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거사(無盡居士)
*개구리 소리에 듣고 깨달음을 얻다.
장구성(張九成) 무진거사(無盡居士)는 대혜어록(大慧語錄) 서장(書狀)에 나온다. 봄철에 개구리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거사는 젊어서는 진사(進士) 공부를 하는 사이에 불경(佛經)도 보면서 수행에 마음을 쏟고 영은사(靈隱寺) 오명선사(悟明禪師)를 친견(親見)하고 불교종지(佛敎宗旨)를 묻자, 세속 벼슬 공부를 하는 사람이 어찌 생사문제(生死問題)를 참구(參究)하려 하느냐 묻자, 옛 성인의 말씀이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처음부터 다르지 않아 옛날 훌륭한 신하 중에도 선문(禪門)에서 도를 얻은 사람이 부지기수이거늘 유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불교계의 큰스님인 선사께서 어찌 말로 저를 막으려 하십니까? 오명선사는 그 정성이 갸륵해서 그를 받아주며 말했다. 이 일은 생각 생각에 놓아서는, 안된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저절로 깨치게 되어있다. 조주선사(趙州禪師)께 어떤 승려가 묻기를 조사(祖師)가 서(西)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자, 조주가 ‘뜰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라고 답했다. 이 화두(話頭)를 들어보아라. 그러나 장구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호문정공(胡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을 뵙고 마음 쓰는 법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호안국은 논어·맹자의 인의(仁義)를 유추해보면, 그 속에 요점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은 그 말을 염두에 두었다. 어느 날, 밤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이 비롯되는 곳이다(惻隱之心仁之端) 라는 구절을 깊이 궁구했다. 그러다 장구성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홀연히 뜰 앞 잣나무 화두가 들리며(擧)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 게송을 지었다. 봄 하늘 달밤에 한마디 개구리 소리가( 春天夜月一聲蛙) 허공을 때려 깨서 한 집을 만들도다.(撞破虛空共一家) 바로 이런 때를 뉘라서 알겠는가! (正恁麽時誰會得) 산꼭대기 곤한 다리에 현묘한 도리 있도다.(嶺頭脚痛有玄妙) 장구성 무진거사는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를 친견(親見)하기를 바라던 차에 대혜선사(大慧禪師)로부터 내왕(來往)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선사를 처음 만나서는 여러벗들과 함께 날씨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대혜종고선사(大慧宗杲禪師)는 다음날 제자들에게 장시랑(張侍郞)이 이미 깨달음이 있더라고 말했다. 목격전도(目擊傳道)다. 눈으로 척! 보면 안다. 동도방지(同道方知)다. 도가 같으면 바로 안다. 그것이 오자세계(悟者世界)다. 얼마 뒤에 장구성이 대혜선사를 찾아와서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의 뜻(格物致知)을 물으니, 대혜선사(大慧禪師)가 답(答)했다.
공(公)은 격물(格物)만 알았지, 물격(物格)은 모르는군? 거기에도 어떤 방편(方便)이 있나요?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反亂)을 일으켰는데, 그 사람은 난이 일어나기 전, 낭주 태수로 있을 때 초상화(肖像畵)를 그려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당(唐) 현종(玄宗)이 촉(蜀) 땅에 행차(行次)했을 때, 그 그림을 보고, 격노(激怒)해 신하에게 그의 목을 칼로 치라고 하였다. 마침 안록산은 섬서성(陝西省)에 있었는데 갑자기 목이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모두가 듣고 어리둥절하였으나 홀로 장구성만 대혜선사의 말뜻을 깨닫고 게송(偈頌)을 읊었다. 자소(子韶)는 격물(格物)이요(子韶格物), 묘희(妙喜)는 물격(物格)이니(妙喜物格) 한관(一貫)이 얼마나 되는가?( 欲識一貫) 오백돈이 둘이로다.(兩箇五百) 이후 장구성은 경산에 머물고 있는 대혜선사(大慧禪師)를 자주 찾아갔고, 서장에 보면 오고 간 편지가 많았다. 장구성과 대혜선사는 남안(南安)으로 유배(流配) 생활을 14년 보냈다. 유배 생활을 끝내서 서로 만나 의기투합(意氣投合) 선리(禪理)로 도담(道談)을 나눈다. 장구성 무진거사가 중승(中丞) 하백수(何伯壽)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答書)를 보낸다. 내가 경산스님과 절친하게 왕래하는 것은 다 유래가, 있는 일이외다. 옛일들을 살펴보니, 배휴(裴休)도 황벽(黃檗希運)스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한퇴지(韓退之)도 태전(太顚)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소! 또한, 이습지(李習之:翺)는 약산(藥山惟儼)스님께, 백낙천(白樂天)은 조과(鳥果道林)스님께, 양대년(楊大年(億)은 광혜(廣慧常總)스님께, 이화문(李和文)은 조자(照慈:蘊聰)스님께, 소동파(蘇東坡)는 조각(照覺:東林常總)스님께, 황산곡(黃山谷:庭堅)은 회당(晦堂祖心)스님께, 장무진(張無盡:商英)은 도솔(兜率從悅)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분들을 어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변소 청소나 하는 노파들과 같다 하겠습니까. 경산스님은 그 마음 바탕(心地)이 생과 사를 하나로 보고 사물의 이치를 지극히 궁구하였습니다. 나아가 도를 논하기를 좋아했는데, 선비들도 당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늘에서 해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름난 명사와 사귀기를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세상에서 행세하려 드는 것은 도둑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찌 이분들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지난번 사형께서 나를 일깨워주신 편지를 받고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문하에서 같이 수학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쏟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겠습니까. 덕 높으신 사형께서는 살펴주소서. 대혜종고선사(大慧宗杲禪師)는 간화선(看話禪) 화두참선(話頭參禪)을 제창(提唱)한 선장(禪匠)이다. 선사는 원래 스승은 담당문준선사였다. 문준선사가 입적할 때 원오극근선사(圓悟克勤禪師)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라고 유훈(遺訓)을 받았으나 문준어록을 편집차 각범혜홍선사를 뵙고 상의하던 차에 재상(宰相)인 무진거사를 찾아가서 문준선사 탑명(塔銘)을 의뢰하게 된다. 호북지방에 있던 장상영 재상 처소에서 8개월간 머물게 되어 그때 장거사가 원오선사(圓悟禪師)를 찾아갈 것을, 권한다. 대혜선사가 원오선사와의 사제 인연은 장거사 권유에 따른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무진거사와 대혜종고선사는 막역(莫逆)한 인연이 된 것이다. 스승 원오 선사 열반 후, 1137년에 항주(杭州)의 경산(徑山) 능인사(能仁寺)로 옮겨가 선종을 크게 선양했는데, 이때 전국에서 수천 명의 승려들이 몰려와 설법을 들었고, 제자만도 2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무렵에 당시 송 황제였던 효종(孝宗)에게 설법하고 대혜선사(大慧禪師란 존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선사를 부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라고 한다. 당 송 때 중국 선불교는 무진거사와 같은 눈 밝은 재가 거사들이 참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