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너라 (요한복음 11장 33~44절) - 돌을 옮겨 놓으라
지난주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는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착하고 선하게 살며,
봉사와 헌신을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라 말씀드렸습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으므로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복음의 말씀만 들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마리아는 자신의 죽음의 길을
대신 걸어가시는 메시아임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 준비한 귀하고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믿음의 용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자신의 열심과 노력,
봉사와 헌신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자로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을 통하여
잘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가 살리는 것처럼
마리아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를 생명으로
부활케 하실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문맥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어떻게 살리시는지
본문 33~35절을 봅니다.
요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요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통히 여기시고는 (엠브리 마오마이)라는
헬라어로 화가 나서 분개한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분개하시는 모습은
자신의 백성을 지옥불로 끌고 가는 사탄의
모습을 보고 매우 화가 나신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으로
자신의 양들을 사랑하사 양들의 생명을 살리시려고
십자가로 향하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5:12 <아담과 그리스도>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한 자가 되어
지옥불에 들어가는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여김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어지는 로마서 5장 18~19절은 말합니다.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 한 사람이 죄를 범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는데
예수님이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님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오셨는데 본문 36~40절을 보면 ....
요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요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요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마르다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마르다의 모습인데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는 모습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을 보면 ....
눅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눅24: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눅24: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데 무덤에서 돌이 옮겨졌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짐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죽은 나사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
창세기 셋째 날은 말씀하고 있는데
창세기 1장 9~10절만 보면 ....
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온통 물로 덮혀 있는 것을
물과 뭍으로 분리하시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물을 바다라 부른다는 것은
옛 뱀이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을(율법) 상징하고
이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으로 보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상태를
바다의 모습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바다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뭍이 드러난 곳을 땅이라 부른다는 것이며
이 땅에 하나님 백성들이 먹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나무들이 자라나게 되는데
이는 복음의 말씀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뭍을 드러나게 하여 물과 뭍을 분리하는 것은
율법 속에(다른복음) 감추인 복음을 드러나게 하여
율법과(다른복음) 복음을 구별해 주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게 셋째 날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율법과 복음을 구별해 주심으로 무덤 속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날짜만 기다리며
감방에 갇혀있다고
이사야 42장 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 말씀은 애굽이라는 감방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양의 죽음으로
바로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구원해 주신 것처럼
구원해 주신다는 뜻인데 ....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감방에서 나오는 길은 율법 속에 숨겨 있는
복음의 말씀을 십자가를 통하여
구별해 주셔야만 감방에서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곳을 더 보면 밧단 아람에 도착한 야곱이
신부 라헬을 만나 양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29장 9~10절만 보면 ....
창29: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창29: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이 우물물을 덮고 있는 돌을 옮겨 양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과 같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율법이라는 돌을 옮겨 주시고 복음의 말씀을 먹여 주셔야만
목마름을 해결 받아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목마름을 해결 받지 못하여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월절 양의
죽음이 아니면 출애굽하지 못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또 성경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거대한 무덤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마른 뼈가 가득한 무덤에 비유하여
에스겔 37장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른 뼈가 가득한 무덤으로
죽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생명의 기운인 복음의 말씀) 불어넣어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 주시는 것처럼
썩은 냄새로 가득한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먹여 주시고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율법이라는 돌을 옮겨 주시고 그 속에 숨겨진
복음의 말씀을 먹여 생명을 살리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신 것인데
본문 41~42절을 보면 ....
요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오시리라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합니다.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20:30 <이 책을 기록한 목적>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돌을 옮겨 놓으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부르시게 되는데 ....
본문 43절을 보면 ....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무덤에 있는 죽은 나사로를 불러내시는 장면인데
이 모습은 무덤에(감방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불러 내시는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연다는 것으로
나사로가 있는 무덤의 돌을 옮기는 모습과 같고
문을 여시고 자기의 양을 각각 불러낸다는 것인데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의 문을 열고
(돌을 옮기시고) 나사로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사로는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무덤이라는 우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부르심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따랐다고 말합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목자가 자신의 양을 부르듯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부르시는 음성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1장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신부이므로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며
결국 신랑이신 예수님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명으로 옮겨 주시는지 본문 44절을 보면 ....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은 자라는 것은 감방에 있는
모든 인류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사탄에게 수족을 결박당한 상태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지옥불로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 나사로가(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덤에서 나오는 모습이며
대신 예수님이 결박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였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 역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복음을 알지 못하여 심판을 받아 지옥불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런 나사로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어 구원과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하고
심판받아 마땅한 자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심판을
받으시고 생명을 얻게 하셨음을 알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표현하고 있는 곳이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는
에스겔 37장의 말씀과 같은 의미인데 ....
겔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생명이 없는, 죽임을 당한 자들과 같은 자들에게
생명의 기운인(생기) 복음의 말씀을 전해
살아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처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말씀을 통하여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아 감방에 갇혀있고,
또 죽은 사람과 같은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결박 당해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다는 것을 알고 깨달아 믿게 하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더 알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