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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가요 '엔까'는 정읍사곡을 모방했다 -정읍통문퍼옴 |
일본가요의 시조 고가마사오는 수제천을 자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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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람이 정읍사 곡을 모르고 사는 현실에서 이런 말은 조금 더 있다가 쓰려고 했으나, 요 며칠 정읍통문에 실린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문화관광도시', '지역성의 담보가 관건이다' 등의 기사를 읽고 시민들이 정읍문화의 주소를 바로 아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우선 쓴다. 1866년 프랑스가 병인양요에 강화도에서 노획한 한권의 책 '직지심경'으로 떼제베 고속철도의 시공을 한국에 팔았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정읍사'나 '정읍악가요'에 대해서는 그저 흔한 내용으로만 느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엔까' 이야기다. 고가마사오 엔까의 뿌리는 한국의 전통음악 요즘 신문에서는 한일관계문서가 공개되어 '문세광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데, 그 당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이 긴장된 한일관계 조정업무로 일본출장을 자주 갔다. 그런데, 일본 가요(편집자: 엔까)의 창시자인 고가마사오(古賀政男)와 한국 국무총리 장기영은 서울종로 선린상고 동창생이다. 일본에서도 장기영의 일본인 동창생 서울선린상고 출신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 당시 한국일보 창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장기영은 고가마사오가 작곡한 일본가요의 뿌리와 관련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엔까(演歌)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기사를 크게 싣기도 했다. 여기에 글을 자주 실었던 작곡가 김지평씨는 기자의 농악교본을 출판한 1981년 그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다. 기자는 그로부터 일본가요의 뿌리와 관련해 작곡가 홍난파, 전수린, 손목인, 손석우 씨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특히 기자는 1991년 한국가요 학술연구회원으로 참여하여, '목포의 눈물'의 작곡자인 손목인 선생으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들은 바 있다. 기자 또한 국악의 원초격인 정읍농악과 민요, 궁중악, 동동, 수제천, 판소리를 종합하여 정읍사 국악관련 민요자료를 증언해 주었다. 근대 일본과 한국의 서양음악 교사역할을 했던 에케르트(한국거주기간 1900-1917 )는 일본의 국악을 1880년에 서양악보 채보하고 일본과 조선의 애국가를 작곡했다. 20년간(1880-1900) 서양음악을 배운 일본음악가들은 1900-1917년까지 한국에 와서 정읍, 동동곡 등을 가장 잘 아는 독일인 군악대 교사 에케르트에게 수시로 교습 받아 배워 갔다. 같은 사람이 일본과 한국음악을 교육하였기에 한국과 일본의음악은 구별하기 어렵다. 그 에케르트의 군악대 제자가 백우용이며, 이후에는 김인식, 홍난파 등이 조선궁중음악을 서양악보로 연주하는 일을 하였다. 홍난파는 소년시절부터 궁중음악을 서양악보로 연주하는 직업인으로서 1920-30년대에 수제천,동동 등등 정읍음악 악보를 익혀 알고, 국악을 하면 천민무당이되는 현실의 한국인보다 개화된 일본인이기에 서슴치 않고 궁중악을 작곡 자료로 사용하였다 한다. 여기서 궁중음악 무미한 제례악 보다 정읍, 동동등의 악곡이 흥겨운 편이여서 주로 각색된다. 1917년 백우용이 수제천을 서양악보로 채보하여 그 당시는 가장 빠른가요 궁중악으로 일본민요 하루사메와 같이 방아타령 곡을 처음으로 연주하였다. 이 곡을 협율사 창극에서 심청전 방아타령으로 사용하여 대유행하고 1925년에 장한몽이라는 일본극을 이 곡으로 편곡 사용했다. 이어서 정읍지방에서는 자즌농부가로 불려지고 있다. 고가마사오는 황성옛터의 작곡가 전수린의 옆집에 살면서 1930년에 '술은 눈물인가 탄식인가'를 채규엽의 노래로 발표하여 중국 일본 대만등등 대유행하였다. 이 곡의 첫 기타 반주곡이 3박자로 된 방아타령을 4박으로 편곡하여 대중을 사로 잡았다. 우리가요 애수의 소야곡 반주처럼 "궁자자잔잔 뽕짝 뽕짝"으로 소리나서 "뽕짝가요"라고 부르는 소리는 농부가, 방아타령, 각설이타령의 공통되고 일치되는 특징적 감별되는 음색이 있다. 즉 5마디로 부르는 정읍사소리 높낮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첫 노래 마디에서는 아주 낮은소리(달아 노피곰 돋으샤), 두 번째 마디에서는 높은소리(어기야 머리곰), 세 번째 마디에서 아주 높은소리(비취오시라), 네 번째 마디에서는 중간소리로(어기야 어강도리), 다섯 번째 끝 마디에는 아주 낮은 소리(아흐 다롱디리)이다, 이 방법은 홍난파의 노래 '고향의 봄' 노래에서 그대로 위와 같이 모방된다. 1 -- 나에 살든 고향은, 2-- 꽃피는 산골, 3 -- 복숭아꽃 살구꽃, 4 -- 아기진달래, 5 -- 울긋불긋 - -, 으로 높낮이가 삼각형으로 진행 된다 이 노래의 높낮이 형식으로 일본가요의 시조 고가마사오의 '술은 눈물이냐 탄식이냐', '당신의눈물' 등등 많은 곡에 보였으며, '인생극장'이란 곡은 곡 전체를 정읍사 형식 높낮이 같이 모방하여 만든 히트곡이 일본 가요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일본에 빼앗긴 한국의 오음계 농현(弄絃)은 한국만의 가야금 거문고등 줄을 눌르는 센소리내는 연주법이다. 그 농현을 일본은 '미파'와 '시도'의 반음을 이용한다. 한국에서 이 5음법을 사용하면 친일파로 매도해 왜색가요로 몰아 없앤다. 한국, 중국, 일본 국악 음계는 5행사상으로 7음에서 5음으로 19세기에 구성되었는데, 농현중심의 한국은 도-레-미-솔-라 음계로 주로 내림마장조를사용하나 농현표현이 어려운데 비하여, 일본은 미-파-라-시-도.음계를 내림마장조로 사용하므로 농현표현이 가능하여 슬픈 한국적 음악표현이 5음계로 가능하다. 그래서 왜색가요라는 형식으로 작곡을 슬픈듯한 계면조(단조)는 한국계 가수가 주로 힛트 한다. 일본국악에는 줄을 눌러힘주는 농현이 없다. 오음계 도레미솔라 한국 아악음계로는 가능하고우는소리 통곡 같은 계면조 표현이 어렵다. 그래서 매력이 없어 국악이 외면당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음계가 슬픈노래 표현이 편리하다 프랑스에게 빼앗긴 직지심경은 하나의 책이다. 그 보다 수천,수만배의 문화유산 정읍사람의 것 그것이... 정읍사는 백제 초대형궁중음악이 정읍의 유산이 아닌 일본가라오케와 일본미디어 세계산업으로 핵폭발처럼 일본이미지로 세계로 진출하여 나가고 있다 남원의 도공 심수관이 일본에 잡혀가 오늘날 일본의 도예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듯, 정읍사 음악도 일본에서 가져가 심수관의 도자기처럼 그 소리가 사랑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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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1월 23일 11:51:22 / 수정 : 2005년 01월 25일 10:37: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