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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생활 논단] 된소리 발음과 극단적 표현된소리 발음과 극단적 표현
된소리 발음과 극단적 표현된소리 발음과 극단적 표현
천소영∙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두말할 나위 없이 언어는 한 시대 그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오늘의 국어 생활을 돌아보면서 한두 가지 우려되는 현상이 있어 이 기회에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말소리가 필요 이상 된소리 발음으로 굳어져 간다는 현실이요, 다른 하나는 대화를 중심으로 한 문장 단위에서 극단적 표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남발한다는 점이다.
이런 언어 현상으로 미루어 오늘을 사는 현 사회가 그만큼 살벌해지고 사람들의 정서나 심성이 삭막해진 것이라 규정짓지 않을 수 없다. 세간의 유행어는 온통 경음(硬音) 일색으로 경직되어 있으며, 거기다 함부로 내뱉는 막말과 제멋대로 내갈기는 '막글'이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을 어지럽힌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나 여기 그 몇 예만 들어 보이고 이에 대한 개선안과 함께 반성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2. 된소리 발음
2.1.
언제부턴가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일러 '얼짱', 몸매가 잘빠진 사람을 '몸짱'이라 하고,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를 일러 '얼꽝', '몸꽝'이라 부른다. '짱'의 어원이 한자 장(長)의 한자음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무언가 갈라질 때 내는 소리의 흉내말(의성어)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런 신조어들은 이제 사전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고ㆍ최상을 나타내는 '짱'과는 달리 얼꽝, 몸꽝이라 할 때의 '꽝'은 또 다른 어형, 곧 거짓ㆍ공갈을 뜻하는 '뻥'이나 '나이롱 뽕'이라는 화투 놀이에서 말하는 '뽕'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고, 터질 때 나오는 의성어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된다.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왕따'라는 말도 비슷한 시기에 생성된 신어(新語)로서 얼짱 못지않게 대중성을 획득한 듯하다. 어두의 '왕-'(王)은 왕초ㆍ왕대포ㆍ왕 고참 등에서 보듯 최고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신조 접두어, 여기에 이어지는 '-따'는 따돌림의 준말이다. 그런데 이 된소리 준말은 기존의 한자말 소외(疎外)나 고유어의 본딧말 따돌림을 그야말로 보기 좋게 '따돌리고'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경위가 주목된다.
최근 모 TV에서 '마빡이'라는 개그 프로가 등장하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별다른 내용의 대사 없이 자신의 이마를 무작정 두들기는 동작이 세인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마빡이나 얼빡이, 댓빡이에서 '빡'이란 말이 앞서 열거한 짱이나 꽝, 또는 왕따의 '따'와 같은 된소리란 사실뿐이다.
2.2.
얼마 전 전문 노름꾼을 다룬 영화 '타짜'가 상영되면서 이 말(신 용어) 역시 맹렬하게 언중 속으로 파고드는 중이다. 새로 등장한 타짜뿐만 아니다. 노름에 쓰이는 말이라면 오래 전부터 이런 된소리 준말의 보고라 할 만큼 많은 용례가 있었다. 꽝과 비슷한 유형으로 뻥이나 뽕이 있음을 앞서 언급하였다. 이 된소리들은 풍선과 같은 기구가 터질 때 나는 의성어로서 이를 놀이나 노름 용어로 삼은 것도 기발하지만 더 나아가 이 말이 거짓이나 허세, 또는 공갈 따위의 의미로 확대ㆍ전이되어 쓰임이 더욱 흥미롭다.
예컨대 '뻥(을)치다'라면 과장되거나 거짓으로 큰소리친다는 것이요, '뻥이야!' 하면 거짓으로 허풍을 떤다는 말이다. 모음 교체인 '뽕' 역시 재미있기로는 '뻥'에 뒤지지 않는다. 방귀 뀌는 소리에서 비롯되어 항문을 지칭하거나, 혹은 비밀이나 음모를 나타내기도 하니 말이다. '뽕(이)나다'고 하면 비밀이 탄로 난다는 뜻이요, '뽕(이)빠지다'고 하면 밑(항문)이 빠질 정도로 애를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투 놀이에서 짓고땡(지어 땡)의 땡이나 끗수를 나타내는 장땅(땡), 광땅(땡), 또는 '땅땅 구리'라고 할 때의 땅>땡도 자주 쓰이는 된소리 용어다. 다만 장땅의 땅은 앞서 말한 뽕ㆍ뻥에서처럼 그 기원이 의성어가 아니라 '같다'라는 뜻의 한자 '同(仝)'의 중국식 발음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섰다'라 불리는 화투 놀이에서 같은 끗수의 화투짝을 잡거나, 골패에서 같은 두 패(牌)를 잡았을 경우에 쓰인다. 다 아는 대로 땅(땡)은 1에서 10까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제일 작은 끗수 1땅을 삥땅, 또는 콩땡이라 하고, 마지막 수 10땅을 장땅이라 하여 최고의 끗수로 대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3과 8의 光을 합친 3ㆍ8광땅을 장땡 위에 올려놓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장땡이 말 그대로 '장땅'(최고)이다.
노름판에서 노름꾼은 운 좋게도 같은 패, 같은 숫자, 곧 땅을 잡으면 동반자들로부터 축하의 뜻으로 '땡값'이라는 걸 받는다. 특히 1땅인 삥땅에 있어서는 가장 작은 끗수의 땅으로 이런 보너스까지 받게 되어 그만큼 고소하게 여긴다. '망고 땡이다'란 속어도 이와 유사한 경우에 사용된다.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는, 망고 땡의 '망고-'는 엉뚱하게도 연날리기 용어에서 유래한다. 망고는 연을 날릴 때 얼레의 줄을 다 풀어 주었을 때를 이르는 말인데 이것이 땅, 땡과 결합하여 해방되어 아주 편안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의미로 전이된다.
땅, 땡 이하로 가장 작은 끗수를 나타내는 말에 '따라지'라는 게 있다. 따라지는 본래 동사 '따르다'의 파생어로서, 이를테면 '따라지신세, 따라지목숨'이란 속어에서 보듯 홀로 독립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따르고 의지해야만 하는 신세를 나타낸다. 6ㆍ25를 전후하여 월남한 피란민들을 그렇게 불렀음은 그들이 38선을 넘어왔기에 3+8=11, 곧 그 끗수가 1이었기 때문이다.
2.3.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일상의 대화에서 '작다'를 '짝다'로 발음하고, '좁다'를 '쫍다'로, '조금'을 '쪼끔' 또는 '쬐끔'으로, 학과 대표를 '꽈대표' 또는 '꽈대'로, 종강 파티를 그냥 줄여서 '쫑파티'라고 한다. 사랑도 '싸랑'이요, 사모님도 '싸모님'이다. 어두움도 '깜깜하다'나 '캄캄하다'지 지금은 아무도 '감감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옆 자리에 앉은 친구를 '짝꿍'이라 부르고, 면목이 없을 때는 '쪽 팔린다'고 한다. '야리꾸리'한 짓을 보면 '싸가지 없다'고 나무라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찍 쌌다'면서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이런 된소리 풍조는 세상사를 민감하게 잘 반영하는 연예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끼가 있다', '튄다', '뜬다'는 이 분야에서 단골로 쓰이는 용어다. '바람기'라는 말에서처럼 '-기'는 어떤 기질이나 낌새를 나타내는 접미사로 이는 기운을 뜻하는 한자어 기(氣)에서 유래한다. '기'에서 나온 끼는 '끼가 있다, 끼가 많다, 끼를 발휘한다'에서 보듯 당당히 자립 명사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앞서 든 왕따의 '따'나 얼짱ㆍ몸짱의 '짱'처럼 그것이 된소리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두어 해 전 젊은층에서 크게 유행했던 '꿍따리샤바라'라는 노래를 기억한다. 제목이자 노랫말이기도 한 '꿍따리싸바라 빠빠빠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된소리가 수차례 반복되는 노래다. 어쩌면 태국어나 베트남 어를 듣는 듯한, 이 된소리 노랫말의 의미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여기 대해서 별 의미 없이 그저 내질러 보는 소리(?)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어린이들 세계에서 한 아이를 왕따 내지는 약을 올릴 때 합창하는 '얼러리 껄러리'와도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한편 생각해 보면 '꿍따리'나 '껄러리' 따위의 된소리 노랫말이 설사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것이라 해도 이런 허황된 언사가 유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꿍따리와 비슷한 어형에 '꿍따다', 또는 '궁떨다'가 발견된다. 전자는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딴청을 부린다는 말이요, 후자는 궁상을 떠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그러나 둘은 이 노랫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듯하다. 눈길을 돌려 꿍따리를 '딴따라'와 같은 의성어로 봄이 어떨까? 주지하는 대로 딴따라는 옛날 풍각쟁이를 이르는 별칭어로서 이는 '탄타라타'라는 북소리를 흉내 낸 말로 알려져 있다. 꿍따리 역시 노래할 때 반주 소리 '쿵짝쿵짝, 쿵쾅쿵쾅' 따위의 악기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었을지도 모른다.
꿍따리와 짝하는 샤바라, 또는 싸바라 역시 그 어원이 묘연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곧 현란한 조명 아래 숨 가쁜 템포의 반주 음과 함께 괴성에 가까운 절규, 그 속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목줄까지 차오른 불안과 울분을 토해 내는 것이 바로 이 노래라고. 따라서 이런 스트레스 해소용 노래에서 가사의 내용을 찾는 일은 참으로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2.4.
된소리ㆍ거센소리가 현대인들의 감성 표현에 동원되어 그들의 정서와 영합된 지는 오래다. 이는 우리말의 음운 변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일 것이다. 대화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극단적인 몇 예를 더 들어 본다.
"그 쌔끼 덩친 짝아도 성깔은 꽤 싸납던데......."
"쐬주를 깡술로 들이켰더니 속이 알딸딸하고 간뗑이가 찡한데......"
"쯩(證)도 없고 껀(件)도 없어 못 나가고 그저 집꾸석에서 쩜(點) 천짜리 고스톱이나 쳤지 뭐냐."?
된소리가 섞이지 않으면 언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사람들의 말소리는 온통 경음 일색이다. 고대 국어에서 예사소리(平音)뿐이었던 한국어 말소리는 중세로 내려오면서 전쟁이나 기아 상태와 같은 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점차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강음화(强音化)되었다. 왕조의 부침과 함께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과 같은 외세의 침략, 가까이는 한국전쟁과 같은 사회적 격변 사태는 언어의 소리 면에도 영향을 미쳐 이처럼 경직되고 격한 소리로 변질시켜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처럼 전쟁도 가난도 없는, 지극히 편한 세상에 살면서 말소리만은 여전히 경직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아마도 상대적 빈곤감이나 복잡한 사회생활로 인한 갈등이나 불만 따위의 해소 작용이라는 심리적인 면에서 그 요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경직되고 거친 말소리는 현 사회의 절대적 가치 붕괴에 따른 무질서와 과소비, 퇴폐풍조, 폭력 사태 등으로 얼룩지는 사회 병리 현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어순화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운 심성을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먼저 된소리 사용부터 자제하는 운동이 절실하다.
3. 극단적 표현법
3.1.
언제부턴가 '가격 파괴'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파괴'란 단어가 무슨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인사(人事)파괴, 학력 파괴, 서열 파괴, 자연 파괴 등에서 보듯 파괴란 말이 이 말 저 말 가릴 것 없이 아무 말에나 따라붙는다. 가격을 파괴한다면 종전에 받던 값을 대폭 낮춘다는 뜻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런 식 표현이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하여 시비하려는 게 아니다. 굳이 이런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을 따름이다.
파괴(破壞)라면 문자 그대로 무엇을 때려 부수거나 깨뜨려 없앤다는 뜻이다. 그 행위가 새로운 건설을 위한 것이라 해도 파괴에는 반드시 폭력이 수반되고, 또 그 이전의 것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격을 낮춘다면 낮출 만한 여건이 충족되었을 터이므로 단순히 '낮춤'이나 '하락'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식 표현법으로 나간다면 기존의 모든 질서나 관행, 나아가 미풍양속까지도 깡그리 파괴하려 들지 모르겠다. 특히 최근 컴퓨터상에서의 전자ㆍ통신 언어에서 '문법 파괴', '표기법 파괴'라는 말이 운위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말과 글이 등장하면서 기존 언어의 질서에 심각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戰爭)이란 말도 전천후 용어가 된 지 오래다. 언젠가 전직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이후 입시 전쟁, 주차 전쟁, 귀가 전쟁, 예매 전쟁처럼 무언가 좀 강조할 일이 있다 싶으면 이런 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곤 한다. 게다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교통문제에 이르러서는 전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지옥'이나 '대란'(大亂)이니 하는 용어 동원도 서슴지 않는다.
전쟁, 전투, 투쟁과 같은 싸움 용어에 관한 한 북한을 따를 데가 없다. 언어를 이데올로기의 선전 수단으로 삼는 그들이기에 일상적 일, 이를테면 모내기도 전투요, 수술도 전투라고 한다. 그뿐인가, 삿대질도 '손가락 총질'이요 몸의 살을 빼는 일도 '몸깐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툭하면 까부수고, 떨쳐나서고, 일떠나서라고 선동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북한 언어를 우리도 나무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남한의 언어도 그렇게 부드럽거나 평화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던가, 우리의 언어도 알게 모르게 북한의 그것을 닮아갔던 것이다.
3.2.
이런 극단적 표현은 젊은 세대의 화법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타도(打倒)의 대상이요 기존의 사고나 관습, 질서는 타파의 대상이라 생각한다. 전통이라도 잘못된 것은 타파되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정도를 넘어서는 화법에 이르러서는 우려를 자아낸다. 극단적 표현의 몇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든 화끈하게 끝내 주는 해결사가 선망의 대상이다. 돈을 벌어도 한 번에 싹쓸이해야 하고, 망해도 일시에 왕창 망하고 만다. 이처럼 '온통ㆍ왕창ㆍ몽땅ㆍ깡그리ㆍ싹쓸이' 등의 부사형 수식어는 현대인들이 즐겨 쓰는 어휘 품목이 되었다. 좋은 일조차도 '좋아 죽겠다'고 하고, 기분이 좋아도 '기분 째진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화법의 기본부터 이렇게 극한적 용어로 시작되다 보니 그 이후에 이어질 말이 궁해지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기분을 나타내는 말이 '기(氣)가 막히게 좋다'에서 시작되어 이후 '기똥차다'를 거쳐 '죽여준다'나 '끝내준다'에 이르면 그 표현법은 더 이상 갈 곳을 잃는다. 이를 두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하던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뱉은 이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여기서 '막'은 '마구'의 준말이자 '마지막'의 준말이기도 하다. 마구>막은 '막국수ㆍ막걸리ㆍ막두부ㆍ막소주ㆍ막과자' 등에서 보듯 아직 길들이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상태를 이르기도 하고, 또 '마구 운다, 마구 쏘다'에서 보듯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해 댄다는 의미도 아우른다.
그래서 함부로 내뱉은 말은 '막말'이요, 두서없이 함부로 쓴 글은 '막글'이다. 최근 인터넷 상에 오르는 댓글을 혹은 막글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개가 익명으로 신분이 드러나지 않음을 기화로 욕설로써 자신의 불평, 불만을 무책임하게 쏟아 내기 때문이다. 마구>막에서 파생된 '망나니'란 말도 있다. 망나니는 '마구 낳은 이'의 준말, 본래 아무렇게나 짜서 품질이 좋지 않은 무명을 일컫던 말인데 이 '막낳이'가 사람에게 옮겨 붙어 행실이 좋지 않은 이를 지칭하게 된다. 마구>막은 또한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일컫기도 한다. 곧 '막판'이 바로 그것이다. 또 여기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두고 '막가'라 부르기도 하는데 필자는 언어에서 이런 현상을 '막가파' 언어라 규정하고 싶다.
세상이 문란해지면 언어도 함께 타락하게 마련이다. 옛 성현들도 이를 경고하였으니, 공자님도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불순해지고(名不正 則言不順), 언어가 불순해지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言不順 則事不成)."고 했다. 감히 단언컨대 말소리에서 경음화ㆍ격음화는 음운의 타락이요, 이런 극단적 표현법은 전체 언어의 타락이다. 이제 우리는 언어 순화, 국어 순화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된소리 발음과 극단적 표현법은 자제해야겠고 이를 위해 바람직한 방안을 제시하는 데 뜻있는 이들의 고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