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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다. 온난화로 겨울이 찾아와도 삼한사온이 실종되고,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올겨울 들어선 연이은 한파가 매섭다. 서울에도 몇 차례 눈이 간간이 내렸지만 곧 씻은 듯이 녹아버린다.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 사이를 걷다가, 혹은 차창 밖을 보다가 동화와 같은 하얀 설경 속을 오래도록 걷고 싶은 욕망이 문득 일어나곤 하였다. 주말 산행을 하면 온전히 눈덮인 겨울산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말인 어제 서울을 떠나 버스로 4시간 30분쯤 떨어진 고창과 장성의 접경지인 방장산을 찾았다. 방장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하나로, 서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겨울철엔 강원도 영동지방이 눈이 많이 내려 쌓이지만, 올겨울 들어 강원도엔 눈다운 눈이 아직은 내리지 않았고, 충남 서해안과 호남지역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자신을 온통 벗어버리고 허허로운 본연의 자태로 침묵하며 서 있는 겨울산에 서면 적요와 평온이 밀려오는 듯하다. 일상에서 잠시 멀어졌던 참자아와 대면할 수 있어 좋다. 다른 계절보다 유독 겨울산이 좋은 이유다. 눈이 오자마자 녹아버리는 서울과는 달리 온 천지가 하얀 색으로 옷을 바꿔입은 이곳은 또 다른 무릉도원이었다. 이 산의 지명은 먼 옛날엔 방등산으로 불렸지만, 언제부터인가 방장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봉래산, 영주산과 함께 방장산은 도교에서 말하는 삼신산의 하나로서, 이 산의 봉우리들의 이름도 선선봉, 방장산 등의 도교와 미륵봉 방장사 등과 같은 불교적인 요소가 강하다. 방장산(방등산)은 일찍이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의 하나로 민초들에게 성스러운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아 왔다. 주변에 있는 같은 노령산맥의 내장산, 백암산, 선운산에 비해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빼어나고 장쾌한 산세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서해안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남부지역이지만 유독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려, 옛부터 겨울철에 눈구경을 하려면 방장산을 찾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산행의 들머리를 장성 갈재로 잡아, 쓰리봉 봉수대 방장산 억새봉 벽오봉 방장사 양고살재의 코스로 정했다. 구름이 잔뜩낀 흐린 날씨로 산행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각종 활엽수와 소나무 등이 빽빽이 우거진 743m의 방장산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드넓은 고창벌과 고창읍이 시원스레 보이고, 푸른 서해 바다를 볼 수 있겠지만, 날씨가 흐린 탓으로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멀리 동남쪽으로 무등산이 보인다고 한다.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방장산의 서쪽 용추골에는 시원한 용추폭포가 있고, 산 아래 고창 석정리에 석정온천이 있다. 며칠동안 눈이 내려 쌓인 적설량이 30cm - 50cm로 간혹 세찬 바람 속에 눈발이 휘날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면서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눈길에서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므로 평상시보다 더욱 조심해야만 한다. 가까운 야산이 아닌 원거리의 높은 산을 장시간 무거운 베냥을 메고 산행하면서 사진찍기을 한다는 것이 힘든 작업임을 경험해 본 이는 잘 안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설경을 찍어야하는 겨울산이어서, 오늘은 무거운 DSLR 카메라 대신 가벼운 라이카 D-LUX6를 챙겼다. 라이카 D-LUX6는 일년 전에 샀다. 가끔 이용하면서 DSLR 카메라보다는 여러 가지 기능이 미흡하다는 한계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라이카 렌즈가 가진 여러 장점을 인식하면서 그 명성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남기고 싶은 풍경은 보통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찍다가 인상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한번씩 베냥속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구도를 잡고 샷터를 누르곤 했다, 추운 날씨 속에 피사체를 담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칼날같은 매서운 바람 속에 내린 눈이 렌즈에 묻고, 이내 얼어버린다. 잘 닦이지도 않고 장갑낀 손은 시리고 굳어져 버린다.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며 자신을 비워야 한다. 이 모두가 좋은 풍경을 온전히 남기기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산행하면서 눈앞에 전개되는 세계는 온통 새하얀 설경으로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찾은 방장산은 743m인데도, 소백산이나 지리산 못지 않은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육산이면서도 이따금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시야에 나타나곤 하였다. 무엇보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능선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거침이 없이 호쾌하고 시원스러웠다. 정상을 지나 도착한 드넓은 억새봉엔 백제의 노래인 "방등산가" 유래비가 서 있었다. 부전가요인 "방등산가"는 도적에게 붙잡혀간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불렀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일한 현전 백제가요 "정읍사"와 지역적으로 연관이 있는 정읍은 방등산과 가까이 위치해 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누비며 4시간 반의 산행끝에 우리 일행이 타고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양고살재로 하산하였다. 그런데 해발 약 300m의 고개 이름이 아주 특이했다. 사연을 알고 보니 그 이름 "양고살재"에는 향토적 역사가 진하게 스며 있음을 알았다. 바로 380 여년 전 병자호란 때, 이곳 고창 출신의 무장 박의가 청나라 황제 누르하치의 사위인 양고리를 이곳에서 맞서 싸워 죽인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용맹한 전승의 무용담도 헛되이, 조선은 청나라 오랑캐에게 얼마 뒤 삼전도의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으니....오랑캐가 침략해 오자마자, 황급히 정비와 후궁, 왕자 일행은 강화도로, 인조는 중신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신하였다. 그러나 미처 난을 피하지 못하고 남겨진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은 청나라 오랑캐들에게 고스란히 능욕당하고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더욱이 조정이 항복한 후 수만명의 민초들은 볼모의 신세가 되어 북녘으로 끌려가야만 했으니..... 임진 7년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8년 만의 일이었다. 격랑의 역사를 아는 지, 모르는 지 무심한 눈발이 회색빛 하늘에서 지상으로 무수히 훝날린다. 귀성길에 육신은 조금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볍고 속진이 눈녹듯 사라짐을 느낀다. 주말인데도 귀로의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밤 8시쯤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본 서울이 왠지 낯설다. 낮동안 산행 내내 보았던 흰 눈보라의 세상은 보이지 않고 온통 회색의 시끄러운 공간이다. 다시 일상 속으로 회귀한 것이다.. 행복한 힐링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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