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안제미(擧案齊眉) - 밥상을 눈썹까지 들어 바치다(남편을 극진히 공경한다)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매 맞는 남편의 시대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 생존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변화에는 늘 방향과 속도의 문제가 개입된다. 특히 방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방향이 잘못되어 변화 이전보다 못한 세상이 되기도 한다. 인류 역사 시작 이래로 수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그 변화는 문명의 세기라는 20세기 이후 만큼 급속하고 많은 변화를 이룬 적은 없었다. 특히 문명의 발전은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변화시켜 왔으며 특히 상당한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룩했다. 그중에서 인간관계의 질서의 변화와 혁신도 포함된다. 인간관계의 질서의 변화는 흔히 맹자가 말하는 인륜의 핵심이라 하는 오륜의 영역에서 보면 혁명적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사라지고 국민과 지도자(대통령) 사이에는 의리의 관계가 아닌 계약의 관계로 변화되었으며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수직적 질서는 완전히 파괴되고 수평적 질서만 존재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존재하기는 하나 그 의미는 상당히 전이되었다. 거기다가 부자유친(父子有親)마져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기초적이고 소중한 가족제도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간관계의 질서에 있어서 문명 발전은 특히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확대 신장시켜 왔다. 그리하여 이제 문명국이라 하려면 신분은 폐지되어야 하며, 남녀 간의 평등은 필수적이어야 한다. 특히 산업 문명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달은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참여 확대와 가정에서 해방을 촉진시켰다. 일부 영역에서는 여성은 사회적 생산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문명화된 지금 과거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니 하는 말은 아예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문명사회에서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남존여비(男尊女卑)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히려 여존남비(女尊男卑)의 세상이 된 듯하다. 그런데 남존여비도 폐기되어야 하지만 여존남비 또한 폐기되어야 한다. 남녀는 동등하게 존중받고 동등하게 비하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였는데 그것이 적대적 페미니즘 운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 페미니즘 운동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되어 창과 방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을 볼 때 전에는 남북갈등(南北葛藤) 남남갈등(南南葛藤) 빈부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 등이 문제였으나, 이제는 남녀갈등이 사회의 표층으로 올라와 서로 심하게 다투고 있다. 특히 남녀갈등은 사회 전반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가장 심한 갈등은 남녀 갈등(33.5%)이었다. 이것은 빈부 갈등(32.5%, 이념 갈등(12.8%)보다 높은 수치였으며 남녀 갈등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헤럴드 경제, 2022. 01.05. 우리사회의 가장 큰 갈등,‘남녀․빈부...이념 갈등’은 후순위) 이는 남녀관계가 이제는 역할의 보완관계가 아닌 지독한 경쟁 관계로 바뀌었으며 특히 취업, 국방, 육아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서로 간의 책임공방과 피해 의식에서 출발한 것 같다. 이러한 피해 의식은 공정의 상실을 내면에 깔고 있다. 이제 여성은 가정에서 살림하고 육아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엄연한 정치 사회적인 행동 주체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정에서의 부부관계의 질서도 완전히 변화시켰다. 옛날 황제처럼 군림하던 남편은 이제 설 땅이 없어졌다. 남자들은 이제 가정에서 살림하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결혼도 과거는 대체로 남자가 여자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여자가 남자를 선택한다. 그래서 ‘퐁퐁 남’, ‘설거지 론’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제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잡혀 살아야 한다. 잡여 살지 않더라도 적어도 군림하면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편에선 남자가 비참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늘 사회문제가 되어 온 가정 폭력을 놓고 볼 때도 과거에는 남편의 폭력이 항상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의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아내들의 역할과 힘이 강해졌다는 증거이며 남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제 매 맞는 남편을 위한 보호소까지 생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3년 주기로 하는 가정 폭력 실태조사를 전국 단위로 시행된 첫해인 2004년에는 ‘최근 1년간 아내의 폭력을 경험’한 남성이 10명 중 3명꼴(32.6%)로 집계되었다.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아내는 37.3%였다. 그런데 15년 후인 2021년 조사에선 아내의 폭력을 경험한 남편과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아내의 비율이 26% 대 28.9%로 비슷해졌다. 아내의 폭력 비율이 늘어나고 심해졌다는 이야기다. 남편에게 가하는 가장 빈번한 폭력은 ‘통제’와 ‘정서적 폭력’이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귀가 시간을 허락받게 하고, 본가 사람이나 친구와 못 만나게 하고, 누구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는지 감시하는 행동이 통제의 폭력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의 물건을 부수고, 위협하는 등 정서적 폭력이다. 성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남편은 100명 중 1명이 넘는다(아내는 100명 중 6명이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촬영해 동의 없이 공개하는 식이다. 때리고 밀치고 꼬집고 차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흉기로 위협한다. 어떤 집은 장모까지 가세해 피해를 키운다고 한다. 남자가 왜 약한 여자에게 맞고만 있을까. ‘오죽 남자가 못났으면’ 싶어 수치스럽고, 아이들 생각해서 참는다. 때리는 아내를 말리려다 몸싸움이 나 경찰이 오면 남자가 불리하다. 아내가 때리기 전 남편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경우도 적지 않다. 전국 가정폭력상담소 128곳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2021년 하루 평균 722건이었는데 2021년엔 750건으로 늘었다. 상담 건수 10건 중 3건은 피해자가 남성이다. 아내의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남성들은 모텔을 전전하거나 노숙자 보호시설을 찾는다고 한다. 여성가족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남성을 위해 첫 전용 보호시설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동아일보 2023. 01.19 ‘횡설수설/이진영, 매 맞는 남편 위한 보호소 생긴다> 그런데 남녀 간은 물론 부부간은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지 서로 적대하거나 공격하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존중받아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존중받아야 한다. 한 일방이 다른 일방을 딛고 서는 구조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옛날에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존중하던 시절에도 남편은 아내를 극진히 존중하였다. 존중하였기에 존중받게 된 것이다.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는 바로 그런 예의 하나이다, 2. 거안제미(擧案齊眉)의 유래와 의미 거안제미(擧案齊眉)란 말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밥상을 눈썹까지 들어 바친다는 뜻이다. 밥상을 눈썹까지 올리니 얼마나 극진한가? 물건을 상대에게 줄 때 고개를 조아려 숙이고 눈썹까지 치켜들어 올려주는 것은 왕이나 황제에게 하는 행위이다. 남편에게 그렇게 하니 남편을 황제나 왕으로 대접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아내가 남편을 극진하게 받든다는 의미로 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아내만 남편을 극진히 받던 것이 아니다. 남편도 아내를 극진히 사랑한 것이었다. 중국의 후한 시대에 양홍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자는 백경(伯冏)이었다. 그는 선비로 부풍 평릉 사람이었다. 집은 가난했으나 지조와 절개가 곧아 선비의 풍모가 넘쳐났다. 같은 현(縣)에 맹씨 성을 가진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몸이 몹시 뚱뚱하고 얼굴이 검었는데 돌절구를 번쩍 들 만큼 힘이 세었다. 그녀는 서른이 넘도록 여기저기서 혼사가 들어왔으나 모두 거절하고 시집을 가지 않아 사람들이 그녀에게 왜 시집을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양홍 같은 현자가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양홍만 있었다. 양홍이 이 말을 듣고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양홍이 색시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색시가 궁금하여 “혼인을 하였는데 왜 잠자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양홍이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라도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색시는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하고는 그 후로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옷차림으로 생활을 하였다. 양홍은 그런 아내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행복하고 단란한 생활을 했다. 양홍은 글을 많이 한 선비인지라 농사짓는 틈틈이 시(詩)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시에는 왕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은 퍼져 왕실에까지 들어갔고 왕실에서 그를 잡아 문초하려 하자, 그는 가솔(家率)을 데리고 오(吳)나라로 가서 고백통(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 지기가 되었다. 양홍이 매일 고백통의 집에 가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아내는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다가 눈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梁鴻字伯扶風平陵人也 家貧而尙節介 同縣孟氏有女肥醜而黑 力擧石臼擇對不嫁 日欲得賢如梁 양홍자백부풍평릉인야 가빈이상절개 동현맹씨유녀피추이흑 역거석구택대불가 일욕득현여양 伯者鴻聞而聘之 字之曰德曜 名孟光至吳爲人賃每歸 妻爲具食 不敢於鴻前 仰視擧案齊眉 백자홍문이빙지 자지왈덕요 명맹광지오위인임매귀 처위구식 불감어홍전 앙시거안제미)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 위의 고사를 보면 양홍의 아내가 그저 남편에게 거안제미(擧案齊眉)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결혼 대상자를 택할 때부터 집안과 가문보다 존경할만한 현인(賢人)을 택했다. 맹씨의 남편 양홍은 바로 그러한 존경할만한 현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맹씨를 자진하여 택한 양홍 역시 현인다웠다. 남자들 대부분이 아내를 택할 때 미색(美色)과 몸매, 집안과 가문 등을 따지지만 양홍은 아내의 사람됨 하나만을 살폈다. 이렇게 보면 둘 다 사람됨이 훌륭했고 서로 의지하고 존중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가는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었으며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둘의 이상과 가치관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것은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남편은 남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고 아내 또한 아내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심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른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부부가 함께 존중하는 사회를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은 부부가 함께 존중할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세계 상위이며 가족과 가정이 급속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는 걱정들을 많이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가족 특히, 부부의 필요와 존재에 대한 가치관과 인식의 왜곡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배우자는 함께 부족함을 채워가고 위로하는 존재이지 욕망 충족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배우자를 통해 욕망을 충족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가정, 부부, 배우자의 개념과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배우자가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부족함을 채우고 위로해 가면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대상이라면 서로 간에 욕망보다는 존중과 배려, 사랑과 위로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는 남자고 여자고 너나 할 것 없이 욕망 충족에 너무나 집착한다. 물론 욕망은 삶을 개척하는 에너지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의 욕망만을 앞세울 때 모든 인간관계는 균열이 간다. 특히 부부간의 관계는 더욱 균열이 간다.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이나 남편을 직간접으로 폭행하는 아내 역시 자기 욕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 욕망만쫓다가 나이 들어서 보니 허탈함만 남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하여 실의에 차 방황하고 있었다. 살 집이 없어 부부와 두 자녀를 데리고 산자락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겨울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 비닐하우스 지붕이 무너져 잠자는 안으로 눈이 쏟아져 들어왔다. 부부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날을 새웠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 모든 빚을 갚고 서민 갑부가 되었다. 오늘날은 아내나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배우자가 참아주지 않고 이혼을 해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된 것 같다. 그 서민갑부는 자기가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아내의 위로였다고 한다. 힘들 때 배우자의 존중과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고사에 나오는 거안제미(擧案齊眉)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여야 한다. 그것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이제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밥상을 차려 바쳐 올릴 수 있어야 하고, 아내도 남편을 기다리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부는 각자의 욕망을 점검하고 조정하고 존중하면서 절제도 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나의 욕망만 쫓는다면, 부부는 다투게 되고 결국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동양고전인 소학(小學)에 이르기를 ‘부화부순가화지본(夫和婦順家和之本) 즉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양순한 것이 가정 화목의 근본’이라 하였다. 온화하고 양순하려면 욕망의 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간에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욕망 충족기반의 개방적 문명사회에서 욕망의 종류와 지향 방향에 대한 점검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방향이 불명확하고 가치가 왜곡된 욕망 지향은 오히려 그 자체가 독이 되어 자기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매 맞는 아내, 매 맞는 남편이 양산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방향과 가치를 상실한 무한욕망 추구의 산물이다. 모든 화목의 중심에는 중용(中庸)의 도리가 숨어 있다.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의 미덕은 쌍방이 그저 중간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을 통한 최선의 도리를 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쌍방의 노력이 성실해야 한다. 욕망의 중용을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 맞는 아내, 매 맞는 남편이 없는 세상, 가정이 건강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그런 세상이 바로 가장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남녀평등의 세상, 남녀가 함께 세상에 나아가 일하는 세상에서 남편도 아내에게 거안제미(擧案齊眉)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거안제미(擧案齊眉)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부부, 더없이 좋은 가정이 될 것이다. 문명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인간이 문명의 도구는 아니다. 욕망을 잘 조절하고 그 방향과 가치를 함께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쌍방의 거안제미(擧案齊眉)는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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