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우수상 입상작
[시] 할매의 넋두리 / 강성범
그해 가을걷이가 막 시작될 무렵
큰 바람 불고 비가 몹시 내리더니만
저수지 둑이 터졌다네, 아우성치며
온동네 사람들 난리가 아니었당게
삽시간에 냇물은 넘쳐나
논밭떼기는 난장판이 되어불고
정 붙여 살던 누옥(陋屋)은 흔적 없이 사라져
눈물 흘릴 기력도 잃어부렇고
긍게, 큰 아그 대학 학자금 밑천으로
엊그제 갓 사왔던 송아지 바로 눈앞에서 떠내려가도
꺽꺽거리고 울대 뽑을 힘도 없었당게
그러니께 천재지변인지, 말세인지
요단강이 따로 없어불더라고
불 구경 보다 물 구경이 더 재미난다고
이 할망구 노망이 나부렀는지 그 놈의 헛소리 땜에
무너진 방천을 삼킨 냇물에 발 한 짝 헛디뎌븐 순간
오매 구릉구릉 쾅쾅
번개가 퍼붓고 천둥이 터지는디
그만 깜짝 놀라 혼 줄을 불어난 흙탕물 속으로
놔버리고 말았잖여
둥둥둥 떠내려가는
황천길 쓸고 가는 쓰나미 같더랑게
얼매나 지나부렇을까
깨어나분게 느그 아부지는 당산나무 아래 덕석위에 널부러져 있었고
하늘엔 허(虛)한 구름만 무심히 흘러가고
아이고 가슴팍이 쏴헌게 멀건 눈물만 나더랑게
근디야 암만 생각혀봐도
큰 물난리에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느그 아부지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부렀는지
이 할미는 여태꺼정 고것을 모르겠다니께 참말로.
강성범 시인 프로필
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 졸업
서울시 강남교육청. 서울여중, 신수중, 오금고, 가락고, 아현산업정보교 근무
성균관유도회 서울시지부 부회장,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편집이사
샘터문학상 신인문학상(시 부문), 샘터문학 공로상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
[시] 퇴근길 / 김종국
아무도 볼 수 없는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
무지했던 지난 시간 있는 척, 아는 척, 최고인 척
부끄러운 하루의 자투리들
시간 앞에 겸허와 겸손이 없었다
고단한 육신의 무게보다
영혼의 무게에 짓눌려
기력조차 쇠잔하여
표표히 장막 뒤로 사라진다
자박자박 쫓아오는 삶의 끝자락
초침이 두려워 숨는다
평안한 영혼을 위해 피안의 세계인
어머니 젖내 나는 가슴이 못내 그립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리며
살아 온 시간 시간들
모든 시름 동굴에 덜어놓고
땅거미 되어 집으로 기어든다
김종국 시인 프로필
경남여상 교사 역임, (현) 울산 무거와이즈만영재학원 대표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시] 육학년 방학 / 정종복
다리가 묵직하고 온몸이 지뿌둥해
아직 마음은 사학년 봄방학인데
몸이 맘대로 말을 안 듣는 것을 보니
육학년 방학인 걸 깜빡 잊고 있었지
한 세월 쏜살같이 지나고
남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돼
날마다 오르막 기어오르지만
내려갈 때가 더 숨차고 후들거리는 건
차츰 졸업이 가까워졌기 때문이겠지
산굽이 돌고 냇가를 건너면서
넘어져서 깨지기도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치열하게 걸어 온 세월이 얼마인지
푸른 산을 부르고 바다를 부르고
꽃가람을 놀이터 삼아 세월을 낚으며
친한 벗과 시 한 수 읊조리고
탁배기 한 사발에 둘레판 두드리며
시중선(詩中仙)으로 살다 보면
어느 날 피안의 세계 문이 열리겠지
정종복 시인 프로필
아호는 청마. 동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영산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영산대학교 법무대학원 법학석사
대한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검찰공무원 퇴직, 법무사 사무실 대표, 기장군의회 의장
[시조] 원이 엄마 / 권태인
안동호 맑은 물결 잔잔히 깊어갈 제
휘영청 푸른 달빛 월영정 밝힐진데
떠나신 당신 그리는 이 마음만 서럽네
동짓달 긴긴 밤에 당신이 그리울 땐
머리칼 한 올 잇고 그리움 두 올 이어
당신 발 포근히 감쌀 미투리를 삼았네
당신을 닮아가는 원이를 볼 때마다
그리움 견디려고 거닐던 월영교엔
이 밤도 파랗게 떠는 달빛 홀로 외롭네
권태인 시조시인 프로필
(현) 안동경찰서 근무. (전) 부산경찰청, 경북경찰청 수사과 근무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월간 한맥문학 시조부문 신인문학상, 전국 시인대회 은상(2016)
고 이기태 경감 추모헌시 선정(서라벌의 별)
한국경찰문학 회원, 주춧돌 문인협회 회원, 서정문학 회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수필] 비 오는 날 남편의 빈자리 / 김춘자
가경천으로 부터 돌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툭툭 타닥타닥 아스팔트 위에 소낙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에 창밖을 넘어다본다. 검은 구름이 머리위로 가득 차일을 친 것처럼 덥혀 있다. 이제 겨우 오후 네 시인데 목욕탕 입구부터 계단을 넘실대며 어둠이 찾아왔다. 슬며시 겁이 났다.
지하에서부터 2층 계단까지 불을 모두 켜고 골프채를 카운터 옆에 두고 앉았다. 비 오는 밤이 무서운 게 아니고 사람이 무서웠다. 친구가 가을배추 모종도 심고 무도 심었다고 했는데 소낙비로 다시 심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목욕탕 카운터에서 의자를 밟고 유리창 너머 가경천을 쳐다보았다.
흙탕물이 넘실대며 굽이쳐 흐른다. 다리 밑 웅덩이에 잉어들이 노닐었는데 물길따라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참 걱정도 팔자다. 어디든 물길 닿는 곳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특권이 있기는 해도 사람처럼 정든 곳이 좋지 않을까 싶다. 가경천 물길 가운데 가끔 자라들이 햇볕을 쬐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자라들도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갔을 것이다. 어디든 바위가 있는 곳에 안착했으면 좋겠다.
저녁 8시, 손님 여섯 명이 들어온다. 영업이 끝났다고 해도 비오는 데 여기까지 왔는데 목욕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층 남탕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기 위해 출입구를 잠그고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어깨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남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늘 남편이 4시부터 목욕탕을 보고 정리하고는 9시가 되어 돌아왔다.
남편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수익금 전액을 내게 건넨다.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목에 걸려 한 번도 못했다. 40년 공직생활을 정년퇴직한 후에도 내가 일을 계속 했으니 집이 휑하니 외로웠겠다. 지인과 함께 밭에 풀도 메고 정원도 가꾸고 논에 물고를 보면서 세월을 낚았다. 목욕탕을 도와주는 동생을 집에 일찍 보내고 남편이 남은 시간을 메꾸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나처럼 남편도 무서웠을까? 남편은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을 대령하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처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
김춘자 수필가 프로필
충북 보은 출생. 일산건설 대표 역임
샘터문학 (시 부문 ‧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효동문학상 우수상, 양성평등 글 공모전 대상(충북대)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저서: 시집<오월이 오기까지>
산문집<그것은 사랑이었네><남편과의 약속><다시 푸름>
[시] 되돌이표 / 최용대
아침 햇살 속에서 콩새들 걸어 나와
창문에 먼지를 깨운다
잘 잤냐는 인사인지 쫑쫑 거리고
하늘 흰 구름 두둥실 떠가는 모습
밤새 우뢰가 투척하는 천둥이 터지고
약한 정령들과 전쟁이라도 벌리는지
부패한 세상을 쓸어내려는지
두려움이 지배한 밤이였다
아침 세상은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모두가 퇴장한 무대처럼 텅 빈 시공간
여기 저기 바람결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
여름 따라 갈 것 같은 작별의 몸짓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 사이로
속삭이는 듯 아련히 들리는 소리
먼 길 떠나는 여름의 인사인가
가을이 오는 소식인가
추억이 찾아오는 소리인가
하늘은 회색빛
마음은 와인빛
바람은 초록빛
계절은 하얀 도화지처럼
여름 내내 장독대 한 켠에 말없이 피어 있던 복숭아 꽃잎 빛깔처럼
항상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던 이름처럼
지루함도 잊은 듯
지웠다 그려보아도
다시 또 그 빛깔 그 이름
여름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가을은 등에 큰 봇짐을 지고 또 이렇게 돌아오려나 보다
최용대 시인 프로필
서울 거주. 인하대학교 졸업, 연세대학원 졸업
월간 문학공간 시부문 등단, 월간 문학공간 “문화칼럼 산책” 연재
한국노동방송 주필(국회논설실장), 월간 노사타임즈 주간
(사) 한국문화예술연대 상임부이사장,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정무이사, (사) 샘터문인협회 운영이사
[시] 가을 이야기 / 고금석
나무들은 파란 머리에 울긋불긋
염색을 한다
내 머리는 어젯밤 간질간질하더니
거울 속에 무서리가 성성하게 내렸다
은행나무는 남몰래 사랑하여
어느새 새끼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아가들 진한 향기 풍기더니
응가가 뚝뚝 떨어지고
어미는 노란 치마저고리 다 벗어젖히고
늦가을 찬비에 목욕재계하고
겨우살이 의식을 펼친다
감나무 불 지피던 홍엽 다 떠나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주렁주렁한 홍시들
밤새 서리 맞아 쭈그리고 앉아있다
햇살이 가득한 오수, 가을 이야기 무르익고
달큰 새콤한 추시주(秋柿酒) 한 잔에
늦가을 가는 줄 모른다
고금석 시인 프로필
서라벌문인협회 수석부회장, 백제문인협회 부회장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문화행사이사
서라벌문예 시 부문 작품상, 윤봉길문학상 우수상
저서 <우주의 새싹>
[시]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보소, 자네도 소문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당게요
고초당초 보담 더 매운
겨우살이를 잘도 전딘다 싶드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서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이면 인물 값 좀 한다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댕이를 들썩대는 디
아랫마을은 난리가 났당게요
키빼기만 삐쩡 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 마른 제비꽃년들 까정
난리도 아니라우
워매워매 쩌그 저짝에
진달래년 주댕이 좀 보소
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어쩔 수 없는 것이제
잡는다고 되겄어
말린다고 되겄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헙디어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께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단장하고
나가 보드라고
권나현 시인 프로필
경북 영주 출생. 들뫼문학 동인 편집주간, 한국문학정신 여성작가위원장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학정신문인협회 회원, 들뫼문학 동인
한국문학정신 신인문학상, 들뫼문학상, 펜타임즈 올해의 인물상
시집상재 <입술>
【제 4회】 특별상 입상작
[시] 청춘 소곡(靑春小曲) / 조기홍
무서리 내리는 아침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푸르던 나뭇잎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이든 시늉을 한다
지나간 청춘도 화살처럼 빨라
마음마저 훔쳐 달음질 쳤다
메마른 갈대숲의 가슴 하얀 산토끼는
총명한 어린 모습 어딜 갔느냐
그래도 돌아보는 애락(愛樂)과 풍류 속에
벗들이 함께 축복하고 행복을 주니
세상살이 변하지 않는
청춘을 부르는 옛 노래에 빠져
흥얼흥얼하는 오늘이 좋다
조기홍 시인 프로필
국제 PEN한국본부 회원, 내외신문 상임고문, 그레이스폴라 전무
한국다선문인협회 감사,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기획이사
별빛문학 낭만시인 최우수상,
샘터문학 공로상, 서울시의회 의장상 수상
[시] 울산바위 / 송청락
시퍼런 잇몸이 찢어지게
하늘을 향해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우렁우렁 울분을 토한다
긴긴 세월을 대지에 숨어들어
외롭게 보낸 허송세월이 원통하다
하늘 향해 고하듯
신들에게 항의하듯
굳센 의지와 기백으로 삼천리를
호령하는 장수
백두대간 틀어쥐고
천하를 굽어보며
장대한 기세로 꿈틀거린다
송청락 시인 프로필
이학박사(수료), 경영학 박사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수상
대야문화제 백일장 장원
[시] 초겨울의 기도 / 이종식
하얀 서리가 들꽃에 내리면
잎은 시들고 아쉬움만 남아 목 길게 빼보지만
세상도 마음도 차가운 겨울이 올 것이다
이웃을 돌보기보다 내 살기 바쁘니 어쩌랴
설풍(雪風)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이웃들이 들녘으로 내몰리는 혹독한
겨울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 살기 어려워 소외된 울고 싶은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느니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고 싶다
첫눈 내리면 구석구석 깨끗한 마음들
하얀 설화(雪花)로 피어나고
군불 지피는 따뜻한 온정에 손길이 이어지는
그런 겨울이 되길 바라면서
주님과 교재의 시간 그루터기에 앉아
묵상의 기도를 울린다
이종식 시인 프로필
아호는 덕실고을. ㈜ 한성플랜트 회장, (사) 베트남따이한 후원지도 본부장
샘터창작문예대학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부회장
글벗문학회 회원, 글벗창작교실 입선, 월간문학 시부문 입선
샘터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정리 수록
샘터문학 부주간 겸 샘터문학신문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