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우리는 시내에서 일본식 정통 돈카스를 먹기로 한다. 나는 산에 가면 고기를 먹을 수 없기도 하고, 또 두툼한 돈카스의 진수를 일행에게 시식케 한다. 점심값을 내게 주문한 창란젓 대금으로 갚는 다고 그들이 낸다.
우리는 바로 기요시 집으로 가서 산에 안 갖고 가는 짐을 내리고 트렁크에서 스틱을 꺼내고 준비해간 김과 창란젓을 선물로 주고 난다.
간단한 안주와 과자와 맥주를 인사차 내어 목을 축이고, 우리는 바로 내가 승선시 하역하던 소데시 부두에 가서 참치 하역을 보고자 하지만, 토요일이라 하역이 없고 일반인들이 들어 갈수 없도록 철망을 둘러치어 놨는데, 테러 방지로 그런 제도가 생겼단다.
시내를 약간 돌고 바로 ,시미즈(淸水)역으로 가서 15시49분 목적지인 고후(甲府)행 특급열차를 일인당 4,670옌을 주고 탄다.
이때 지정석은 비싸고 자유석을 샀지만 사람이 별로 없고 편안하게 갈수 있었다.
열차는 3량으로 후지(富士) 시를 거쳐, 반대로 차가 움직여 미노부(身庭)를 경유하며 산길을 올라간다.
고후시에 도착하여 홈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여관의 위치를 물으며, 내일부터 등반할 남-알프스 지도를 4매 얻어 준비를 완료하고 홈을 나와 여관 만주각이라는 곳을 찾아 짐을 풀고 우리는 역 근처에서 내일 04시에 출발하는 버스정류장을 확인한다.
이곳은 본인은 전에 왔던 곳이라 낮설지 않아 좋았고 아침 버스는 오는 대로 탄다고 하였다.
일본은 편의 점 생활문화가 정착되어 LAW-SON등의 24시 편의 점을 둘러보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새벽에 편의점에서 아침과 점심을 도시락으로 사기로 하고 여관으로 돌아가 다다미-방에서 일열로 4명이 합숙을 하고 목욕을 작은 아래층에서 한다.
새벽3시20분에는 여관을 나서기로 하고 잠을 청하며 첫날은 무사히 넘긴다.
제 2일 8월 23일 일요일 등반 첫날 일정
제 2 일 계속
제2일 =8월 23일
아침 새벽 3시20분 기상하여 4시발 첫 차를 타려고 준비를 부산히 하여 여관을 나올때는 주인 여자가 일어나 일본인 특유의 절을 하며 인사를 한다.
우리는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침 도시락과 점심 도시락 그리고 포카리 2병씩을 짊어지고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버스는 오는 순서대로 타며 한차가 넘치니 바로 뒷 차가 대기를 한다.
일본은 늘 단체행동을 잘하는 나라 사람들이다. 버스도 두 대가 함께 출발을 한다.
어두운 시내를 빠져나가니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야쟈신(夜叉神)에 도착한다.
여기서 10여명을 내려주고 한참을 쉬었다가 기사가 줄 담배를 피우더니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히로가와라(廣河原)로 약 1시간을 고도 1,500m의 고불거리는 길을 간다.
우리는 여기서 충분히 장비를 검사하고 다리운동을 한 다음에 05시 30분부터 오른쪽으로 샛길을 올라간다. 이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 것이지만 그간 1일 등산만 하며 작은 짐을 지다가 물을 두병이나 지고 아침 점심을 지고 가는 배낭이 무척 무겁다
그러나 오르는 길이 1,400에서 1,790까지 가야 하는 데 갈지자 모양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니 가파르지는 않다. 그리고 양면에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가는 것도 장관이며 일본사람들이 자연보호를 위해 써놓은 간판이 재미있기도 하다.
나와 이종면이 앞서며 호홉을 잘 조절하며 등산을 하고, 뒤에 정영환이 김재봉씨와 잘 보조를 맞추며 꾸준히 따라 온다.
1,792m의 야쟈신-도우계(峠)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며 봉황3산을 보니 웅장하고 높은 산이 가로 놓여 있어 고생이 훤하고 나 하면서 07시 다시 출발을 한다.
약 1시간을 우측경사면을 올라가니 쯔에다-도우케(杖立峠) 에 도착하니 간판이 모평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 모평이란 곳은 감리산에서 와서 합치는 곳이며, 이치고-다이라(모평)이란 어미모위에 초도가 있는 딸기라는 뜻이란다.
얼마를 가니 2,440m의 미나미-오-무로 고야 (南御室小屋) 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야영장과 나무책상들이 쉼터를 만들고 있다. 물이 있어서 마시며 충분히 쉬자고 하여 발을 벗고 40여분이나 쉬고 10시10분 다시 출발을 하니 점점 배낭이 무거워진다.
이곳에는 화장실이 있고 사용자는 100옌 정도를 깡통에 팁으로 넣으라는 권고가 있어 청결히 관리 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어 의미가 있어 보인다.--웃음이 난다.
앞에 있는 암봉을 구비 돌아 올라가니 장관인 봉이 있는데 한문으로 쓰여있는데 (什山)읽는 법은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뒤로 후지산이 잘 보여 오랜만에 후지산 정상을 산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11시 20분경 약시다게 -고야(藥師岳 小屋)에서 25분 동안이나 쉬다가 출발하여 12시엔 간논다게(觀音岳)를 지나며 몇몇 사람들이 쉬어가는 모습과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고 전진을 잠시 하였는데, 분기점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지나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호우오우-고야(鳳凰小屋)로 가는 것을 그냥 지나친 김에 지장봉까지 내치기로 하였더니 힘이 들었다.
오른쪽으로 사태난 곳이 있어 아무리 탈출로를 찾으려 해도 없어서 그냥 내려섰다가 올라 치는데 약 1시간을 허덕이고 힘이 들었다. 오른쪽으로 내리는 곳 앞에는 높이 솟은 뽀족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지장봉이라고 하며 오벨리스크를 닮았다고 한다.
지장봉 바로 앞 고개턱에는 작은 불상을 길가에 잔뜩 늘어놓고 그 앞에 동전을 던져 놓은 것은 우리나 마찬가지 이다. 지장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벌벌기는 것을 보고 우리는 힘이 빠진 상태이니 그냥 모래경사를 미끄러지듯이 25분간 내려가니 물소리와 사람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봉황산장이 나와서 짐을 푼다.
예약을 확인하니 잘되어 있어, 샤워를 하려고 하니 앞개울에서 수건으로 물을 축여 씻어도 된다고 하여 우리 4명은 개울에 가서 발을 벗고 몸을 씻으니 하루의 긴 9시간의 첫 산행을 무사히 마친다.
그러나 이곳에는 먼저 온 중국-대만 사람들이 지껄이고 있어 씨끄럽다. 일단 2시 22분 도착하여 산장의 저녁시간인 5시 30분 까지 쉬기로 하였다.
밤에는 산장의 이불이 얇고 추운데다가 6시30분부터 누워 있으니 잠은 안 오고 무척 고생을 하였으나 8시에 소등하자 조용한 곳에서 그냥 누어 덜덜 거리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잠을 잤다. 이로서 첫 등반의 하루를 마친다.
이곳 봉황산장에서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개나 화장실 옆으로 나있는 것을 현지에서 알게 되어 새벽에 차를 타기 위해 일찍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산장에서 식사 때는 밥과 장국은 추가로 먹어도 된다고 하여 보통이라면 한 그릇을 더 주고 반이라면 반만 주는 것도 알게 되었다.
3일 8월 24일 월요일 등반 2일째
2,415m의 봉황 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물을 채우니 도로 배낭이 무거워진다. 어둠이 걷히고 6시 25분 출발을 하여 40분간 경사를 오르며 어제 내려온 모랫길을 허덕이며 올라간다.
지장봉-언덕에 도착하니 아침이라 그런지 힘이 남는다. 그래서 나와 정영환 동문이 살살 지장봉으로 바위틈을 찾아가며 올라가보니 별로 어렵지 않아, 지장봉을 한 바퀴 돌고 뒤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가서 지장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찌고 내려오지만, 지장봉은 영봉이라 부처님도 오래된 것이 있으나 우리 모냥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것이다.
지장봉을 지나 고령(高嶺=2,779m) 이란 봉우리까지 40여분 가려니 힘이 든다. 그런데 왼쪽으로 경사면이 지금 한창 풍화작용을 일으키며 바위가 모래로 변하며 그 중간에 바위들이 솟아 있는 것이 특이한 모양이며 몇 만년이 지나면 이곳에도 나무가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간간히 능선에 바짝 마른 통나무에 살아남은 한 가지가 멋있기도 하다.
고령에서 2,400m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3번하는데 정영환이는 내려가는 데는 달려가서 쉬고 있다. 아직 무릎이 성한 가보다. 그러나 그런 내리막 달리기는 위험을 지니고 있어 금기라고 알려준다.
9시27분에는 히로가와라(廣河原)고개(峠=도우게) 로 내려가는 탈출로에서 쉬며 간식으로 건육포와 쵸코렛을 먹고 난다. 약 1시간을 올라가니 하야가와 고야-아사요 로 가는 간판이 있어 계속 전진을 하지만 우리가 하야가와 (早川)산장에 11시에 도착하여 도시락을 먹을 책상에서 쉬면서 점심을 한다. 그리고 산장의 부부가 물이 있는 곳에서 쌀을 씻어 저녁 예약 손님 식사 준비를 하는 곳에서 물을 채워 다시 출발을 한다.
하야 가와 산장도 2,420m 나 되는 곳에 있으며 우리가 쉴 때 모녀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며 광하원으로 내려 갈 것이란다. 대단한 모녀 이기도 하다.
다시 2,580봉을 잠시 올랐다가 2,700 봉을 12시 45분 넘어서니 멀리 아사요-봉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사요 봉에서 앞으로 한 봉을 더 가야 하는데 그곳이 암릉이다. 이 암릉을 통과 하여 정상에 오르니 구리자와 (栗澤)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2,714ㅡ이나 되며 이때가 벌써14시 30분이라 오늘 저녁 산장 까지 서둘러야 한다.
여기서 바로 좌측으로 2시간을 내려가는 길이 있고 또 센수이-도우게(仙水峠)로 내려가는 약 1시간의 급경사가 있기도 하다.
시즈오카에서 온 카메라맨이 2일을 이곳에서 쉬면서 야경을 찍을 것이란 말과 센수이 도우케로 내려가 기타자와(北澤) 로 내려가는 것이 수월타고 하여 급경사를 내려서지만 처음 20여분을 내리고 나니 낙엽송 길을 걷듯이 푹신하다.
센수이 도우케에는 많은 표시 간판이 있고 앞에 있는 높은 가히고마가다게(甲斐驅가岳) 가 있는데 우리는 시간도 없고 또 너무 치쳐서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계곡을 따라 너덜지대를 내려간다. 너덜이 조금 불편해도 한참을 가니 센수이-산장과 다음에 기타자와-산장이 있어서 안심을 하고 확인을 하지만
내가 잘못하여 이곳에 예약을 부탁한 것이다. 그래서 가고자 하는 죠에이쇼(長徫莊)라는 것을 실수로 잘못 하였다고 하니, 여직원이 확인 전화를 하여 그곳에 자리가 있으니 가도 된다고 하여, 열 번 감사 절을 하고 약 15분간 내려 큰 길을 올라가는데 동경서 온 고등학생이 같은 쪽으로 간다. 왜 가느냐고 물으니 그곳 공중변소에 양변기가 있어서 그리로 용변을 보러간다고 하여 신세대의 생활을 알 수 있었다.
오후 5시 10분 장위장에 도착하니 6시 식사라고 하여 다행이라고 하며 밖에서 흐르는 물에 몸을 씼고 발도 씻어내니 일본 사람들이 추운데 대단하다고 한다.
이종면은 양변기가 있다니 살었다고 변소를 다녀오는 것이 우선이란다. 우리는 여기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며 전에 왔을 때 16기 김성열동문이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정종한잔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여 나는 아끼는 돈에 내 사비로 산다고 하여 마지막 남은 정종 두 잔을 사서 나누어 먹으니 정영환 동문이 확 하는 것이 일품이란다.
어제는 추운 봉황산장에서 자다가 오늘은 호텔같은 산장에서 잠을 자는 것이 다행이다.
저녁을 먹고 한 떼거리의 여성분들과 2층에서 함께 하며 그들이 기체조로 몸을 풀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욘사마를 불러댄다. 둘째 날 총 10시간 45분의 긴 장정을 마감하며 푹신한 담요 속에 잠을 잔다.
4일 8월 25일
사람이 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나서, 바로 어디서 출발하였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를 묻는 것이 일과 이다. 나는 일본에서 아침 인사로 “오하이요 고자이 마수”,와 낮-인사로 “곤니치와”의 시간대를 혼동한다. 오전 9시만 넘어도 일본사람들이 곤니치와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위장에서 잠을 자고 오늘은 조금 편하게 하자고 하여 07시에 출발을 한다.
그간 푸세식 변소만 쓰다가 양변기에서 편하게 일을 보고 떠나기로 하였다.
기타자와 도우게(北澤-峠)는 왼쪽이 야마나시(山梨)현이고, 오른쪽은 나가노(長野)현의 경계이다.
즉 왼쪽으로 내려가면 히로가와라와 야자신을 거쳐 고후시로 가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나가노현의 이나(伊那)시로 가며 중간에 선류장이 있다, 전에 우리는 여기 태풍을 만나 버스가 오지 않아서 21km를 걸어 내려간 곳이기도 하다.
버스 정류장의 공중변소 큰 건물 뒤로 간판을 따라 오늘은 小仙丈-仙丈岳-大仙丈-그리고 북쪽능선을 타고 료마다(兩俣)로 가는 길을 택하여야 한다. 이곳은 한번 다녀온 곳이라 만만하게 시작하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간간히 1合目 -5合目까지 표고 표시가 있다.
처음에는 가파르지만 경사면을 갈지자로 올라야 한다. 오늘은 2,000m에서 시작하여 3,033m인 센죠가다케 까지 4시간에 가야 한다.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나무뿌리들이 노출되어 있고 도로가 확실하여 등산에는 문제가 없으나, 가도 가도 오르막만 나온다.
이나시(伊那)에서 왔다는 일본인은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온다고 하며 안내를 한다. 나는 계속 오르막에 강하다. 늘 일본의 산은 길이 아니면 X표시를 하였고 가는 길은 돌에다 붉은 표시로 O 을 하여 O만 보고 가면 길을 잃을 일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하산하는 우측길을 피하고, 정상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산장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약 2시간8분을 줄기차게 올라가면 고센죠가-다케(小仙丈 岳) 가 넓고 둥근 덩어리 같은 봉에 많은 표시를 세워두고, 여기서 부터는 나무들이 모두 5엽송이지만 찰삭누어 바닥을 덮고 있는 것도 장관이며 고산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10시에 3,033m인 센죠가-다케(仙丈岳)에 도착하여 정확히 3시간에 도착하였다고 하자, 선점한 일본인들이 놀란다. 태풍속에 어찌 떨다 간, 이정상은 남-알프스의 여왕이란다. 주변은 돌로 되어 있고 남쪽 구릉 아래는 산장이 아담하게 있다.
이종면이 3,000m는 처음이라 고산증을 고려 조금 뒤 쳐진다. 내가 너무 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깃발을 펴고, 바람을 피하여 사진을 찍고 쉬었다 10시 48분 출발을 하였다. 북쪽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생소 하지만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계곡아래까지는 너덜이 깔려 있어 장관을 이룬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서 료마다(兩俣)산장 까지 간다고 하니, 가는 도중에 길이 없고 험하다고 하며 4시간 주파를 걱정한다. 그러나 대선장봉까지는 사방이 잘보이고 어렵지 않게 갔는데, 내리막길이 자갈로 덮이고 미끌거리는 경사면이라 조심을 하고 간다.
도중에 일본 여학생6명이 야영장비를 지고 가는 팀을 우리가 추월한다. 젊은 아가씨들과 잠시 한담을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고 나는 명함을 한 장 주며 한국에 오면 꼭 알리라고 하며 떠난다. 이날은 여기서부터 잠시 암릉을 지나는데 꼭 작은 용아장성을 지나는 것 같은 봉우리를 지나간다.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래도 한기를 느낀다.
조금 더 가다다 넓은 야영장 같은데서 짐을 풀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한참을 쉰다.
2,515m의 삼각점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고망지(高望池) 라는 곳을 지나니 능선을 2,400m 대에서 오르락 거리는 것이 힘이 빠진다. 도중에 고목들의 바람에 자빠져 길을 막은 것을 그래도 큰 톱으로 짤라 길을 터준 것만도 감사 하게 생각하며 하산을 계속하지만 ,요고가와 다케(橫川岳)를 2시 25분에 지나니 언제 산장에 도착할까 걱정이다.
도중에 아주머니 한분을 만났는데 산에서 9일을 자며 강행중이라고 하여 존경스러웠지만 혼자냐고 하니 뒤를 가르키며 일행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후 아무도 만나지 못하여 일본사람도 위험을 피하려고 일행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혜가 있구나 했다.
그러나 멀리 산사태와 거대한 나무들이 가로 누운 지점에는 료마다 북릉 분기점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 좌측으로 내려서는 비탈길은 내려서는 것도 상당히 급경사 이다.
2,500에서 2,000까지 내려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약 25분을 내려가니 물소리가 나서 안심을 하고, 한참을 개울을 따라가니 작은 산장인 료마다(兩俣)산장이 있어 안심을 한다. 이때 도착 시간이 오후 3시 25분이었다.
산장에는 4명이 겨우 숙박하는 사람이 있고 우리4명이 예약을 확인하니 빵빵 비어 있으니 안심하라고 한다. 아주머니와 바이트하는 학생이 잘 안내를 한다. 하루 종일8시간 30분을 걸었으니 얼마나 피곤하랴/ 그래서 개울에서 씻어도 되냐고 하니 추워서 어렵다고 하여, 비누를 쓰지 않고 수건으로 딲는 다고 하여 차가운 개울물에 발을 담그며 그간 씼지 못한 사타구니도 물에 적신 수건으로 딲아 내니 얼마나 시원한지?
짐을 풀고 정종병을 보니 술을 사주고 싶어서 정종을 따뜻하게 4잔을 원컵으로 부탁하니 한국사람이 두고 간 것인지 오징어포와 김을 주어 안주 삼아 잘 먹었다.
우리와 반대로 하산을 한 사람이 북악에서 내려 왔다고 하여 길을 물으니, 그는 개울을 따라 1시간동안 6번 물을 건너고 폭포가 나오면 좌로 올라가는 길이 2시간 가량 무척 가파르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당신이 한 것을 우리가 못 할 것 같애/ 하며 걱정을 하였으나, 저녁 후 한사람이 북악을 거치지 않고 바로 노우도리(農鳥)로 간다고 하여 나는 그 사람에게 우리보다 먼저가면 우리의 예약을 하여주고 늦어도 5시에는 도착한다고 부탁을 하며 안심하였다.
그러나 밤중에 후두둑거리는 빗소리에 물이 불어나면 개울을 못 건너 등산을 못하면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였으나 이내 비가 그쳐 다행이었고 2,000m의 산장에 푸근한 오리털 이불을 잘 덮고 편안한 하루 밤을 넘긴다.
일본의 산장은 잘 되어 있어서 짐을 갖고 갈 필요가 없고 숙박,+석식,+아침+점심 도시락을 포함하여 평균 8,000옌으로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다음날 점심을 준비 안하면 길가는 중에 허기지기도 하지만 낮에는 보통 산장들이 위생을 고려 식사를 준비 하여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2,000m의 개울에 견지낚시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하루에 20여 마리를 잡았다가 바로 놓아 주는, 그런 손맛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고 이곳 료마다에서 히로가와라 가는 길로 3시간을 걸어가면 버스를 만난다고 한다.
얼마나 쾌청한 하늘인지 새벽에는 오리온 좌의 별들이 더 밝게 빗나고 있는 것도 일품이었다.
제5일 8월 26일
다음날 새벽 사람들이 떠나고 아침 식사가 4시 30분에 있어서 천천히 먹고 우리도 오늘은 길이 멀고 험하니 5시 30분 출발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잡아 나서자 주인-아주머니가 우리가 가는 길을 안내하라고 바이트 학생을 길가에 가서 확인시키는 정(情)도 보았다.
정말 개울을 몇 번 건너는데 발을 벗지 않아도 될 징검다리가 잘 있었고 돌에 페인트로 표시한 곳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06시36분, 약 1시간을 물을 따라 걸어서 2,195m의 左俣大폭포에 도착하여 장엄한 폭포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고, 4명이 이제부터 오를 가파른 경사를 걱정하며 등반을 시작한다. 계속 북악이란 간판과 표고가 2,315m를 07시에 통과 하여 07시 34분에는 북악 2.5km라는 간판이 있다. 2,795m의 암부에 도착하니 8시 20분이나 되어 벌써 약 3시간을 달려 왔어도 북악은 아득하기만 하다. 여기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 가파르기도 하지만 원시림속에 간간히 난 길로서 이곳은 일본 산악인 중에도 푸로 들만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도중에 일본 남자 대학생 6명을 만나서 앞서거니 뒤 서거니를 하며 오르는 것도 재미 있었다.
암부에서는 앞의 북악도 잘 보이고 어제 다녀온 센죠가타게도 잘 보이며 오늘 오후에 가야할 아이노타게도 구름이 지나가기도 한다. 8시54분에는 2,945의 능선을 지나려니 돌로 된 너덜지대의 정상가는 길은 험하기도 하다. 일본 대학생들이 여기다 배낭을 풀고 따라 붙는다. 나는 이곳을 내려온 경험이 있어 일본 대학생들이 추월을 못하도록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결국 숨고르기를 안 하고 약 200m를 오르는 것이 힘이 든다. 이종면이 혼이 났다고 한다. 09시 37분 드디어 3,193m의 기타다케(北岳)에 도착하여 4시간 01분 걸려 일본 제2의 높은 봉을 점령한다.
이내 이종면이 죽겠다고 하면서 따라 붙고, 잠시 후 정영환 동문이 도착하여 우리는 사진을 찍고, 평일이라 사람이 적어서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종면이 저기 후지산이 보인다고 하여 보니 참으로 높은 이곳에서 구름위에 떠있는 후지산의 정상이 보이더니 금새 구름에 덮여 버린다. 일본인들이 아쉬워 하며 “잔넨데수네-안타깝다” 한다.
나는 조금 기다리면 보일것이라고 하였던 말대로 잠시 10여분 기다리니 다시 머리를 내민다. “맛데데 요갓다-기다리기 잘했다” 고 하여 나도 체면이 섰다.
우리는 정영환 동문이 갖고 온 태극기와 중앙회 산악회 기를 펼치고 점령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이곳 정상이 포근하여 바람이 없어서 마음껏 쉴 수 있고, 나는 산의 전체를 보며 앞으로 갈 방향을 설명하며 아래 보이는 기타다케-고야(北岳小屋) 를 알려주고 여기서 내려갈 때 경사가 심하니 조심하자고 하였다.
한참을 내려서니 북악산장이 있다. 여기서 포카리스위트를 4병 사서 하나씩 배낭에 넣고 조금 올라가다가 야영을 한 장소에서 우리는 점심을 다리를 펴고 먹는다. 늘 며칠째 도시락만 먹으니 기름기가 다 빠진듯하다.
여기서 12시 출발하여 2시 25분에는 3,052m의 나가시로네(中白根)라는 봉우리에서 쉬면서 앞으로 갈 암릉을 올려다 본다. 중간에 북악과 아이노테게 라는 간판의 중간을 표시하는 다이아몬드가 기록된 3,010m를 지난다. 오후1시31분 일본 4번째 높은 봉인 아니노타게(間의岳)3,189m에서 한참을 쉰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3봉산이 있는데, 이곳은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시즈오카-현의 세현(縣)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노타케의 넓은 봉우리에서 약간 좌로 내려서야 노우도리-고야(農鳥)가 보인다. 이곳까지 내려가는 길이 암릉인데 이상하게도 붉은 돌들이 깔려있고 구불거리는 것이 힘이 들 정도는 아니다. 중간에 하야가와(早川) 이란 푯말을 보고, 이곳서는 경사가 심하여 물이 빨리 흘러가는 구나 생각하였으며, 좀더 가니 三國平으로 가는 갈래길이 나오지만 우리의 앞에는 노우도리 고야 (農鳥小屋 )가 기다리고 있어 2,804m의 산 중턱에 산장이 붉은 지붕을 하고 있다.
내가 오늘 새벽에 부탁한 “고시-마사기” 라는 사람이 5시경 도착한다더니 벌써2시 50분에 도착함을 보고 놀란다. 우리는 늘 달리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의 달리는 것을 보고 이해를 못 한다.
바람이 불어 한기를 느끼며 악명 높은 산장 주인을 살살 존경어를 써가며“단나사마”라고 불러주니 아주 친절하다. 이곳은 물이 없는 곳이라 지붕에서 내리는 빗물을 모두 드럼통에 받아 모아 쓴다. 우리에게 대야로 물을 나눠주며 얼굴이라도 씻으라고 선심을 쓰기도 하는 산장 주인은 “후가자와” 라고 한글로 이름을 가르쳐 준다.
산장 벽에는 여러 가지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고, 내일 하산하면 나라다의 사도(那浪田의 里) 라는 온천도 광고가 있다. 이제는 4일째 마지막 잠을 자면 되는 곳이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구름이 금새 금새 지나간다. 후지산을 잠시 보았다 싶으면 이내 감추어 진다. 우리가 내일 오를 노우도리 다케도 금새 보였다 말다 한다.
저녁이 되어 밥을 주면서 역시 국과 밥은 마음대로 먹으라고 한다. 작은 방에서 13명이 저녁을 먹는데, 주인이 고려대 산악회가 12년전 다녀갔다고 펜단트를 보이며 자랑을 하여, 우리의 중앙회산악회 뱃지를 주니 왼쪽 가슴에 달고 자랑을 하여 우리 단체를 설명하여 주기도 한다.
이곳의 변소는 떨구는 자연 방치 시설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것이 화제가 되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나는 이곳에 잠을 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사람이 시미즈(淸水)에서 왔다고 하여, 내가 잘 안다고 하여, 딸기의 고장이 자기 집이며 구노야마라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는 바로 아래라고 하여 서로 잘 통하기도 하였는데 콧수염을 길러서 잊어 지지 않으며 주인과 같은 ‘후가자와’ 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이곳 2,800m의 산장에서 밤새도록 추위에 떨며 밤을 새우다 시피하며 하루를 지낸다. 정말 밤에 추위는 견디기 어려웠으며 나중에 담요 3장을 돌돌 말고 잠을 자니 겨우 한기를 면하여 새벽에 조금 잤다.
일 째 8월 27일
노우도리 고야에서 사람들이 서둘러 아침을 하고 5시부터 출발을 한다. 우리는 조금 밝기를 기다려 5시 35분 노우도리 다게(農鳥岳)에 1시간 5분 걸려 6시 40분 도착한다. 어제 함께 잠을 잔 팀을 여기서 우리가 추월한다. 그때 조용한 고시마사끼 라는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며 절대 우리를 앞지르지 않겠다고 하여 웃었다.
다시 40여분 내려오니 2,845m의 지점에 노란 종답이 있는데, 전에 이곳에서 야영을 한사람이 조난을 당하여 안개 낀 날 이 종을 쳐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을 지나친다. 얼마나 가파른 길을 계속 내려가는 것이 힘이 든다, 그러나 정영환이는 내리막은 달리는 선수이다. 3시간을 달려 폭포근처에서 왼쪽의 너덜지대를 나오는 물줄기를 따라 하산을 하여야 하며 멀리 계곡아래까지 한참을 가야 한다. 9시10분 1,800m의 다이몬자와(大門澤) 산장에 도착하여 짐을 벗고 한참을 쉬면서, 이제 약 3시간만 가면 나라다가 나올 것이란 생각에, 물에 잠가논 캔-맥주를 하나씩 사서 마시니, 정영환이는 그저 좋다고 한다.
한참을 쉬고 캔맥주를 압착시키는 통나무를 들었다 놓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며 바이트와 말을 주고 받다가 9시 40분 출발을 한다. 바이트가 개울을 따라 내려가라고 길을 아르켜 주어 내려서니 통나무를 다리를 넘고 길을 내려가는 것이 수월치 않다. 아직도 1,000m를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약간 편한 길이 나오면 다시 오름이 있고, 전에 물건을 올리던 중기계와 녹슨 와이어가 방치된 곳을 지나고 우리는 합수지점에서 발을 벗고 물가에서 마지막 도시락을 먹으며 쉰다.
일본 사람들은 청정지역에서 발을 닦는 것도 하지 아니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장시간 걸으며 물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참기 어렵다. 그리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라 발을 물에 담그고 도식락을 먹으니 한이 없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을 하니 여태까지 침엽수가 활엽수로 바뀌고 장엄한 나무사이를 내려간다. 마지막 11시 31분에 출렁다리 두 개를 건너니 시설물이 있고, 나중에 알고보니 높은 산으로 물을 끌어 올려 다시 큰 관으로 내려 보내 낙차를 이용한 소 수력 발전을 하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큰 물 저수지를 지나서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는 것도 약 50분이나 걸린다. 큰길에 나왔으니 이제 등산은 종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차량이 가끔 지나가도 힡치를 하지 않고, 마지막 까지 종주를 하기로 하여 마침내 12시 35분 나라다의 사도(里)라는 온천장에 도착하니 12시 35분 , 오늘도 마지막 2,800에서 3,198을 넘어 약 5시간동안 이곳 나라다까지 (약 950m) 약 2,250m의 표고차를 달려 내려와 결국 하루7시간의 긴-등산을 마치고 모든 산행 일정을 무사히 마치니 얼마나 행복하며 산행 4박 5일 간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아 정말 운이 좋았다.
우리가 이번에 해낸 남-알프스 종주는 일본사람들이 7박 8일에 하거나 좀 무리하여야 6박 7일에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들의 강행을 자찬한다. 다음에 다시 이 코스를 종주 하라면 할 것인가? 끔찍하게 길고 험한 코스를 다시 할 것인가? 6박 7일에 한다면 조금 여유롭게 하루에 평균6-7시간 걸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라다-사도라는 온천으로 올라가 배낭을 밖에 벗어 놓고 온천을 하는 그 편안함과 일본인들은 몇 사람 되지 않아서 우리 4명이 전용으로 온천을 즐기며 다음 4시 45분 버스시간 까지 천천히 하자고 하였는데, 말 잘하는 내 덕을 보았다. 어제 산에서 함께 잔 시미즈 사람 코털이 들어 와서 “ 어떻게 시미즈로 가느냐?” 고 묻길래 버스를 타고 다시 미노부(신정)에서 특급을 타고 갈 예정이라고 하니 자기가“차를 갖고 와서 4명이 탈수 있으니 시미즈까지 태워다 주면 어떠냐?” 고 제안을 하여 빨리 목욕을 마치고 그 사람의 짚차인 체로키에 편승하여 와서 시간과 경제적으로 25만원 이상은 덕을 보았다..
우리가 그 사람의 차로 시미즈에 도착하니 4시 밖에 되지 않아 아직 출발도 안할 시간에 도착하여 다행이었다. 시미즈의 친구 다카다 기요시에게 전화를 하니 “요같다=잘되었다” 고 하였다.
그 사람 후가자와 라는 이름의 코털은 자기 마음대로 산을 다니며 남-알프스를 30여회나 구간별로 다녔다고 하며 다음에 자기와 함께 산에 오르자고 하였다.
우리가 시미즈 BAY-HOTEL에 짐을 풀고 서둘러 수산지장으로 가서 참치를 마감시간인 5시30분에 저렴하게 사서 부두의 빠렡위에 올려놓고 서서 맥주를 겸하여 푸짐한 하산식을 하며 그 좋은 부위의 참치 진수를 맛보고, 식후에는 시미즈 긴자를 부라부라 산책겸 시내 구경을 한 후 호텔로 돌아와 그간 못잔 잠을 푹 자면서 산행을 마친다.
7일째 8월 28일 시미즈에서 관광
나는 이곳 시미즈를 1968년부터 원양어선을 타며 드나들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시미즈는 일본 역사에 지미즈-지로죠 라는 무사들의 이야기와, 한국인으로 차별대우에 반대하여 인질을 잡고 반일운동을 한 김희로 라는 사람으로 유명하며, 에도 천도시대에 이곳 미호-마쯔바라를 경유하며 후지산을 보고 동경으로 간 역사가 있는 곳으로 , 한때 일본의 참치(마구로) 선박의 조선 및 하역 기지로 번창 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비를 따져 운반선이 모두 운반하여 오므로 선박들이 없어서 항구와 도시가 너무 헐렁하여 진 상태이다.
나는 오늘 아침9시 30분에 기요시상을 이곳 호텔로 오라고 하여, 마지막 하루를 관광을 하기로 하여, 오전에는 미호(三保)의 마쓰바라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여 동해대학을 지나고, 외항 방파제에서 멀리 잘 보이는 후지산을 보고, 이내 선녀와 어부의 전설이 있는 소나무 숲을 구경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전설이 있고 그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날라 갔다고 하여 하고로모(翌衣)= 한자에 익자 아래입자가 없음) 라는 이름의 상점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여기를 둘러보고 바로 시미즈와 시즈오카 사이의 니혼다이라(日本平)라는 산을 올라가 시미즈와 시즈오카를 구경하고 이내 rope-way(게이블-카)를 타고 구노산으로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묻혀 있다는 사당을 구경하지만, 일본인들도 어디가 진짜 도쿠가와의 묘가 있는지는 알지를 못한다.
이곳 구노해안 일대는 봄이 되면 8km의 딸기밭이 비닐 하우스에 있어 장관이며, 이곳은 미강, 딸기, 오차 의 세 가지가 유명한 토산물이기도 한곳이다.
구노산을 내려와 이종면이가 일본에 왔으니 점심은 일본 우동을 하자고 하여 우동을 먹었는데 이곳은 우동의 국물이 붉은 것이 오사카지역과 다르다고 한다.
잠시 후 시내를 벗어나 미강밭이 즐비한 언덕에 올라 드라이브를 하며 시내와 항구를 조망하고 우리는 시내로 돌아와, 나는 호텔 근처의 book-off에서 아동소설을 20여권 샀다. 한권에 100옌 하던 것이 요새 불경기라 50옌 짜리가 많아 돈이 적게 들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쉬다가 오후4시 40분 다시 찾아온 기요시의 차로 수산시장에 가서 마음먹고 좋은 부위의 참치, 즉 오-도로와 중-도로를 잔뜩 사가지고 기요시씨 집으로 가서, 일본 정수의 초밥과 혼-마구로 를 마음껏 먹으며 맥주와 정종, 그리고 소주로 거나하게 등반을 무사히 마친 축하를 받았다.
언어가 잘 안통해도 정영환이는 즐겁다. 조금씩 흉내 내는 그 발음이 더 재미있다.
알지 못하면 비싼값을 주고도 정품을 못 먹는다. 내가 마구로-배 선장을 한 덕에 오늘 마구로의 진수를 맛보는 우리 일행은 혀에 감치는 참치를 처음 먹어 본 것이다.
나중에 정영환과 이종면은 젊은 사람끼리 통하여 기요시씨 가 일본의 소주를 한 병씩 선물로 주며, 나는 나이가 들어 재미없으니 자기 마누라와 이야기나 하라고 하여 웃음이 만발하였고 등산 후, 친구가 집으로 우리 4명과, 자기친구 4명을 초대하여 푸짐한 저녁을 베풀어 주어 감사 하였다.
다음날 아침 9시에 그가 부인과 딸을 함께 차를 갖고 와서, 우리는 편하게 후지산 시즈오카라는 공항에서 KE780에 몸을 실고 7박 8일의 대 장정을 무사히 마친다.
지루하지만 이런 여행은 다시 하기 어렵고 늘 말하는 여행의 3박자를 갖추어야 하는데 시간, 돈,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 다음은 이제 5,700m의 키리만자로를 향해 계획을 세울 판인데, 시간은 12일 걸리고 450만원이 든다고 하여 만만치 않다.
사진은 약간씩 욧점만 올리니 큰 산구경이나 하시고 좋은 강평은 정기 산행 시 듣겠습니다. 여러 회원들 지루한 글 잘 봐주세요. 감사 합니다.
**참고로 경비는? 왕복 비행기=298,000원 7박 8일간 현지돈61,000옌 (그러나 80,000옌 은 필요함.)
첫댓글 세상엔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울회장님처럼 동물적인 감각과 체력을 지닌분은 얼마되지 않으리라 봅니다.나이가 무슨 소용이 잇습니까? 체력은 10대인걸요.좋은 분들과 만나서 참치도먹고 김과 창란젓도 선물하고 또한 또다른 산행을 만낏한 회장님이 부럽습니다.글구 세상은 그렇게 사는게 맞습니다.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충~~~성
여행담을 후기로 쓰면 여행을 한번 더 하는 셈이랍니다. 후기 잘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familymart가 물건도 많고 더 좋더라고요;ㅋㅋㅋ
3일 째 등반기를 올리며 앞으로 계속 4일 5일 것을 올리겠으니 재미 없어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재미있습니다.고생하신분들께 죄송하지만...
명장님! 저도 꽁짜로 일본 남알프스를 4박5일 다녀온 듯 상세히 기록하셨네요. 함께 동행한 김재봉 명예회원, 영환씨, 종면씨 모두 수고하셨고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모두가 부럽군요 배영진형님도 그렇지만 특히 재봉이형님연세가 72세나되신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앞으로는 더 잘 모셔야겠군요 그리구 영환 종면이형들도요 이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