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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 장 이
밤나무가 실하게 자라는 강변마을을 지나 한참을 가게 되면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는 숲이 있고 그 숲을 벗어나게 되면 펀하게 벌판이 나타나는데 벌판 한가운데로 난 길 양쪽으로 초가집 삼십 여 채가 구부러진 늙은 노송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마을 제일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의 부잣집으로 알려진 기와집에서는 오늘 새벽부터 마당 가운데에 잴을 치고 울섶으로 엮은 울타리 한쪽에는 가마솥을 걸고 돼지머리를 삶고 있었다.
오늘 이 댁에서는 주인어르신의 회갑 잔치를 차리기 위해서 식전부터 동네의 아낙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한나절이 되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이르지만 주인댁의 머슴 한 주호는 서둘러서 또 다른 가마솥에 국수 삶을 물을 양동이로 퍼다 붓는다.
“ 막걸리는 언제 가져오기로 하였는가.”
주인 어르신이 말씀을 하자 국수틀을 매만지던 한 주호는 벌떡 일어서며 잔치 상이 차려지는 11시까지는 막걸리 다섯 통자를 가져오기로 하였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도가집이 만날 바빠서 어떤 때는 제대로 시간을 지키지 않던데 괜찮을까?”
“ 이번에는 시간 내에 당도할 것입니다 .제가 도가집의 심부름꾼에게 늦으면 안 되니 시간약속을 꼭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먼.”
한나절이 다가오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을 하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떼거리로 오는 바람에 마당에 차린 음식상에는 금방 손님으로 꽉 차는 것이다.
손님들이 거의 자리를 잡자 주인어르신이 간단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오늘 날씨는 좋다고 하지만 먼 길을 떠나오신 여러분에게 불초 소생 고맙다는 인사를 여쭙니다. 차린 것은 많지 않지만 진수성찬으로 아시고 천천히 많이 드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어르신이 인사를 하자 만장에서는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인사 말씀이 끝나자 손님들은 푸짐하게 차려놓은 상차림 앞에 차례대로 앉아서 음식을 들기 시작을 하였는데 일찌감치 오기로 된 막걸리가 오지를 않자 주인 어르신이 한 주호를 부른 다.
“거봐라 어떻게 심부름을 시킨 술이 아직도 오지를 않는단 말이냐.”
어르신에게 철석같이 제 시간에 가져온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술이 오지를 않으니 주호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 이놈의 자식이 또 나를 속였구먼. 그럴까봐서 얼마 전에 주막에 데리고 가서 색시를 옆에 앉혀주면서 술을 싫건 사주고 단단히 부탁을 하였건만.’
“ 여기 막걸리 좀 가져와요. 환갑잔치에 술이 아까워서 내놓지를 못하는 건가 원.”
“이 상에도 술을 어서 가져 와야지. 환갑잔치에 술이 없으니 영 음식 맛이 제 맛이 아니구먼.”
이 상 저 상에서 술을 가져오라고 하지만 술이 오지를 않으니 과방에서 조차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 마을에 도가집이 하나다 보니 뱃장인지는 모르지만 아 글쎄 저번에 우리 집 잔치 날에도 막걸리를 제때에 가져오지를 않아서 애를 먹었다니까.”
“ 별수 없어요. 대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는 수밖에요.”
주인 어르신은 술이 오지를 않는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한 주호를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할 듯 하더니 뒤란으로 가신다.
그때 마침 마당가운데로 술 통자가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자기네 상부터 가져오라고 난리다.
머슴이 도갓집 심부름꾼에게 눈을 흘기면서 왜 이제 왔느냐고 하자 그는 눈을 한번 끔벅하더니 한마디를 한다.
“ 야. 말도 말아 지난밤에 동네머슴들이 술내기를 하고 나서 색시추렴을 하러갔다가 모두가 거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늦잠을 자다가 이리 늦었으니 이해를 해라.”
“ 야. 이놈아. 색시 추렴을 하기로 서니 그렇게 늦잠을 잔단 말이야. 그리고 엊그제 그리도 부탁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 잔칫상을 망쳐 놓아야 속이 시원하냐. 다시는 너네 도갓집에서 술을 팔아 주지 않을 테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라. 이놈아.”
“ 여보게 그런 소리하지 마. 이 동네에서는 그래도 우리 도가가 술 빚기로 유명한데 그렇게 되지 않을걸. 내 오늘 밤에 너에게 노글노글한 색시 한상 차려 올릴 테니 그런 줄이나 알아, 나 간다 알았지.”
“ 이 잡놈아 누가 색시 한상이면 사족을 못 쓸 줄 아냐. 나에게는 그보다도 더 멋진 하이칼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 참외 서리하다 먹다 버린 것 같은 것을 두고 하이칼라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믿을 성 싶으냐. 내 말만 믿으면 오늘 너는 구름을 둥둥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 .”
“ 병신 같은 놈. 만날 흰소리 까기는 까치 뱃바닥처럼 잘도 깐다마는 누가 그런 소리를 믿냐.”
막걸리가 몇 순배로 돌아가자 잔치 분위기는 한창 고조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문 쪽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생뚱같이 일본말로 하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동안 왜놈의 제복을 입은 순사 대여섯 명이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뒤란으로 돌아가 오늘의 회갑 주인공을 체포하여 수갑을 채우고 대문 밖으로 끌고 가는 것이 목격되자 사람들이 모두가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 일이여. 일본 순사 놈들이 왜서 주인 어르신을 끌고 간디야.”
“ 그 사람들 이따금 부잣댁들을 족쳐서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 것이겠지.”
“에이 죽일 놈들. 우리 조선백성이 언제나 저 원수를 갚는단 말인가.”
잔치분위기는 금방 얼어붙고 손님들은 뿔뿔이 헤어져 제각각 대문을 빠져나가니 잔치 집은 금방 폐허처럼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주인어르신이 왜놈에게 붙들려가자 집안에서는 통곡소리가 저녁까지 이어지고 행여나 하고 밤늦게라도 돌아오시나 하였지만 이튿날까지도 아무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주자소에 붙들려간 주인 어르신은 사흘 만에야 겨우 돌아오셨지만 심하게 고문을 당해서 그런지 한 달 만에 애석하게도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왜놈들이 돈을 요구한 것을 들어주지를 않자 앙심을 품고는 죄 없는 사람을 고문으로 죽인 것이다.
왜놈들로 인해서 무고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조선 백성들은 결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잘 살던 주인어르신이 사망을 하자 부인도 3년을 더 살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남은 것은 열 살 먹은 외아들 하나였다.
그래도 이 불쌍한 자식을 거두고 키워준 분은 땜장이를 하며 드나들던 이웃집 아저씨였다,이 아저씨는 부잣댁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어떤 때 일꾼 손이 모자라면 일손도 거들어주고 때로 어르신이 출타를 하시게 되면 집안의 잔일을 돌보고 있어 어르신은 늘 그를 먼촌일가 이상으로 대해 주었다,
그런데 어르신이 갑자기 일본 놈에게 고문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마저 돌아가시게 되니 그는 조카처럼 대하던 외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안이 난가가 되자 일본 놈들은 재빨리 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외아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어 땜장이 아저씨는 자기가 하는 일을 가르쳐 주었고 어느 듯 아이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한 여름이 지나고 만산에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날도 아저씨는 시골로 다니며 땜장이 일을 하고 돌아오던 중에 공동묘지를 지나다가 난데없이 땡삐 떼를 만나게 되어 쫓겨 가다가 머리와 뒤통수를 수십 발이나 쏘이는 바람에 그날 저녁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부잣집 외아들은 그야말로 의지가지없는 천애고아가 된 것이다.
아저씨가 돌아가시자 그는 할 수없이 아저씨에게 배운 땜장이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이른 봄날 그날도 땜장이 총각은 기구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의 마을을 지나다가 큰 대문 앞을 지나면서 더욱 목청을 높였다.
“솥이나 냄비 때우시오.”
그러자 대문이 열리면서 키가 작달막한 아주머니가 부르는 것이다.
“ 가마솥도 때우는 거야.”
“ 네 쇠꼽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다 때우니까 솥은 물론입지요.”
“그럼 안으로 들어와 보게.”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안채가 높다랗게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별채가 있는데 끝자락에 커다란 가마솥이 초시마 밑에 놓여져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가 본 것 중에서 제일 큰 것이다.
그때 수염을 길게 기르신 분이 나오 시드니 가마솥을 때울 수가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네 솥은 물론이거니와 칼이며 낫 도끼 등 아무 것이나 때우고 갈 수도 있습지요.”
총각은 하도 가마솥이 크기에 어디서 이렇게 커다란 가마솥을 사왔느냐고 물어보자 아저씨는 허허 웃더니 어느 해 군에서 단오씨름대회를 한다고 하여 동네에서도 선수를 뽑으려 하였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동네 구장이 와서 주인인 엄 주사에게 하는 말이 이번에 씨름대회에 나갈 사람이 없어 우리 마을의 체면이 서지 않게 되었으니 체격이 든든한 엄주사가 한번 나가보면 어떠냐고 권고를 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이 적에 씨름을 해서 상을 한번 타본 경험이 있는 엄 주사는 그렇다면 한 번 나가 보겠다고 신청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해에 엄 주사가 재수가 좋았는지 아니면 절말 씨름에 대한 기량이 좋아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생각지도 않게 우승을 하여 상품으로 탄 것이 이 거대한 가마솥이었던 것이다.
가마솥을 상으로 타자 동네의 사람들이 모두가 좋아하고 술을 사라고 하여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여 앵기니 모두가 좋아하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가마솥인데 어느 날 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게 되면 이상하게 불이 자꾸 꺼져 솥 밑구멍을 들여다보다가 배 밑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고 그곳으로 물이 새는 바람에 불이 꺼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총각은 가마솥을 때우고 나니 한나절 점심때가 되었는데 이른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기왕에 점심때가 되었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가라는 것이다.
배가 고푼 참인데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니 얼마나 좋은지 속으로 흥타령이 절로 나왔다.
총각은 얼른 물품을 당거지하고 나서 대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아 두었던 졸졸 흐르는 도랑에서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마루에다가 점심상을 차리는 한 아가씨를 보게 되었는데 얼마나 얼굴이 예쁜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홀딱 반하고 만 것이다.
‘ 이 댁에 웬 아가씨가 저렇게 예쁘지.’
그 아가씨의 모습을 보자마자 총각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아가씨들도 간혹 눈 여겨 보긴 하였지만 이 댁의 아가씨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아가씨는 처음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음을 동하게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니 총각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때 주인 어르신이 방에서 나오시면서 어서 마루로 올라앉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주인이신 엄 주사는 외모도 그렇지만 점잖게 생기신 분으로 마음이 너그러우신 어르신 같았다.
이날 점심은 강낭콩을 듬성듬성 넣은 쌀밥과 콩나물국인데 총각은 이런 밥에다가 콩나물국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이 밥상에 차려졌으니 수저를 들자마자 허겁지겁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다 먹은 것이다.
“ 밥을 먹는 것을 보니 많이 시장하였던 모양이군.”
“ 네. 아침을 듬성듬성하였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 그럴 테지 하기야 젊을 때는 돌을 씹어 먹어도 되는 시기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 네.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안동에서 가까운 세실이라는 마을입니다.”
“ 그곳에는 옛날부터 양반들이 살던 고장인데 .”
“ 네 저는 안동 권 씨 성을 가졌구요. 어렸을 때부터 쇠꼽으로 무엇을 만들기를 좋아하다가 중간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웃에 사시는 땜장이 아저씨에게서 일을 배우고. 지금은 저 혼자 뜨내기로 살고 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총각은 코가 땅에 닿도록 고맙다는 인사를 여쭙고 나오다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 언제 또 이 댁엘 올지도 모르지만 더구나 아까 본 아가씨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면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한 꾀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는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잠시 집안의 동정을 살펴보고 있는데 안방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부엌문을 활짝 연 것이다.
그러자 방금 전에 보았던 아가씨가 어떤 아주머니와 밥을 먹다가 깜짝 놀라면서 일어서는 것이다.
“ 숭늉이 먹고 싶어서 가다가 도로 돌아 왔는데요.”
그러자 금방 얼굴이 발개진 아가씨가 얼른 일어서더니 숭늉 한 그릇을 대접에다가 가득 떠서 주는 것이다.
숭늉 한 그릇을 다 마신 총각은 대접을 내밀면서 조금만 더 달라고 하자 아가씨가 눈을 크게 뜨더니 “숭늉을 다 드렸는데 냉수라도 더 드릴까요.” 하는 것이다.
“ 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아가씨는 눈을 크게 뜨는 것이다.
“ 밥을 많이 주셔서 그것을 먹고 나니 힘이 불끈 솟은 모양입니다 헤헤.”
총각이 말을 하자 아가씨는 그 소리가 우스웠던지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는데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았던 아주머니마저 히히 하고 웃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총각이 인사를 하자 아가씨도 눈인사를 하는데 하얀 이가 살짝 보이는 것이 그렇게 예쁘고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이날 총각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가씨의 모습을 그려보며 어찌하면 이 아가씨와 교분을 쌓아볼까 하는 궁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 주사는 그 후에 동네에서 무슨 행사를 하게 되면 가마솥을 바깥마당에다가 걸고는 쇠머리를 삶아서 점심 대접을 하게 되니 한 달에 한 번씩은 동네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슨 잔치나 큰일을 하게 되면 엄주 사네 집의 가마솥을 이용하게 되니 주인으로서 그런 때 마다 보람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엄주 사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으니 그것은 무남독녀 외동딸이 얼굴도 잘 생기고 총명하였으나 한 가지 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늘 아버지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다섯 살 때의 가을에 일이다.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차가와지고 앞 뒷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아름다운 계절이라 엄마는 딸을 데리고 뒷산으로 단풍구경을 하려 올라가는 중인데 청설모가 앞장을 서는가 싶더니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잣나무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자 엄마 손을 잡고 가던 딸 귀연이가 청설모를 보고 놀랐는지 엄마에게 달려들면서 앙 하고 울었던 것이다.
“귀연아 왜 그래 무엇 때문에 우는 거야.”
그러자 귀연 이는 손가락으로 청설모를 가리키면서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즉시 산을 내려와서 딸에게 꿀물을 먹이면서 달랬는데 그날 저녁에 자다가 갑자기 열이 나면서 경기를 하는 것이어서 밤중에 침쟁이를 불러서 침을 놓고 경기를 겨우 돌리긴 하였으나 며칠간 열이 심하더니 왼쪽발이 뒤틀리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으니 한약으로나 치료를 하였으나 억지로 완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후에는 왼쪽다리가 약간 뒤틀려서 걸음을 걷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귀여운 딸 하나가 불구가 되자 아버지인 엄 씨도 그렇지만 엄마가 딸에 대해서 항상 미안해하면서 딸이 원하면 무엇이나 다 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딸인 귀연 이는 자라면서 엄마가 그렇게 걱정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였으니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 있는데 몸이 좀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험이냐면서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 주는 때가 많았다.
이렇게 밝게 크다 보니 그에게는 남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가 있었으니 집에서 엄마가 길삼을 하게 되면 눈썰미 있게 배우고 베틀에 올라앉기만 하면 엄마 이상으로 벼를 잘 짰다.
귀연 이는 뜨개질도 잘 하여 가을이 되면 벌써 아버지의 토시를 털실로 떠드리는가 하면 어머니의 목도리를 떠서 드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림도 잘 그려 안방이며 사랑방에는 풍경 그림을 그려 방을 아늑하게 하였고 마루에는 사군자의 난 그림이며 대나무를 그려 가문의 전통이 대나무처럼 곧게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그는 비록 발이 걸음을 걷는데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데 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명랑한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아버지가 볼 때는 그것이 늘 안쓰러웠던 것이다.
더구나 그가 장성하면서 장차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외동딸을 보내고 나면 도저히 외로워서 못살 것 같은 감이 들어서 최근에 생각을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똑똑한 총각이라도 나타난다면 데릴사위를 삼았으면 하는 생각인 것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이 지나고 나자 햇발은 따뜻하고 언 땅이 녹기 시작을 하자 농촌에서는 농사 준비를 한창 바쁘게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논갈이와 밭갈이를 시작하고 나자 나뭇잎은 온 마을을 푸른 동산으로 만들기 시작을 하였는데 마을에서는 곧 다가올 오월 단오놀이 준비를 위하여 귀룽나무에 그네를 매게 되었다.
그네를 매고나자 동네 처녀들이 수시로 타기 시작을 하였는데 그날은 귀연 이를 앞세워 여러 처녀들이 차례대로 그네를 타기 시작을 하였다.
남달리 그네 타기를 좋아하던 귀연 이는 자기 차례가 되자 환하게 웃으면서 그네에 오르게 되었다. 다리가 불편하여 조심하여 그네를 잡고 막 앞으로 내차는 중에 귀연 이는 그네줄을잘못 잡아서 그런지 그네 아래로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광경을 보게 된 아이들은 모두가 어마마 하면서 귀연이가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는데 귀연 이는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여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 귀연아. 귀연아.”
친구들이 그를 붙들고 이름을 불렀지만 귀연 이는 정신을 잃은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어떻가니.”
친구들이 울며불며 귀연 이를 부르는 사이에 마침 그때에 거기를 지나던 땜장이 총각이 이 광경을 보고는 짐을 내려놓고는 얼른 귀연이가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지만 처녀는 벌렁 나가 떨어져서 움직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땜장이는 그 순간 이러다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어 얼른 수중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에서 침을 꺼내서 손과 이마에다가 침을 여기저기 꽂은 것이다.
땜장이는 시골을 다니면서 혹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임시방편으로 침이라도 손수 놓겠다는 생각에서 응급 처치하는 침술을 배워 두었던 것이다.
침을 맞은 처녀는 한참 만에 정신이 나는지 눈을 스르르 뜨는 것이다.
귀연이가 눈을 뜨자 친구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귀연 이를 일으켜 세우며 끌어안는 것이다.
“ 귀연아 괜찮니.”
귀연 이는 친구들이 부축을 해서 일으켜 세우자 잠시 눈을 뜨더니 다시 눈을 감는 것이다.
“귀연아 귀연아.”
귀연이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친구들은 어서 집으로 데리고 가야 된다면서 그를 부축해서 일어서게 하려 하였으나 귀연 이는 일어서지를 못하였다.
친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떻거느냐고 하자 땜장이가 성큼 나서더니 귀연 이를 등에 업고는 집으로 향한 것이다.
친구들은 귀연 이를 업은 땜장이를 앞세우며 곧장 귀연에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앞장을 선 친구가 귀연에 집으로 가자마자 엄마에게 귀연이가 그네에서 떨어졌다고 전하자 엄마는 깜짝 놀라는 것이다.
친구들은 땜장이가 마침 그 곳을 지나다가 침을 놓는 바람에 살아났다는 말을 한 것이다.
“땜장이가 침을 놓아서 살아났다니 그게 정말이란 말이냐.”
“귀연이가 그네에서 떨어졌을 때 친구들은 너무도 놀라서 다가가지도 못했는걸요.”
“ 땜장이 총각이 아니었다면 귀연이가 큰일 날 뻔 하였어요.”
그때 땜장이가 귀연 이를 업고 오자 귀연 어머니는 어서 안방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마침내 아랫목에 뉘이고 난 땜장이는 귀연 엄마에게 안녕하셨느냐고 인사를 하였다.
“ 자네가 어떻게 그 장소엘 갔었는가.”
“ 네 마침 그네를 뛰는 아가씨들을 구경하려고 갔다가 귀연아씨가 그네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고 일어나지를 못하기에 침을 놓아서 된 불은 껐습니다. 만일 그 시간에 침을 놓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렇게 위험했단 말인가.”
“ 네 위험하였습니다. 어서 꿀물 한 대접을 타서 먹이셔야 합니다.”
“ 그래 그래야지. 안동댁 어서 안방 시렁에 꿀단지가 있으니 꺼내서 꿀물 한 대접 타와요”
귀연어머니는 귀연이가 눈을 뜨지 않자 걱정이 되는지 땜장이를 거듭 부르는 것이다.
“ 여보게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은데 맥을 좀 짚어보아 주었으면 좋겠네.”
“네 꿀물 타서 먹였으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만 참아 보십시오.”
그런데 정말 땜장이가 이야기한대로 얼마 후에 귀연이가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머니를 부르는 것이다.
“오냐. 오냐. 괜찮은 거냐.”
그렇지만 귀연 이는 아무 대답 없이 다시 눈을 감는다.
그 시간에 귀연이 아버지는 장엘 다녀오시다가 딸이 그네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점심도 걸으시고는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귀연이가 그네에서 떨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방안으로 들어서시던 아버지는 뉘여 있는 귀연 이에게 다가서시면서 딸의 손을 만져 보시면 서 딸의 이름을 부르신다.
“귀연아 어찌된 일이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귀연 이는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작은 소리로 “아버지”하고 부른다.
“오냐 그래 지금 어떠냐.”
그러자 옆에 있던 귀연 엄마가 한마디를 하신다.
“아까만 해도 아이의 손발이 차갑더니 이제는 손발도 따듯해지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
그 말씀을 들으신 아버지는 그제야 안심을 하시면서 방안을 둘러보시다가 문턱에 서 있는 땜쟁이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시면서 어쩐 일이냐고 하신다.
“이 총각이 그네에서 떨어진 귀연 이를 살렸대요. “
그 말씀을 들으신 아버지는 영문을 몰라서 그런지 금방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귀연엄마가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귀연 아버지는 땜장이를 향하여 한마디를 하셨다.
“인연도 희한한 인연이구나. 자네가 우리 딸을 구해 주었다니 기특한 일이로다.”
이날 밤 귀연 아버지는 아내에게 중대한 말씀을 하신다.
“ 오늘 말을 들어보니 귀연이가 죽을 목숨을 땜장이 총각으로 인해서 살아난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인연이야말로 귀연 이와 천생연분인 것 같아 귀연 이를 땜장이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으면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시오.”
“ 네?”
지금 와서 뒤돌아 생각을 해보니 귀연이 아버지는 최근에 와서 몇 번인가 귀연 이를 일찍 시집을 보내자는 말을 한 기억이 나는 것이다.
“애를 시집을 보내려면 나이가 차야하지 않아요. 아직 겨우 열여섯 살인데. “
“ 허허. 이팔청춘이란 말도 못 들었어요. 나이 열여섯이면 시집가서 애도 충분히 낳을 나이라고 옛 어른들이 말씀들을 하셨어요.”
그런 생각을 해보니 아버지는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었다,
엄마로서는 외동딸이니 만치 좀 더 같이 살 생각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저러시니 극구 말릴 수도 없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다.
귀연 아버지가 조반을 자시러 안방으로 건너오시더니 어제 한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느냐고 물으신다.
“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나로서는 지금까지 딸아이를 놓아주고 싶지를 않네요.”
너무도 뜻밖에 대답이 나오자 아버지의 얼굴 색깔이 잠시 변하는 것 같더니 밥상머리에 앉으면서 한 말씀을 다시 하신다.
“부인. 귀연이의 몸 생각을 해서라도 일찌감치 시집을 보냅시다. 내가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땜장이 총각이 우리 귀연 이를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어요.
사람의 눈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볼 수가 있는데 총각의 눈을 보게 되면 그 안에는 우리 귀연이가 벌써 그를 사로잡고 있단 말이지요. “
“ 그렇지만 그런 몸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면 환영받을 것 같지를 않으니 어쩌면 좋아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귀연엄마는 처음에 남편이 하는 이야기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으
나 그 내용을 알고 보니 남편은 벌써 이 총각을 다른 켠으로 보아 왔고 이를 계기로 이 총
각을 사위로 삼을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자기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도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진작부터 이 총각을 첫눈에 알아본 사람이요, 이 총각은 안동 권 씨의 후손으로 지금은 하찮은 땜장이의 허울을 쓰고 다니지만 장차 이 나라에서 쇠꼽을 다루는 일인자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믿었으며 이 사람을 귀연 이와 인연을 맺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언젠가 임자에게 말을 하려던 참인데 오늘 뜻밖에 일이 벌어지고 그 중심에 이 총각이 나타난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을 우연이라고만 하겠소. 하늘이 도와서 귀연이가 살아났으니 이번에 아주 이 총각을 우리 사위로 삼으려고 해요.”
그야말로 엄마로서는 감히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귀연이 아버지가 하는 것이니 그로서는 가타부타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벌써부터 음지마을에 사는 조 도령을 사위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안을 말 할 것 같으면 그 마을에서는 꽤 잘 사는 편이고 아들 삼형제 중에 막내로 형들은 이미 장가를 다 들어서 세간을 다 내준지 오래 되었다.
조 도령의 어머니와 귀연이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친하게 지난 친구 간이기도 하지만 둘은 서로 언약을 한 것이 있으니 이다음에 시집을 가서 만일 아들딸을 서로가 낳게 되면 사돈을 맺자는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소꿉장난을 하게 되면 호칭을 사둔 댁이라고 부르자 아이들 간에도 영문도 모르고 서로 그 호칭들을 곧잘 쓴 것이다.
그런데 입찬말은 무덤 앞에서도 하지 말랬다 는 말과 같이 둘 다 시집을 가고 나서 귀연 이는 딸을 낳고 그와 동시에 친구는 아들을 낳게 되자 두 사람은 그들의 꿈이 맞아떨어졌다면서 서로 좋아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장성해 가기 시작을 하자 둘은 만나기만 하면 사돈댁 하고는 서로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친구의 남편인 조 도령의 아버지까지도 반승낙을 한 처지로 귀연이 아버지만 승낙을 하면 두 집안은 곧 사둔간이 될 처지인데 생뚱같이 귀연이 아버지는 땜장이를 사위로 삼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니 귀연 엄마는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지 잠이 오지를 않아서 바로 친구를 만나서 말을 전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니 네가 언제부터 우리 아들을 사위로 삼는다고 해놓고서 이제 와서 딴 말을 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말이야.”
“ 낸들 왜 그런 생각을 진작부터 하지 않았겠니. 걔 아버지한테 때가 되면 말을 하리라 생각을 했는데 글쎄 일이 이렇게 갑자기 변동이 되니 어쩜 좋으냐.”
“ 얘. 안되겠다, 잘못하면 정말 네 딸이 그 땜장인지 뭔지 한테 시집을 가게 생겼으니 당장 너의 신랑을 만나야 하겠어. 나는 기필코 네 딸을 우리 며느리로 삼을 것이야. 우리가 그 약조를 한 것이 벌써 이십년도 넘은 일인데 이제 와서 그 약속을 깬다니 말이 되는 것이냐. 너의 신랑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면 너의 신랑도 꼼짝하지 못하고 두 손을 번쩍 들고 말 것이야. 그러니 어서 너의 집으로 가자.”
귀연 엄마는 친구가 하도 독촉을 하는 바람에 앞장을 서긴 하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