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비가 많이 내려 시간이 비었습니다.
오전에 살짝 비개인틈을 타서 고춧대 돌아보고
고무마밭에 들어가서 고라니흔적 확인도 하고 그러다 비내려
다시 들어왔습니다. 장마가 시작이라니 올해는 빨리도 우기가 시작되는가 봅니다.
모두들 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2. 요즘은 강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초보치고는 조금 넓은 땅이라(1천 8백평) 노지에서 밭만들고
심고 풀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덕분에 근력이 늘어서 처음보다는
고통이 덜하긴 하지만 일감은 여전해서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아랫집 젊은 분이 그러길 시골에서는 오십평을 하나 오천평을 하나 고되긴 마찬가지라 합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일이라는 거지요. 풀은 끝없이 올라오고
해야 할 것은 적으나 크나 여전하다는 말일 겁니다.
작물과 풀과 나무와 새들 속에서 저는 캠프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 올해 캠프힐은 시흥과 강화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시흥은 대안학교의 연속선에 있고 강화는 본격적인 캠프힐을 준비해내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을 강화에서 잘 살아냈고 이제 몇개월 있으면 시작입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쓴맛 단맛도 맛보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듯, 아니
광야의 길을 40년동안이나 돌고돌아 가듯이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어 들어가는거 같습니다.
현재 무무건축과 설계 막바지에 들어가 곧 행정절차와 함께 건축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년 2월에 완공, 3월에 시작입니다.
4. 농사일을 하다보니 '활착(活着)'이라는 단어를 종종 듣습니다.
작물을 심었을 때 새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땅에 거름을 주고 로터리를 친 다음 잘 골라서 비닐로 준비하고서는
고추 2,800주를 심었습니다.
며칠사이 '활착'을 본건데
대부분 자리를 잘 잡긴했지만 어떤 것은 본 땅과 겉돌면서 뿌리를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게 나왔습니다. 포트에서 자란 뿌리가 어떻게 새땅과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이 다름아닌 큰나무캠프힐이나 또는 발달에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섬처럼 고립되지 않고 기존의 것들(사람들)과 유기적으로 한 동네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냐는 것이지요.
토양을 잘 만들어 놓는 것,
뿌리와 땅이 만나는 그 밀착의 상태에 대해서,
관계가 어우러지기 위하여 취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5. 설계도면에 최종 담긴 내용은 4개의 건물이 들어서고
그중 하나는 카페, 두동은 가정집, 한동은 패어런츠하우스로 사용됩니다.
일년이 넘게 걸려 만들어졌고, 주어진 한계가 있어 형편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두 가정에 2명의 발달장애인이 각각 거주하면서
일상의 삶을 돕는 이와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낮시간에는 주변 농장과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방과후가 되면 자기 집과 방에서 여느 가정처럼 크게 다르지 않게 생활을 합니다.
대신 부모가 함께 살지 않고 부모를 대신하는 교사가 함께 하게 됩니다.
이 모델의 기본원형은 칼 쾨니히에 의해서 만들어진 캠프힐(Camphill)입니다.
하우스페어런츠와 장단기 자원봉사자가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작지만 그 원형을 이뤄 살아갈 거고, 이것이 누군가에게도 새로운 희망으로
주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6. 며칠전 몇분의 부모님들과 만들어지고 있는 캠프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중
"왜 그렇게 적은 인원을 위하여 희생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너무 적은 인원을 받는 다는 거였고, 수고가 너무 많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몇년간 뼈저리게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할수 있는 만큼, 그리고 살수 있는 만큼의 인원과 일이었고, 그 공간이었습니다.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큰나무에서 잘 이뤄낸다면 또 어딘가에서 꿈을 갖고 저희와 같은 일들을 벌려나갈 거라 믿고 있습니다.
7. 올해 저희가 강화 농장에서 펼쳐놓은 일들은
고추 2,800주, 고구마 8,000개, 양봉 20통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들깨와 흰콩을 심을 거고
삼시세끼 나눠먹으려고 오이, 가지, 토마토, 옥수수, 참외, 수박을 심었습니다.
고추는 농사 3년차 치고는 좀 무리이긴 하지만 한번 도전해볼 작물이어서
큰맘먹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별 무리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구마는 성급하게 땅을 갈아놓아서인지 땅이 단단하고, 또 고라니가 또박또박 다 따먹는 바람에
몇주간 계속 고전중에 있습니다.
모든것이 실험이고 연습인지라 결과에 크게 연연할 건 아니지만
시골살이에 함부로 할수는 없는 일이어서 고투중입니다.
8. 양봉은 이미 채밀이 끝나서 판매중에 있습니다. 7말에 70병이 나와
주문하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9.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원래 땅을 바탕으로 살아온 인류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 받는 다는 것도 있지만
동네의 사람들 속에서 잘 섞여들어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농사만한게 없고,
또 잘 농사를 지으면서 각자의 기능과 능력에 따라 여러가지로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률적인 라인에 끌어다 놓지 않고
때와 절기를 따라 수시로 펼쳐지는 농사일에 자유자재로 나설수 있어
발달장애인의 직업생활에 이만한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10. 작년 일을 지나와 올초 어느분으로부터
'큰나무가 망했다'라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마구 해대는 말처럼 들려 처음에는 설레설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말이 맞는 거 같아 마음에 남습니다.
큰나무가 망했습니다. 다 망했고
그래서 망한 끝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듯 궁해져서 이제 변하게 되었고
변하니 통하고, 통해서 오래 가는게 아니겠나 합니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새롭게 다시 나올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한일이 없으셔도
마음 한 구석에 큰나무를 담고 봐주시는 것만해도 힘이 됩니다.
캠프힐로 넘어가는 길에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정말로 오랜만에 들려봅니다.
늘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큰나무학교가 발달장애의 희망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