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릴리스
佳泫/김미남
꽃을 사랑하는 친구가
해마다 아마릴리스 꽃이 피면
이녀의 꽃말처럼 자랑을 해 온다.
너무 화려해서
다른 꽃과 섞이지 못하고
한 송이로도 모두의 시선을 강타하는
아름다운 외면~
그러나
굵은 초록 줄기는
속이 비어 누군가의
배경과 보완이 있어야
당당히 설 수 있는 내면~
이녀가 말을 걸어온다.
"가끔은 사랑하는 사이에도 침묵이 필요해요.
어쩌면 가장 조용한 시간에
사랑이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늘빛 없는
비 오는 날에
아마릴리스 詩心을 잉태한다.
2. 동공(瞳孔)
佳泫/김미남
엄마를 빤히 보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눈에 내가 있어
그렇지
그럼 내 눈에 엄마가 있어요?
그렇지
왜 그래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눈동자에 서려있는 형언키 어려운 사랑
훗날에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건 눈동자에 이미지가 반사된 거라고
한 송이 수선화로 피어난 나르키소스의 죽음
그의 눈동자에 비친 호수
나르시시즘의 극치다.
오늘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조곤조곤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눈길에 담겨 있는
詩 쓰는 엄마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3. 어머니의 밥상
佳泫/김미남
팔순의 어머니
이도 튼튼 마음도 튼튼
효자도 아닌 효부도 아닌
아들 내외 칭찬하는 어머니
모시떡 몇 조각
해물파전 한 접시
유부초밥 한 접시
어머니의 조촐한 점심 밥상이다.
정성 한 움큼
마음 한 움큼
아들은 유년의 어머니를 그리며
노년의 밥상을 차린다.
마음 가득 담은 밥상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약 같은 한 끼가 된다.
아들이 얹어 주는 한 술 김치 조각에
흐뭇한 어머니
저 모습이 詩인 것이다.
4. 탁란(托卵)
佳泫/김미남
산 아래 우리 집은 아침을 깨우는
뻐꾸기 소리로 가득하다.
여름 숲을 울리는 뻐꾸기 소리가
평화롭게 들리지만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모르쇠로 먼 산을 바라보면
새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뻐꾸기가 낳은 알을 품고
뻐꾸기 새끼를 키우느라 제 새끼를 잃은
어미의 애간장 녹는 소리
뻐꾹 뻐꾹 뻐꾹
빠르게 부화하여
의붓형제 알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순간의 절정
뻐꾹 뻐꾹 뻐꾹
먹이를 향한 구애
포식자는 엉뚱한 사랑에 눈이 어둡고
시간은 시간을 잠식한다.
탁란(托卵)의 비밀은
비애의 해프닝
사랑은 사랑이다.
5. 저녁 風景
佳泫/김미남
금요일 오후의 허허로움이
길게 늘어 선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고
메타세콰이어와 나란히 걸으니
물 위에 산 그림자가 서럽다.
상념의 터널을 빠져나온 곳엔
천일홍은 간 데 없고
백일홍 천지다.
무엇인가를 시작했던
설렘이
내적 갈등을 동반하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간다.
하오의 저녁 風景에는
그와 내 그림자만
길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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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향문학 15호 원고방
덕향문학 15호 김미남 시인 원고 / 아마릴리스 외 4편
영원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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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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