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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정ㅣ파타고니아]
무한궤도를 벗어나 원하는 곳으로 직진하는 용기
글: 원대식
우정산악회 2인조, 남미 첨답 파이네 중앙봉 등정
2015년 초 남미 대륙의 2위봉인 오호스 델 살라도를 등반하고 돌아오며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다녀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로부터 파타고니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 등반은 파타고니아의 침봉들을 대상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등반이 여의치 않으면 트레킹이라도 하며 그곳의 봉우리들을 보고 싶었다.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져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파타고니아 등반이 현실로 다가왔다. 산악회 3년 후배인 정진과 함께하기로 했다. 그에게 파타고니아 등반을 제안하자 몇 차례 알프스와 요세미티의 거벽을 오른 경험이 있는 그는 구미가 당겼는지 며칠 만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히말라야와 알프스의 설산을 동경하여 고교 졸업 후 암벽, 빙벽, 설산 등반에 심취하고 10여 년 만에 어렵게 히말라야를 등반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곧 육십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나마 뒤늦게 틈틈이 현실과 적절히 타협을 하며 가고픈 산을 정하고 그 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준비하는 과정은 스스로 하나씩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맘 설레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칠레에 있는 토레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파이네 중앙봉을 오르고 아르헨티나의 엘 찰텐으로 이동해 엘 피츠로이를 등반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휴스턴을 경유해 칠레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만 30시간이 넘고 대기 시간을 합하면 50시간이 넘는다.
12월 15일 새벽 1시 반, 푼타아레나스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대합실 여기저기 침낭을 펴고 잠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여기서 대충 시간을 보낸 뒤 오전 8시에 푸에르토 나탈리스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마침 즉석에서 승객을 모집해 바로 출발하는 승합차가 있었다. 스페인에서 파이네 트레킹을 하러 온 다섯 명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타고 비가 내리는 길을 달려 동 틀 무렵에 푸에르토 나탈리스에 도착했다.
허름한 호스텔에서 하룻밤 묵은 뒤 시내의 마트와 장비점에서 식량과 연료를 구입하고 오후 2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마침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이 파이네 공원으로 가는 버스도 함께 운영하는지라 버스요금도 할인받았다.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지며 남미에서만 사는 낙타과의 일종인 구아나코들이 도로변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칠레노 캠프와 토레스 캠프를 지나 하포네스(Japonese) 캠프에 도착했다. 집을 떠난 지 엿새 만에 베이스캠프 도착이다. ‘Japonese’(일본)를 스페인어로는 ‘하포네스’라고 발음한다. 일본 등반가들이 부근의 봉우리를 초등한 곳이 없는데 일본캠프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이 의아하다고 그곳에서 만난 칠레 등반가들이 말한다. 이곳에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 숲 속에 10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나무 기둥 4개에 타프를 덮어 취사를 할 수 있게 만든 움막이 있다. 파타고니아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대기 시간이 많은 등반가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다음날 오후 루트 정찰을 위해 사이렌시오 밸리(고요의 계곡)의 모레인지대를 거슬러 올라갔다. 30분을 오르니 멋있는 전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모레인 건너편에 높이 1,000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방패 모양의 에스쿠도와 포탈레자가 우리를 압도한다. 아래쪽에는 비가 내렸는데 이곳에는 눈이 내렸는지 온 천지가 하얗다. 오늘 일기예보는 오후에 바람이 심해지기 시작해 밤에는 시속 100km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더 오르니 모레인의 평평한 부분에 바람을 피하기 위해 돌무더기로 벽을 쌓아 놓은 캠프지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30분을 더 나아가니 파이네의 북봉, 중앙봉 그리고 남봉이 시원하게 보이는 자리에 돌무더기로 벽을 잘 쌓아 놓은 캠프지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곳이 다른 팀들이 언급하는 전진 캠프인 비박 터로 알았다. 여기에 소형 캠프를 치고 날씨가 좋으면 등반을 개시하는 계획을 세우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그날 저녁 예보대로 밤새 강한 바람이 불었다.
끈기 있게 기다리다 기회 오면 재빨리 등반하는 파타고니아 스타일
다음날 오후, 어제 구축해 놓은 전진 캠프로 이동해 배낭이 가벼워서인지 두 시간이 채 안 돼서 도착했다.
이튿날 새벽 3시 정찰 겸 등반을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너덜지대를 올라 본격적으로 벽 등반을 할 수 있는 콜 비치로 진입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콜 비치는 북봉과 중앙봉 사이의 안부를 말한다. 이틀 전 너덜지대에 내린 눈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콜 비치로 연결되는 리지의 크랙에 얼음이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많이 쌓여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눈이 많이 덮여 있어 피치 종료 지점을 찾을 수 없다.
콜 비치에 도달할 무렵 시간은 오전을 지나 오후로 넘어 가려고 한다. 9시간이 걸린 것이다. 다른 한국 팀이 암벽화를 신고 몇 시간 만에 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바위에 덮인 눈과 얼음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콜 비치에 올라서니 바람이 몰아친다. 시간도 예상보다 많이 지체되었고 무엇보다 강하고 차가운 바람이 우리의 의욕을 꺾어 돌아서게 만들었다.
하강도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후 8시 우리가 어제 머물렀던 비박 캠프에 돌아왔다. 하산하는 중 북봉 아래 돌담으로 만든 비박 터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우리가 어제 밤 머물렀던 자리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이다. 다음에 오를 때는 전진 캠프를 이 비박 터로 옮기면 등반시간이 그만큼 단축될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내려오자마자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칠레노 캠프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위성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어 30분 단위로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연결해 파이네 국립공원의 고도별 1주일치 일기예보를 검토해 보니 앞으로 닷새간은 비 또는 눈이 오고 바람이 강해 등반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날씨가 나쁘다고 베이스캠프에서만 죽치고 있으면 정신 건강에도 안 좋다. 이 참에 파이네 공원의 트레킹 코스를 부분적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이틀간 트레킹을 즐긴 후 하루를 더 쉬었다. 날씨가 나쁘니 자동적인 휴식이다.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칠레 등반가들과 함께 마테차를 돌려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타고니아 등반의 가장 큰 장애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바람과 급격하게 변하는 날씨라고 한다. 그들은 파타고니아에서는 느긋함이 필요하고 끈기 있게 기다리다 기회가 오면 재빨리 등반하는 것이 파타고니아 스타일이라고 강조한다.
한 달 일정으로 등반을 왔는데 벌써 두 주일이 지나고 있다. 고약한 이곳 날씨로 등반도 못 하고 집으로 가는 건 아닌지 고민하다, 안데스산맥 끄트머리 파타고니아에서 한 달을 머물다 가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스스로 위안해 본다.
꿈 꿔오던 파이네 중앙봉 등정에 감개무량
12월 28일.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날씨가 좋고 밤에 약간(1㎜)의 비가 내린 후 며칠간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시도를 하기 위해 오후에 비박 캠프로 출발했다. 지난번에 머물렀던 비박 캠프보다 고도 400m를 더 올라 북봉 아래 비박 캠프가 목적지이다.
자정 무렵 바람이 불며 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한다. 침낭과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빗물에 젖었다. 밤새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뒤척거리다 새벽녘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8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잠잠하다. 늦었지만 우리는 콜 비치까지만 갔다 오기로 한다.
콜 비치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이번엔 6시간이 걸렸다. 몸이 젖은 상태에서 밤을 새워서인지 몸의 컨디션이 안 좋고 등반을 하기엔 너무 늦다. 이곳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섣불리 등반을 시도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베이스캠프로 내려 왔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조급해진다.
30일 오후 1시. 왕복 네 시간 거리인 칠레노 산장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러 내려갔다.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없다. 일기 예보를 분석해 보니 내일은 흐리지만 바람이 15km/h 이하이고, 모레 오후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시속 25km/h 이상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100km/h의 강풍과 눈비가 온다고 한다. 내일 등반을 안 하면 우리 일정에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
하포네스 캠프에 도착하니 오후 6시다. 7시에 정진과 서둘러 비박지로 출발했다. 세 번째 시도이며 아마도 마지막일 것 같다. 비박지까지는 3시간 반을 올라가야 한다. 비박지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반. 칠레의 북봉 등반 팀이 반겨 준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날 새벽 1시에 등반을 시작하기로 한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2015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새벽 2시. 랜턴에 불을 밝히고 너덜길을 오른다. 우리가 오르려는 루트는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등반팀이 1963년 초등 시 올랐던 루트다.
콜 비치에 도착하니 오전 8시. 빙벽화와 클램폰을 벗어두고 리지화를 신고 등반을 시작했다. 세 피치씩 선등을 교대해 등반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4, 5, 6피치를 앞장서서 오른다. 크랙에 있는 얼음 제거용으로 아이스바일 하나를 챙기고 자유등반과 인공등반을 적절히 섞어가며 올랐다. 이어서 정진이 7, 8, 9피치를 앞장서 오른다. 경사가 급한 크랙으로 이어진 부분을 인공 등반으로 넘는다. 초등 당시 사용한 것 같은 튼실한 하켄들이 가끔 박혀 있다. 정진이 9피치를 등반하고 고정시킨 자일을 주마를 이용해 올라가니 다음 피치의 크랙에 얼음이 꽉 차 있고 피치 종료지점의 테라스에 쌓여 있는 눈이 오후가 되니 온도가 올라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내 차례이다. 물이 몸으로 들어오지 않게 손목과 발목을 단단히 여미고 등반을 시작했다. 물이 흐르는 크랙 사이의 얼음을 깨며 인공등반으로 진행한다. 피치를 종료할 무렵에 나의 신발과 양말은 물론 내복까지 물에 젖었다. 한기를 느껴 정진이 주마로 오르는 동안 나는 배낭에서 얇은 우모재킷을 꺼내 입었다. 밤새 추위에 떨며 고생할 것이 염려스럽다.
다음 피치는 넓은 크랙을 자유 등반하는 피치이다. 홀드는 양호한데 스탠스가 얇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 빤질빤질하다. 확보물 설치가 안 되는 넓은 크랙이라 추락하면 문제가 심각할 것 같다. 얼음이 언 크랙을 옆으로 돌아 난이도가 제법 있어 보이는 손가락 한 마디만 걸리는 페이스를 5, 6m 등반하고 올라갔다. 두 피치를 더 올라가면 비박할 곳이 있다고 한다. 몸이 얼기 전에 그곳에 빨리 도착해야 했다.
두 피치를 더 오른 후 주위를 살펴보니 전혀 비박할 만 한 곳이 없다. 20여 m를 더 올라가 보았는데 적당한 곳이 없고 오히려 바람에 더 노출될 것 같아 다시 내려왔다. 우리는 등반 속도를 내기 위해 침낭과 매트리스 대신 비상용 2인용 비박색을 뒤집어쓴 채 밤을 지새워야 했다. 해가 떨어지니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적당한 곳을 찾은 곳이 두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젖은 양말을 짜서 다시 신고 젖은 옷에 얇은 우모재킷을 걸치고 비박색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앉은 자리가 평평하지 않고 좁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정진은 참지 못하고 바닥에 깔았던 그라운드시트를 가지고 비박색을 나간다. 몇 미터 아래 적당한 곳에 서정진은 그라운드시트를 뒤집어쓰고 밤을 새울 모양이다. 나 홀로 2인용 비박색을 뒤집어쓰니 조금 더 편안해졌다.
밤이 되어 어둠이 내리자 우리가 새벽에 떠났던 비박 캠프자리에 불빛이 깜박거린다. 칠레 등반가들이 우리의 불빛을 보고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우리도 소리를 질러 응답해 준다. 비박색 안이 내가 내쉬는 숨으로 하얀 얼음으로 얼어 버린다. 답답해서 비박색을 걷어 내니 약한 바람이 부는데도 몸이 다시 얼어온다. 바람을 막아 주는 이 작은 천 쪼가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젖은 발은 비상시에 입으려고 가져온 프리마 로프트 바지로 얼지 않게 감쌌다.
오전 6시 30분 정진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코 고는 소리가 아래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 새벽녘에 잠깐 깊이 잠이 들었나보다. 벽에 걸어둔 수통의 물이 제법 얼었다. 영하의 날씨에 아침까지 나의 신과 양말은 젖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손과 발에 심한 동상은 걸리지 않았다.
정진이 정상까지 이어지는 세 피치 구간을 앞서서 오른다.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비박했던 장소에서 40여 m 오르니 몇 사람이 누울 만한 자리가 나온다. 어제 우리가 간절히 찾았던 장소였는데 우리는 불운하게도 이 좋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힘들게 밤을 새운 것이다.
2016년 1월 1일 오전 9시 30분 우리는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아래에 보이는 전망대의 호수가 상당히 크고 푸르다. 며칠 전 토레 델 파이네 전망대 호숫가에서 우뚝 솟은 중앙봉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정상에 오르니 감개가 무량하다. 정진과 기쁨의 악수를 나눈다. 함께 동행해 준 정진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정상에서 감회에 젖어 있는 것도 잠시 우리는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하산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오후부터는 눈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분다고 하니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하강 중 자일이 바위틈에 끼는 것을 염려해 60m 로프 한 동만 사용하며 하강 길이를 30m 이내로 짧게 해서 하강을 진행했다. 하강 줄이 모자라는 곳은 암각에 슬링을 걸거나 이미 박혀 있는 하켄에 의지해 하강했다.
오후 1시가 되니 진눈깨비와 함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콜 비치까지 하강을 완료하고 나서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두 시간을 더 하산해 비박캠프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비박 캠프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바람이 심해 비박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등반 장비와 비박 터에 있었던 여러 장비들을 배낭에 넣으니 무게가 꽤 나간다. 오를 때 3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피곤하고 무거운 짐으로 인해 여러 번을 쉬면서 5시간이 걸려서 내려왔다. 밤 10시경 베이스캠프에 내려오니 칠레 등반 팀이 와인을 건네며 축하해 준다. 남아 있는 와인을 몽땅 마시며 그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새벽이 오는지도 몰랐다.
우리의 다음 일정은 엘 찰텐으로 이동해 피츠로이를 등반하는 것이었다. 엘 찰텐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산으로 접근하는 시간 등을 남은 날짜와 계산해 보니 등반하기에는 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피츠로이 벽 바로 아래까지만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엘 찰텐의 분위기는 푸에르토 나탈리스와 사뭇 달랐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경직되고 보수적인 분위기의 칠레 사람들에 비해 자유 분방하고 다혈질이라 한다. 두 군데의 캠핑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늦게까지 기타 치고 노래하며 소란스럽다. 남극으로부터 좀 더 멀어졌다고 날씨도 파이네공원이 있는 푸에르토 나탈리스보다는 따뜻한 것 같다.
도도하고 멋진 세로토레 등반 상상
다음날 오후에 포인세노 캠핑장으로 향한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는 구름 걷힌 피츠로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포인세노 산장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리오 블랑코 캠프장이 나온다. 피츠로이를 등반하는 등반가들의 베이스캠프로 알고 있었는데 리오 블랑코 야영장은 더 이상 야영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변했고 고요만이 흘렀다. 여기서 다시 오르막을 한 시간 반 정도 오르니 로스 트레스호수 뒤로 피츠로이가 주변의 봉우리와 빙하들과 아울려 우뚝 솟아 멋진 모습을 보여 준다.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피츠로이로 오르는 빙하에 다다른다. 중간에 고정로프가 간간이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지난다. 다시 3시간 정도 설사면을 따라 오르니 파소 수페리어가 나온다.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이곳을 피츠로이와 그 주변 봉우리를 오르는 전진캠프로 이용한다. 여기에는 텐트를 서너 동 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있고 바람이 불어와 눈이 많이 쌓인 한쪽 편에는 설동을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위 중간에 돌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블록을 쌓아놓은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보인다. 우리는 이 비박터에 자리를 잡고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두 시간을 더 올라가면 피츠로이의 하단 벽인 이탈리안 브레차가 나온다. 피츠로이 상단 벽을 오르려면 이 중간 벽을 올라야 하는데 여러 루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빠르게 등반해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브레차를 오르지 않고 정면 벽을 바로 오르는 1,000m가 넘는 경사가 급한 루트들이 보인다. 국내의 젊고 유능한 클라이머들이 이러한 모험적인 루트에 도전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화창하고 바람도 없다. 저녁이 되니 이곳에 미리 장비와 식량을 데포하고 엘 찰텐에 대기하고 있던 등반 팀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한다. 앞으로 며칠간 좋은 날씨가 이어지나보다. 이들은 좋은 날씨를 틈타 내일 새벽에 등반을 시작하려는 팀 들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들과는 반대로 피츠로이를 뒤로하고 귀국을 서둘러야 했다.
포인세노 캠프장을 출발해 세로토레를 볼 수 있는 라구나 토레로 향했다. 호수 뒤로 멀리 세로토레와 그 주위의 연봉들이 보인다. 호수를 끼고 돌아 마에스트리 전망대까지 가보았다. 세로토레를 초등했던 마에스트리의 이름을 붙인 곳이다. 세로토레 바로 아래까지 가까이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저 도도하고 멋진 봉우리를 오르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우리네 인생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우선 차를 몰 것이다. 연료가 바닥이 날 때까지 같은 궤도만 돌고 있지 않은지? 최근에는 연료가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다는 조바심이 부쩍 든다. 무한궤도를 벗어나 원하는 곳으로 직진하는 용기를 갖고 싶다.
끝
https://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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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 파타코니아 트레킹....꼭 가보고 싶은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