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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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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지옥으로 떨어진 김정운
새벽 세 시, 평양 특각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갔다.
최고지도자 김정운의 심장이 멎었다는 소식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호위총국 지휘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향년 마흔둘. 지병이라 알려졌지만, 누구도 정확한 사인을 입에 담지 못했다. 입에 담는 순간 그 사람의 목숨도 함께 위태로워질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그의 유언이었다. 두 장의 종이. 하나는 국무위원회 앞으로, 하나는 가족 앞으로.
첫 번째 종이에는 짧고 단호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 *후계는 주은이다.*
두 번째 종이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문장이 적혀 있었다.
>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라.*
열두 살 김주은은 그날 밤 자신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의 마지막 숨소리를 떠올리며 울었을 뿐이다. 그러나 특각 바깥의 세상은 울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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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의 옥좌에 어린 소녀가 앉혀졌다는 소식이 전국에 퍼지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그러나 그 옥좌를 실제로 떠받치는 것이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조선의 권력은 본디 두 개의 기둥으로 서 있었다. 하나는 군부, 다른 하나는 당이었다. 김정운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두 기둥이 한 사람의 그림자 아래 얌전히 포개져 있었지만, 그 그림자가 사라지자 기둥은 각자의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군부는 애초부터 하나가 아니었다. 함경도의 제7군단, 양강도의 제9군단, 평안도 국경경비사령부, 그리고 평양을 지키는 호위총국까지 — 각 군단장들은 저마다 자신의 관할 구역을 하나의 작은 왕국처럼 다스려 왔다. 최고지도자라는 절대적 구심점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각자의 병력만 끌어안고 있었다.
반면 당은 달랐다.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앞세운 김여진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오라비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당 중앙위원회의 흩어진 파벌들을 하나둘 자신의 손아귀로 끌어모았다.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보위성까지. 명분은 완벽했다. *섭정.* 어린 조카를 대신해 나라를 지키는 고모.
그러나 아무리 당을 손에 쥐어도, 총구가 없는 권력은 반쪽짜리였다. 마오쩌둥의 그 오래된 어록처럼,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김여진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땅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 일대가 전부였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은 채 순식간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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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에는 여전히 초상을 알리는 만장이 걸려 있었지만, 그 색은 이제 애도보다는 불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급소 앞에 줄을 서면서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 아니 얼마나 더 추워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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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 계속)*
### 2장. 누가 백두혈통인가
함경북도 회령의 한 군단 사령부, 늦은 밤.
낡은 응접실 소파에 앉은 노인의 등은 굽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예순을 넘긴 나이였다. 김일성의 피를 직계로 이은 마지막 인물, 김정운과 김여진의 삼촌이자 김정운의 아버지 대(代)의 이복형제인 김평철이었다.
그의 앞에 늘어선 것은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의 군단장들이었다. 저마다 계급장은 달랐지만 눈빛만은 똑같았다. 갈 곳 잃은 자들의 눈빛.
"각하께서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것은 제9군단장이었다.
"평양에는 지금 어린 계집아이와 그 고모밖에 없습니다. 백두혈통이라 자처하지만, 정작 총을 쥔 자들 중 누구도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습니다."
김평철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창밖의 눈 덮인 산줄기를 바라보았다. 회령에서 평양까지, 몇 번이고 다시 그려본 지도였다.
"나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평생을 도망자로 살았다. 폴란드에서, 불가리아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 조카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소문에 매일 밤을 뒤척이며 살았지.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옥좌를 탐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군단장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 나라가 지금 이대로 흘러가면, 남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내전, 아니면 중국의 속국. 나는 도끼로 나무를 찍던 그 시절부터 군인이었다. 군인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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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회령발(發) 통신이 함경남도, 자강도, 양강도의 각 군단 사령부로 동시에 타전되었다. 암호명 *백두산*.
내용은 짧았다.
> *김평철 각하, 전군 통합 지휘권 수락. 목표는 단 하나, 평양의 정통성 회복.*
그날 오후까지 세 개 군단이 백두산 작전에 합류했다. 사흘 뒤에는 자강도 국경경비여단까지 가세했다. 흩어져 있던 힘이 하나로 모이는 데는, 놀랍도록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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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동당 중앙당사, 김여진의 집무실.
보고를 받은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보고서를 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삼촌이……."
그녀는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명절이면 가끔 마주쳤던, 언제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던 그 얼굴. 오빠가 살아있을 때는 존재조차 잊혀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오빠도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있었다. 군부의 신뢰.
김여진은 창가에 서서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손에 쥔 것은 당이었다.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국가보위성 — 종이 위의 권력은 완벽했다. 그러나 종이는 총알을 막지 못한다.
오빠가 살아있을 때, 그녀는 늘 그림자였다. 최고지도자의 여동생.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존재. 그녀는 그 그림자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권력의 실을 엮어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오빠가 죽고 옥좌가 비었을 때, 그녀의 손에 남은 것은 반쪽짜리 나라뿐이었다.
*군부를 손에 넣지 못한 것.*
그것이 그녀 평생의 회한이 되어, 지금 이 순간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었다.
"주은이는……."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주은이는 지켜야 한다."
집무실 문밖에서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다음 일정을 알렸다. 국가보위상과의 긴급 면담. 그녀는 눈가를 한 번 지그시 누르고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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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 계속)*
### 3장. 김평철 일대기
회령 사령부의 밤은 길었다. 잠들지 못한 김평철은 낡은 군용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의 기억은 자꾸만 수십 년 전, 판문점 인근의 어느 여름날로 돌아갔다.
그날, 스무 살 남짓의 대학생이었던 그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유혈 사건 소식을 듣고 캠퍼스로 뛰어갔다.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둘러싼 충돌로 미군 장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대학생들을 모아 광장에 세우고, 목이 쉬도록 외쳤다.
"제국주의자들의 도발에 우리는 총으로 답한다! 조국을 지키는 것이 청년의 본분이다!"
그날의 연설은 지금도 그의 귀에 선명했다. 대학생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입대 지원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누구보다 먼저 군복을 입었다.
그때 그를 지켜본 군부의 원로들은 감탄했다. *김일성 동지의 아들 중, 진정으로 군인의 피를 타고난 이가 있구나.* 그날 이후 몇 년간, 그는 군부 내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는 청년 장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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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에서, 그는 이복형 김정일에게 패했다. 정치적 감각도, 당내 조직력도, 결국 모든 것에서 밀렸다. 패배는 곧 유배를 의미했다.
폴란드 대사. 그다음은 불가리아. 그다음은 유고슬라비아.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전전하며 보낸 세월이 어느덧 삼십 년을 넘었다. 그는 매년 겨울, 조국에서 날아오는 짧은 인사장 한 장을 받는 것 외에는 평양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았다. 몇몇 정보원들 사이에서는 그가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 여부는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평생 뒤를 돌아보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형 김정일이 죽고 나서야, 그는 겨우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조카 김정운이 통치하는 나라로.
돌아온 조국은 그가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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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은 삼촌을 경계하면서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한직을 주고, 평양 외곽의 조용한 관사에서 지내게 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사실상의 감시 속 유폐였다.
김평철은 그 세월 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그는 지켜보고 있었다. 조카가 다스리는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핵과 미사일에 쏟아붓는 자원과, 굶주리는 인민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그리고 이제, 그 조카마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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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의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늙은 왕자는 평생을 패배자로, 도망자로, 유폐된 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는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패가 놓여 있었다. 군부의 신뢰. 백두혈통의 정통성. 그리고 무엇보다, 잃을 것이 없는 자의 결단력.
그는 담요를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주름진 얼굴 속에, 여전히 그날 광장에서 목이 쉬도록 외치던 청년의 눈빛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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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 계속)*
### 4장. 어느 줄이 썩은 동아줄인가
평양 노동당 중앙당사, 심야 회의.
김여진은 회의실 상석에 앉아 있었지만, 정작 발언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국가보위상, 조직지도부 부부장, 그리고 몇몇 원로 당료들. 군복을 입은 이는 단 한 명, 호위총국 부총국장뿐이었다.
"주은 동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합니다."
국가보위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두혈통의 적통은 명백히 주은 동지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각 군단에 다시 한번 못박아야 합니다."
김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차례 시도했던 방법이었다. 조카를 앞세운 특별 담화, 전군 지휘관 앞으로 보낸 친서, 심지어는 김주은이 직접 군복을 입고 열병식에 참석하는 영상까지 제작해 배포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호위총국 부총국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경도와 양강도, 자강도의 군단장들은 이미 김평철 각하께 충성 서약을 마쳤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김일성 수령님 시절부터 군에 몸담아온 원로들입니다. 그들에게 정통성이란, 혈통의 순서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군을 통솔할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부총국장이 말을 이었다.
"열두 살 소녀가 지휘하는 군대를 따를 지휘관은 없습니다. 설령 그 뒤에 여진 동지께서 계시더라도 말입니다."
김여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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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그녀는 홀로 집무실에 남았다. 창밖으로 평양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몇 달째, 그녀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낮에는 당의 얼굴로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그녀를 짓눌렀다.
*군부 없이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당은 그녀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당이 아무리 완벽한 체계를 갖추어도, 결국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총구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외면해왔다. 오라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총구는 언제나 오라비의 것이었으니까. 자신은 그저 그 곁에서 그림자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림자는 홀로 서야 했다. 그리고 그림자에게는, 애초에 실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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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그녀는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고민을 되풀이했다. 국내에서 끌어올 수 있는 힘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남은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봉투 하나를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베이징에서 온 것입니다."
김여진은 오랫동안 그 봉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대는 순간,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는, 그것이 썩은 동아줄이든 아니든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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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에서 계속)*
### 5장. 한편 청와대에선
같은 시각, 서울.
국가안보실 지하 상황실에는 사흘째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 그리고 몇몇 참모들이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현재 북한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정원장이 브리핑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내전 직전입니다."
화면에는 북한 전역의 군단 배치도가 떠 있었다.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일대에 표시된 붉은 화살표는 모두 하나의 지점, 평양을 향하고 있었다.
"김평철 세력이 이미 세 개 군단, 국경경비여단까지 규합했습니다. 반면 평양의 김여진은 황해도 일부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병력이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뭡니까."
국정원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내전이 벌어지고, 그 혼란을 틈타 중국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저희는 영영 반쪽짜리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가 사실상 중국의 위성지대로 편입되는 겁니다."
무거운 침묵이 상황실을 짓눌렀다.
통일부 장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결국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김여진, 아니면 김평철. 둘 다 절반만 쥐고 있습니다. 당을 손에 넣었지만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김여진은 평양과 황해도 일대뿐이고, 각지 군부의 지지를 얻은 김평철도 그 두 지역을 제외하면 나라의 나머지 절반을 쥐고 있는 셈이지만…… 평양과 황해도를 빼면 사실상 수도 없는 반쪽 국가입니다."
"결론적으로."
국방부 장관이 말을 받았다.
"둘 다 반쪽만 손에 넣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건, 지난 반백 년 넘게 분단되었던 이 나라를 다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창밖, 아니 상황실이라 창조차 없는 그 벽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통일이라……"
그가 나직이 되뇌었다.
"우리가 살아서 그 말을 현실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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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 참모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일부는 김여진과의 물밑 접촉을 주장했다. 그녀가 이미 당권을 쥐고 있고, 평양이라는 상징적 수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안정적인 이양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다른 일부는 김평철을 지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군부의 실질적 지지를 받는 쪽이 결국 내전을 조기에 종식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가 오랜 세월 서방과 자유진영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들은 뒤,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는 국정원장을 바라보았다.
"양쪽 모두에 대한 정보를 더 모으십시오. 그리고 중국의 움직임도 반드시 놓치지 마십시오. 이 게임에서 우리가 마지막에 웃을지, 아니면 다시 한번 강대국들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할지는, 우리가 얼마나 먼저,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상황실의 불빛은 그날 밤에도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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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 계속)*
### 6장.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평양 순안공항, 야간.
활주로 조명이 절반쯤 꺼진 채, 전용기 한 대가 조용히 착륙했다. 트랩을 내려온 이는 중국 외교부장 리첸이었다. 공식 일정에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방문이었다.
그를 맞이한 것은 김여진 단 한 사람과, 최소한의 수행원뿐이었다. 회동 장소는 대동강변의 한 영빈관,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여진 동지."
리첸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여진은 그 손을 잡으며 애써 표정을 다잡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실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본론은 회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나왔다.
"베이징은."
리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은 동지를 조선의 정통 후계자로 지지합니다. 그리고 그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물자와 자금,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군사적 지원까지, 아낌없이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여진의 심장이 순간 빠르게 뛰었다. 몇 달째 그녀를 짓눌러온 그 갈증에, 마침내 물줄기가 닿는 순간이었다.
"다만."
리첸이 말을 이었다.
"청구서는 함께 옵니다."
그가 탁자 위에 지도 한 장을 펼쳤다. 평안북도 일대가 표시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험준한 산지, 국경 지역의 별 볼 일 없는 땅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지도에는 나진과 청진의 항구가 붉은 원으로 둘러져 있었다.
"러시아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부동항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도,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열쇠이지요."
김여진은 그 지도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동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 그것을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완곡하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본질은 명백했다. 중국의 동해 진출을 위한 발판을 내놓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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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이 끝나고 리첸이 떠난 뒤, 김여진은 홀로 영빈관에 남아 창밖 대동강을 바라보았다.
*군부를 제압하고 나라를 평정한다면, 중국군이 순순히 물러날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내 손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내전이 끝난 자리에, 중국군이 눌러앉는다면. 그녀가 지켜낸 것은 나라가 아니라, 그저 이름뿐인 옥좌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옥좌 뒤에는, 오라비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삼촌 김평철이 이끄는 군대가 머지않아 평양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었다.
*그럼 마지막 패는……*
핵.
그녀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스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쏘아도 죽고, 쏘지 않아도 죽는다.*
동족을 향해 핵을 겨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든 명분을 잃는 길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진다면, 그것 역시 죽음이었다.
그녀는 그 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창밖의 대동강은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검게 흘러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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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에서 계속)*
### 7장. 까치가 우니 반가운 손님이 찾아 오더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이른 아침.
며칠째 김여진과 김평철 사이에서 저울질을 거듭하던 참모들 앞으로, 예상치 못한 보고가 올라왔다.
"강원도 앞바다에서 소형 선박 한 척이 발견됐습니다. 해경이 접근하자 자신들을 김평철 각하의 특사라 밝히며, 청와대와의 접촉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상황실이 순간 술렁였다. 국정원장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병 확보하고, 안전 가옥으로 이송하십시오.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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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서울 외곽의 한 안전 가옥.
국정원장이 먼저 단독으로 특사와 마주했다. 신원 확인 절차를 밟던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여권도, 신분증도 없이 구술로 전해 받은 인적 사항,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윤곽과 말투에서 풍기는 익숙한 인상. 국정원장은 오랫동안 정보기관에 몸담으며 보아온 옛 자료 속의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혹시."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김평철 각하의 아드님, 인우 씨 되십니까?"
특사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김인우입니다."
국정원장은 순간 말을 잃었다. 단순한 연락책이나 측근이 아니라, 김평철의 친아들이 직접 바다를 건너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이 접촉에 김평철이 얼마나 큰 무게를 싣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는 즉시 자리를 옮겨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각하, 놀라운 보고입니다. 강원도 앞바다로 넘어온 특사의 신원이 방금 확인됐습니다. 김평철의 측근이 아니라, 그의 친아들 김인우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본인이 직접 왔다는 겁니까?"
대통령의 목소리에도 놀라움이 묻어났다.
"예. 신빙성 있는 신원 확인을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나직이 말했다.
"이건 단순한 탐색이 아니군요. 김평철이 목숨을 걸고, 혹은 적어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걸고 손을 내민 겁니다."
보고를 전해 들은 참모들 역시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통일부 장관이 낮게 중얼거렸다.
"친아들을 특사로 보냈다는 것은, 이게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심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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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국정원장은 안전 가옥으로 돌아가 인우와 마주 앉았다. 그의 태도는 처음보다 한층 신중해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그가 봉투를 내밀었다. 국정원장이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특사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미 베이징 쪽에서 저희에게도 접촉이 있었습니다. 여진 동지에게 접근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였습니다."
"내용은."
국정원장이 물었다.
"똑같았습니다. 주은 동지가 아니라 이번엔 아버지를 정통 후계자로 지지하겠다는 것이었죠. 물자, 자금, 군사 지원까지. 다만……"
특사의 표정이 굳었다.
"청구서가 있었습니다. 평안북도 국경 일대의 항구 이권. 나진, 청진을 비롯한 부동항들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요구했습니다."
"아버님의 반응은?"
"거절하셨습니다."
특사가 단호하게 답했다.
"아버지께서는 그 청구서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것이지, 나라를 팔아넘기려 나선 것이 아니다.'"
국정원장과 참모들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특사가 말을 이었다.
"평양 내부의 정보원을 통해,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국이 여진 동지 쪽에도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이 싸움이 단순한 후계 다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셨습니다. 이건 이 나라를 통째로 삼키려는 자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이들의 싸움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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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대통령 관저.
국정원장의 브리핑을 들은 대통령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청구서를 거절했다……"
그가 나직이 되뇌었다.
"그것이 결정적이군요."
통일부 장관이 조심스레 덧붙였다.
"여진 쪽은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김평철은 이미 선을 그었습니다. 중국의 손을 잡지 않겠다고요."
대통령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반백 년 넘게 갈라져 있던 나라, 그 틈으로 오랜만에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연락을 취하십시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는 그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하십시오."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는 김평철과 손을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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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에서 계속)*
### 8장. 문 닫을 때가 되었다
회령 사령부, 작전회의실.
지도 위에 붉은 화살표가 하나 더 그려졌다. 평양을 향해 조여드는 세 번째 화살표였다. 제9군단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각하, 이제 두 달이면 됩니다. 자강도 잔여 병력까지 합류하면 평양 포위가 완성됩니다. 김여진은 결국 무릎을 꿇을 겁니다."
다른 군단장이 거들었다.
"백두혈통의 적통은 각하십니다. 김일성 수령님의 직계 혈육이자, 살아있는 마지막 원로이십니다. 옥좌는 원래 각하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것을 되찾으실 때입니다."
회의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김평철에게 쏠렸다. 그들의 눈빛에는 존경과 함께, 은근한 갈망이 섞여 있었다. 자신들이 지지한 인물이 마침내 옥좌에 앉는 모습을, 그들 역시 보고 싶어 했다.
김평철은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오랫동안 지도 앞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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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는 홀로 관사에 앉아 있었다.
*평양 포위가 완성되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질문이었다. 평생을 유배자로, 도망자로 살아온 그였다. 이제 손안에 군대가 있고, 명분이 있고, 조카딸보다 훨씬 정통성 있는 혈통이 있었다. 옥좌를 향한 마지막 몇 걸음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낯선 감정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평생 부정해왔다고 믿었던 감정이었다.
*나도, 결국 옥좌를 원하는 것인가.*
그는 그 물음에 선뜻 아니라고 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수십 년의 유랑 세월 동안, 그는 스스로에게 권력에 미련이 없다고 되뇌어왔다. 그러나 지금, 실제로 그 권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자, 그 되뇜이 얼마나 얄팍한 자기기만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잠들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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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원산.
그는 홀로 특각을 찾았다. 형 김정일이 생전에 즐겨 찾던 별장이었다. 이복형이 죽고 조카가 다스리던 시절, 그는 이 특각에 발을 들일 자격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 방 한가운데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창밖으로 겨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지나온 세월을 하나씩 되짚었다.
후계 경쟁에서 밀려나던 그날. 짐을 싸 들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나야 했던 그날. 폴란드의 겨울, 불가리아의 봄, 유고슬라비아의 여름. 낯선 언어와 낯선 얼굴들 틈에서, 그는 조국의 소식을 신문 한 귀퉁이로만 접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신문들 속에서, 그는 보았다.
축구공을 차는 한 청년, 최범근이라는 이름이 유럽 리그를 뒤흔드는 것을. 또 다른 청년 박근성이 잉글랜드의 명문 구단에서 주장 완장을 차는 것을. 그리고 손승민이라는 이름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득점왕에 오르는 것을.
88년 서울, 2002년, 2018년 평창. 그가 유배지에서 신문으로, 나중에는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그 모든 순간들이 그의 가슴에 조용히 쌓여갔다.
그는 손에 쥔 낡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유럽 생활 내내 그가 쓰던 물건이었다. 그 제조사의 로고를, 그는 이제야 새삼스레 들여다보았다.
자동차도, 컴퓨터도, 선박도, 기차도, 지하철도. 유럽 어디를 가든 그 낯익은 이름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는 남몰래 탄식했다.
*저것이 우리 조국의 것이어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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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던 나라의 모습이, 지금 저편에 이미 서 있었다.
반면 그의 조국은 어떠했는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던 시절, 헤아릴 수 없는 인민이 굶어 죽었다. 손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자원을 쏟아부었다. 저편이 앞서갈 때마다 이편도 따라잡으려 몸부림쳤지만, 그 몸부림은 늘 헛되었고, 그럴수록 조국은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아버지 대(代)부터 형, 그리고 조카에 이르기까지. 삼대에 걸친 시간 동안 나라는 점점 좁아지고 약해져, 이제는 언제 저 거대한 이웃의 손아귀에 완전히 떨어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만약 평양을 손에 넣는다면, 그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옥좌에 앉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그 상상 끝에 남는 것은, 조카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 그 오래된 굶주림과 고립의 자리였다. 이름만 바뀐 채 되풀이되는 비극.
*나 하나의 한을 풀자고, 이 나라를 또 한 번 그 자리에 앉혀야 하는가.*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만하면 되었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더 이상 인민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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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그는 회령으로 돌아가 자신을 지지해온 군단장들을 다시 소집했다.
"각하."
그의 표정을 살피던 제9군단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평양 진격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김평철은 오랫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충성과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평양은, 무력으로 취하지 않는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각하, 이대로면 우리가 흘린 시간이 헛수고가 됩니다. 여진 쪽에서 먼저 손을 쓴다면 어찌하시렵니까."
"그렇다면."
김평철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먼저 다른 길을 열겠다. 총구가 아닌 다른 길로."
그는 그 자리에서, 남쪽 정부와의 비밀 접촉을 준비하라 명했다. 군단장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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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서울에서 돌아온 아들 김인우가 원산 특각을 다시 찾았다. 그는 청와대의 뜻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했다.
김평철은 오랫동안 아들의 말을 들었다. 며칠 전까지 그를 짓누르던 갈등은, 이제 그의 눈빛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창밖, 겨울 바다 너머로 어렴풋이 남쪽의 불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그는 그 불빛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두었다.
"전하시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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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에서 계속)*
### 9장. 북진통일
서울의 겨울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김정운의 사망과 김주은의 후계 구도, 그리고 김여진의 섭정까지. 여기까지는 사실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흐름이었다. 최고지도자에게 다른 후계자가 없었던 만큼, 크게 동요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 김평철의 등장은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내전 직전까지 치닫던 북한의 상황은 그렇게 벌써 일 년 넘게 표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3월 1일, 마침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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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에 주둔해 있던 제7기동군단이 여주로 부대를 이동시켰다.
몇 년 전 있었던 정치적 혼란의 여파로, 군의 갑작스러운 이동 소식은 시민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불안을 낳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동에 앞서,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한 예방적 재배치라는 설명을 먼저 언론에 배포한 것이다. 시민들은 이내 안도했다.
같은 시각, 청와대 지하 벙커.
대통령이 직통 전화기를 들었다. 상대는 제7기동군단장이었다.
"군단장님, 대통령입니다."
"충성. 7기동군단장 중장 이재국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대통령의 목소리가 낮고 분명하게 이어졌다.
"북진통일."
단 한마디였다.
"...충성!"
군단장의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대통령은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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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정면에 도열한 예하 부대를 향해 돌아섰다. 수백 대의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수천 명의 장병들이 새벽빛 속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오늘, 7기동군단은 평양을 수복한다! 북진통일!"
"우와아아아아아!"
장병들의 함성이 여주 벌판을 뒤흔들었다. 그 함성과 함께, 수백 대의 전차와 장갑차가 굉음을 울리며 북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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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원산 특각에서는 김평철이 창밖으로 밝아오는 동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미 뜻을 함께하기로 한 군단장들의 전문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양, 노동당 중앙당사에서는 김여진이 창밖 대동강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쪽에서 전차 부대가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직 그녀에게는 닿지 않은 채였다.
반백 년 넘게 갈라져 있던 땅 위로, 새로운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새벽이 어떤 봄을 몰고 올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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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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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과 설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군사 픽션입니다.*
### 9-1장. 동맹의 새벽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한미연합사령부 통합상황실.
새벽녘 위성사진 판독반의 보고가 당직 장교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이천 주둔 한국군 제7기동군단, 여주 재배치 완료 후 재차 북상 중입니다. 5기동군단도 동시 이동 확인됩니다. 이동 규모와 속도로 볼 때, 단순 훈련이나 예방적 재배치가 아닙니다."
당직 장교는 즉시 연합사령관을 깨웠다.
"사령관님, 한국군이 움직였습니다. 사전 통보나 작전계획 협의 없이."
연합사령관, 미 육군 대장 로버트 하웰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상황판을 노려보았다. 화면 위, 붉은 화살표들이 일제히 휴전선을 넘어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정전협정 이후 칠십여 년간,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모든 작전계획, 모든 지휘 체계에 이런 시나리오는 없었다. 한국군 단독으로, 그것도 이런 규모의 부대가, 우리 승인 없이 북상한다고?"
작전참모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은 부대들로 편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에 별도로 편제를 조정해둔 것 같습니다."
하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청와대에 직통 회선 연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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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청와대 지하 벙커.
비서실장이 다급히 들어와 보고했다.
"각하, 연합사령관이 직통 회선으로 연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몹시 격앙된 상태입니다."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예상했던 순간이었다.
"연결하십시오."
수화기 너머로 하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격식은 갖췄지만, 그 아래 분노가 선명했다.
"대통령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요구합니다. 한국군 주력 부대가 우리와의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입니다."
대통령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담담하게 답했다.
"사령관님, 먼저 사과드립니다. 이 결정은 동맹에 대한 결례라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왜냐하면."
대통령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칠십 년 묵은 상처를 다시 하나로 봉합할 수 있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창을, 만약 미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워싱턴의 신중론과 중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판단 속에서 아마도 닫혀버렸을 겁니다. 저는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건 미국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가, 우리의 책임 아래, 우리의 역사를 매듭짓겠다는 겁니다. 동맹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대가는, 제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치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디 우리를 막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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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령부는 즉시 워싱턴에 상황을 타전했다. 백악관 상황실도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워싱턴에서는 격론이 오갔다. 일부는 즉각적인 작전 개입과 한국군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주장했다. 다른 일부는, 이미 벌어진 일을 무력으로 되돌리는 것은 동맹 관계에 더 큰 파국을 부를 수 있다는 신중론을 폈다.
결국 백악관은 잠정적인 방침을 하달했다.
> *직접적인 군사적 저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존 연합 전력을 통해 억제력을 유지한다. 이후 모든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하웰은 그 지침을 받아 든 순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명령이 있을 때까지, 우리 전력은 휴전선 이남에 대기한다. 다만……"
그는 작전참모를 돌아보았다.
"압록강 국경에서 중국군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즉시 보고해. 그건 우리 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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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오산 기지 활주로 위로 F-16 편대가 굉음을 울리며 이륙했다. 그러나 그 기수는 북쪽이 아닌, 대기 태세를 갖추기 위한 상공 초계 항로를 향해 있었다.
연합사령부의 누구도 그날 새벽, 한국군의 북상을 막지 않았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축하하지도 않았다.
며칠 뒤, 대통령은 워싱턴에 특사를 보내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이번 통일이 동북아 안보 지형에서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긴 협상이 뒤이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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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에서 계속된 이야기, 10장으로 이어진다)*
### 10장. 대동강의 새벽
평양, 노동당 중앙당사.
새벽녘, 비서실장이 창백한 얼굴로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여진 동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대동강 건너편에……"
김여진은 눈을 감은 채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남측 7기동군단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기갑 전력이 도착했습니다. 전차와 장갑차가 강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사전 보고는? 국경 경비는? 정찰은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비서실장은 고개를 떨궜다.
"확인해보니, 최근 며칠간 남측 접경 지역 정보망이 순차적으로 끊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김평철 각하 측 인사들이 개입한 정황이 있습니다. 평철 각하와 손잡은 국경경비여단이 자체적으로 보고 체계를 차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눈과 귀가 완전히 막힌 채, 적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삼촌의 손이 이토록 깊숙이, 이토록 조용히 뻗어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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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젖혔다. 새벽빛 속에, 대동강 건너편으로 끝없이 늘어선 전차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포신들이 아침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비서실장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여진 동지!"
"...괜찮다."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몸을 곧게 세웠다. 그러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서실장을 물리고, 홀로 지하 벙커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라비가 남긴 마지막 유산이 있었다. 검은 가방. 최고지도자만이 열 수 있는 그 가방을, 그녀는 오랫동안 손에 쥔 채 열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는 가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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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작은 회의실에 몇몇 최측근이 소집되었다. 국가보위상, 호위총국 부총국장, 조직지도부 부부장. 그들의 시선이 모두 그 가방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국가보위상이었다.
"여진 동지."
그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울렸다.
"정말로 핵을 서울에 쏠 생각이십니까?"
김여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정, 역사와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대원수가 되려 하십니까?"
부총국장 역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동지, 저 강 건너에 있는 것은 침략군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조상을 둔 형제들입니다. 그들에게 핵을 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지킬 나라도, 지킬 명분도 남지 않게 됩니다."
김여진은 손끝을 가방 위에 올린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라비의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다.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라.*
그 유언이,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가장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이 가방을 여는 것이 통일을 향한 길인가, 아니면 조국을 영원히 지워버리는 길인가.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가방을 다시 닫았다.
"...교섭을 시작한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남측 정부와 접촉하라. 지금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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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같은 시각. 압록강 건너편, 중국 단둥.
인민해방군 제78집단군이 야음을 틈타 도하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북한 제8군단이 강 건너 국경을 지키고 있었지만, 78집단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 앞에서는 한 줌 모래알과 다를 바 없었다.
지휘부가 최종 도하 명령을 앞두고 있던 그 순간, 정찰 장교가 다급히 보고를 올렸다.
"상공에 남측 전투기 편대 포착! F-15와 F-16으로 추정됩니다. 압록강 국경선을 따라 저공비행 중입니다!"
지휘관의 얼굴이 굳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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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앞서, 서울.
대통령은 합동참모본부의 긴급 보고를 받았다. 78집단군의 이상 동향이 포착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공군을 먼저 보내십시오."
대통령의 지시는 신속했다.
"압록강 국경을 따라 무력시위를 전개하십시오.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저들에게 분명히 알리십시오."
곧이어 F-15와 F-16 편대가 압록강 접경 상공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이 전격 동원되었다. 해군의 가용 상륙함이 총동원되어, 병력을 신속히 서해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신의주 상륙 작전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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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7기동군단이 평양을 접수하는 동안 — 5기동군단은 평양을 그대로 통과해 신의주까지 쉬지 않고 북상했다. 단 하루 만에, 낙오자 하나 없이 전 병력이 국경에 도달했다.
압록강 너머에서 도하를 준비하던 78집단군은, 그 짧은 머뭇거림 사이에 예상치 못한 상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북한의 오합지졸 국경 수비대가 아니라, 완전무장한 대한민국 정예 사단이 강 건너에 버티고 선 것이다.
베이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혼란한 틈을 타 북한 전역에 무혈입성하겠다는 계획은,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앞에 완전히 무산되었다.
미국의 반응, 일본의 견제,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대만 문제까지. 그러지 않아도 사방에서 압박을 받고 있던 베이징으로서는, 이 이상의 확전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78집단군에게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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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평양.
노동당 중앙당사 대회의실에 낯선 조합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여진과 김평철,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이들이, 처음으로 같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회의실 창밖으로, 대동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은 예전과 다름없이 흘렀지만, 그 위로 내려앉은 겨울빛만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통일을 향한 협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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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에서 계속)*
### 11장. 평양 회담
노동당 중앙당사 대회의실.
긴 탁자 한쪽에는 김여진과 김평철이 나란히 앉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뻔했던 두 사람이었다. 맞은편에는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국무총리였다.
"오늘 이 자리는, 어느 한쪽의 승리를 선언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는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칠십여 년 전 그 전쟁 한 번으로 족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김평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나 역시 총구로 이 나라를 다스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나라가 더 이상 굶주림과 핵과 고립 속에서 스러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뿐입니다."
김여진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탁자 위를 가만히 쓸었다. 며칠 전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닫았던 그 검은 가방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저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라비의 유언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주은이를 지키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반드시 통일을 이루라는 것. 저는 그 두 유언이 서로 다른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처음부터 하나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장이 조용히 물었다.
"주은 동지의 안위는, 저희도 최우선으로 보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협상의 어느 조항에도, 그 아이의 미래를 위협하는 내용은 없을 것입니다."
김여진의 눈가가 흔들렸다. 그녀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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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사흘에 걸쳐 이어졌다.
군의 단계적 통합, 행정 체계의 이양,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사회를 향한 공동 성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과의 자유로운 총선거를 통해 하나의 정부로 통합될 것을 선언했다.
김평철은 회담 마지막 날,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접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평생을 도망자로, 유폐된 자로 살았습니다. 이제 와서 권좌에 앉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이 나라의 마지막 원로로서, 통합 과정이 흔들림 없이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
김여진 역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조카 김주은의 후견인으로서, 그리고 통일 이후 특별사면 및 인도적 조치를 감독하는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남기를 청했다. 한국 정부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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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이 타결되던 날 저녁, 평양 시내에는 오랜만에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주민들은 아직 정확한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선가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 — 전쟁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총성이 아니라 협상이라는 그 소문이 거리 곳곳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배급소 앞에 줄을 서 있던 한 노인이, 옆 사람에게 나직이 물었다.
"정말이오? 이제 전쟁은 없는 거요?"
옆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그런가 봅니다. 이번 겨울은…… 이걸로 끝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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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흘렀다. 압록강도, 두만강도, 예전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그 강들 위로, 칠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총성이 아닌 협상의 소식이 실려 가고 있었다.
평양의 겨울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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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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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과 설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군사 픽션입니다.*
### 12장. 새로운 봄
통일 협상이 타결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 정부의 행정력은 북한 전역으로 빠르게 확대되어 갔다.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한 것은 국경 너머였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던 끊긴 철길이 다시 이어졌고, 나진과 하산을 연결하는 화물 노선도 재가동에 들어갔다. 러시아 극동 지역과의 육로 교류가 처음으로 본격화되자, 러시아 정부는 이를 극동 개발의 새로운 전기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남북을 잇는 물류망 구상이 다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웃 일본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이 나왔다. 한반도와 대륙이 육로로 직결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 정부 일각에서, 오래전부터 거론만 되던 해저터널 구상을 이번 기회에 실현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불거졌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과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아,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중국 정부의 셈법은 더 복잡했다. 한반도와 국경을 직접 맞대는 상황 자체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실질적인 육로 교역로가 새로 열리자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경제 관료들은 오히려 반색했다. 굳이 다른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국경 너머와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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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찍이 "한반도가 통일되면 전 재산이라도 투자하고 싶다"고 공언해온 한 원자재 투자의 대가가, 통일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곧바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한국 기업들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 뒤를 이어, 세계 각지의 전설적인 가치투자자들과 헤지펀드 거물들, 그리고 오랫동안 시장을 읽어온 원로 투자가들이 앞다투어 한반도로 자금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마다 수십 년 경력의 이름값을 지닌 이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남겼다.
"칠십 년간 억눌려 있던 시장이, 이제야 자유를 얻었다."
전 세계의 자금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은 단군 이래 최대라 불릴 만한 활황을 맞았다. 서울의 증권가는 밤낮없이 불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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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기는 곧바로 북녘 땅으로도 옮겨붙었다.
한국의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북한 각지로 진출했다. 도로와 철도, 항만과 공항이 동시다발적으로 착공되었다. 이들 기업은 현지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했고, 북한 주민들에게 그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하루하루였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흰쌀밥이 나왔다. 평생 구경도 못 해본 제육볶음이 식판 위에 올라왔다. 처음 그 음식을 받아 든 노동자들 중에는, 숟가락을 든 채 한참을 멍하니 있는 이들도 있었다.
거대한 굴삭기와 크레인이 산자락을 가르며 도로를 놓는 모습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시 거처로 지급된 컨테이너 주택은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원래 살던 집보다 열 배는 나은 환경이었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옛 군벌 세력, 즉 지역 군단장들 역시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한국군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들이 받게 된 복지와 예우는, 예전 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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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특각,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김평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진작에 통일을 해야 했어.*
예전에는 밤만 되면 칠흑같이 어두웠던 거리가, 이제는 가로등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도 최근 몇 달 사이 살이 오르고 생기가 돌았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조금만 더 일찍 결단을 내렸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오랜 굶주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잘한 거야. 잘했어."
그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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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은 통일 이전, 오랜 세월 정신을 갉아먹던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러나 통일 이후 한국의 선진적인 의료 지원을 받으며, 마침내 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요즘 들어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지냈다. 밤마다 다음 화를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을, 오래전부터 그녀를 지켜봐 온 이들은 낯설면서도 반갑게 바라보았다.
김주은은 이제 K-POP 아이돌의 열렬한 팬이 된 평범한 학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웃으며 등하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후계자라는 무거운 이름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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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겨울은 완전히 지나갔다.
그 자리에는, 반백 년 넘게 기다려온 봄이 천천히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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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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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과 설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경제 픽션입니다.*
### 13장. 다시 하나 된 땅
통일 삼 주년이 되던 해 가을, 평양역 광장.
새로 단장된 역사(驛舍) 앞으로 고속철도 개통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이제는 두 시간 남짓이면 닿는 거리가 되었다. 개통식 단상 위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몇몇 원로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단상 아래, 초대받은 인파 속에는 낯익은 얼굴 하나가 섞여 있었다. 이제는 완연히 노인이 된 김평철이었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평양 인근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지내고 있었다. 이따금 통일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대학생이 된 김주은이 서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백두혈통이라는 무거운 수식어로 불리지 않았다. 그저 역사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이따금 학과 세미나에서, 통일 직전의 그 겨울을 논문 주제로 다루는 후배들을 만날 때면, 그녀는 묘한 감정에 잠기곤 했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한 후배가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먼 옛날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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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은 그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양 외곽의 작은 재단에서, 통일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때 나라의 절반을 손에 쥐었던 여인은, 이제 매일 아침 상담실 문을 열고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옅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지난날에 대한 변명도, 자랑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매일 밤, 조카가 보내온 짧은 안부 문자에 웃음을 짓는 것이, 그녀가 누리는 가장 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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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식 연설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총구가 아닌 대화로, 정복이 아닌 합의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라 믿습니다."
박수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평양역 시계탑이 정오를 알리는 종을 울리자, 새로 도색된 고속열차가 첫 기적을 울리며 서서히 플랫폼을 빠져나갔다. 열차는 곧 개마고원의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신의주를 지나 압록강 철교를 건너, 대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노선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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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원산의 바닷가.
김평철은 홀로 방파제에 앉아 노을이 지는 동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떠돌던 그가, 이제는 고요히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문득 오래전 판문점 광장에서 목이 쉬도록 외치던 그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유럽의 낯선 거리에서, 조국이 되어야 했을 어떤 나라의 풍경을 부러워하며 서 있던 자신도 떠올렸다.
이제 그 풍경은, 더 이상 부러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을이 물든 바다를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수고했다, 이 나라."
파도 소리만이 그의 말에 대답하듯 밀려왔다 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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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도, 두만강도, 대동강도, 한강도 — 이제는 모두 하나의 땅 위를 흐르는 강이 되었다.
칠십여 년 겨울 끝에, 마침내 봄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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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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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과 설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군사 픽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