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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그시절 」 스크랩 박정희 대통려의 마지막 하루
이우종(울산넣자) 추천 0 조회 102 09.02.14 05:37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박정희 대통려의 마지막 하루
      ㅡ 2005년 2월 趙甲濟 ㅡ 나는 10.26 사건 현장에 있었던 주요 인물들을 다 만났습니다. 그 중 세 생존자, 김계원(金桂元 대통령 비서실장) 심수봉(沈守峰 가수)그리고 신재순(申才順 여대생 )을 만났는데 이들 중,가장 정확한 신재순씨의 증언을 들어 봅니다. 신씨는 대담한 성격에다 기억력,표현력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최후 목격자로 선택하셨는지도 모릅니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5분,김재규의 총알이 가슴을 관통해,등에서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된 박정희 대통령을 신씨는 혼자 안고 있었습니다.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은 팔에 총상을 입고 화장실로, 김계원씨는 바깥 마루로, 심수봉씨는 다가오는 김재규를 피해 달아났습니다. 김재규의 진술입니다. "차지철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어 대통령에게로 다가가 머리에서 50cm 거리에 총을 대고 쏘았습니다." 지금은 40대 중년으로 변한 신재순씨는 이렇게 기억 했습니다.(1997년의 증언) 김재규는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짐승의 눈이었어요. 각하를 쏜 다음에는 내 차례구나 싶어 급히 화장실로 뛰었어요. 등뒤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런 다음 바깥이 좀 조용해져서 문을 열고 나와보니 대통령은 실려 나가셨고, 문 앞에는 차실장이 하늘을 보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신씨가 일으키려고 손을 잡아당기니 그는 체념한 눈빛으로 "난 안될 것 같애.." 라 말하고는 다시 쓰러져 신음했어요. 그날 밤 차실장은 김재규를 몹시 자극하고 막말을 했습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여러모로 물어 보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좀 취하셨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말이 헛나올 정도는 아니었고, 인자한 아버지 같았어요. 피를 쏟으시면서도 "난 괜찮아."를 또박 또박 말하셨으니까요. 그 말은 "괜찮으니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란 말로 들렀습니다.그분은 체념하신 듯,마지막 모습은 마치 해탈한 분 같았어요. 총을 맞기 전에는 "뭣들 하는 거야 !" 하고 화를 내시더니 총을 맞고 나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대통령은 피하시지도, 몸을 숙이시지도,애원하시지도 않고 담담히 "난 괜찮아." 라는 말만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박정희의 비범한 죽음과 그 증언자 신재순으로 해서 우리는 영웅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탈한 超人의 모습으로 떠난 박정희의 國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 대통령이 그의 영전에 건국훈장을 바칠 때 국립교향악단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를 연주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쓴 책 서문을 음악화한 이 곡은 얼마나 상징적이었던가! 니체는 이 서문에서 "인간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 라면서 "그러한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고 덧붙였습니다. 한 시대의 淸濁을 다 들이마시고도 끝까지 자신의 혼을 더럽히지 않고 죽어간 박정희 대통령을 나는 서슴치 않고 超人이라 부릅니다. 무자비한 권력욕의 화신이 아니라 부끄럼 타는 超人 ! 우스운 것은 김재규 지령으로 두 경호원을 사살하는동안 이 작전을 지휘했던 박선호(朴善浩 중정 의전과장)가 일대 학살극을 끝낸 뒤 심수봉, 신재순 두 여인에게 20만원 씩 든 봉투까지 건네주고 차를 태워 집으로 보내 주었고 이 사건 현장 목격자들을 아무런 감시원도 붙이지 않은 채 현장을 이탈하게 한 점은 이 사건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감했지만 치밀치 못했던 김재규의 지리멸렬상은 권력을 잡지도 못하고 전두환(全斗煥)의 등장에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날 밤의 이 사건은 그 뒤, 10여년의 한국의 역사를 상당 부분 결정짓게 했습니다. 이날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행사에 참석 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부관은 박 대통령의 양복과 구두를 챙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2층 거실의 대통령으로 부터 인터폰이 울렸다. "예, 이광형 입니다" "어제 입었던 그 양복하고 구두, 그거 가져오게." 예 알겠습니다. "어제 입었던 양복과 구두"란 허리단을 수선한 곤색 양복과 금강 제화에서 맞춘 검정색 구두를 말한다. 한 해 전 코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담배를 끊었던 대통령은 몸무게가 60Kg에서 3~4Kg쯤 불었다. 1층 집무실로 출근할 때 자신이 전날 입엇던 양복바지를 든 채 내려온 적도 있었다. 대통령은 부관에게 바지를 뒤집어 허리 뒷단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정확히 폭을 재 보이고는 "여기 요만큼만 더 늘려주게"라고 했다. 부속실 직원들은 을지로 2가에 있던 "세기 영복점"으로 옷을 보내어 고쳐 오도록 했다. 그날, 대통령의 마지막 양복을 준비했던 이광형은 "바지는 수선해서 입고 구두 뒤축을 갈아 신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 부관은 평소보다 십여 분 늦게 양복과 구두를 들고 2층 거실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대통령은 거울 앞에서 하얀 와이셔츠에 자주색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체는 반바지 모양의 팬티 차림 그대로였다. 대통령은 이 부관이 들어서자 "어,어, 이리 가져와 "하며 반겼다. 농촌 시찰이 있는 날이면 대통령은 소풍가는 소년처럼 들떠 있곤 했다. 이날도 늦게 올라온 양복을 받아 입으며 연신 어깨를 들썩이면서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 흥얼했다. 권력이란 갑옷을 걸치기 직전 박정희朴正熙 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엿보게 하는 것은 고독(孤獨), 무인(武人),절약(節約)의 상징물인 효자손, 카빈 그리고 변기 속의 벽돌이었다. 2층 거실과 1층집무실 변기에 벽돌들...그는 양복을 입음으로서 이 같은 자신의 내면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도록 감싸 버렸다. * 위 글은 월간조선 대표이사였던 기자 조갑제씨의 "朴正熙의 마지막 하루"란 책의 머리말에서 발췌했다.* 자료를 보내주시고 요략 검열해주신 시내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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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4 17:29

    첫댓글 미어지고 아프고 헝클어지고 가장사랑하든자가 멀어저도 이리 아플까요?

  • 09.02.14 18:21

    ~크신 어른이셨지요~~ 그분이 않계셨더라면 우린 엄청 긴길을 돌아 아직도 중진국의 틈에 끼지도 못했겠지요~~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 어른 반만 실행하고 추진한다면 무궁히 발전되는~우리의 밝은 미래가 보일터인데~~ㅠㅠ~ㅠㅠ~!

  • 09.02.14 21:01

    아이고~~누님~돼지가 사슴되길 바라는게 났지 않을까요 저 어른 욕하는 놈들 해부를 해보고싶어!

  • 09.02.15 20:46

    보고싶은분이지요 꿈에서라도 작은거인이셨지요

  • 09.02.16 21:23

    저생에는 저런분을 다시 볼수없는것 같습니다 저분이 아니였다면 이나라의 경제가 과연............................................................

  • 09.02.21 14:31

    넘고맙습니다,넘소중한기록들을 보여주셔서요,,노래는더욱좋구요,,,

  • 09.03.05 17:53

    귀하신 어른 한시대을 자기몸 돌보지 않고 허름한 와아사스 고물 시계 검소하게 사신분에게 고개 속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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