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 제31회 인간혁명의 종교⑪
사제공전 - 불이의 투쟁에 지용의 생명이 약동
‘창립의 달’을 맞아 다시 확인해두고 싶은 원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가학회의 근본사명은 어디까지나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광선유포의 수행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학회는 어본불이 불러낸 지용의 화합승(和合憎)이자 불의불칙(佛意佛勅)을 짊어진 서원의 교단이라는 확신이 근간입니다.
학회와 함께 광포에 꿋꿋이 살아갈 때 한 사람 한사람에게 내재하는 지용의 생명이 약동합니다.
이 긍지를 굳게 가슴에 품고 나아가면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런 방해도 없습니다. 광선유포의 진심을 관철하는 학회원은 절대로 틀림없이 자수법락(自受法樂)①의 대경애를 얻습니다.
이 지구에 광포 대전진의 흐름이
더할 나위 없는 영예를 자각하여 지용의 사명에 눈을 뜬 벗이 용약하고 전 세계에서 광선유포의 길을 힘차게 걷는 신시대가 다가왔습니다. 바야흐로 24시간 지구 곳곳에서 묘법(妙法)을 부르고 인간주의의 불법(佛法) 대화를 펼치는 시대입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지용보살이 끊임없이 대화를 펼치고 있습니다. 벗이 벗에게 생명존엄의 사회를 구축하는 평화와 환희의 연대를 착실히 넓히고 있습니다.
실로 <법화경>에 “염부제 안에 널리 유포시켜 단절되지 아니하게 하오리다.”(법화경 673쪽) 하고 설한 ‘부처의 바람’을 실현했습니다.
한 방울에서 시작된 원류가 멋진 대하가 되어 대지를 윤택하게 하는 단계를 맞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광포의 바통이 세대를 뛰어 넘은 큰 흐름이 되어 계승되고 있습니다. 존귀한 지용의 사명을 완수하는 현대의 보살이 잇따라 출현하는 사실이 바로 불칙인 ‘불법서환(佛法西還)’의 커다란 실증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만인성불을 바라는 부처의 일념
많은 SGl의 보우(寶友)가 마음에 새긴 자아게의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침저녁으로 독송하는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 이하령중생(以何令衆生) 득입무상도(得入無上道)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 부분②입니다.
수량품의 자아게에서는 부처의 생명은 구원부터 상주불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마지막 구절은 ‘부처는 늘 어떻게 하면 중생이 무상도(깨달음)에 들어가 속히 부처의 몸을 성취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는 부처의 염원으로 끝맺습니다. 이 깊은 의의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매자작시념’은 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일념입니다. 그리고 부처의 일념은 오로지 민중의 행복을 바라고 ‘만인성불’을 위해 이 사바세계에서 끊임없이 계속 투쟁하는 것이기에 ‘서원’과 일체입니다.
대성인은 “매자작시념의 비원(悲願)”(어서 466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처의 ‘매자작시념’ 그대로 학회는 세계광포를 추진했습니다. 묘법은 창가 사제공전(師弟共戰)의 강한 유대로 세계 192개국.지역까지 유포되었습니다.
니치렌불법은 ‘사제불이(師弟不二)의 종교’이자 ‘사제공전의 종교’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이 ‘공전’의 의의를 배우겠습니다.
◇
①자수법락(自受法樂)- ‘스스로 법락(法樂)을 받는다’고 읽는다. 묘법의 공덕인 진정한 안락을 스스로 얻는 것.
②“항상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기를, 어떻게 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에 들어 속히 불신을 성취할 수 있게하리오”(법화경 493쪽)
◆
<어의구전>(어서 748쪽 10행~12행)
사자후(師子吼)란 부처의 설(說)이며 설법이란 법화(法華)이고 별(別)해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사(師)란 사장(師匠)이 수여하시는 바의 묘법이고 자(子)란 제자가 받는 바의 묘법이며 후(吼)란 사제 공히 부르는 바의 음성이고 작(作)이란 일으킨다고 읽느니라. 말법에 있어서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느니라.
<현대어역>
사자후는 부처의 설법이다. 설법은 법화경. 구체적으로 남묘호렌게쿄를 설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자후의 ‘사’는 스승인 부처가 수여하는 묘법이고 ‘자’는 제자가 받는 묘법 이고 ‘후’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부르는 음성을 말한다. 작이란 ‘일으키다’라고 읽는다. ‘사자후를 일으키다’란 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는 일을 말한다.
광선유포는 진실을 외치는 언론전
처음에 배독한 어서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묘법을 부르고 넓히는 행동이 ‘사자후’의 의의라는 <어의구전>③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사자왕의 바람은 일체를 뒤흔드는 대사자후로 모든 마성을 물리치고 민중의 행복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사자후의 본질이 사제공전임을 가르치신 어서입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스스로 사자후는 물론 청년부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는 언론전이므로 모두 마음껏 이야기하라!” “우리는 올바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진실을 외쳐라!”
광선유포는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생명의 마성을 근저부터 물리치는 정신투쟁입니다. 그러므로 마의 군세는 이 묘법의 깃발을 높이 내건 학회를 질투하고 무너뜨리고자 온갖 형태로 덮쳐왔습니다. 그러나 학회는 사제가 함께 사자후하여 꿋꿋이 승리했습니다.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타파하여 ‘원품의 법성(法性)’④을 힘차게 나타내기 위한 불이의 대사자후입니다.
스승도 제자도 같은 사자후를 일으키다
‘사자후’는 말할 나위도 없이 백수의 왕,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입니다. 여러 경전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진실을 말하는 부처의 설법을 사자후에 비유했습니다.
법화경의 회좌에서는 보탑품 제11의 ‘삼개(三箇)의 칙선(勅宣)’⑤에서 ‘만인을 부처로’라는 말법 광선유포를 위탁하는 부처의 뜻, 부처의 바람이 씌어 있습니다.
이에 대답해 권지품 제13에서 보살들이 서원하는 말이 ‘이십행(二十行)의 게(偈)’입니다. 삼류강적(三類强敵)⑥을 물리치고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홍통하겠다는 제자의 서원이 씌어 있습니다. 그 경문에 ‘사자후를 일으키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본디 부처의 설법을 의미하는 사자후를 불제자의 서원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사제 함께 같은 서원에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사제공전은 서원을 함께 하는 사제불이의 다른 이름입니다.
일체중생의 심전(心田)에 묘법의 씨앗을
<어의구전>의 구절에는 사자후의 의의를 사제공전으로 보면서 무엇을 사자후하는지, 법의 내용을 엄연히 밝혔습니다.
즉 ‘만인성불의 법’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설하는 부처의 설법이 사자후의 참모습입니다. 이 법은 법화경이고 말법에는 ‘남묘호렌게쿄’입니다.
‘사자후’의 ‘사’는 스승이 수여하는 묘법입니다. ‘자’는 제자가 받는 묘법입니다. 당연히 수여하는 묘법과 받는 묘법은 하나입니다. 따라서 ‘후’는 사제 함께 묘법을 불러 넓히는 광선유포의 대음성입니다.
나아가 ‘작사자후’의 ‘작’을 대성인은 ‘일으키다’라고 읽을 것, 다시 말해 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관점에서 말하면 스스로 결의하고 일어서서 벗의 행복을 위해 묘법을 넓히는 불이(不二)의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고 거기에 불제자의 근본정신이 있다고 배견할 수 있겠지요.
이 성훈대로 창가 지용의 동지는 어떠한 시련에 맞닥뜨리더라도 용감하게 사자왕의 마음을 일으켜 광포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학회원이 확실한 체험을 보여 불법의 엄연한 사자후의 힘을 증명했습니다.
혼미한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창가의 사제가 새로운 사자후를 일으켜 일체중생의 심전(心田)에 묘법의 씨앗을 뿌리고, 세계에 평화와 행복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
③<어의구전>- 니치렌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강의하신 법화경의 요문을 닛코 상인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④원품(元品)의 무명(無明), 원품의 법성(法性)- ‘원품’은 가장 본원적인 것. 원품의 무명은 생명의 근원적인 무지와 궁극적인 진실을 밝힌 묘법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원품의 법성은 생명에 본성으로 갖춰진 선성과 그 작용.
⑤삼개(三箇)의 칙선(勅宣)- 법화경에서는 견보탑품 제11부터 허공회의 설법을 시작하는데 이 품의 중간에 세번에 걸쳐 석존 멸후에 법화경 홍통을 보살들에게 촉구한 것.
⑥삼류강적(三類强敵)- 석존 멸후의 악세에서 법화경을 홍통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세 종류의 강적이다. ⑴속중증상만(俗衆增上慢. 재가의 박해자) ⑵도문증상만(道門增上慢, 출가의 박해자) ⑶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 박해의 원흉이 되는 고승)
◆
<화과성취어서>(어서 900쪽 7행-9행)
좋은 제자를 두었을 때는 사제(師弟) 불과(佛果)에 이르고, 나쁜 제자를 두면 사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사제가 상위(相違)하면 무슨 일도 이루지 못함이라 위세하게는 또 다시 말씀드리겠소.
항상 서로 이야기하여 출리생사(出離生死)해서 동심으로 영산정토(靈山淨土)에서 수긍하며 이야기하시라.
<현대어역>
좋은 제자를 두면 스승과 제자 모두 불과에 이르고, 나쁜 제자를 두면 사제가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고 일컫는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다르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없다. 자세히는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늘 서로 이야기하여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 똑같은 마음으로 신심을 수지하고 영산정토(구원의 부처가 사는 세계)에 가서도 서로 수긍하며 이야기 하시라.
사제 일체가 성불의 원리
이어서 배독할 어서는 <화과성취어서>⑦의 구절입니다. 이 어서는 1278년 4월, 대성인의 고향인 아와 지방(지바현 남부)의 세이초사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절 동문선배인 조켄보와 기조보⑧ 두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2년 전인 1276년, 대성인이 불문(佛門)에 들어가실 때의 스승 도젠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젠보는 법화경에 귀의하라는 대성인의 권유를 받고 관심을 보이면서도 결국 염불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래도 <보은초>를 써서 스승의 무덤 앞에서 이 어서를 읽어준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성훈에 “좋은 제자를 두었을 때는 사제 불과에 이르고”라고 있듯이 대성인 스스로 일부러 ‘좋은 제자’가 되어 사제는 끝까지 불이이고 일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쁜 제자’가 되어 버리면 성불이라는 꽃과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이는 불법의 엄숙함을 가르치시면서 끝까지 사제는 서로 어긋나면 안 된다는 사제불이의 원리를 강조하신 구절입니다.
불법은 ‘제자의 길’로 결정된다
이 어서에서는 대성인 자신이 진정한 ‘제자의 길’을 관철하신 점을 밝히면서 처음에 도젠보를 스승으로 함께 섬긴 조켄보와 기조보도 지도하셨습니다.
대성인처럼 ‘좋은 제자’로 꿋꿋이 살아가 ‘스승도 성불시키는 제자가 되어라!’ 하는 자애 넘치는 격려로 배견됩니다.
나도 이 성훈을 젊은 날부터 생명에 새겨 ‘제자의 길’을 철저히 걸었습니다.
제자의 승리가 스승의 승리다, 일체는 제자로 결정된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싸웠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가의 사제에 일생을 걸고 나아가라! 절대 후회는 없다. 인생을 승리하고 행복 가득한 웃는 얼굴로 인생을 반드시 장식할 수 있다!”
1950년 가을, 불황으로 도다 선생님 사업이 파탄 나는 최악의 어려움 속에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광선유포의 위대한 스승이신 도다 선생님 곁에서 상수급사하면서 함께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업의 활로를 열기 위해 선생님과 둘이서 곳곳을 분주하게 뛰어다녔습니다.
악전고투의 나날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전부 해내겠습니다. 선생님은 마음 편히 계십시오. 반드시 어려움을 타개하겠습니다. 반드시 선생님을 회장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하겠습니다.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지으신 회심의 미소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사제 함께 고투를 나누며 오늘날 학회가 대발전한 인(因)을 엄연히 새겼습니다.
서로 자주 대화하고 함께 격려한다
조켄보와 기조보는 아직 염불신앙이 한창인 세이초사에서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법화경의 신심을 지속했습니다.
역풍이 부는 혹독한 상황에서 ‘앞으로도 어떻게 강성하게 신심을 관철해야 하는가’ 하는 지침으로서 두 사람에게 “서로 자주 대화하고 함께 격려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사의 고뇌를 벗어나 함께 영산정토(구원의 부처가 사는 세계)로 가서도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불이와 이체동심이 요체
사제일체로 삼세를 관철해 ‘함께 광포를 위해 나아가자!’는 깊은 마음이 전해지는 구절입니다. 창가가족도 이 성훈대로 늘 다 같이 서로 격려하며 전진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사제의 길’을 근본으로 제자가 서로 격려하는 속에서 비로소 이체동심의 단결이 생깁니다.
‘사제불이'와 ‘이체동심’이 바로 불법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처럼 함께 투쟁하겠다는 위대한 정신을 관철하는 한 창가학회는 영원히 전진합니다. 광선유포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습니다.
◇
⑦<화과성취어서>- 1278년 고(故) 도젠보의 2주기에 세이초사에 있는 조켄보와 기조보에게 보낸 편지.
⑧조켄보(淨顯房)와 기조보(義淨房)- 모두 세이초사의 승려로 니치렌 대성인이 어릴 때에 수학을 도왔다. 대성인이 입종하실 무렵에는 대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가 되어 지두 도조 가게노부의 박해에서 대성인을 지켰다.
◆
<개목초>(어서 234쪽 7행-9행)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재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에게 조석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현대어역>
나도 우리 제자도 어떠한 난이 있을지라도 의심하지 않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른다. 제천의 가호가 없다고 의심하면 안 된다. 현세가 안온하지 못하다고 한탄하면 안 된다. 이렇게 우리 제자에게 아침저녁으로 가르쳤지만 의심을 일으켜 모두 버리고 말았으리라. 어리석은 자는 늘 진짜 필요한 때에는 약속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다 같이 심간에 물들여야 할 금언
마지막으로 배독할 어서는 <개목초>⑨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나와 더불어” 하고 말씀하셨듯이 대성인이 문하에게 함께 투쟁하자고 촉구하신 성훈입니다.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이 늘 배독하신 어서에도 이 <개목초>의 구절에 선생님 자필로 붉은색 밑줄을 그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표시를 하시며 읽으셨습니다. 일찍이 내가 모든 동지에게 ‘다 함께 심간에 물들이자’고 강조한 성훈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구절에 신심의 기본정신과 학회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많은 동지가 이 성훈을 마음에 새겨 모든 고난과 시련에 도전하고 극복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창가의 ‘불굴의 사제’ ‘불퇴의 사제’ 그리고 ‘상승불패의 사제’가 미래 영원히 함께 배독해야 할 부처의 금문자입니다.
불퇴의 마음속에 성불의 길이
대성인은 어떠한 난이 있어도 의심하지 않고 신심의 길을 관철하면 “자연히” 즉 반드시 성불의 경애를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와 부단히 계속 투쟁한다,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계속 행동한다, 그 ‘불퇴의 사람’이야말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광선유포에는 늘 삼류강적과 삼장사마(三障四魔)⑪가 잇달아 일어납니다.
‘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마가 출래하느니라.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입니다. 마가 다투어 일어남은 올바른 실천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 “현인(賢人).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할 수가 없다”(어서 1143쪽)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난즉안락(難卽安樂)’이라고 각오해야 합니다. 신심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넘지 못할 난 따위는 절대로 없습니다.
이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라는 외침에는 어떠한 대난이 잇달아 일어날지라도 ‘우리 문하여, 이진 삼진 잇따라 나아가라’는 만감이 담겨 있다고 배견됩니다.
대성인과 같은 마음으로 일어서서 “니치렌의 일문(一門)이 되어”(어서 1360쪽) 나아갔을 때에 이미 ‘성불의 길’ 즉 ‘사명의 길’은 활짝 열립니다.
모든 것은 ‘나는 지용보살’이라는 자각에서
대성인은 “니치렌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어서 1360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의’는 ‘광선유포’라는 같은 목적을 세우는 것입니다.
광선유포야말로 대성인의 마음이자 대성인의 원대한 바람입니다. 대성인과 ‘동의’로 광선유포를 위해 일하고 ‘신심 승리’의 실증을 보이자고 서원을 관철할 때 자신의 몸에 대공덕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일생성불’이라는 인생을 승리하는 방정식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함께 투쟁하는 동지에게 확신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학회원이 바로 지용보살이다.” “지용보살이라 정하면 마음먹은 대로 생활이 펼쳐지지 않을 리가 절대로 없다.” “지용보살 여러분, 해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용보살이라고 자각해야 스승과 불이의 서원에 설 수 있습니다. 동지와 이체동심의 연대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애를 여는 인간혁명의 급소는 ‘나는 지용보살’이라는 깊은 사명에서 나오는 결의 그리고 함께 투쟁하겠다는 지용의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새로운 철학의 뿌리에 ‘창가의 사제’가
지금 세계 식자들도 ‘창가의 사제’에 깊은 차원에서 주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종교학자로 아이다호대학교 명예교수인 니콜라스 가이어 박사는 이렇게 지적 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인간혁명의 원류가 된 사제의 실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사제라 하면 흔히 지배와 피지배로 맺은 인간관계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SGl의 사제관계는 철저히 상호 존경과 신뢰로 관철됩니다. 물론 제자는 스승을 모범으로 하여 깊이 배웁니다. 동시에 스승에게 계발된 제자는 스승의 말과 행동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독자적인 가능성을 발현합니다.” 하고 말입니다.
오랫동안 창가학회의 운동을 지켜본 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영지의 말씀입니다.
‘원대한 자신’을 구축하기 위한 신앙
‘창가의 사제’는 법을 바탕으로 한 평등한 동지입니다. 스승도 제자도 함께 법을 탐구하고, 함께 법을 회득하는 공천의 벗입니다. 나아가 올바르게 법을 실천하여 모범이 되는 스승에게서 불법을 배움으로써 자기의 유한성을 극복해 자신의 경애를 크게 열 수 있습니다.
스승과 함께 법을 위해 올곧게 살아감으로써 미혹에 빠진 자아의 집착을 단절하고 대아(大我)에 입각한 ‘원대하고 진정한 자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연구가인 클라크 스트랜드 씨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불이가 없었다면 창가학회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학회에서 사제의 유대는 제자에게 밑바닥에서부터 자신감을 부여하고 성장시키는 원천이다.” 하고 말입니다.
참으로 깊은 통찰입니다. 스승은 제자가 위대한 광포의 인생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제자의 성장이야말로 스승의 기쁨이자 본회 (本懷)입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5주년을 향한 출발은 지금!
올해 창립기념일(2017년 11월 18일)부터 내년(2018년) ‘11.18’까지, 광선유포대서원의 전당 완공 5주년이라는 눈부시게 빛나는 세계광포의 가절을 향한 황금의 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제 영광의 대도’를 함께 걸어갑시다!
일찍이 나는 미래를 짊어질 청년을 위해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이 시를 지금 다시 전 세계 동지에게 선사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제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그대여 잊지 마라 승리의 유대를
◇
⑨<개목초>- 사도유배 중 쓰카하라에서 술작하여 1272년 2월에 문하 일동에게 주신 글. 니치렌 대성인이 바로 말법에 중생을 구제하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춘 말법의 본불이라고 밝히셨다.
⑩삼장사마(三障四魔)-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세가지 장애와 네가지 마를 말함. 삼장은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보장(報障)을 말하고, 사마는 음마(陰魔).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천자마(天子魔)를 말한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