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 남감리교 선교회(1896년)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는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1703~1791)의 영향력이 굳건한 기독교로서 “성결”(sanctification)의 은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884, 미국 북감리교회 소속 일본선교사 “맥클레이”(R.S. Maclay, 1824-1907)가 조선으로 입국하고, 1885년 4월, “아펜젤러”(H.G.Apenzeller)와 의료선교사 스크랜톤과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에 의해 미국의 북감리교 선교회는 위도한 지도자들로 구성된 헌신적인 선교정책으로 선교와 복지와 복음과 사회개혁등 4대 부문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➀ “리드”(Dr.C.F.Reid) 선교사와 윤치호
미국 남감리교 선교회의 조선선교는 중국 의료선교사 “리드”(Dr.C.F.Reid)와 벤더빌드 대학 출신의 “윤치호”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남감리교 교인이면서 중서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윤치호의 간곡한 요청으로 선교회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중서학원"(Anglo Chiness College)은 남감리교 선교회 “영 알렌”(Young J.Allen) 선교사가 운영하는 대학으로 윤치호도 이 학교의 출신이었습니다. 윤치호는 1887년 4월3일, 남감리교인으로는 최초로 “본넬”(W.B.Bonnell)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해 10월, 미국 벤더빌드대학(신학)과 에모리대학(영문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1893년, 윤치호는 남감리교 감독이 된 에모리 대학교 총장 “캔들러”(Warren A.Hendrix)에게 조선선교기금 2백달러를 주면서 조선선교를 이루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조선선교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였습니다. 1895년 10월, “헨드릭스” 감독(Bishop E.R.Hendrix)과 리드 선교사가 조선으로 입국하여 한성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중국교구에 편입되어 있던 남감리교 조선지회는 1897년 5월, “조선선교부”를 조직하고 리드 목사를 초대 “감리사”로 선출하였으며, 인천 송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아 경기지역 복음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 나갔습니다. 최초에는 미국 북감리회와 남감리회가 별도의 회를 조직하였으나, 1930년 12월2일, 북남감리회는 “기독교 조선 감리회”로 통합하였습니다. 1943년, 일본에 의해 “조선기독교단”으로 강제 통폐합되었으나 해방후 다시 분리되었고, 1949년 이후에는 6.25의 시련이 있었으나 완전 정착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감리교회는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1887년 “배재학당”(감리교신학대학교의 전신)과 1907년, 협성신학교(협성대학교의 전신)와 목원대학교(1954년) 등을 설립하여 기독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