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가이드] 06 장수대~대승령~십이선녀탕
- 대피소에서 묵는 1박2일 일정이면 어느 코스든 안심
- 설악은 공룡릉, 용아릉 등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봉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계곡 사이로 오묘한 암반 무늬를 이루며 개울이 흐르다가 웅장한 폭포로 흐른다. 그러다 한겨울이면 계곡과 폭포는 잠시 시간을 멈춰선 것처럼 꽁꽁 얼어붙는다.
12선녀탕계곡은 설악산의 서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북 능선구간인 대승령(1260m)과 안산(1430m)에서 발원, 설악산 서부에 여러 모양의 아름다운 폭포를 이루며 인제군 북면 남교리로 흐른다. 2년 전 폭우는 설악산의 많은 지형지물을 변화시켰고, 12선녀탕도 천운을 피하지 못해 많이 망가졌다. 그후 보수작업 끝에 작년 5월16일 재개방되었다. 작년 여름 12선녀탕~대승령~장수대를 탐방했는데, 하얗게 눈이 내린 이 코스는 어떤지, 산행 방향을 바꾸어 장수대→대승령→12선녀탕의 역방향으로 밟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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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대에서 대승폭 전망대로 오르는 길. 목제 데크가 전 구간 깔려 있다.
- 1월 한겨울의 아침. 장수대 탐방안내소를 따스하게 햇볕이 내려 비춰 준다. 바람이 불
지 않아서인지 영하 5℃ 이하인데도 따스함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아이젠 등 동계장비를 챙기는 데 도움을 준다. 초입부터 폐타이어를 깐 목재 데크는 아이젠을 신고 가도 편안할 정도다.
10여 분 가면 목재 데크 끝부분에 ‘출입금지’ 팻말 너머로 공사 현장처럼 계곡이 심하게 망가져 보인다. 출입금지 팻말 왼쪽, 암릉 사이로 데크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해를 등지고 올라선다. 사람들이 헐떡거리는 것을 보니 경사가 제법 된다. 초보자인 경우 급경사 지역이라 다소 힘이 들 수도 있다.
장수대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한 지 45분 정도면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인 대승폭포가 절벽 사이로 시원시럽게 보인다. 지난 여름에는 88m의 높이에서 낙하하는 폭포가 장관이었다. 겨울이 많이 가물어서 그런지 지금은 폭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얼마 되지 않은 대승빙폭의 얼음마저 아침 햇살을 받아 힘을 잃고 녹아 흐르는 소리가 서글프다. 그래도 대승폭 전망대에서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남설악의 가리봉 능선과 주걱봉, 삼형제봉이 파노라마로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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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월8일의 대승빙폭. 허리가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 / 2 눈으로 뒤덮인 12선녀탕 계곡길. / 3 대승령 정상. 봉우리인데 고개이름이 붙었다.
- 대승폭을 뒤로하고 70m를 가면 산불감시초소를 우측으로 끼고 대승령을 향한다. 해발 860m선에 평평하다 할 정도의 호젓한 전나무숲이 조그마한 개울을 끼고 펼쳐져 있다. 기암절벽과 대조적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 사이로 하얗게 내린 눈길이 아름답다.
대승령을 오르는 구간은 햇빛을 받아서 눈이 많이 녹았다. 아이젠을 차지 않아도 될 정도다. 해를 등지고 2시간을 오르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도 잠시, 대승령에 오른다. 안내판이 왼쪽은 남교리(8.6km), 오른쪽으로는 서북능선과 중청대피소(12.1km)를 가리킨다.
대승령에 올라서면 대승폭포에서 올라오는 남사면과는 다르게 북서풍이 매섭다. 남교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순간 대승령에서 올라서는 것과는 다르게 눈이 제법 쌓였다. 등산로를 벗어나면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능선끝쉼터’300m 바로 전 등산로 오른쪽 조망처로 나서면 중청, 귀청, 공룡능선, 용아장성, 수렴동까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대승령에서 1.3km 남짓 오르막길을 걸으면 ‘능선끝쉼터(1,360m)’다. ‘←남교리 매표소(7.3km), 대승령(1.3.km)→’ 팻말이 있다. 서북능선의 서쪽끝 안산의 갈림길이기도 한데 아쉽게도 87년부터 이곳의 출입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능선끝 쉼터에서부터 왼쪽으로 안산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이제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 몇몇 그루가 분위기를 확연히 바꾸어 준다. 이곳에서부터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북사면이어서 그런지 많은 응달을 만들어 주었다. 엉덩이 깔개만 있다면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도 무난할 정도다.
20여 분 내려서면 계곡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여름철에는 깊은 골짜기의 아기자기한 계곡 상류부인데, 겨울에는 계곡 물줄기가 눈에 쌓여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시판 근처를 유심히 보면 졸졸 흐르는 물을 구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데크길로 접어들게 된다. 데크 옆길로 살짝 벗어나 꽁꽁 얼어붙은 얼음 계곡길을 걷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계곡 상류부에서 1시간20분 남짓 내려오면, 움푹 패인 물웅덩이와 소가 연이어지는 복숭아탕에 다다른다. 물웅덩이와 소가 많다는 의미의 ‘탕수동(湯水洞)’이란 지명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여러 물웅덩이 중 특히 기이한 모양으로 유명한, 그 모양이 복숭아와 비슷하다 하여 복숭아탕이라고 불리는 폭포는 그러나 얼어붙은 모양은 그리 멋지지 못하다.
이곳을 내려설 때는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며, 아이젠이 없을 경우 철제 난간을 잘 잡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남교리 입구(4.2km)까지 계곡 상단 부분으로 데크 길이 눈에 묻혀 있어 여름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수대~남교리간 산행거리는 약 14km로, 겨울은 다른 계절 보다 1~2시간 정도 긴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 글·사진 월간산 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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