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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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란 무엇일까.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사실 밥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배가 고프면 오로지 그 배를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1차원적인 욕구인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배가 고팠다. 왜 그렇게 배가 고팠을까. 특별히 굶은 것도 아니건만 늘 뱃속이 허전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먹는 것도 보리밥이나 수제비가 고작이었고 간식도 거의 없었던 시절이니 그랬겠지만, 어쩌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공허한 가슴을 채울 길이 없어서 더욱 배가 고팠는지도 모른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나라에서 시골인들 먹을 것이 풍족했을 리 없다. 그러므로 그 시절 어린 것들은 미군들이 나누어주는 분유나 옥수수 빵이 없었다면 더욱 배를 곯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보다 더 배가 고팠던 것은 우리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 분은 우리보다 훨씬 고단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신혼시절부터 배를 곯았다는 말을 나는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다. 아마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불쌍하고 가엾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늘 배고파하는 나를 안쓰러워 하셨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가 나보다 더 가엾었다.
어린 시절 내게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늘 하나였다. 내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드리고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자라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는 것, 호강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는 늘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자라면 무슨 일이든 해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도 자주 사드리고, 옷도 사드리고, 금반지도 해드리겠다고.
꿈은 그러했었다. 마음만은 늘 그랬었다. 하지만 그러한 약속도 다짐도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군에서 제대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나는 그저 내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어디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 드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모질고도 잔인한 자식이여. 나는 어찌 그리도 가난하고 무능력하기만 했던가.
그러므로 밥은 내게 있어 목숨이었다. 그 뜨거운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언제나 어머니가 생각났고, 그 밥 한 덩이를 목으로 넘길라치면 나는 늘 목이 메이는 슬픔을 느껴야 했다. 아, 언제나 자식들 입에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쓰시던 당신이여. 먹이고 먹이고도 더 먹이고 싶어 안타까워하시던 우리 불쌍한 어머니여.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이 밥통아
사랑이 밥통과 같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부엌에서
가장 어리석고
아둔한 음운을 가진 부속
사랑이 그렇게 둔탁한 발성과
모서리 없는 몸을 가졌다는 걸
일찍이 알지 못했네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속이 비쩍 다 마르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너,
의 이름을 부른다
(시인 윤성학)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가슴이 뭉턱해지는 듯한 느낌의 시를 읽었다. 누가 있어 나를 위해 어둠속에 웅크린 채 기다려줄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채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놓은 채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어릴 적 우리 ‘엄니’는 밖에서 돌아올 자식들을 위해 안방 아랫목 이불 속에 밥을 넣고 식지 않게 꾹꾹 눌러놓고는 하셨었다. 심지어 내가 군에 입대하여 집에 없는데도 어머니는 내 몫의 밥 한 그릇을 가마솥에 넣어 놓으신다고 하였다. 밖에 나간 자식이 행여 굶을까봐 걱정하는 숭고한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가슴을 늘 내어줄 수 있는 사람, 그 따뜻한 가슴 속, 거기 끝도 없는 사랑이 있었으리라. 그런 우직하고 어쩌면 답답한 사랑을 보고 우리는 말한다. 밥통 같다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밥통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처럼 눈자락이 젖어드는 저녁에도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아,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밥통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위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아둔하고 맹목적인 밥통이 되리라(2014. 4. 4.).
(前略)
그러나 과거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어렵게 돈을 벌었을까. 임금 중에서도 가장 싼 임금을 받았을 나이든 여자로서의 어머니의 수입은... 아마도 정말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그 돈 몇 푼을 벌기 위해서는,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가 공장에 나가든 식당에서 일을 하든 당신의 그 조그만 육체를 움직여 고된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그 보잘 것 없는 액수의 돈조차 만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살았다.
나는 문득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내가 버는 돈을 전부 다 어머니에게 갖다드리고 싶었다. 물론 나는 어머니든 아내든, 내가 돈을 벌어 가지고 집에 와서 그것을 내놓을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쉽게 버는 돈조차, 그것으로 어머니에게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사드릴 수 없기에 마냥 슬픈 것이다.
지금도 나는 밖에 나갈 때 점심시간이면 혼자서 밥을 먹는다. 때로는 법원이나 검찰청 구내식당에서 4,000~5,000원 주고 밥을 먹거나 법원 근처 식당에서 순댓국이나 해장국, 국밥 등을 먹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울컥 목이 메이곤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내가 어머니 생전에 밖에서 국밥 한 그릇 사 드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구내식당에서 반찬도 별로 없고 맛도 별 볼일 없는 4,000원짜리 밥 한 그릇을 먹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단지 나 혼자 먹는 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목이 메이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먹는 한 그릇의 밥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 내 어머니의 허전하고 주린 배를 생각하면... 당신은 젊어서부터 밥 굶기를 밥 먹듯 하셨다고 했었다. 전쟁 후 그 궁핍하던 세월에 아기를 여섯이나 낳아 기르고, 밤낮없이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해야 했던 한 여인으로서의 어머니는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 고.
그러므로 나는 늘 밥을 먹을 때면 어머니 생각이 나고, 그 밥 한 그릇이 늘 감사하고 거룩하다. 왜? 당신이 그렇게 배부르게 드신 적이 거의 없는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나는 너무 쉽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밥이 맛이 있든 없든, 차갑든 따뜻하든, 단지 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이 나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감격스럽고 또 고맙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물론 나는 늘 어머니가 그립다.
오늘 이 한 그릇의 미역국, 아내가 끓여준 이 고마운 미역국을 앞에 놓고 나는 단 한번만이라도 어머니와 같이 마주 앉아서 수저를 들고 싶구나. 그러면 목이 메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면 목이 메이지 않고도 이 뜨거운 국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60년 전 오늘. 내 어머니는 미역국을 드셨을까. 가난해도 자상한 내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손수 미역국을 끓이셨을까.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 미역국이라도 드셨으면 좋았을 듯 싶다. 그날 그렇게 태어난 내가, 자라서, 이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 어느새 환갑이 되었구나. 그리고 환갑이라고 받은 선물이 너무 과하다. 이 모든 복(福)도 결국은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신 덕택이거늘, 나는 내 과분한 행복을 나누어드릴 어머니가 없구나.
이 또한 슬프다. 그래서 내가 엊그제부터 이리 슬픈 것인가.
하지만, 나는 오늘 이 뜨거운 미역국을 먹자. 어머니가 못 드신 미역국을 내가 대신 먹자. 그래서 먼 훗날 어머니를 만나면 이야기하리라. 어머니를 잃고, 많이 그리웠노라고. 당신께서 먹여주신 그 더운 밥 때문에 저는 이렇게 당신보다 오래 살았노라고, 그 거칠지만 따뜻한 손을 한번 꼭 붙잡고 울어보고 싶다.
오늘은 내가 태어난 지 만 육십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오늘따라 불쌍하고, 불쌍하고, 그저 불쌍하기만 한 내 어머니가 새삼 더 그립구나(음력 2016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