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 시인, 신작시집『앵무새 학당』 발간
시와 삶에 녹아든 철학적 명제
생명존중의 생태환경시
이명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앵무새 학당』이 문학아카데미시선 250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앵무새 학당> 제2부 <긍구당 산조> 제3부 <향나무 마을> 제4부 <바오밥나무 거품꽃> 등 4부로 갈래졌고,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이명 시인의 “유위, 무위와 생태환경시적인 자연”을 상찬하는 강우식 시인의 해설이 수록되었다.
2011년 이명의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첫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분천동 본가입납」은 백석의 「여우난곬족」과 비견될 만한 경상도 어투로 채워진 그의 대표작이다. 이 시로 일약 시단에 득명한 그는 같은 해 10월에 시집을 엮어낸다. 나는 이명의 시집을 받고서 60 가까운 나이에 등단한 이 시인이 서문에 밝힌 “길게 한 획을 내리긋고 싶다. 마천십연(磨穿十硏) 독진천호(禿盡千毫)의 가슴”을 읽을 수 있었다. 이명은 그만큼 아궁이에 불길이 빨려 들어가듯 시에 목마른 시인이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첫시집도 등단하자마자 낸 시인이 아닌가 여겼는데 다시 달수로는 겨우 1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펴낸다.
이명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앵무새학당』은 『분천동 본가입납』보다 좀 더 심도 깊은 시집이다. 편집상으로는 『분천동 본가입납』이 4부로 나뉜 거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시집도 제1부 <앵무새 학당> 제2부 <긍구당 산조> 제3부 <향나무 마을> 제4부 <바오밥나무 거품꽃>으로 되어 있어 별 차이가 없어 보이나 내용면에서 훨씬 깊이가 있다.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시집. 이 점 또한 이명의 특이한 점이다. 철학적 명제이기도 한, 유위, 무위, 무위이불무위를 중심으로 시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찾고자 하는 자세는 우리시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런 명제는 첫 번째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의 제1부 <장자에게서 길을 묻다>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 시인이 가진 시적 역량을 나로서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명 시인이 미진하거나 모자란 부분들 아니면 살면서 중요한 것들은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답습하고 가려는 이러한 자세야말로 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오늘의 그를 만들어온 삶의 자세라고 여긴다. 아마 자유인으로 시를 쓰려는 그의 마음 바닥에는 독진천호의 장인으로서의 정신이 깃들어 있으리라.
―강우식(시인, 전 성균관대 시학교수)
▶프로필: 경북 안동 출생.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앵무새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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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판·반양장 112쪽/ 값 10,000원
[시인의 말]
바다가 생활의 일부였던 때가 있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출렁이고 있는 유년의 바다, 활화산 같은 그 바다에 다시 서고 싶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 그 깊이를 모르겠다
캄캄 어둠의 늪을 헤매며 다닌다
나를 찾아 나선 길
길인 곳에 길은 없었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길이 있었고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다
모른다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는 요즈음 그러나 시의 바다에 푹 빠졌다
시를 쓰는 일이 즐겁다
늦게나마 업 하나 얻은 것에 감사한다
2013년 계사년 입춘
이명(李溟)
[이명 시집 앵무새 학당]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앵무새 학당
19 | 나도 홍단풍나무
20 | 수목원 두꺼비
21 | 화중신선
22 | 형상, 미완성 알파와 오메가
23 | 함곡관 산양
24 | 앵무새 학당
26 | 하늘 그물
27 | 무위이무불위
28 | 개심사 오르는 길
29 | 곤을 찾아서
30 | 구름 놀이터
31 | 길 위의 길
32 | 나는 도가를 꿈꾸지 않았다
33 | 달마 낙지
34 | 무문관
제2부 긍구당 산조
37 | 신전리 고택
38 | 처사 의성김공의 가묘
40 | 능선에서
41 | 연암의 고추장 단지
42 | 갈마산 나방
44 | 금서대를 보며 생각한다
45 | 사모곡
46 | 긍구당 산조
48 | 긍구당 고유
49 | 난중일기 기축년 유월
50 | 백가쟁명 나무
51 | 학이편 제1장을 읽는 밤
52 | 누님의 수틀
53 | 봉오골 과수밭
54 | 동짓달이 오면
제3부 향나무마을
57 | 모량리 햇살에는 문장부호가 있다
58 | 향나무마을
60 | 하늘 불은 바람이 끈다
61 | 푸니쿨리 푸니쿨라
62 | 코알라가 사는 법
63 | 별꽃나무
64 | 산타 루치아
65 | 골무 시나위
66 | 댕강나무 앞에서
67 | 동백꽃
68 | 라 콤파르시타 주문진
69 | 목테
70 | 갈치
71 | 메주꽃
72 | 물자라
제4부 바오밥나무 거품꽃
75 | 나는 사막에 산다
76 | 니모키 트레일에 내리는 비
78 | 바오밥나무 거품꽃
79 | 도플갱어
80 | 디지털 노마드
81 | 레퀴엠 강물 따라
82 | 메콩 강과 한강 사이
83 | 바벰바족의 율법
84 | 백남준의 로봇 K-456 앞에서
85 | 블랙 스완
86 | 사하라 헬스클럽 모래시계
87 | 산을 검색중이다
88 | 상대성
89 | 소리 박물관
90 | 하늘 클라우드
92 | 신 모나리자
93 | 작금의 사랑
94 | 점 P를 잡아라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
95 |강우식 해설
유위, 무위와 생태환경시적인 자연
앵무새 학당
1. 유위有爲
나는 한 번도 앵무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앵무새가 울음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앵무새의 울음소리를 들어 보기 위해 버드랜드를 찾았다
앵무새를 길들인다는 버드랜드에서 앵무새가 울기를 기다렸다
버드랜드 철창 안에 앵무새들이 모여 있었다
앵무새는 울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자
앵무새들은 저마다 구슬을 입에 물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인사성 밝은 새 한 마리가 먼저 나섰다
“안녕하세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빛깔이 없는 것이라 했기에
내가 멀뚱멀뚱 바라보자 구석에 있던 한 놈이
“니 밥 문나?”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므로
그것은 이름하여 소리가 없는 것이라 했다
이제 너희들도 사람 흉내를 내는구나
울음을 가르치지 않는 그곳에서 한참동안 기다려 보았다
내 얼굴에서 어떤 슬픔을 읽어냈는지
눈치 빠르게 한 녀석 재빨리 한 마디 내 뱉는다
“내 너 사랑해!”
2. 무위無爲
커다란 앵무새 한 마리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입을 반 쯤 벌렸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울음을 울기 위한 동작은 아니었다
가끔 꾸룩꾸룩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되삼키는 듯한, 목젖이 출렁이고 있었다
분출하려는 무엇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앵무새 울음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다
끈질기게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앵무새가 느닷없이 한 마디 내뱉는다
“어이, 아재 너 참 못 생겼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므로
그것은 이름하여 형태가 없는 것이라 했던가
또렷하게 순식간에 들려온 그것이 울음인지
나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갈치
집어등 불빛 따라 밤이면 수면에 솟아올라
꼿꼿이 서 있는 은백색 나무숲을 아시는지요
불빛이 쏟아져 내려와 푸른 배경이 되는
여기는 태고의 원시림
자작나무 숲에 바람이 머물 듯 숲은 고요합니다
집어등 불빛이 별빛 같습니다
꼿꼿이 서서
목마르게 쳐다보는 곳에 경계가 있습니다
빛이 굴절되는 곳
내 시선이 다 하는 경계에서도 밤마다 별이 떠오릅니다
집어등 불빛 나라, 아득한 별나라
사라진 것은 모두 자작나무 숲으로 간다는 데
그 숲속에 영혼이 산다는데
혹시,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 숲이 된 것은 아닐까요
몸은 은빛으로 부르트고 지느러미가 파르르 떨립니다
숲속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는 것은
또한, 누군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바다의 퉁소소리는 아닐는지요
어둠의 끝도 어둠이어서 어둠이 짙어질수록
숲은 더욱 하얗게 빛납니다
백남준의 로봇 K-456 앞에서
리모컨을 켜자
그 여자는 가슴에 달린 전등을 번쩍이며
노래하고 춤추고 걸으며
딱딱 끊어지는 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몇 번씩이나 눈을 껌뻑였다
누군가 생각날 듯 생각날 듯했지만
끝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모컨을 끄자
그 여자의 속이 텅 빈 사각형 얼굴에서
볼품없이 툭 튀어나온 유방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은빛 철골에서
등뼈와 팔다리에서
머리 위로 날리는 은박지에서
누군가 생각날 듯 생각날 듯했지만
끝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리스의 신전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인가
외계의 어느 별나라인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무덤인가
그 무수한 경계를 헤매다가
불현듯 깨어났다 시계를 보았지만
초침은 정지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