 이구나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힘들게 고개를 오르고 보니 사자바위 머리가 사자 형상을 닮고 있어 사자바위라고 했다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 포기하고 약간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봉정암 200미터 드디어 봉정암에 도착했다
젖은 옷으로 인해 약간은 추운 느낌이다 끈적 끈적하다 이 느낌이 싫다
간식을 꺼내 먹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 보궁 중 한곳인 봉정암 사리탑으로 가기 위해 산으로 오른다
(설악산의 높은 곳에 기암으로 둘러싸인 봉정암이 있다. 봉정암은 설악산에 있는 사찰.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주1) 지금은 봉정암이 백담사(百潭寺)의 부속암자다. 그러나 백담사란 이름의 사찰이 생기기 전에 있던 한계사(寒溪寺)는 물론 신흥사(新興寺) 이전의 향성사(香城寺)보다도 먼저 창건된 것이 봉정암이다. 한계사와 향성사 터에는 지금도 석탑만 말없이 서 있다.
자장법사(慈藏法師 , 혹은 慈藏律師. 590~658)는 서기 636년에 당나라로 불법(佛法)을 구하러 갔다가 7년 후인 643년 음력 3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석가여래 부처의 사리,(주2) 가사(袈裟. 옷), 불경 등을 가져왔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은 황룡사9층탑 건립을 왕에게 건의했고, 가지고 온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여러 곳에 사찰과 암자도 창건했다. 봉정암도 그때 창건된 것이다. 봉정암 창건연도는 644년(혹은 643년)으로 알려져 있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도 봉정암을 참배한 바 있다. 봉정암은 창건 이후 677년에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가 1188년에 중건한 바 있으며, 그 후에도 여러 번 손을 봤다 6.25전쟁으로 봉정암 건물은 전소되고, 사리탑만 남게 되었다. 1960년에 다시 법당과 요사채를 세웠고, 1980~1990년대에 여러 건물이 들어섰다. 이제 참배객들은 물론 설악을 찾는 등산객들이 들렸다가 가는 곳이 되었다.)법등사 티벳문화원 봉정암 사리탑 계시글 인용.
이곳이 마등령을 거처 오세암으로 가는 길목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있는 5대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영축산 통도사
정상 사리탑에 도착하니 쌀이니 과일 음식등이 사리탑 주변에 많이 쌓여있다
다람쥐 몇 마리가 쌀이 담긴 비닐봉지 과일봉지를 훼손하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리탑에 참배를 하고 탑주위를 한바퀴 돌고 주변 경관을 살펴보고 하산한다.
봉정암을 뒤로하고 다시 소청을 향해 산을 오른다 등산길이 가파르다 숨이 턱턱 막힌다
락일락이라든지 이름모를 야생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천상에 화원에 도착한듯 하다
향긋한 꽃냄새를 맡으며 산행을 계속한다
비가 온 탓으로 내딛는 걸음이 조심 스럽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으나 베낭 무게로 인해 어깨가 저려온다.
땀에 팬티도 젖어 다리에 감기고 걷기가 힘이 들고 땀이 연신 흘러내려 목에 두른 수건이
축축하다
안경이 김이 서려 뿌였게 되어 앞이 잘보이지 않는다 걷고 또 걷는다 오르막길이라 힘이든다
소청산장까지는 약1킬로 수목들이 키가 크지 않아 조망이 확 트여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니
내설악에 수려한 기암괴석이 눈 아래 펼쳐져 있다
소청산장에 도착하니 마무리공사를 하는듯하다 길옆에는 포크래인이 올라와 있다
산장공사를 하기 위해 핼기로 운반 했나보다
무개가 상당 할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장앞 데크에 서서 내가 왔던곳을 바라보니 확 트힌 전망이 좋다
비가 그쳐 구름들이 골자기에서 피어 오르고 있어 바위산 과 어울러져 신비롭기까지 하다
내가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곳이 해발 1500미터쯤 된다.
등산로 주변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워있다
이윽고 소청 정상 핼기장 1550미터라고 표지판이 서있다
천불동 계곡에서 올라오는길과 백담사에서 오는길이 이곳에서 소청에서 합류되어 중청으로 향한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정상 누운 잦나무 군락이다
천불동 공릉능선 과 천화대가 구름속에 신비로운 모습을 선 보인다.
공릉능선 몇 년전 한번 등산했는데 다시금 등산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대개 희운각에서 1박을 한다음 등산하게 되는데 험하고 힘이드는 최상급코스로 분류된다
공릉능선을 다녀 왔다고 하면 등산을 좀하셨군요 라고 전문 산악인으로 대우를 하는것 같다
일종에 산행 인정서라도 되는듯하다
지리산 종주 공릉능선 등산 예전에는 설악산 종주도 인정 해주는 분위기 였는데
용대리 12선여탕에서 백담계곡을 지나 소청 중청 대청봉을 지나 화채봉
권금성까지를 종주라고 했는데 대청봉에서 화채봉 구간이 휴식연재로 출입이 통제되고보니
설악산 종주라는 이야기는 안하는 것 같다
다음 번에는 공릉능선을 밟아 보리라 다짐하며 중청으로 향한다.
소청을 지나 중청봉 허리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골자기아래 공릉능선으로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 바위산들 사이로 울산바위가 가깝게 보인다
설악산 언제 보아도 웅장하고 신비롭고 남성적인 기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금강산은 빼어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빼어나지 못한다 란
말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 설악산이라고 하겼다
사계절이 다 좋치 만 특히 가을 설악산를 최고로 손 꼽 을수 있다 하겠다
이제 대청봉 정상 과 주능선이 보인다 등산로에 있는 등산객 대청봉 주변 까지 보인다
힘든 코스는 다 지나왔다
중청봉 허리를 돌아 드니 중청산장이 가까이 보인다
중청산장에서 점심을 해결하려 했는데 시간이 12시가 다되어 예정보다 늦은 발걸음이다
지체 한다는 것이 부담 스럽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약 30여분이 소요될 것 같은데
대청에서 오색까지 약4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 같고 서울가는 교통편이 예약이 되어 있지 않기에
간식으로 해결 하기로 하고 대청봉가는 발길을 제촉 한다.
12시 10분경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 올랐다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사과 와 참외를 먹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하산길을 서둔다 거리는 약 5킬로미터 내리막길이다
정상 주변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있다
참외 껍질 버린 것을 다람쥐가 주워먹는 것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이 코스로는 오래전에 한번 내려갔던 기억이 있는데 심한 경사로 막판까지 내리막길이다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노송이 많고 숲풀이 우거져있으나 등산하기에는 힘이 들 것 같다
오전에 비가 오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올라오는 사람은 별로 없고 하산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가다 쉬기를 몇 번 물을 많이 마셔서 배가 출렁거리는 것 같다.
하산길에 특히 조심 해야 한다 미끄러지거나 발을 곁 질러 삐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고생이 될 것 인지는 가늠이 않된다
체중이 밑으로 쏠리다 보니 무릎 관절에 무리가 생겨 고생 하는 수가 많다
등산용 지팡이를 이용하면 피로에 도움을 줄뿐더러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 할수있고
피로를 줄일수 있는 것이다.
지루한 하산길 전망은 그리 좋은편은 아니나 돌을 쌓아 만든 계단에 약간은 흙길이다.
하산길도 힘이 드는데 등산을 한다는 것은 대청봉에 이르는 최단 거리라 하여 주로 봉정암에
기도하려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하산하기를 3시간정도 이제 걷는 것도 싫증을 느낄 정도 어깨는 통증이 심해지고
발목에도 통증이 느껴지는것 같다 한우가 막대 사탕을주며 빨고 가다보면 오색에 이른다고 한다
이윽고 오색 남설악 탐방지원센타에 이르렀다 한계령 가는 주 도로 바로 옆에 있다
반갑다 오색 15시10분경 힘든 산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외버스 정류장 까지는 약 1킬로 아스팔트를 걸어 가려 하니 더 힘이 든다 만사가 구찮다
그러나 정류장까지 빨리가서 동서울가는 버스를 먼저 예약해야 귀경길이 차질이 없다
버스를 예약하고는(차비 17900원) 16시 35분 서울가는 도로옆에서 정차하기에 16시 20분까지는
버스정류장으로 와야 한다고 하여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음식 센타로 가려하니
오색 온천장 주변 식당가로 700미터는 걸어 가야할 것 같다
산채 비빕밥에 감자전을 맛있게 먹고 서울행에 몸을 실었다
이번 산행도 힘든 산행이었다
힘들 때 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할까 수많이 반문을 하고 하지만
산행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잡다한 일로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어느 순간 날아가 버리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런 맛으로 산을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 갈수밖에 없다 .
산행이 아니드라도 생활속에 불만으로 쌓인 스트래스 해소 자기만에 해소방법을 찾아 풀기 바란다
무엇이든 생각만 하지 말고 한번쯤 도전해보자 반드시 성취감을 맛볼수 있으리라.
이 상쾌한 기분이 언제까지 유지 될지는 모르지만 힘들었던 기억을 잊고 다시 베낭을 매고 지리산으로 설악산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번에는 힘들다는 공릉능선을 무박으로 갈려고 계획중이다.
산행후 느낌이 강렬했으나 몇일이 지난후 산행기을 적을려니 잘되지 않는다.
부족한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