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기의 우리학교 VOL.37 재일조선학생 소년예술단 서울공연
(글 장혜순)
통일을 향한 희망, 4,500명의 눈물
민족교육 사상 처음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이 남쪽의 고향땅에서 예술공연을 펼친 것은 15년 전인 2002년 9월이었다. 재일조선학생 소년예술단(단장 구대석, 도쿄중고급학교 교장, 총인원 90명)은 9월 4일에 서울, 6일에는 전주에서 공연을 성공시켜 총 4,500명의 시민들이 조선학교 학생들과 만났다.

- 도쿄조고 무용부의 군무 <룡권> 장면과 지켜보는 서울 시민들-
시민단체와 MBC가 주최
9월 4일, 서울교육문화회관은 공연 시작 시간이 지나서도 막이 오르지 않았다.
공연장으로 속속 관객들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객석은 만석으로 2,000명이 관람.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빈자리를 필사적으로 찾는 스태프들. 계단과 통로까지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공연은 무용 <오대무와 바라>(도쿄조고 무용부)로 막이 올랐고, 민족악기 중주 <뽕 따러 가세>(이쿠노 초급 무용부), <희망은 가방 속에>(아마가사키 초중 무용부), 여성 중창<통일 무지개> <미래를 품고 살아가자> 등 조선학교 교원들이 만든 오리지널 곡과 창작 무용이 공연되었다. 막이 오르자마자 ‘와~’하는 환성. 눈가를 훔치는 사람,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조차 잊고 무대를 응시하는 사람들….
1층 뒤쪽에 앉아있던 오경화씨(26)는 공연 후반에 조선학교의 역사를 전하는 영상이 흐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재일동포가 이국에서 민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남쪽 사회가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오씨는 말했다.
공연을 주최한 곳은 한국청년사랑회(이사장 김상현,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과 한국문화방송(MBC).
사랑회 이사장 김상현씨는 1993년에 남쪽의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조선대학교와 조선회관(총련 중앙)을 방문한 인물이었다. 서울 공연에는 김상현, 이재정, 설훈, 김휘성 등 4명의 국회의원, 박범훈 중앙대학교 부총장, 노동근 중앙대 국악대 총장 등 각계각층 인사와 일반시민들이 찾아왔다.
번개가 치고 치마저고리를 찢긴 여학생이 빠른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극적인 오프닝. 예술단이 보여준 공연 가운데 남쪽 시민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 것은 도쿄조고 무용부의 군무 <룡권(竜卷)>(창작 현가굉)이었다.
북을 심하게 비난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반복되어 왔던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폭언, 폭력. 일본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맞서 왔던 동포들의 다양한 삶을 상징하듯이 주인공이 밝은 표정으로 새 치마저고리를 입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서울, 전주 두 곳의 공연에서 커다란 박수가 일었다.

- 1세를 생각하며 감격한 사회자 임진량씨(전주공연) -
꿈만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로 상상했던 고향 땅. 그곳에서 무대에 선다니 마치 꿈꾸는 것 같아요.”
사회를 맡은 이는 당시 도쿄조선제3초급학교에 다니는 임진량씨(초급5학년). 임씨는 초연인 서울 공연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합창 <우리는 하나>에 이어진 대사를 읽던 중 너무 감격한 나머지 목이 메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는 그 모습이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 공연장은 감동의 소용돌이였다.
재일동포의 대부분은 남쪽 출신이다.
‘통일된 그날 조국으로 돌아가자’며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세들의 절실한 바람을 안고 온 아이들. 그렇기 때문에 그, 그녀들이 보내는 <통일>의 말은 강렬했다. 이국에서 나고 자란 3, 4세가 민족의 말, 노래와 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존재 그 자체가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 분단의 세월 속에서 일본에 있는 총련의 동포와 우리들은 서로에게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예술단이 남쪽 땅을 밟았던 2일, 만찬 자리를 마련한 강인종 서울시 교육감이 말한 것처럼 조선학교 학생들이 남쪽에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북과 남이 분명하게 적대시하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남의 계기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선언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있던 분단의 벽을 허물고, 조선학교를 찾아오는 남쪽의 동포들은 둑이 터진 것처럼 계속 늘어갔다.
조선학교 학생과 서울의 무대에서 공연한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예술부장 송선원씨(47)는 2001년에 도내에서 열린 민족악기 중주단 <미나쿠>의 공연에서 도쿄조고 민족기악부의 연주를 처음으로 들었다.
“수준이 높은 것을 보고 놀랐다. 예술전문학교도 아닌데.”
며칠 후 학생들을 데리고 도쿄조고를 견학. ‘제자들과 교류를 실현시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결실을 맺어 서울, 전주공연에서는 재일동포의 민족교육, 특히 예술교육의 수준이 높음에 주목해왔던 서울예고와 전주예술고등학교가 공연을 주관, 찬조출연하고 조선학교 학생들과 남쪽의 청년들과의 교류가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악기는 언제부터 배웠어?” “학교에서는 어떤 연습을 해?”
사회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배우는 내용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런 차이에도 흥미가 생겨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누가 뭐래도 말이 통한다는 것이 컸다.
2,500명이 관람한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공연(9월 6일).
작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주예고의 황정수 예술과장(41)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교류하면 ‘우리의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반공교육을 받아 총련의 학교에 대해 적지 않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아이들이 교류하는 모습에 민족의 대립은 없습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문화, 예술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 전주예술고등학교에서 남쪽 학생들과 교류, 친족과 만나 기쁨을 나누는 동안 작별이 순간이 왔다 -
남과 북을 이어서
일본으로 돌아갈 날이 내일로 다가온 서울의 마지막 날 밤.
예술단을 위해 만찬의 자리를 마련한 김상현 의원은 감개무량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유산으로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마음속에 있던 벽을 허물고, 이 땅에 민족의 혼, 평화·통일로 향한 마음을 키워준 조선학교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조선학교 아이들이 민족의 마음을 키우고 통일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일은 남북 쌍방의 과제다.”
김 이사장은 스스로 다짐하면서 ‘남과 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그 모습은 정치가라기보다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 모습 같았다.
9월 2일부터 9일까지의 방문기간, 조선학교 학생들은 남쪽의 시민들과 만나면서 많이 웃고 울었다. 조부모와 부모를 대신해 친족들과 만남을 이루었고, 재일동포·안영학선수가 출장한 남북통일 축구도 관전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남쪽 동포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입니다.”(도쿄 조고 서귀화씨)
“남쪽에 올 때까지는 남쪽 사람들이 우리처럼 통일을 강하게 염원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통일을 바라는데, 왜 통일이 되지 않는지 슬픔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고베조고 노유화씨)
“우리는 프로가 아니지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교토조고 김희선씨)
‘만나는 것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길’
이렇게 귀중한 것을 전해 준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얼마 전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금, 예술단의 재연이 기대된다.
*월간 <이어> 2018년 7월호에서
첫댓글 저도 서울공연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정말 예술단의 재연이 기대됩니다~!!!
언제 한번 공연 봐야되ㄹ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