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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陜川海印寺] 대한불교조계종
경남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천년고찰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종찰이다. 땅의 기운이 해동제일이며 깨달음의 산이란 뜻을 가진 가야산 사적 및 명승 제5호 700m고지에 위치한 한국불교의 상징이며 불교성지이다. 올해가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지 1000년이 되는 해란다. 그래서 해인사가 주최 되어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 9월23일 부터 11월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11일 쾌청한 날씨에 막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야산 해인사를 찾았다. 와우!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하긴 반야심경판과 화엄경 진본을 지금 만나지 못하면 100년 후에나 만날 수 있단다. 해인사는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 (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 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 (藏經閣)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 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말사(末寺)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藥水庵)·원당암 등이 있다. 일주문(一柱門) 절의 어귀에 서 있는 제일문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한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경치와 어우러짐이 일품인 까닭에 일주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름이 나있다.
봉황문(鳳凰門). 문화재자료 제154호
‘해인총림’이란 현판이 걸린 문인데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양 문에는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 금강역사가 안에는 사천왕 탱화(1932년 지송파)를 모시고 있다. 금강역사와 사천왕은 사왕천에 머물면서 천상으로 들어오는 착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선신(善神)으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고 불법(佛法)을 옹호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산문 입구에 봉안하여 수문역과 도량 수호역을 맡아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지키고 있다. 해탈문(解脫門 불이문)
이곳부터는 모든 중생적인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처님의 세계임을 상징한다. 불이(不二)는 둘이 아닌 경지라는 뜻으로 너와 나,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 생과 사,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즉 그 근원은 모두가 하나라는 불교의 기본진리를 나타내는 문이다.
구광루(九光樓) 조선 말기의 누각.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 1818년(순조 18) 감사 김이재(金履載)의 주선으로 도내 40명 승려의 시금(施金)과 거창사람 김용술(金龍述)이 시주하여 건립되었다.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동쪽 1칸은 종고루(鐘鼓樓)로 쓰이고 있다. 누안에는 4,000근의 대종(大鐘)과 지름 1.5m의 법고(法鼓)가 있고, 목어(木魚)·운판(雲板 : 절에서 식사시간 등을 알리기 위하여 치는 금속판) 등도 보존되어 있다. 건물은 얕은 기단 위에 자연초석을 놓고, 층단주(層斷柱)를 세워 층마루를 깔았다. 상층에 기둥을 세워 익공(翼工) 선단(先端)을 수직으로 자른 초익공(初翼工) 형식의 공포(栱包)를 짜 도리를 올려놓고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하층은 주간(柱間)에 판벽을 설치하고 상부는 살창으로 하였고, 동쪽으로부터 두번째 주간에는 대웅전 앞으로 통하는 각도 (閣道 : 복도)를 만들어 통행하게 하였다. 범종각(梵鐘閣) 사물은 하루 세 번 친다. 예불을 위한 법구로써 법고-범종-목어-운판의 순서로 친다. 법고는 축생계의 중생, 범종은 지옥중생, 목어는 물속 중생, 운판은 공중에 떠다니는 모든 중생을 장벽을 뚫고 평등하게 퍼져나가는 소리로써 제도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인도 따라 돌기
화엄경을 압축한 법성게가 만(卍)자 도형에 아름답게 배열된 해인도, 법성게를 외우며 합장하고 따라 돌면 생전에 큰 공덕 이루고 사후에는 업장이 소멸된단다. 대적광전(大寂光殿). 경남유형문화재 제256호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하였으므로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는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한다. 우측부터 목조 문수보살, 비로자나부처님, 목조 보현보살과 함께 삼존불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주인 순응 이정스님이 802년 지은 건물자리에 1818년 다시 지은 것이다.
정중삼층석탑(庭中三層石塔). 경남유형문화재 제254호
탑은 부처님의 사리, 경전, 불상 등을 모시고 예경하는 곳으로 사원의 가장 중심 되는 곳에 세워지고 탑을 돌면서 예배의식을 행한다. 해인사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이다.
석등(石燈). 경남유형문화재 제255호
석등은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해인사 석등은 우아한 조각 수법과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비로탑과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8각으로 된 화사석에는 4면에 창이 나있고 나머지 사면이 사천왕상이 조각 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장경판전. 국보 제52호
대장경을 모신 건물을 장경판전이라고 칭한다. 장경판전은 수다라전 법보전 동서 사간전으로 모두 네 동으로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 보관시 설로써 처음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1481년(성종 12)에 고쳐 짖기 시작하여 1488년(성종 19)에 완공 했다고 한다. 보전 기술과 장치가 과학적으로 설계된 건물로 당대의 과학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15세기 조선 초기 양식 의세계유일 대장경판 보관용 건축물이다. 건물을 서남향으로 지어 직사광선이 직접 닿지 않게 하고, 소금, 숯과 횟가루, 모래를 차례로 놓은 판전내부 바닥은 목재경판의 보전유지에 가장 알맞은 평균습도를 유지하게 하여 경판의 변형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해충의 침입까지도 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창문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하여 자연적으로 통풍이 되도록 하여 모든 경판이 공기와 접하게 되어 있다. 이런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 처리가 지금까지 온전 하게 대장경판을 보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건축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갈 수 없는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장경판전은 1995년 12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대비로전(大毘盧殿)
대비로전에는 신라 진성여왕이 대각간 위홍을 추모하며 883년에 조성한 국내 최고의 목조 동형 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대비로전은 2007년 낙성하였으며 대비로전에 연등을 달고 사랑의 소원을 빌면 천년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한다.
독성각(獨聖閣)
독성은 스승 없이 혼자서 깨친 성자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하며,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하여 출현한다고 하여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고 있다. 주로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이 합쳐서 삼성각이라고 부른다.
보경당(普敬堂)
석가모니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으며, 수련회나 큰 불사가 있을 경우 집회장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회관이랄 수 있다.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癩漢殿)이라고도 하며 십육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전이라 하며 지옥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님이 목조로 조성되어 주불로 모셔져 있고 그 죄우로 각각 도명(道明)보살과 시왕상(十王像)을 봉안하였다.
학사대 전나무. 경남기념물 제215호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時書)에 몰입하던 곳이다. 당시 거꾸로 꽂아둔 전나무 지팡이가 천년고목으로 살아 있다.
성철스님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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