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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주일 설교
시리즈 주제: 우리가 얻은 이 큰 구원 8
제목:
왜 땅에는 평화인가?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3~14
설교 목적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천사들은 땅에는 평화라고 선포했다. 이것은 이사야 52장의 전령들이 전한 메시지와 유사하다. 그들도 평화를 공포했다. 이사야에 나오는 평화공포는 어떤 의미일까? 거기서부터 나는 이 유명한 구절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옛 전령들이 시온을 향하여 평화를 공포했다면 새 전령들은 온 땅을 향하여 외친다. 예수님의 나심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인 이유는 그것이 평화를 공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화는 그 백성의 해방이며 영광의 회복이다. 그 결과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선한 일이 성취될 것이다. 세상의 충만을 위한 하나님의 새 창조 프로젝트가 마침내 다시 가동되었다. 이 위대한 경륜에 동참하라고 주님은 하늘의 전령을 보내셨다. 교회는 이 성탄절을 지킬 때마다 온 땅에 평화를 공포하던 천사들의 메시지를 자신의 메시지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대리인이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문제제기: 예수님의 오심을 소개하는 복음서 기자들
2. 왜 땅에는 평화인가?
3. 예수께서 가져오신 평화
4. 우리가 전해야 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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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예수님의 오심을 소개하는 복음서 기자들
앞으로 일주일 후에 우리는 성탄절을 맞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왕의 계보에서 나신 분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찾아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할 구주로 소개됩니다. 누가는 천사들이 전한 소식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11). 누가는 예수님을 처음부터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에게서 들은 대로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여기에 보충 설명을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왕이시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첫머리에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세례 요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가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마가복음 1:3).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40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무엇을 준비합니까? 그는 주의 길을 준비합니다. 왜 주의 길을 준비합니까? 그 이유는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멀리 떠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이 멀리 떠나셨으므로 그 백성에게로 돌아오십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그 백성을 떠나셨습니까? 그 이유는 그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시는 이유는 이제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로 돌아오셔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강한 팔로 붙드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이사야 40:10). 전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때 강한 팔로 그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 백성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심으로 소개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나심이나 예수님의 오심을 뭐라고 소개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돌아오시게 된 것은 그들의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과 함께하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도 그들 가운데 집을 짓고 거하십니다. 이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므로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노래부를 때 예수님이 오셔서 무엇이 그렇게 기쁜 일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죄가 용서되면 왜 좋습니까?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셔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사시면 무엇이 좋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빛나는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그 자체로 특권이며 기쁨이며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애굽에 팔려가도 온 세상을 구원하는 생명의 구원자가 됩니다.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얻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실현됩니다. 사무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애굽에서 대대로 종살이하던 사람들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모델이 될 나라를 건설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셔서 함께 사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2~23
예수님의 나심과 오심과 죽으심은 모두 우리에게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 사실을 이렇게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시편 기자도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 73:28).
성탄절이 기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천사들의 찬송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왜 땅에는 평화인가?
누가복음을 보면, 천사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가 나셨다고 소식을 전하기 전에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3~14
이제 우리는 천사들의 찬송가에 담긴 메시지를 생각해 봅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이 사건이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며 사람들 중에는 평화입니다.
저는 여기서 천사들이 전해준 평화라는 메시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왜 땅에는 평화인가?’라고 정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천사들은 왜 땅에는 평화라고 노래했을까요?
저는 이것이 구약성경의 예언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이사야 52:7~8
이사야는 시온을 향하여 달려오는 전령을 소개합니다. 그는 좋은 소식을 가져옵니다. 그는 평화를 공포합니다. 그 전령은 ‘이제 평화입니다!’ 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는 아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령은 ‘우리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라고 다시금 외칠 것입니다. 그들은 노래하면서 시온을 향하여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들입니다.
저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천사들이 이사야의 전령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누가는 옛적에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 하늘의 전령들이 와서 노래하면서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소개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천사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사야의 전령들이 말하는 평화와 유사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시온에게 평화를 공포하는 전령들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 시온의 전령들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는 평화가 없었나요? 그들에게 평화가 없었을 때 그들은 무엇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평화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었을까요?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천사들의 찬송이 의미하는 것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온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평화의 땅(city of peace)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평화를 누릴 수 없으므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원수들이 성전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과중한 세금으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이미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열국의 복이 되기 위한 선민이었지만 지금은 열국의 조롱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장정들은 다 포로로 끌려가고 이제 남은 것은 힘없는 여성들과 노인들뿐입니다. 게다가 그 땅은 이제 황량하고 척박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현실 속에 하루하루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이 평화를 잃어버린 시온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 도시에 평화를 공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수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언약과 시내산 언약을 다시 실행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열방에 빛이 되는 민족으로 선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빛나는 대리인 공동체가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그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기대하시던 일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구원이며 그 시작은 평화를 공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살던 백성들이 가졌던 그런 갈망과 동일한 갈망을 예수님의 시대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하늘의 전령인 천사가 나타나서 평화를 공포한다면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제 성취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런 모든 갈망과 기대가 실현되고 원한이 풀리며,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부푼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는 노래가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서 과연 평화가 임했습니까?
3. 예수께서 가져오신 평화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두루마리 성경을 펼쳐서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제가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일하려고 나섰습니다!’라는 선언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은 이사야 61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다.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택하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여남을 선포하게 하게 하심이다. 이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때가 되었다고 전하라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설교를 마치신 후에 두루 다니시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며 눌린 사람을 풀어주셨습니다. 억눌리고 다쳐서 사람구실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셔서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자리를 들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만났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당당하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구원이자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고 기뻐했습니다.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애굽에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빛나는 언약백성으로 세웠다면, 이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새로운 일에 동참하려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전에 이스라엘은 한때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다윗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 안에 계셔서 세상 모든 나라가 우러러 바라보는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을 통하여 들은 예언에 따르면, 이제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다시 오셔서 그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고 열방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그 백성에게 와서 경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므로 예수님의 표적과 가르침을 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직업을 팽개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일을 행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고침을 받으며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자신이 본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예수님의 삶은 시온을 향하여 좋은 소식을 들고 달려온 사람이 전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실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평화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새 날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삶은 이제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입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사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보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이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에 가까이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면서 그 은혜를 힘입는다면 좋을 것이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은 낡은 천막으로 되어 있고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런 마음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며 원래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공동체를 더 나은 곳이 되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애쓰는 이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을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맡겨 주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지만 현실은 불의하고 비정하다면 그 사람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본래 어떤 임무를 맡았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현실에서 타협하고 율법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에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약한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 하려고 애쓸 때 기득권자들로부터 미움과 견제를 받을 때 그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위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 평화와 구원을 주시려고 오셨다고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전해야 할 평화
천사들은 예수님의 나심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서 세상을 구원하고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바로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실 때 제자들에게도 성령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성령을 받아 자신의 소임을 다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성령을 받으면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전령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 20:21~22) 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세상에 전령으로 보내셨습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노래하기를 예수님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실 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서 바로 그 일을 할 때가 되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세상에 평화가 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교회가 세상에 평화의 소식을 전하고 평화를 일구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천사들이 노래하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예수님의 삶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된 비결은 하나님이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동일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 말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평화를 위해서 일하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니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7~19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캐롤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왜 기쁜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감할 수 없는 노래를 계속 부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천사들처럼 예수님의 나심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뜨거운 마음과 기쁨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오른쪽 보좌에 앉아 계시니 이제는 자신들이 이 평화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특권이자 임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나심을 한편으로 기뻐하면서 동시에 온 세상에 외칩니다.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이 나셨다고. 그리고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언약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참 인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우리들은 다시 한번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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