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이 좋아서
유인규
7년 전에 입양한 강아지 이름은 ‘뭉이’이다.
믹스견인 뭉이가 집 안에서 주로 발라당 뒤집어 누워있는 장소는 대략 세 곳이다.
식구들이 모두 밖에 외출했거나 아직 귀가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는 현관 중문 앞 구석에 엎어져 있다. 여기서는 도어락이 삑삑거리며 눌리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현관문이 열리며 등에 불이 켜지면 바로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하고 살살 꼬리를 흔들어댄다. 저녁시간 식구들이 거실과 주방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뭉이도 함께 온 거실을 뛰어다니며 놀지만, 한 사람이라도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면 바로 그 방의 구석으로 이동한다. 방의 구석은 벽과 붙박이장이 만드는 애매한 자투리 공간으로 기역자 모양의 좁은 구석이다.
뭉이는 자기 사이즈에 딱 맞으면서도 각각 따로 있는 가족들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를 찾은 것이다. 그 곳에 잠시 엎드려 있다가는 맞닿은 양쪽 벽에 등과 다리를 올리며 몸을 뒤집어 기댄다. 깜박깜박 졸기도 하지만 시선은 방과 거실에 있는 가족들을 향해 있다. 흰자위 없는 까만 눈망울을 통해 가족에 대한 애정을 발산한다.
그 좁은 구석은 딱히 쓸모가 없는 공간이지만 뭉이에게는 딱 맞는 공간이다. 뭉이가 그 공간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그 공간이 뭉이를 선택했다고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 건물 모퉁이마다 카페가 있는 도시에서 카페 가기를 좋아한다는 게 새삼스럽게 특별한 취미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는 커피 맛에 그리 까다로운 것도 아니고, 단골을 정해놓고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다. 모던한 곳은 모던한 대로, 돌바닥에 나무 테이블이 있고 화분이 많은 곳은 또 그런대로 분위기를 즐긴다. 새로 생긴 카페는 신선하고 생경한 느낌이 좋고, 오래 묵은 카페는 낡았어도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다.
제각각 다른 카페지만 내가 선택하는 자리는 공통점이 있다. 카운터의 주인이나 알바생의 시선은 피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카페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 바로 구석자리이다. 카페 공간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구석 코너자리가 가장 제격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둥이나 커다란 화분 정도로 엄폐되어도 나쁘지 않다.
카페 구석자리의 매력은 혼자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사용하는 동안은 간섭 받지 않는 나의 독립된 세계를 이루지만, 고개를 들고 시선만 돌려도 찰나의 순간에 바로 외부의 번잡한 세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흥미로운 대화에 귀가 쫑긋 해지기도 하고 알바생이 바뀐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창밖으로 변화한 계절을 느끼기도 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흥미로운 경험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굳건히 내 뒤를 받혀주는 든든한 뒤 벽과 편안한 한쪽 면의 기둥이다. 구석자리는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투명한 텐트이고, 그 텐트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창문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카페에서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쓴 뭉이가 된다. 내가 그 카페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그 카페가 나를 선택했다고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사를 하면서 내 서재로 배정된 방이 생겼다. 내가 늘 이런저런 사색을 할 수 있는 서재를 만들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이다. 게다가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여 채도가 낮은 파란색 벽지로 방을 꾸몄으니, 이제 굳이 카페를 갈 필요 없이 서재에서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낼 것으로 아내는 아마 기대를 했을 것이다.
나는 평범하게 책장을 일렬로 벽에 세우는 대신에 하나의 책장을 방의 중앙을 가로질러 배치하고 그 책장에 직각으로 또 하나를 붙여 ‘T’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방안에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구석을 만들 요량이었다. 창문을 통해 광장이 보이는 구석, 멀리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구석, 방문과 복도가 보이는 구석이 만들어졌다.
낡은 1인용 책상을 옮겨가며 다양한 뷰를 가진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독서실 같은 조용한 구석에서 보내는 공간에 설명하기 어려운 무료함이 찾아왔다. 내가 필요한 것은 조용하지만 고립된 나만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뭉이가 구석에 앉아있는 이유도 내가 카페 구석을 줄기차게 찾아 가는 이유도 모두 그 공간 자체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창문이 제공하는 연결된 느낌 때문라는 것을.
결국 내가 공간을 선택한 것도 공간이 나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관심이나 호기심, 그리고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 같은 마음말이다.
맘에 쏙 드는 조그만 책상을 고른다는 핑계가 8개월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파란색 서재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 줬더니 파란색 창고가 생겼다'는 원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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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직장, 두 딸은 직장에 가는 조용한 우리 집이 나에게는 고즈넉한 도서관입니다.
반려 견 '마루'가 민감한 소리에 왈왈거리는거 빼고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카페에서는 노트북 화면이 노출되지 않을 곳을 찾게 되고요~
집에서도 조용히 혼자 있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반려견을 정말 세심히 관찰하신 것이 글에 나타납니다. 관심과 애정이 느껴집니다~
유인규님 만의 방이 생긴 것도 축하드립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