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충남 서천 송림마을 솔바람숲 = 바닷가 모래바람 막아준 서천 검은 송림…소중한 생명 지켜내다입력 : 농민신문 2021-06-25 솔바람숲 곰솔 아래에는 맥문동·사철패랭이·송엽국 등이 심겨져 있어 더욱 싱그럽다. 소나무 아래 진분홍색 송엽국이 아름답게 피어 운치를 더한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⑩ 충남 서천 송림마을 솔바람숲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조성 한때 산업단지 계획으로 사라질 뻔 주민 노력으로 보존…숲대회 공존상 곰솔 1만2000여그루 빼곡히 심겨 호젓한 숲길 걷다보면 평온함 얻어 친애하는 k에게
‘이제 그만 접을까.’
친구들과 바다에 가서 네댓시간 낚시를 하다보면 슬슬 드는 생각입니다. 바닷물에 넣어놓은 살림망을 들어보니 회를 떠서 서너명이 술안주 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아도 모자라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이런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한두마리만 더 잡지 뭐.’
그렇게 한두시간 더 앉아 있다보면 몇마리 더 잡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허탕 치기 일쑤입니다. 괜히 해만 지고 술 마실 시간만 줄어들 따름이지요. 우리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요.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에 있는 ‘솔바람숲’을 다녀왔습니다. 장항읍은 서천군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서해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북 군산시와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제1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을 지나 바닷가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니 울창한 소나무숲이 보입니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풍겨오는 비릿한 바다향이 정겹네요.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는 물이 빠져 휑한 갯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솔바람숲’ 혹은 ‘장항송림산림욕장’이라고도 불리는 솔숲은 서해안 갯벌을 품은 인공 소나무숲입니다.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바닷가에서 날리는 모래와 바람으로부터 학교와 주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에요. 면적은 약 27.7㏊에 이르며 길이는 해변을 따라 2㎞에 육박합니다. 수령 50∼70년의 곰솔 1만2000여그루가 심겨져 있습니다. 한때 군장국가산업단지 조성계획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숲과 갯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4년에는 ‘제1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지요.
산림욕장의 냄새는 바다 냄새뿐만이 아닙니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도 가득합니다. 숲길을 걷다보면 갯냄새와 피톤치드로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2014년 산림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로, 응답률이 47%에 달했다고 합니다. 2위를 차지한 은행나무는 8%에 불과했고요. 그만큼 우리는 소나무와 밀접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집이 소나무로 지어졌고 그 속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몸조리를 했으며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는 금줄에는 솔가지가 끼워지고 소나무로 뒤덮인 뒷동산은 아이의 놀이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는 옛말처럼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松肌)는 굶주리던 시절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지요. ‘지독한 가난’을 뜻하는 ‘똥구멍이 찢어지게’라는 말도 소나무껍질을 먹고 생기는 변비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소나무로 만든 가구와 생활하다 소나무로 만든 관 속에서 영면하니 소나무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입니다.
이곳의 소나무는 ‘해송’이라고도 부르는 ‘곰솔’입니다. 곰솔은 대부분의 식물이 살아갈 엄두도 못 내는 해변가에서도 잘 자랄 만큼 강인한 나무지요. 남해안의 섬에서부터 동서 해안을 따라 띠를 이루며 산다고 합니다. 소나무의 줄기는 붉은색이지만 곰솔은 껍질이 흑갈색이라 한자로는 ‘흑송(黑松)’이라 부르는데, 이것을 우리말로 ‘검솔’이라 부르다가 ‘곰솔’이 됐다고 합니다.
두시간 가까이 솔숲길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호젓한 숲길과 공기가 이렇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주변 곳곳에 이런 숲들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류는 ‘생존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자연을 희생시키며 살고 있습니다.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서 지난 10년간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흡수한 것보다 20%나 많다고 합니다. 또 2019년 현재 화재와 벌채로 황폐해진 산림의 면적은 2년 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닙니다. 2018년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론 밀로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진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전체 포유류의 60%가 소·돼지 등 가축이며 36%가 인간인 데 비해 야생동물은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0.01%에 불과한 인간이 모든 야생 포유동물의 83%와 식물의 절반을 파괴했다는 분석입니다.
밀로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 지구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불균형적인 상황을 초래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지요. 인간의 욕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요. 장항스카이워크 솔바람숲 중간쯤에는 250여m 길이의 스카이워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카이워크는 바다를 향해 뻗어 있습니다. 올라서니 서해는 물론이고 솔숲과 빈 갯벌, 70년간 금·구리·납 등을 제련하다 2008년 가동을 멈춘 장항제련소도 보입니다. 다시 내려와 솔숲을 걷다 백사장 쪽으로 내려갑니다. 갯벌 쪽에 자리한 쉼터에 앉아 바다를 바라봅니다. 내리던 안개비는 거세지고 멀리 바다 끝에서는 물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저기 빈 갯벌에 차오는 것은 행복일까요, 슬픔일까요. 물이 차오자 먼 데 앉은 섬들은 더 뒤로 나앉고 바닷물은 금방이라도 제 무릎을 덮칠 태세입니다. 숲길을 걷는 내내 평온했지만 당신 몰래 혼자서 소나무와 바람, 밀려오는 파도와 내리는 비를 만나는 일이 마치 죄라도 되는 것 같네요. 평온하지만 혼자만의 행복이 혹여 당신께 죄가 될까 봐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우리의 삶은 늘 ‘조금만 더’와 ‘이제 그만’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살림망 속의 고기를 들여다보듯 현재를 돌아볼 일입니다. 잡은 물고기는 생각에 따라 충분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겠지요. 결국은 마음의 몫, 선택의 문제입니다. 부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 없이 혼자 걷는 것조차 죄스러워질 만큼 아름다운 숲들이 더는 없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K. 우리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요.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서천에 왔다면? 사막여우 있는 ‘국립생태원’ 부드러운 면발 ‘모시해물칼국수’입력동백정 함께 즐길 만한 볼거리 & 먹거리 사막여우·프레리도그 만날 수 있는 ‘국립생태원’ 모시가루 섞어 부드러운 면발 ‘모시해물칼국수’ 충남 서천은 바다와 인접해 바다와 육지의 생태에 관한 볼거리가 많다.
먼저 국립생태원은 한반도 전체의 생태계를 비롯해 열대·사막·지중해·온대·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사막여우와 프레리도그 등을 만날 수 있다. 국립생태원의 프레리도그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는 다양한 해양생물의 모습과 생태적 특징을 표본과 영상을 통해 체험해볼 수 있다. 해조류·플랑크톤·무척추동물·척삭동물·어류·포유류 존으로 이뤄져 있으며 7000여점의 해양생물 표본이 전시돼 있다.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도 가볼 만하다. 봄·여름에는 도요·물떼새들의 비행을 탐조하고 여름에는 갯벌 생태, 겨울에는 농경지를 찾는 오리와 기러기 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겨울철 가창오리 떼가 펼치는 화려한 군무가 장관이다.
서천의 대표 특산품인 한산세모시의 우수성을 알 수 있는 한산모시관에도 들러보자. 이곳에서는 전시물과 영상을 통해 모시풀 수확부터 모시 짜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
마량리동백나무숲과 동백정도 빼놓을 수 없다. 500여년 수령의 동백나무 85그루가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돼 있다. 동백꽃은 3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루며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환상적이다.
먹거리로 서천 9미 중 1미는 해물칼국수다. 조개와 각종 해산물로 우려낸 국물 맛이 일품이다. 모시해물칼국수 특히 모시가루를 섞어 반죽한 모시해물칼국수는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모시랑 해물칼국수’ 식당의 칼국수는 바지락·동죽·가리비 등 조개가 풍성하게 들어 있는 데다 모시가루를 섞어 반죽한 면이라 텁텁하지 않고 부드럽다.
서천 앞바다에서 잡히는 아귀로 만든 아귀탕은 매운탕처럼 얼큰해 인기다. 아귀 살은 쫀득쫀득해 씹는 맛이 좋고 껍질은 물컹물컹해 입속에서 녹는다. 서천=글·사진 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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