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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현 - [한국인들이 한의학=사이비라고 하는 만큼이나 비과학적이에요] 학생시기의 단점은 시야가 좁다는... | Facebook
[한국인들이 한의학=사이비라고 하는 만큼이나 비과학적이에요]
학생시기의 단점은 시야가 좁다는 것이죠. 학생시기의 의기는 사회를 바꾸기도 하는데
그게 적절한 가이드가 없으면 자기파괴적인 게 대부분이에요. 아래 한의대 자퇴생을 보면 그러해요.
우선 한의대 자퇴생의 경우는 의대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하네요.
의대 못가서 한의대 간다고 일반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본인 얘기죠.
제가 물리학과를 졸업은 했는데 물리학과 출신 중에 한의사를 하는 사람들이 여럿 되요.
학사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석사 출신(그 한명은 경희대 한의학과에 수석입학한 사람도 있어요)도 있고, 박사출신도 있어요.
한의학에 대한 태도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게 턱없다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니 한의학을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적어도 이들이 아래 한의대 자퇴생처럼 과학 훈련을 한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과학훈련을 안 받은 사람이 의외로 의학=과학, 한의학=사이비 이런 도식을 많이 갖고 있어요. 과학을 훈련받은 사람은 막상 의학을 과학이라고 말하기에 주저하는 면이 있구요. 의학을 과학이라고 보기보다는 practise로 보는 면이 강해요. 왜냐면 과학은 이론의 보편성, 실험의 가능성과 재현성 등에 높은 비중을 두기 마련인데, 의학의 대상인 인체가 그것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예컨대, 의약의 효과에 대해 인과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체가 실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보니 인간에 대한 이론적/인과적 지식은 제한적이고 그래서 대게 경험적/통계적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신약의 성공이라는 것도 최소한 현저한 부작용이 없고 예컨대, 60%정도의 환자에 대해 효과가 있다는 정도로밖에 말을 못하는 것이죠. 최근 전 미국대통령 카터가 최근의 암치료약을 복용하고 치료효과를 봤는데, 그런데 그 약으로 치료효과를 못 본 경우도 많다는 거에요. 그만큼 의학이라는 것은 인과성이 흐릿한 것이죠. 그리고 그 임상실험에 있어서도 연구부정인지 실수인지 통계의 한계인지 모를 정도로 결과는 들쑥날쑥한 것이죠.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인과성이 덜 분명한데, 그것은 서구에서 의학에서 인과성에 대한 방법론이 20세기 중반 이후에 발전된 것과 대조되어 그렇게 보이는 거에요. 서구의 의학이라는 것도 체계적인 게 없어서 통상적인 경험의학의 면이 강했어요. 2차대전에 엄청나게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그리고 그렇게 인간의 값이 낮았기 때문에 본의 또는 본의 아니게 의학을 적용할 일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어요(여기에는 2차대전 당시에 이뤄진 독일, 일본의 생체실험도 '기여'했고 그래서 미국이 전범을 처리할 때도 이런 생체실험 자료의 댓가로 excuse해줬던 면도 있어요).
한의학은 그 적용대상은 광범위한데(동의보감을 보면 체계적이라고도 하고 comprehensive라고도 하는데 방대하거든요), 개별 처방이나 치료방식에 대해 일일이 현대화된 검증방식으로 따지기에는 너무 방대하죠. 그리고 한의학이 상대적으로 과학이 뒤늦게 발달한 동아시아의 산물이다보니 그게 대한 연구 기반은 아직도 약한 것이구요. 그래서 한의학은 그 자체로 과학적으로 검증을 거쳤다기 보다는 보다 엄밀한 검증을 기다리는 많은 단서/계기라도 봐도 되는 거에요. 훌륭한 과학자는 이런 단서/계기를 보면 탐구할려고 흥분하지, '비과학적이다'라면서 실망하지 않아요. 과학적이지 않다고 실망하는 경우는 대게 과학적 탐구를 시도할 정도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빈약해서 그러기 쉽상이구요.
개별 사안별로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공부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실은 서양의학 자체도 공부할 때는 일일이 과학적 과정을 거치지를 못하고 '폭력적으로 외워야' 하거든요. 그렇게 외워서 의대를 마쳤다고 영웅담을 과시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의사들도 현업을 거치면서 외우기 급급했던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것이죠. 과학 자체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물리학교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학교에서 대단히 공부를 잘 해서 만점 가까운 점수를 맞았던 친구들이 있어서 제가 보기엔 신처럼 보였는데, 그런 친구들이 가르치면서 '학생 때는 그냥 모르고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을 재밌게 들은 적이 있어요. 학생 때는 급급하게 집어넣는 것은 학생 시기에 불가피한 면이 있는 거에요. 심도있는 이해는 나중에 경험이 집적된 이후에 이뤄지는 것이구요. 배울 때는 어쩔 수 없이 우겨넣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도 해요.
한국에 유독 한의학을 사이비라고 보는 것은 사실은 한국이 그만큼 과학적이지가 않아서 그래요. 탐구로서 과학이 아니라 한국인들은 이미 완성되고 틀에 박히고 도식화된 것을 과학이라고 여기거든요.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과학에 담쌓고 살지만, 미국/유럽은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많은 것도 거기는 과학을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도 참여하는 탐구과정으로 보거든요. 한국은 과학을 선험적으로 있다고 가정하니(이게 과학을 수십년 전에야 턴키로 받은 한국의 한계죠), 한의학, 의학, 과학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거에요. 한국인들이 한의학=사비이라고 하는 동안 정작 서구는 한의학의 단서들을 토대로 과학을 정립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한의학에서 말라리아 예방 약재에 대한 단서를 찾은 것이고 노벨상이 그것을 보상한 것이죠. 한국인들에게는 과학은 여전히 멀고 그래서 단선적인 도식화는 너무 쉽게 해요.
과학훈련을 받아보면 과학이 pure하지 않고 messy하다는 것을 알게 되요. 그래서 저처럼 과학적 탐구 소양이 부족한 사람은 굳이 과학을 해야할 동기를 못 갇게 되죠. 저는 딱 주어진 채로 입에 넣어주는 과학을 원하는데 과학은 적어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거든요. 물리학 훈련을 받고도(그래도 물리학이 가장 전형적인 과학이쟎아요) 한의학을 입문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과학이 pure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쩌다보니 수학도 석사를 졸업은 했는데, 놀랍게도 수학도 practise에서는 지저분하더군요. 지저분하다는 게 틀렸다는 게 아니고 그만큼 뭔가 제대로 된 것에 이르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거에요. 학부 정도의 교과서에서 배우는 과학/수학은 그 중에서 멋지고 심플하고 아름다운 것만 걸러서 배우는 거에요. 이게 속임수는 아니고 그게 일단 보편적인 원리인 것이고, 나중에 응용을 하기 위한 전제인 것이죠. 그래서 과학/수학을 했다가 이렇게 pure를 기대했다가 messy한 것에 당혹 실망했다가 그것을 잘 극복하고 나면 비로소 과학자가 되는 것이죠.
한의학이 갈 길이 먼 것은 맞고 부당한 pedagogy도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도 과연 한의학적 특성인지 한국의 교육적 특성인지도 불분명해요. 한국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꼰대적이거든요. 물론 한의학이 해야할 몫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개별분야게만 책임을 지우기에는 한국 자체가 너무 꼰대스럽죠. 그리고 꼰대스럽다는 것은 아래 한의학 자퇴생에서 보이는 단순하고 무리한 도식화가 있다는 것이구요. 한의학 자퇴생이나 그가 비판하는 교수나 똑같이 수준이 떨어지는 거에요.
--인용
그는 “사이비 교수를 규정하자면 ‘비상식적 내용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말도 안되는 내용들인데 한의학의 정수인양 가르치고 심지어 외워서 시험 치게 한다”며 “그래서 많은 학생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주고 사이비 의학을 심어주는 의료계 적폐”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