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저는 우선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객관주의님께서 남겨주시는
글을 읽으면서 제가 느끼는 생각은 아직, 대종교의 교명과 본교의 교명의 차이를 너무도 개인주의적이자, 또 매우 심각하게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시는 것 같아 진심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 어떤 이유로 개인주의적 해석이라 하는지요? 분명 원하던 단군교포명서 원본 사진까지 증거로 제시했는데 말이죠. 제목에 본교로 칭하는 경우는 없어요. 원명을 쓰지요. 대명사라는 것은 반복할때나 쓰는 것이지 처음 그것도 책 제목인 경우는 안씁니다. 대종교라는 이름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 객관적 판단을 흐리는 듯 하네요. 역사를 보면 경천교, 천신교등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경천교를 가장 선호합니다.
현재 우리 대종교 경전에 수록되어 있는 삼일신고는 사실 마지막 장이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그 빠져 있는 장이 바로, 삼일신고부현세 장입니다. 혹시, 알고 계셨는지 아니면 한번이라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만, ...중략... 이 부분을 해석하면 본교를 '우리 대종교'라고 백봉대종사께서는 분명하게 밝히놓으시고 계십니다. 왜
백봉대종사께서는 객관주의님께서 말씀하시듯 본교라는 교명을 버리고 왜 우리 대종교라고 말씀하셨을까.
三一神誥復現世
吾大倧敎經典古蹟...
==> 이부분 대종교신원경에 나오는 거 맞나요? 이게 위서라는 증거예요. 그리고 이 내용은 마지막 장이라 할 수 없죠. 덧붙임이지요. 삼일신고가 어찌 발견되었나 하는 것이죠. 여러번 말했지만 대종교신원경은 대종교로 개명한 후 필사하면서 본교를 대종교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吾本敎經典古蹟...를 吾大倧敎經典古蹟...로 바꾸지 않았을까요? 왜 이런 가능성은 외면하는지요?
* 이부분은 대종교에서 큰 논란이 될 수 있음 :참고로 권태훈 총전교 책에 보면 삼일신고는 원래 3장입니다. 세계훈, 진리훈은 후세인의 첨가라 하더군요. 이것을 지킴이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더군요. 권총전교 혼자만의 주장이 되는거지요. 그런데 제가 봐도 세계훈 진리훈이 없어야 원문이 된다고 봅니다. 이부분은 신이 아닌 인간세상과 인간에 대한 가르침이죠. 제목을 왜 삼일신고라 지었을까요? 천부경의 삼일원리가 다시 표현되는데 왜 3개장이 아닌 5개 장으로 만들었을까요? 앞의 3장만 보면 천, 신, 천궁에 대한 가르침이며 이 셋이 별개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라는 가르침이기에 삼일신고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권총전교의 말이 맞다고 보는 입장이고요. 근거로 參佺계경에도 천지천이 천신이라 나오죠. 하늘이 곧 하느님이라고. 신사기에도 5장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 추가했기에 후세인들이 그대로 받아들인 듯 합니다.
* 근데 교명을 왜 바꿨을까요? 아마도 당시 일본과의 문제때문인듯합니다. 본교라 그대로 쓰면 일본의 종교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일본도 본교의 영향을 받아 본을 국명에 썼을 수 있어요. 추가첨부한 일본간행 본교진결약해의 책 내용이 참 궁금합니다.
우리 대종교의 경전과 고적이 기악온씨(칭기즈칸)의 화를 당해 묻혀버렸으니,
이 어찌 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불초 백봉은 올봄 3월에 다행히도 하느님의 감응을 받아 태백산 옛 제단 터에서 문왕 3년 석함
속에 보관해 묻었던 '삼일신고'를 발굴하였다. 아, 우리 교화가 비록 중쇠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으나, 금일 옛 경전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니 눈물이 나도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 교화의 중흥이 분명하니, 그 또한 어찌 한스럽다고 할 것인가. 이에 몸을
정결히 하고서, 남북의 교우 형제자매에게 널리 등사해 펴노라.
-신조강세 73주 갑진년 10월에 백봉 고함.
==> 전통수행맥에는 옛 경전과 역사서들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지요. 백봉신사의 백두산파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듯 하네요. 솔직히 삼일신고는 짧아서 현재도 암송하잖아요. 그러니 뭍혀버려 한탄할 만한 일은 아니죠. 다시 쓰면 될텐데.
알다시피 삼일신고 첫부분이 신사기본과 보본단 본이 다릅니다. 암기하면서 다시 썼거나 어떤 일이 있어서 내용을 바꾼 거겠죠. 태백일사의 삼일신고도 첫부분이 다릅니다. 帝曰
爾五加衆. 당시 오족에게 가르쳤다는 내용이죠. 보본단본은 팽우에게 가르침이니 보본단본은 환웅시대가 아닌 환검시대에 쓰였을 것입니다.
* 신조강세 73주는 73*60=4380년 이네요. 단기는 아니니 개천년호인가요?
홍암대종사가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교명을 바꾼 시기는 정확히 1910년 양력
9월 4일(음력 8월 1일)에 교명을 단군교(檀君敎)에서 대종교(大倧敎)로 고치게 됩니다. 그것도 '고경각 교명(古經閣 敎命)을
봉승(奉承)하와 본 단군교(本 檀君敎)는 본명 종교(本名 倧敎)로, 기년 개극입도(紀年 開極立道)는 본기 천신강세(本紀
天神降世)로 발표(發表)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이건 중광60년사에 나오나요? 본명이 대종교라면 왜 역사에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또한 포명서에도 언급이 안되었을까요? 왜 홍암대종사를 통해서만 발표되었을까요?기록에 의하면 두번 만납니다. 신사기 삼일신고 받을때와 포명본교대지서를 받을때. 근데 왜 두번다 대종교라는 말을 전하지 않아서 단군교로 시작하게 만들었을까요? 종교를 포교하면서 교명을 밝히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됩니까? 그러다 단군교가 아니라 대종교이니 1년뒤 바로잡으라고 했을까요? 백봉신사의 명을 받아 바꾸었을까요? 아니면 경전공부하다 단군이 아니라 대황조구나 하고 대종교로 바꾸었을까요?
사실 천신강세라면 삼일신고 봉장기에 따라 366갑자=21960년으로 해야 정상입니다. 포명본교대지서에는 단기를 썼는데 이는 또 어쩐 일입니까?
단군이라는 명칭은 흔히 쉽게 부를 수 없는 존귀한 명칭임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설사, 종단의 명칭이라 혹 하려 하더라도 한 교단의 교명을 쓸 만큼 그 이름의 존엄함이 그 정도로
낮지는 않을 것이기에 백봉대종사께서는 적극 반대하신 것이고 또, 그렇기에 백두산 대종교 교단의 집무실인 고경각의 명의로 원래
교명이었던 대종교로 다시 고치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 여러번 썼지만 단군은 보통명사로 밝은 임금이고, 대종은 대황조라는 의미로 환검, 천조의 의미입니다. 단군보다 훨씬 더 높은 이름이지요. 신리대전에는 대종을 천신이라고 썼지만...
같은 맥락에서 본교라는 명칭은 꼭 대종교신원경만이 아니라, 삼일신고 원문과 당시의 홍암대종사 스스로 말씀하시는 부분, 또 고경각 명의의 명령서 등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것들이 가장 실질적인 증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삼일신고 원문이 아닌 첨가글이겠지요.
전에도 언급하였다시피, 본교라는 명칭의 의미를 잘 살펴볼 때, 본교명칭 자체가 교명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대종교는 大敎고요. 신사기에 設大敎라고 나옵니다. 대종교인 분들중 대종교보다 대교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대종교는 대종-교가 아닌 대-종교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경천교로 바꾸고 싶네요.
첫댓글 제(帝)가 아닌 주약(主若曰 咨爾衆아)로 시작되는 삼일신고 있든데.. 어찌 된건가?
신사기에서 주약왈 ~로 나오죠. 삼일신고가 여러 본이 잇는데 몇자씩 달라요. 전체적으로는 같고요.
개인적으로 신사기본이 발해본보다 먼저 쓰였다고 봅니다. 나중에 자세히 글 쓰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검색해보니, 정신, 종교 등의 2한자어가 쓰였네요. 관련내용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