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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울리히 츠빙글리에 대한 간략 소개
장코뱅 추천 5 조회 287 23.05.11 07:27 댓글 2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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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5.11 08:29

    첫댓글 공재설
    -----------------------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 물질이 있는 곳에 현실로 임재한다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한다.

    즉 주님의 몸이 성찬 물질의 안에, 밑에, 함께 (in, under, along with) 계신다고 했는데, 이는 14세기에 있었던 오캄의 유명론에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루터는 믿는 성도들이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접할 수 있도록 되는 것이며,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영화된 몸의 임재를 믿었고, 공간 속에 연장된 몸 (body extended in apace) 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루터는 이것이 내 몸이다 라는 주님의 제정어에서 ...이다를 윤리적,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의 반복과 화체교리를 거절했다. 루터의 성찬에 대한 견해는 여러번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1519년 성찬에 관한 교설 을 쓴 때이고, 둘째는 1520-1529년 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쓴 때(쯔빙글리와 말부룩 회담을 하기까지)이고, 세째는 말부룩 회담 이후이다.

  • 작성자 23.05.11 07:38

    첫째, 성찬에 관한 교설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떡과 포도주 아래 두고, 성물인 떡과 포도주는 도장(siggel)으로 그 아래 참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성례는 본체의 표징이라고 했다.

    둘째, 교회의 바벨론 포로 에서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반대하고 성찬의 결정적 요소는 신앙이라고 했다. 성찬은 약속이며, 성찬의 은혜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라고 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가 우리의 신앙이며, 세째가 사랑이라고 했다.

  • 작성자 23.05.11 07:39

    @장코뱅 세째, 말부룩 회담이후에 성찬에 관한 루터의 견해는 공재설로 형성되었다. 또한 그는 쯔빙글리의 견해에 반박했는데, ①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상한다는 것과 ② 이것은 내 몸이다를 이것은 내 영적 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박했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평신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서도 피를 흘리셨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성만찬에서 평신도를 제외시키는 행위는 사악한 행위라고 하였으며, 그러한 권한은 천사에게도 없고 교황 이나 공의회의 권한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루터는 평신도들의 성만찬 참여를 강력히 주장하였고,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권리는 교황이나 공의회의 사제가 빼앗을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23.05.11 17:06

    @장코뱅 루터의 개혁이 츠빙글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5.11 17:08

    @노베 네, 로마교의 회체설 흔적이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공재설이라고 하겠습니다.

  • 23.05.11 17:22

    @장코뱅 이 둘째 포인트에 매우 공감을 합니다.

  • 23.05.14 16:42

    @천이다 공감합니다22

  • 작성자 23.05.11 07:46

    조금 더 긴 글로 츠빙글리에 대해 아시려면 아래 포스팅 속의 pdf 파일을 클릭해서 열람하십시오!
    -------------------------------

    츠빙글리의 스위스 종교개혁(진지훈)

    https://cafe.daum.net/1107/Y4PR/32

  • 23.05.11 17:05

    다신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보겠습니다.

  • 23.05.11 17:23

    @노베 네, 저도 그리 하겠습니다.

  • 작성자 23.05.11 08:28

    기념설 = 상징설
    ---------------------------------

    기념설(memorialism)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믿음. 울리히 츠빙글리는 미사의 거행에 담긴 제사의 개념과 더불어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하신다는 주장이나 그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바뀐다는 화체설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 대신, 그는 성례를 단순히 회중 안에 존재하는 신앙의 징표로 여기는 해석을 옹호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회중의 성찬 참여와 자국어 예배를 강하게 주장했으며, 그가 개정한 예전에서는 기념의 행위가 뚜렷이 강조되었다. 츠빙글리 파의 이 상징적인 견해는 지금도 많은 개혁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켈리 M. 캐픽 등, 『개혁신학 용어사전』, p.37.

  • 23.05.11 17:05

    기념설도 개혁주의 안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5.11 17:09

    @노베 네, 요 앞선 포스팅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K/57

  • 23.05.11 17:23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5.11 08:34

    불링어 = 불링거

    츠빙글리의 후계자인 하인리히 불링거가 작성한 스위스 제2신조(Confessio Helvetica Posterior)는 오늘날까지 하나의 중요한 개혁교회 신앙고백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어 위키 백과를 읽으시면 불링어에 대해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링크 클릭).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C%9D%B8%EB%A6%AC%ED%9E%88_%EB%B6%88%EB%A7%81%EA%B1%B0

  • 23.05.11 15:42

    덕분에 불링거에 대해 배웠어요. 불링거의 역할이 매우 컸네요. 그의 의장과 목회 활동을 보면 매우 현대적이고 건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장기 집권(?)했군요. 제자나 후배들이 없었던 이유가 되었겠죠.

  • 23.05.11 17:04

    @코람데오 좋은 포인트를 짚어 주셔서 제게 도움이 됩니다.

  • 작성자 23.05.11 17:09

    @코람데오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3.05.11 17:23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 23.05.11 16:44

    츠빙글리를 다뤄주시니 감사합니다. 칼빈에게 베자가 있었듯이 츠빙글리에게는 불링거가 있었던 것 같네요. 개혁주의에 츠빙글리의 지분이 ㄱㅕㄹ코 작지 않다고 봅니다.

  • 23.05.11 17:03

    읽어 보니 저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 작성자 23.05.11 17:10

    네, 공감합니다.

  • 23.05.11 17:26

    츠빙글리의 언약신학과 기념설은 루터는 물론이고 칼빈보다도 더 진보한 측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츠빙글리와 칼빈의 후계자들이 연합을 하여 넓은 개혁주의 전선을 구축한 것에 주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23.05.12 07:22

    공감합니다.

  • 23.05.14 16:42

    공감합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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