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예순여덟 번째삼천삼백예순여덟 번째
빈틈없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을 칭찬할 때 ‘빈틈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우쭐해지곤 했었습니다. 정말 빈틈없이 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최대의 찬사처럼 들렸고, 그런 말을 듣기 위해 밤새워 일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배님이 잠시 산책하자며 앞장서서 나가 바닥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멘트 갈라진 틈새로 잡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틈새가 있어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자네는 정답을 만들어놓고 직원들이 따라오도록 강요하고 있잖아. 그래서는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 왜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잡초를 보여주었는지, 내 제안에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여유를 충분히 주라는 뜻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선배는 넓은 틈을 만들어주어 직원들이 서로 토론하게 하는 방식으로 회의하기에 좋은 결론을 내고 직원들이 집중해 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파고듭니다. 틈이 없으면 답답합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부부 사이에도 틈이 없으면 어느 한쪽은 숨이 막힐 겁니다. 옛 수묵화를 감상하다 보면 여백의 미를 살린 그림일수록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빈틈투성이입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생각이 느려지고 따라서 행동도 느려지니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깍두기 신세가 된 건 아닙니다. 천천히 움직이니 더 많은 걸 봅니다. 빈틈없는 일사천리一瀉千里, 과거 우리는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적합한 말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이 처음 창조되기 전 세상은 혼돈과 공허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비어 있기에 창조가 가능했지요. 이제는 틈이 많은 사람을 보면 여유를 느낍니다. 우린 너무 바쁘게 살아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