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게, 성탄절 날 앞산 隱跡寺에 갔다오.>
오늘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들썩이며 예수님 오신 날을 기뻐하며 Merry X-MAS를 스마트 폰으로 연신 날아오는 바로 오늘 12월 25일, 나는 어긋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승용차를 가지고 앞산 隱跡寺를 찾아갔다오.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성격상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집 안주인이 기도하러 간다고 태워다 달라고 하니, 아니 갈 수도 없는 형편이 아니겠어요?
대구에 살면서도 10년도 훨씬 넘게 앞산에 안 가게 된 것은 동문이 <자유총연맹 대구 지회장>으로 재직 시에는 앞산 큰골에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자유총연맹>에서 만나 39회 동기회 <5월 봄 야유회>를 그곳에서 만나 봄 행사를 자주 가졌지만 박창규 회장이 퇴직하자, 그때부터 앞산과는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도보로 앞산을 오르는데, 조금 전 중식을 했던 탓도 있었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음도 점점 느려지고 허리 다리도 아프고,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오. 옛날이 된 10여 년 훨씬 전에는 앞산 정상까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몇 몇 친구들 사이에 끼어 다녀왔건만 그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거북이가 되었으니, 아! 옛날이여!
<은적사>는 앞산공원 중턱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동화사의< 말사>라고 하네요.
고려 태조의 숨은 자취를 간직한 <은적사>, 푸른 숲과 맑은 공기, 각 종 시설들이 어우러져 있는 대구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앞산 공원은 비슬산, 또 대덕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은적사는 명칭 그대로 고려 태조 왕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高麗 太祖 王建이 후백제 甄萱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뒤 신숭겸의 智略으로 빠져나와 바로 이곳에서 구사일생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찰의 명칭도 隱跡寺로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大雄殿 바로 옆으로 十步쯤 가면 王建이 숨어 지내던 바위굴이 있는데 지금은 그 곳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은적사>는 색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은적사>가 자리 한 큰골에는 <낙동강 승전 기념관( )>, < 충혼탑> <케이블 카>, <수영장>, 체육시설, 인공폭포, 원두막 등 많은 위락시설이 몰려 있어 대구 시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대웅전에 봉안된 <목재 석가 여래좌상>이 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지장 탱화>역시 1880년대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목조 석가 여래좌상>은 2015년 대구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은적사>에서 내려가다 보면 바로 앞에 조그만 <대덕사>가 있고, 0.5km 정도 내려가면 <송두환 기념비>가 있고. 또 조금 내려가면 왼편으로 < 임용상 의병대장>의 기념비가 있고, 또 좀 더 내려가면 <이시영 박사 기념비>가 있고, 그 조금 옆에 <낙동강 승전 기념관>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있다.
오랜만에 찾은 앞산 주차장까지 오가는데도 낯설어 차 운전하는데도 녹녹치 않으니 운전면허증도 반납해야 할 때가 가까워진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드는 구려.
혹 성탄절에 절에 갔다고 怒한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