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나(我)가 없다면, 누가 윤회하는가?"
불교의 대답은 "고정된 나는 없지만, 인연의 흐름은 이어진다."입니다.
예를 들어 내리는 비를 생각해 보세요.
첫 번째 어제 비가 내렸다 두 번째 오늘도 비가내린다. 어제의비와 오늘의비가 다릅니까 같지도 않고, 완전히 다르지도 않습니다.
윤회도 이와 비슷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는 없다. (무아)
그러나 업(業)과 의식의 흐름은 이어진다.
그래서 한 생의 행위와 습관, 집착이 다음 생의 조건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윤회하는 자가 있다"고도 하지 않으셨고, "전혀 없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밀린다왕문경》에서는 왕이 물었습니다.
"윤회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러자 비구는 대답했습니다.
"그도 아니고, 그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즉,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는 완전히 같은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가? 그것도 아니다.
몸도 생각도 감정도 계속 변하지만 인과(因果)는 이어집니다.
선종에서는 이 문제를 더 깊게 묻습니다.
"윤회하는 자가 누구인가?"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윤회의 이치를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직접 자기 마음의 근원을 살핍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한마디로 말하면,
"윤회하는 영혼은 없지만, 업과 의식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무아와 윤회가 함께 성립하는 이유입니다.
네. 이 문장을 조금 더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아(無我)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나"가 없다는 뜻입니다.
윤회(輪廻)는
"원인과 결과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변하지 않는 내가 윤회한다."
라고 하지 않고,
"업과 집착, 무명이 다음 생의 조건을 만든다."
라고 말합니다.
강물에 비유하면,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은 같은 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강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계속 변하면서도 흐름은 이어집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몸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 어디에도 고정된 '나'는 찾을 수 없지만,
집착과 업의 흐름이 이어져 윤회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자가 없다."
"윤회가 없다."
"윤회하는 자가 있다."
이 세 가지 극단을 모두 떠나,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사라질 뿐이다."
첫댓글 무아/윤회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고
같은것도 아니고, 다른것도 아니고
아고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