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의 유혹
명작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항상 새로운 숙고(熟考)를 하도록 만드는 힘이 내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읽은 부분의 느낌이 젊은 시절과는 완연하게 다르다. 그만큼 우리는 내적인 성장의 비례에 따라 작품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 중심에는 냉정한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위대한 작가들이 있다.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다. 같은 나라의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지만 생존 시 별다른 교유가 없었던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후 15년 만에 엄숙한 선언을 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서적은 내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예외다. 그의 작품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의 철학자인 「베르자예프(1874~1948)」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 하에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는 같은 천체에 사는 인간일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연초에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전년 가을에 읽었다는 『악령』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감문을 보내 주었다. 매우 오래 전에 읽었지만 정독하기로 하고 3권으로 된 책을 구매하였다. 이런 계기를 준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작품은 세르게이비치 투르게네프(I.S. Turgenev)의 『아버지와 아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영원한 세대 갈등이 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농노 해방 전후의 러시아를 무대로 하여 진보적인 지식인 「바자로프」와 그의 아버지의 갈등을 통하여 신구(新舊)의 대립을 묘사한 장편 소설로 1862년에 발표되었다.
하나 직접적으로 이 작품은 소위 「네차예프」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 모스크바의 농과 대학생인 「네차예프」가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 탈퇴할 뜻을 비치자 밀고가 두려워 그를 살해했던 사건이었다.
『악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라는 귀부인은 사교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녀 곁에는 「스테판」이라는 홀아비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20년이라는 세월을 동반자처럼 지내왔다.
「스테판」에게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할 정도로 부자관계는 상당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또한 「바르바라」에게는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여자와 염문을 뿌릴 뿐 아니라 여러 기행으로 어머니에게 근심을 안겨주고 있었다.
특히, 그는 어머니의 수양딸인 「다샤」와도 염문이 있어 아들의 앞날을 걱정한 「바르바라」는 「다샤」를 나이 많은 「스테판」과 결혼을 시키려 한다. 「스테판」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아들인 「표트르」의 유산으로 남겨진 영지를 팔아먹어 돈이 급해 「다샤」의 지참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스타브로긴」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표트르」는 러시아 사회의 급진적 변혁을 꾀하는 자로서 비밀단체를 조직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샤토프」는 「표트르」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전향하여 단체에서 발을 빼려고 하고 있었다. 「표트르」는 5인조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변절자로 낙인찍은 「샤토프」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샤토프」 살해를 통해 범죄로 엮인 5인조가 자신에게 더욱 복종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샤토프」는 잠시 살다가 헤어진 아내 「마리」가 몇 년 만에 돌아와 반갑게 맞이하는데 「마리」는 임신 중이었고, 놀랍게도 아이의 아버지는 「스타브로긴」임을 알게 된다. 아이를 출산하는 날 「표트르」의 사주를 받은 5인조에 의해 「샤토프」는 살해당한다. 「표트르」는 곧 바로 「키릴로프」를 찾아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자살할 것을 강요한다.
사실 「키릴로프」는 그 자신의 독특한 사상으로 자살로서 진정한 자유를 선언할 수 있어야 신(神)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기에 「표트르」는 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유서를 쓰고 자살하도록 「키릴로프」를 이용한 후 그곳을 떠나 멀리 도망을 간다.
결국 5인조의 일원인 「람신」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피신한 「표트르」를 제외한 5인조는 일망타진된다.
「스테판」은 20년간 함께했던 「바르바라」를 떠나가려고 하는 도중에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얼마 후 「다샤」에게 「스타브로긴」의 편지가 전해지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간 「바르바라」와 「다샤」는 자살을 한 「스타브로긴」을 발견한다.
신약성서에 악령이 씐 돼지의 무리가 호수에 뛰어들어 익사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작품은 무신론(無神論) 혁명사상을 그 '악령'으로 보고, 그것에 매료된 인간들의 파멸을 그리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신의 존재 여부라는 주제를 내세워 당시 러시아의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를 중심인물로 하지 않고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난해한 인생과 사회를 난해한 대로 그리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베르호벤스키」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존재를 있게 하기 위한 사정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상정(想定)하였다. 그 배경의 인물이 바로 「스타브로긴」인 것이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사상적인 영향을 받아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샤토프」를 살해하고, 그 죄를 평소에 자살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키릴로프」에게 전가한다.
「스타브로긴」은 경제적인 여유와 명석한 두뇌는 물론이고 비범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허무에 사로잡힌다. 천박함과 고귀함, 허무주의와 영혼주의, 종교와 윤리, 지성과 정치 등 모든 측면의 극단들을 공유한 인물이다. 선악의 기준도 없으니 따뜻한 인간미를 가졌을 리가 없다. 이런 이지적인 허무와 추하고 괴이한 감각적 기쁨과의 상극 속에서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스타브로긴」은 말하자면 가장 도스토옙스키적인 인물상으로서 유명하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반동 작가로 규정하고, 그의 저작을 금서(禁書) 목록에 집어넣은 이유가 바로 작가의 혜안(慧眼)에 대한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발표된 후 역사에 나타난 「히틀러」나 「스탈린」 등의 다양한 독재자의 출현은 섬뜩할 만큼 작가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한 마디로 『악령』에 나타난 혁명사상은 무신론에 바탕을 둔 허무적 사회주의다. 작가는 이러한 혁명 운동에 대해 두둔하거나 적극적인 동조를 하지 않았다. 그는 과격한 혁명 사상이 거의 무신론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 인식은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설치는 인간들의 출현에 대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여기에 위대한 작가정신이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어떤 사상일지라도 사상의 형태로 있는 한 무해(無害)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그것이 정치적인 목표를 갖는 조직으로서 행동화될 때는 자연 악(惡)을 포함하게 된다. 심지어는 원래의 목적에서 일탈(逸脫)하여 악의 작용만 남는다. 종교 역시 어떤 정치체제의 이데올로기로서 그 발언권을 주장하게 되면 악으로 타락한다는 것을 과거의 십자군 전쟁에서 배웠다.
결국 이 소설에서 19세기 후반 러시아 민중들 속에 퍼져나간 자유주의 사상과 무신론자들의 출현, 자신이 신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든 군상들이 ‘악령’으로 표현된 것이다. 소설가인 이병주의 분석이 예리하다.
“내세워 놓은 주의와 주장이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 어느 때에 정당한 것이 다른 때는 정당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갑(甲)이 하는 말을 을(乙)이 할 땐 선이 악으로 변하는 것처럼 변용될 수가 있다는 것, 어떤 조직이 조직으로 커 나가기 위해선 그 조직이 내세운 명분을 배신할 뿐 아니라 비인간적인 처사를 예사로 한다는 것, 마지막 위급한 단계에 이르면 예외 없이 이기본능(利己本能)에 사로잡혀 못 할 짓이 없게 된다는 것, 지하 단체는 지하 단체란 그 조직 때문에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가 자행될 수 있다는 것, 현실과의 괴리(乖離)가 심한 이상(理想)이 그 주장을 고집하는 건 그 자체 엄청난 과오가 된다는 것, 직업 혁명가는 자기의 체면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도처에도 ‘악령’이 숨 쉬며 유혹하고 있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연민의 정이 부족한 사회, 심화된 갈등을 부추겨 더욱 분열의 조작을 일삼는 행위, 준엄한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고 국민위에 군림하는 사이비권력 등이 만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치유하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해와 소통이 어려우니 그 해결책도 난망하다. 그저 경건한 마음으로 각 종의 ‘악령’들이 돼지 떼에 휩쓸려 사라져 이 세상이 정화되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는 참 지성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중심을 잡기도 어려워 가능하면 어느 조직이나 모임에 끼지 않고 고독한 숙고와 독서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탓하며 부정하고 비난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조금씩 양보하며 따뜻한 대화와 배려를 통해 훈훈한 온기가 가득하길 바란다. 그래서 온 세상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개울같이 넘쳐흘러 감히 ‘악령’들이 넘보지 못하는 지상천국이 되길 소망한다.
여하튼 문학사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악령』을 거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그 생각의 정점을 이루는 「알료샤」라는 인물을 창조했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 오랜 창작의 고난을 극복하고 인류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창조한 것이다. 두루 세 작품을 통해 문학적 탐구여행을 해보시길 권한다.
(2023.4.16.작성/5.8.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