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s Ababa, la 16an de jan. 2017
7시 반에 모든 짐을 가지고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 7시 40분부터 아침밥을 먹었다.
8시 반에 정확하게 관광회사에서 왔다. VASTA라는 회사인데 큰 차를 가지고 나와 편안하게 관광할 수 있었고, 강한 현지 악센트의 가이드 카두 씨도 나이가 들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잘 설명해 주었다.
“제 2의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2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루시가 이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이곳 에티오피아가 실질적인 고향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난 곳을 빼놓고 두 번째 고향이 된다는 것이다.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300m이고 3,200m까지 차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도시입니다.”
아마 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가득했다.
“에티오피아는 고대부터 Amahari라는 글자를 가지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거의 1억이며 50%인 5,000만이 정교회, 37%가 무슬림들입니다. 그리고 모두 80개 쯤 되는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는 모두 500만 명쯤 살고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는 ‘새로운 꽃’이라는 뜻입니다.”
통계를 보면 에티오피아는 인구 9,939만 명에 GDP가 아프리카에서 9번째이지만 인구가 많아서 한 사람 소득은 570$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경제성장율이 7%로 아시아의 발전하는 국가들인 중국이나 인도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로비나 케이프타운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 비해 확실히 가난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경제성장율 때문일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다니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중국 업체들의 활발한 진출이다. 가는 곳마다 중국은행이나 화웨이 광고가 있고, 건설 중인 현장에도 한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니 하오’라고 인사하는 아프리카인들을 보면 그 세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시대가 달라 옛날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과는 달리 경제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중국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사진 찍으면 절대 안 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있는 궁전이나 심지어는 미국 대사관을 지나갈 때도 가이드 뿐 아니라 운전수까지 나서서 사진 찍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린다. 이것으로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현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직도 정치적인 자유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위일체 대성당(Trinity Cathedral, 1941년 건립)
9시 5분 삼위일체 대성당에 다다랐다.
셀라시에 국왕이 1931년에 세운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21명 용사들의 유해와 함께 그 자신도 묻혀 있다. 하일레 셀라이시에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이다. ‘성삼위일체 성당’으로도 불리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다. 총대주교의 즉위식과 그가 집전하는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배치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은 무척 아름답다. 내부에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셀라시아 황제와 왕비가 미사를 드릴 때 앉았던 화려한 왕좌도 그대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기도시간에만 개방하지만 트리니티 대성당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성당에는 많은 신도들이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어 관광객으로 가서 구경하기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유럽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정교회 신도들의 신앙심은 성당에 가면 바로 느낄 수 있다.
성당 안에서 가이드는 마치 그곳에서 근무하는 성직자처럼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이 실제로 이곳의 신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성당 안을 둘러보는데 30분이나 걸린 것도 그런 자세한 설명 때문이다.
9시 45분에 교회박물관에 들어가 갖가지 성물들을 둘러보았다. 염소 가죽으로 만든 성경과 쿠란을 비롯하여 성직자들이 썼던 값비싼 물건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금으로 만든 손이다. 손가락 모습(手印)이 동유럽 정교회에서 여러 차례 보면서 물어보았지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던 손가락 모습이 이곳에서는 금으로 조각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회를 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 12번씩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 때 12번을 정확하게 세기 위해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4 손가락의 3마디를 따라 세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에게 참회할 때는 검지 위 매듭부터 세어 가고, 성모 마리아에게 참회할 때는 새끼손가락부터 거꾸로 세어나갑니다.”
참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동유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그런 손가락 모습을 하고 계셨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카두 씨는 성경을 들고 계속 읽으며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당직자에게 그 질문을 했다.
“예수님께서는 신도들이 해야 할 것을 늘 손수 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정교에서 이처럼 진지하게 참회를 한다는 사실을 듣고 감동하였다. 사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죄를 짓고 그것을 갚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참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불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
“참으로 대장부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죄를 지으면 참회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교회에서는 이처럼 아주 실질적인 참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 아닐 수 없다.
카두 씨의 성경에 대한 설명은 한걸음 더 들어간다.
“모세가 10계명을 받은 산은 에티오피아에 있다.”
확신에 찬 그의 주장은 나중에 다시 한 번 성경과 논란에 대한 검토와 정리가 필요하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나름 정리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으로 960㎞ 떨어진 소도시 악숨은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종교, 문명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이곳은 솔로몬 왕에게 선물한 금만 4t(120달란트)에 이른다고 했을 만큼 부국을 일궜던 시바 여왕의 고향이자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일대를 호령했다는 메넬리크 1세가 악숨 왕국을 일으킨 수도이다.
악숨을 둘러싼 전설의 정점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담은 모세의 언약궤가 이곳에 있다는 주장이다. 에티오피아 역사서 ‘케브라 나가스트’에 따르면 장성한 메넬리크는 아버지를 찾아 예루살렘에 가 3년을 머물렀고, 솔로몬 왕은 악숨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위해 12지파에서 성직자와 학자 등 각 1000명씩 뽑아 동행시켰는데, 이때 언약궤를 함께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언약궤는 아프리카 최초 교회로 불리는 악숨의 ‘성모 마리아 시온교회’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약궤가 공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약궤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언약궤를 지키는 수도사 한 사람뿐. 그는 죽을 때까지 성소 밖으로 나올 수 없고, 그 외에는 아무도 언약궤가 있는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다. (국민일보 2016-06-10)
아울러 카두 씨에게 특별히 부탁해 성당 내 한국전 참전 용사 묘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성당 뒤 문 옆에 두 천사를 조각한 설치물이 그 무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설치물에 쓰인 글씨가 모두 에티오피아 말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카두 씨도 높아서 정확하게 판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