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3막 14장 (2부)
나는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이 있는 무악재에 위치한 "영천중"에 입학하였다.
신생학교인 영천중은 우리가 졸업 몇년후 폐교됨과 동시 "한서 과학고교"로 바뀌었고 내가 입학할시는 1년 밖에 않되였다.
학교는 안산의 산중턱에 위치하여 등교시에는 10여분 숨을 헐덕이며 산등정(?)을 하였다.
그리고 특이한점은 산중턱에 오를시(등교시) 학교 바로밑에는 넓은 호수가 있었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축구공이 호수로 빠지면 찾지 못할 정도로 깊었음) 그옆에는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변한 "서울 형무소"가 있었다.
죄수들이 우글거리는 감옥이라 말하는 형무소가 있었던 것이다.
매일 스피커로 울려퍼진 그 노래.
"하나,둘, 하나,둘"구호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넓은 운동장에는 죄수들이 아침체조를 하는것을 보면서 등교하였다.
형무소 바로 옆에 중학교가 있었다니 상상도 못할일이었다.우리들은 빡빡 깍은 머리에 "중"자 박힌 모자를 뒤집어 쓴채 죄수들의 아침 체조 하는것을 높은 언덕에서 생생하게 보며 등교한것이다.
어느 세상에 형무소 죄수들이 체조하는것을 볼수 있단 말인가?
이 말도 않되는 일이 중학교 3년간 계속되었다.
세상천지에 형무소 바로 옆에 형무소가 다 보이는 언덕위에 학교지을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였다.
행정의 안이함과 교육부의 부실로 이어진 학교는 사춘기의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생하게 가르켜 준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학교였다.
죄수들이 바글거리는 바로 옆에 3년간 있었던 나다.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었다
그당시 형무소는 인덕원구치소로 이전하고 형무소를 리모델링하여 일제시대의 형무소를 재현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변하였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 부모들과 역사관을 찾은 나는 씩 웃고 말았다
어릴적 본 그형무소가 그대로 있었으니 말이다.
중학교
빡빡 깍은 머리에 일제시대 제복 같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며 본 죄수들의 체조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것은 나만 가지고 있는 슬픈 초상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