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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무너진 망대의 교훈. 눅13:1-5
서론 : 우리들은 엊그제 참으로 비통하고 마음 아픈 크나큰 사건을 만났습니다. 29일 저녁 6시경에 일어난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건은 사건을 당한 본인이나 그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같은 끔찍한 일을 바라본 서울 시민뿐 아니라 온 국민들은 속으로 함께 아파했고 슬퍼했으며 마음으로 통곡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 한 복판에서 대형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으며 대구에서는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로 얼마나 많은 시민이 죽었으며 또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또 얼마나 안타깝게 했던 사건입니까? 그러더니 이번에 또 이 같은 참변이 일어났으니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너나할것 없이 크게 경성 해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들 모두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짐으로 열 여덟 명이 치어 죽었는데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경종 하신 것입니다.
1. 두 사건의 경위
예수님께서 때마침 제자들과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종 하시고 있을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근간 갈릴리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고했습니다. 그 사건이란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빌라도의 명령으로 죽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섞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짐승의 제물로 고기는 불로 사르고 그 피는 속죄 제물로 제단에 부어야 하는데 그 짐승의 피에 죽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섞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제물이란 하나님께 절대로 드릴 수 없는 제물이며 이 제물에 피를 섞은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야말로 저주받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끝에 근래에 실로암에서 일어난 망대 붕괴 사건을 예로 드시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얼마나 높은 망대인지는 모르지만 이 망대가 부실 공사로 무너져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애꿎은 열 여덟 사람이 무너지는 망대에 깔려 죽었던 것입니다. 이때 예루살렘 사람들은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들이야말로 많은 죄를 지은 연고로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죄인이 아니어서 그같은 사고로 인한 피해를 당하지 않은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큰 경종이 되었으며 자신들도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2. 허무한 인생의 삶
29일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상자가 천명이 넘으며 죽은 사람들만도 3백 명에 이르는 대 참상이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예수님의 생존시로 여긴다면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보고 받으시고 서울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경종하실 것입니까? 이에 필경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치어 죽은 3백 명의 사람이 서울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경종 하셨을 것입니다.
(1) 죄의 저주에서 오는 인생의 삶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험한 일을 많이 겪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몸의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나며 환난을 당하며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 같은 일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겪는 인생의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가족들만이 저주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언제든지 그같은 저주를 받을 만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운 좋게 그들이 당하는 저주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지 아니했을 뿐 그들보다 의로운 점이 있어서 평안히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27:1절에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은 무사하고 안전했지만 내일이라는 날에는 오늘의 사고로 비참한 생애를 맞이한 그들보다 더 큰 재앙을 만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분명 악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입니다. 매상 액이 줄어들 일이 걱정이 되어 그같은 대 참사를 예견하고도 영업을 계속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나쁜 사람들임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였습니까? 그들의 재산은 우리들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천문학적 재산으로 수천 억대의 거부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들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죗값의 회생은 많은 사람의 회생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는 악인은 망한다고 사실입니다.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머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억 대의 재산만으로도 한 평생을 잘 살 수 있겠거늘 수 천억 대의 재산을 가지고도 매상이 줄 것을 염려하여 욕심을 부렸으니 어찌 그들에게 하늘의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까? 잠2장에서 이르시기를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죽도록 애써 모아 온 모든 재산을 전부 내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다시는 재기 불능한 패가 망신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인생의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 인생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대단히 높입니다. 대통령이나 되고 서울 시장쯤 되면 꽤나 출세한 줄로 여깁니다. 하다못해 구의원 이라도 되어 보려고 출마했다가 낙선되어 집안 살림을 거들 낸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지 못하면 어리석은 삶을 살다가 무지하게 인생의 최후를 맞게 되고 결국 그의 인생을 스스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에게 ‘너희 인생들아 너희는 너희 존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정의를 내릴 것입니까? 성경적인 정의가 진리이고 가장 정확한 인생의 정의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인생들에게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약4:13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안개는 아침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잠깐동안만 있다가 곧 살아지는 존재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만큼은 불로장생할 줄로 아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90:10절에서 모세는 기도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인생의 삶속에서 성경적인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여 후회함이 없는 생애를 살다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쳐야 할 것입니다.
3. 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고 하셨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같은 말씀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1) 이것은 누구에게나 자기는 죄인이란 사실을 알라고 하시는 경종이십니다 : 예수님은 남에게 있는 죄보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죄는 다른 사람의 죄보다 그 죄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들보와 티로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은 또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너희도 언제든지 그같은 재앙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시는 말씀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일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지고 생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기 생애에 갑자기 닥쳐올 불운한 재앙이나 환난을 대처한다는 일은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고 하신 것처럼 회개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라는 말은 죄악된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면 우리의 생애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악인은 재앙 중에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에게 오는 환난이나 재앙이 그의 생애를 불행하게 만들고 저주를 가져오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모든 일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환난 주에서도 연단을 받아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저주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의 평강도 없으며 삶의 참 기쁨도 없으며 인생의 참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 길에는 언제나 죄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재앙과 환난과 저주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에 그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닥쳐온다고 해도 우리의 소망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회개하라는 말씀은 어떤 사건을 보면 그것을 보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 깨닫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따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망대에 치어 죽었는데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심으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우리들 가정에 평강을 주시고 우리의 생애에 기쁨을 주시는 일에 대한 감사를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같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고 자신들이 의롭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했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라고 그들이 당하는 참상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을 것입니까? 우리나 그들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의 장소만 달랐을 뿐 우리에게 아무 것도 의로운 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의 생애를 주장하시며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실진대 어찌 그 분에게 감사가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인 것입니다. 감사하는 백성은 복을 받지만 불만하고 하나님의 감사를 잊는 백성은 재앙을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어찌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는 그 생애를 주장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애를 오직 하나님께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돌보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인가 부모에게 맡기는 것처럼 우리의 생애 중,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생활은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다음에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생애에 축복의 열매를 선사합니다. 순종은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의 열매가 우리 앞에 언제나 축복의 결실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아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의 생애는 망하는 일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4. 새로운 길을 찾자 !
인생의 생명은 허무합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은 반드시 육신의 죽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허무한 인생의 생명을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애에 맞이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의 허무한 생애가 새로워집니다. 그것은 허무한 우리의 생명 속에 새로운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며 그 생명이 곧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무한 생애 속에 영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망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육신의 죽음만을 의미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인생의 최종적인 멸망은 그의 영혼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망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심판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생명을 이 멸망에서 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3장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서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요5장에서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자기의 본향 인줄로 착각하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안됩니다. 세상 물질에 만족하고 세상 영광에 눈을 돌리고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죽음은 우리의 생애에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벼락같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늘 우리의 죽음의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론 : 여러분, 인생은 그리 오랜 것이 아닙니다. 살같이 빠른 것이 세월입니다. 그럼에도 그 인생 길은 대단히 험준합니다. 우리의 생애에 그 어떤 어려움이 언제 찾아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침 안개 같은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를 만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으로 새로운 생명을 선사하여 망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의 쉼을 얻으십시오. 이 같은 안식은 여러분의 생애에 풍성한 축복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여러분의 피난처로 삼으시고 요새로 삼으시고 여러분의 의뢰하는 하나님으로 삼으셔서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고 하신 축복 받는 생애를 보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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