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적장애와 귀머거리인 새 엄마에 대한 잘못을 후회하는 딸의 글을 실어봅니다. 남편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극진한 사랑으로 딸을 보살펴준 새어머니...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딸이 엄마에게 감사하는 글을 씁니다. 몸으로 낳았든 가슴으로 낳았든 자녀들이 사랑으로 키워준 은혜를 알고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귀머거리 새엄마’
안녕하세요. 현재 대학졸업을 앞두고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며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스물넷의 처자입니다. (재수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저의 하나뿐인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제목에서 보셨듯 저희엄마는 저를 가슴으로 낳으셨습니다. 즉 새엄마에요. 제가 3살 때 절 낳으신 분은 아버지의 폭력과 주사에 고생하시다가 집을 나가셨다더군요. (물론 제 기억엔 아무것도 없구요.)
그렇게 절 놓고 나가셔서 소식이 끊기고 할머니께서 절 키우시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의 우리엄마가 아빠에게 시집을 오셨죠. 물론 성한 분은 아니셔요. 약간의 지적장애와 귀가 안 들리시는 분이셨어요.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구요. 또 귀는 안 들려도 어눌하지만 말도 할 줄 아시고. 입모양으로 알아들으실 줄도 아십니다. 수화는 못하세요...)
그렇게 세 식구가 오손 도손 살았는데.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은 계속 되었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심지어 엄마의 옷을 찢어 발가벗긴 채로 머리채를 끌고 동네를 돌았던 적도 있구요.
그날 엄마가 발가벗겨져 온몸에 멍이 든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싹싹 비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린 전 너무 무서워 사람들 사이에 숨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하면 눈물이 나고 그때 말리지 못한 제자신이 원망스러워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제 손으로 제 뺨을 사정없이 때리곤 합니다.
죄송해요. 지금도 너무 눈물이 나네요. 그렇게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며 사는 동안 언제부턴가 새엄마임을 알아버린 저는 아빠에게 배운 건지.. 엄마를 무시하고 욕하고.. 심지어 귀먹어리라며 욕도 서슴치 않고 하게 됐죠.
" 병신... 귀먹어리.. 저리 꺼져.. 울 엄마 아냐!!" 등등...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을 안 주던가 밖에서 친구들과 싸웠다던가 하는 날이면 저 또한 그 화풀이를 엄마에게 해대며 엄마를 괴롭혔어요..
그때마다 항상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신 눈으로 웃으시며.. 배갯닢에 숨겨놓으셨던 돈을 꺼내어 500원씩 주시곤 하셨답니다. 그러시면서 항상 어눌한 목소리로 " 우리 딸 엄마 사랑하지요? " 하고 꼭 물어보셨었구요
그럼 전 대충 "응" 하곤 낼름 돈 가지고 문방구로 향했었어요. 아이들이 너네엄마 병신 귀먹어리 바보라고 놀리면 항상 전 친엄마를 그리워하며 지금의 울 엄마를 원망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인가. 여전히 아빠에게 맞으신 엄마에게 나또한 온갖 짜증과 심술은 다 부리곤 내방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삐삐를 샀다는 말에 욱해 나도 엄마를 다그쳐 삐삐를 사겠다고 다짐한 후 부엌에서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리시고 우시던 엄마의 어께를 툭툭 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나만 삐삐 없어. 나도 삐삐 사게 돈 내놔!! "
그 때 엄마가 황급히 눈물을 닦으시더니 웃는 모습으로 돌아서서 어눌한 발음으로 저에게 하신말씀은 응.. 엄만 괜찮아.. 고마워 우리 딸.. 응.. 엄만 괜찮아.. 고마워 우리 딸.. 응.. 엄만 괜찮아.. 고마워 우리 딸..
순간 미안함에 머쓱한 전 두루마리 휴지를 엄마에게 툭! 건네곤 방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후 완전히 착한 딸은 아니지만 불쌍한 울 엄마에게 잘하려구 노력했구요. 그래도 여전히 나쁜 딸 이었어요..
중학교 졸업할 때도 아빠가 간암으로 병원에 계셔서 매일 간병하시느라 쉬시지도 못하는 와중에 눈보라에 다 꺾인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에 오셨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고 창피한지. 아는 척도 안하고 눈길한번 안 준채로 친구들과 사진 찍고.. 웃고... 떠들고....
아.. 미친 년 미친 년! 그때도 엄만 제 맘을 아셨는지. 아님 제가 무서우셨는지. 절 아는 척도 못하시고 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한참을 웃으며 바라보시다가 제가 틈틈히 가라고 인상을 쓰고 눈치를 주자 알았다고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시며 돌아가시더라구요.
근데 그 뒷모습이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런데도 철이 없던 전 끝내 모르는 척 엄마를 외면했던 못된 딸 이었답니다. 그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실컷 놀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책상 위를 보니 콜라병에 물을 담아 꽃을 고이 꽂아 두셨더라구요.
작은 엿과 함께 삐뚤빼뚤.. 맞춤법도 엉망인 채 우리 딸 축 졸업을 축하합니다. 라는 편지.. 엿은 시험보기 전에 먹는 건데 졸업식 때 먹는 줄 아셨나 봅니다. 그 엿을 입에 넣곤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울었던 바보 같은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가 고등학교 입학하자 아빠가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당연히 엄만 절 두고 가버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엄만 간병인 일과 식당일을 하시며 절 대학까지 보내주셨습니다.
간병일은 아빠가 병원에 계셔서 엄마가 아빠를 간병하실 때 옆 환자 간병인을 알게 되어 후에 연락하셔서 일하셨구요. 그마져도 귀가 안 들려 얼마 못하시곤 짤리셔서 그 후부터 현재까지는 이 식당 저 식당 옮겨 다니시며 일하시다.. 좋은 사장님을 만나 그곳에서 쭉 일하고 계십니다..
아침 9시에 나가셔서 늦은 밤 까지 일하시다 11시에 들어오십니다. 아빠 돌아가시고 병원 빚 갚느라 얼마 후에 한 칸짜리 월세방으로 이사하고.. 그 후로도 이사 몇 번.. 그렇게 엄마와 전 현재까지 아웅 다웅 오손 도손 살고 있어요.
어제는 올 만에 엄마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엄마에게 물어봤습니다. " 엄마..그때 아빠죽고 왜 나버리고 안 갔어? " " 응 니가 너무 못 생겨셔...ㅋㅋ " " 뭐? 내가 어디가 어때서! 장난치지 말구우~응? " " 응~ 딸이니까 그렇지이~ 우리 이쁜 딸이니까아~ "
그 한마디에 나의 모든 궁금증이 사라졌네요. 그래 난 엄마가 가슴으로 낳은 울 엄마 딸이니까 내가 아무리 어려서 못되게 굴고 나쁜 년이었어도 그래도..난 울엄마 딸이니까... 세상에서 하나뿐인 울 엄마의 이뿐 딸이니까....
엄마... 그동안 나 키우느라 맘고생도 심하고 힘들었지? 엄마... 나 꼭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 시켜 줄께..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내가 성질도 지랄 맞고 가끔 엄마 속도 뒤집어놓고 그때마다 엄마 눈은 울고 입은 웃고 그러는데.... 이젠 다신... 다신 엄마 울게 안할께요.
많은 사람들 앞에 약속할게. 엄마... 우리엄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보 같은 김말수 여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항상 우리 딸 이란 말을 많이 하시는 저희엄마.. 안 들리시는 귀로 식당일 하시느라 허리가 휘십니다.
제가 앞으론 절대 엄마 눈에 눈물 나지 않도록 착한 딸이 되겠노라. 여러분 앞에 약속드릴께요. 행복하시고 여러분들도 부모님께 꼭 효도하세요. (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