祭 제사 제
신을 들이다 ; 제
祭의 갑골문1
祭의 갑골문2 祭의 갑골문3
祭의 금문 祭의 전문
祭 자에 대한 기존의 자원(字源)은 ‘손에 신에게 바치는 고기를 들고 있는 모양’에서 ‘제사(祭祀)’의 뜻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祭자의 [又+肉+示]를 보이는 그대로 풀이한 것입니다. 요즘의 사람들이 제사하면 떠올리는 장면이 손에 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아니듯이 갑골문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고깃덩이’를 손에 든 모양이 ‘제사’의 관념일리는 만무합니다.
제사란 무릇 신(神) 인간의 접촉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실제적이지 않은 접촉은 ‘불러들임’이라는 제사 의식을 통하여 시각화 실제화 시키는 것입니다.
祭의 갑골문1 자형은 月[①]과 又[②]의 사이에 점들이 찍혀 있는 모양입니다. 月 과 又의 조어(造語)는 有와도 같으며, 有가 ‘들다(/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거나 하다)’를 나타내며, 작은 점들은 손[又]의 동작상을 의미합니다.
갑골문2 자형의 ③[표시요망] 부분은 고개를 젖힌 사람의 모양으로 주변의 점들을 포함하면 次(버금 차)와 거의 흡사하지만, 여기서는 제사 의식[불러들임]을 통하여 응하고 있는 존재를 나타내며, 갑골문3 자형의 ④[표시요망] 부분은 그릇 형상의 안에 짧은 세로획이 놓여 있는데, ‘들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것이며, ⑤[표시요망] 부분은 神(귀신 신)의 축약인 示(보일 시)입니다. 금문 및 전문에서는 ‘달/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月을 쓰고 있습니다. 모두 ‘귀신을[示] 들이는[月] 행위[又]’으로 ‘제사(祭祀)’의 뜻을 나타냅니다.
제사(祭祀)에 해당하는 배달말은 확인되지 않은데, 제사는 우리민족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와 역사의 근간입니다. 수 천 년 이상을 면면히 이어온 ‘제사’라는 낱말이 ‘고대 중국어’의 유입에 의하여 밀려나 버리고 우리민족의 기억에서 아득히 지워져 버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컴퓨터, 아이스크림 등과 같은 기존에 없던 물건이 유입되면서 생겨난 외래어가 아니라 본래에도 있던 낱말이 나중에 유입된 외국어에 완전히 밀려날 수는 없던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祭가 유입된 외래어로는 ‘[さい/사이]’라고 읽으며, 본래부터 써오던 말로는 ‘[まつり/마쯔리]’라고 소리 냅니다.
배달말에서 ‘제사(祭祀)’에 해당하는 낱말이 딱히 없는 것은 祭의 독(讀) [제]가 바로 본연의 배달말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祭祀(제사), 祭禮(제례), 祝祭(축제), 冠婚喪祭(관혼상제) 등에서 祭가 ‘제’의 뜻입니다.
際 즈음 제/가 제
들다, 드나들다, 가장자리
際의 전문
際의 전문 자형은 阜(언덕 부)와 祭의 합자입니다. 阜는 구별자로 ‘경계, 범위’ 등의 기준을 의미하며, 祭의 ‘들다/들이다’와 더하여 ‘~에 들다, 드나들다’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 ‘드나듦의 경계’라는 것에서 ‘가, 가장자리(/둘레나 끝에 해당되는 부분)’의 뜻도 나타냅니다.
實際(실제 ; 사실의 경우나 형편)는 ‘실지로 드나들다’의 뜻이며, 際遇(제우 ; 좋은 때를 당하여 만남)는 ‘드나들다가 우연히’의 뜻이며, 分際(분제 ; 신분의 높낮이와 위아래의 한계)는 ‘신분에 따른 드나듦’의 뜻입니다.
無際(무제 ; 넓고 멀어서 끝이 없다)는‘가(/가장자리)가 없다’의 뜻이며, 邊際(변제 ; 시간, 공간, 정도 따위에서 그 이상이 없는 한계)는 ‘변두리와 가장자리’의 뜻이며, 水際(수제 ; 물가)는 ‘물 가장자리’의 뜻입니다.
才難 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論語』
인재는 어렵다. 그렇지 않은가! 당우(唐虞)에 들어서는 이에 대하여 성해졌지만, 부인(婦人)이 있었던 지라 아홉일 따름이다.
상기 문장의 際를 주희(朱熹)는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풀이하여 현재의 한자 사전에도 직접 그런 뜻으로 등재가 되어 있으며, 정약용(丁若鏞)의 경우에는 ‘만남’, 즉 ‘교제(交際)’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모두 문맥에 맞춘 것에 지나지 않으며, 際 가 나타내는 실제의 뜻은 배달말의 ‘들다(/어떠한 시기가 되다)’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작년보다 가뭄이 더 심하게 들었다’의 예에서 앞의 ‘들다’는 ‘어떠한 시기가 되다’의 뜻이며, 뒤의 ‘들다’는 ‘어떤 일이나 기상 현상이 일어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交際(교제)는 ‘사귀고 드나들다’의 뜻이며, 國際(국제)는 ‘나라의 드나듦’의 뜻입니다. 한문 문장에서 상투어(常套語)로 쓰이는 此際(차제)는 ‘이 즈음, 이 때/때마침 주어진 기회’로 풀이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에 들어서’의 뜻입니다.
無往不復 天地際也. 『周易』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과 땅의 드나듦인 것이다.
상기 문장의 際는 ‘사이, 두 물건 사이의 중간’ 등으로 일반적으로 풀이하지만, 앞의 往(갈 왕)과 復(돌아올 복), 즉 往復(왕복)에 견주어 볼 때, 際의 원뜻은 ‘드나들다’입니다.
水際(수제)는 ‘물가, 물 가장자리’ 등으로 풀이하지만, 실제의 뜻은 ‘물이 드나들다’에 있으며, 이 ‘드나듦’에서 ‘가’의 뜻이 유추된 것입니다.
臣謹案詔書律令下者 明天人分際 通古今之義 文章爾雅, …. 『史記』
신이 삼가 조서(詔書)와 율령(律令)의 하교에 상고하니, 밝게 하늘과 땅의 분수에 들고, 고금(古今)의 옳음에 통하며, 문장이 아름다우니, ….
상기 문장의 際는 ‘정도’라고 일반적으로 풀이하지만, 배달말의 ‘들다(/어떤 범위나 기준, 또는 일정한 기간 안에 속하거나 포함되다)’로 쓰인 것입니다.
※ 擦(비빌 찰/문지를 찰)은 전문 자형에는 없지만, ‘손으로 드나들다’에서 ‘비비다, 문지르다’의 뜻이 도출됩니다.
察 살필 찰
들어 보다, 드러내다, 들추다
察의 전문
察의 전문 자형은 宀과 祭의 합자입니다. 宀은 자형의 요소로 쓰여, ‘처해진 입장이나 상황의’의 뜻을 나타내며, 祭의 示는 여기서는 ‘보다’로 視(볼 시)의 축약입니다. 반복되는 동작을 의미하는 又와 ‘들다’의 뜻을 나타내는 月로 ‘하나하나 들어서 보다’로 ‘들추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觀察(관찰)은‘둘러보고 들추다’의 뜻입니다. 省察(성찰), 考察(고찰), 洞察(통찰) 등의 성어에서 察은 단순하게 살펴본다는 뜻이 아니라, ‘들추다(/숨은 일, 지난 일, 잊은 일 따위를 끄집어내어 드러나게 하다)’의 의미합니다.
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中庸』
시경(詩經)에 ‘솔개는 하늘에서 활개치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고 이르니, 그렇게 아래위로 들추는 것이다. 군자의 도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서 끄트머리를 만들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에 들춘다.
상기 문장의 察이‘들추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淮南子』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들추면 무리가 없다.
상기 문장의 察은 일반적으로 ‘살피다’로 풀이하지만, 실제로는 ‘들추다’의 뜻이며, ‘살피다’에는 目祭를 써야 합니다. 不察(불찰 ; 살피지 못하다) 역시 目祭을 써야합니다.
目祭 살필 찰
들어서 보다, 살피다
目祭의 전문
目祭의 전문 자형은 目과 祭의 합자이며, 祭는 察의 축약으로 ‘들추다/드러내다’로 쓰였으며, 들추어/드러내어 본다는 것에서 ‘살피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詧 살필 찰
드러내다
詧의 전문
詧의 전문은 祭와 言의 합자입니다. 言은 [말]에서 ‘속사정이 겉으로 드러나다’를 의미하며, 祭의 ‘들다’와 더하여, ‘드러내다, 드러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㡜 비단조각 설/자투리 세
너덜너덜
㡜의 전문
㡜의 전문 자형은 帶(띠 대)의 축약인 巾과 祭의 합자이며, 祭의 ‘들다’에서 ‘들’ 소릿값을 빌려와 ‘너덜너덜(/여러 가닥이 자꾸 어지럽게 늘어져 흔들리는 모양)’의 뜻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는 ‘殘帛也[거의 다 된 비단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너덜너덜’에 대한 중국어식의 표현입니다.
瘵 앓을 채
들끓는 병, 시들시들 앓다, 시달리다, 시들다
瘵의 전문
瘵의 전문 자형은 질병을 의미하는 疒과 祭의 합자이며, 祭의 ‘들다’가 疒과 더하여 ‘시달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祭가‘들이(/들입다/몹시. 갑자기. 아주)’로 쓰여, ‘들끓다(/[북한어]온도가 올라가 몹시 끓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勞瘵(노채 ; 말기에 이른 폐결핵)에서 瘵는 ‘(/가래가) 들끓다’의 뜻입니다.
第以老母, 遠在南涯, 年迫八十, 素患風瘵 近日漸劇, 迫切之情, 不得已呈辭. 『明宗實錄 1年 3月 4日』
다만 노모께서 멀리 남쪽에 계시는데, 나이 80에 임박하셔서 평소의 병환으로 풍(風)에 시달렸는데 근일에 점점 극해지시니 절박한 심정에 부득이 사직서를 올립니다.
道內結總與戶米, 限三萬兩, 每年加排區屬云矣 而本營大關防, 今焉凋瘵, 如無別般軫念, 將爲棄營. 『高宗實錄 12年 12月 16日』
도내의 결총과 호미에서 삼만 냥에 한하여 매년 추가로 나누어 붙여 배속(排屬)한다고 일렀겠으나, 본영의 큰 관방에 지금은 어째 곯고 시달렸으니, 만약 별반(別般) 진념(軫念)이 없다면 장차 병영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玆設大韓國赤十字病院, 凡我軍旅民庶之傷病者, 撫收勞來, 調護救瘵, 庶乎上繼我祖宗施仁之政, 下保我黎民生殖之道. 『高宗實錄 42年 7月 8日』
이처럼 대한국적십자병원을 설치함은 무릇 우리 군사와 백성들의 다치고 병든 자를 어루만져 거두고 노고를 위로하여, 고르게 돕고 시달림에서 구제한다면 아마도 위로는 우리 조종(祖宗)이 베풀었던 인(仁)의 정치와 아래로는 우리 서민의 생을 불리는 도리를 보우하는 것이다.
상기 조선왕조실록의 문장들에 사용된 瘵가 모두 ‘시달리다’의 뜻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