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진악산
2023년 08년 15일(화요일)
산행코스 : 보석사(08:55) - 도구통바위(09:45) - 물굴봉(10:05) - 진악산(10:45) - 관음굴(10:55) - 얼굴바위(11:10) - 진악산(11:25) - 물금봉(11:55) - 도구통바위(12:10) - 영천암(12:30) - 보석사(13:05)
산행거리 : 9km
보석사 주차장
보석사 일주문
진락산 보석사(眞樂山 寶石寺)편액의 樂은 즐길 락(또는 낙), 노래 악, 좋아할 요 등 세 가지로 불리기 때문에 진락산 또는 진악산이라고 하는데, 지도에는 진악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진락산 보석사(眞樂山 寶石寺) 편액 촤측에 佛紀二五三七年 友松 閔孝植(불기이오삼칠년(1993년) 관지가 있습니다.
友松 閔孝植(우송 민효식 1926~ )은 광주 출신으로 서도를 독학하여 '구양순체'의 계승자로 인정 받았으며, 하동 쌍계사의 금강계단, 공주 마곡사의 매화당 편액도 썼습니다.
의병승장비각
의병승장비(문화재 자료 제23호)
비의 높이는 약 4m이고, 비의 앞면에 새겨진 '의병승장' 글씨는 창녕위 김병주가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왜놈이 비의 글씨를 훼손하고 땅속에 처박아 놓은 것을 광복이 되자 1945년 정요신이 찾아서 다시 세웠고, 1979년 비각을 세웠으며, 1980년 영규 대사 국역비를 건립하였습니다.
영세불망비
보석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65호)
은행나무는 높이가 34m이고, 가슴 높이 둘레가 10.72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으로 24m, 남북쪽으로 20.7m에 달하는 1,000년 이상된 나무입니다.
보석사 은행나무
영천암 0.8km, 주차장 0.3km
영천암 0.4km, 보석사 0.8km
샘물바위
귀암(龜巖)
영천암 갈림길
영천암 0.1km, 도구통바위 1.1km, 음수골임도 2.7km, 보석사 1.1km
진악산 3-1 이정목
진악 3-3 현위치높이 467m
음수골임도 1.9km, 보석사 1.9km, 도구통바위 0.3km
진악 3-5-1 현위치높이 555m
보석사, 개심터공원 2.0km, 도구통바위 19m
도구통바위
도구통은 절구통의 충청도 방언으로 바위 생김새가 절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진악 3-8-1 현위치높이 669m
개삼터 갈림길
물금봉 정상으로 오르는 데크계단
물굴봉 (735.7m)
진악산 정상 1.8km, 개삼터 2.6km, 보석사 2.6km
진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물굴봉입니다.
가야할 진악산 정상부
진악 3-12 현위치높이 675m
암릉을 올라갑니다.
뒤돌아본 물굴봉
좌측 금산읍과 우측으로 개삼저수지가
진악산 정상부에 진악산성
진악산 전망대
진악산정상
보석사 4.4km, 개삼터 3.4km, 광장 2.0km
관음봉과 금산읍
관음굴 갈림길
광장 1.85km, 정상 150m, 관음굴 170m
선공암 갈림길
선공암 1.45km, 관음굴, 정상 300m
관음봉
관음굴이 보입니다.
관음굴
깎아지른 절벽 가운데 폭 3m, 길이 4m쯤 되는 자연 석굴입니다
관음봉으로 올라갑니다.
진악산 정상
얼굴바위
진악산 정상부에 있는 진악산성
진악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갈기산 방향 파노라마
좌측 서대산, 우측 천태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저멀리 천태산, 월영봉, 갈기산이
민주지산 방향과 우측 지나온 물굴봉
암릉으로 올라갑니다.
암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가장 좋습니다.
암릉에서 바라본 천태산 방향 파노라마
좌측 운장산, 성재봉 방향
금남정맥길로 중앙 선야봉, 우측 천등산
좌측 천등산, 대둔산과 그 앞으로 인대산
천등산
물굴봉 정상이 보입니다.
다시 돌아온 물굴봉
저멀리 좌측 청량산, 적상산, 덕유산 방향
진악 3-7 현위치높이 743m
다시돌아온 도구통바위
영천암 무량수각
시원한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보석사 은행나무
반야문
보석사 대웅전
충남 유형문화재 제143호 보석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신 전각입니다.
금산 보석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충남 유형문화재 제214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 형태로,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둥근 얼굴에 코는 반듯하며 반쯤 감긴 눈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 모양입니다.
어깨와 무릎 폭이 넓지만 허리가 길어 전체적으로 균형감과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석가여래는 대의로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채로 오른손을 무릎아래로 내려뜨린 항마촉진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편삼에 대의를 걸쳤으며 문수보살과 반대 방향으로 연꽃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살의 옷차림이 다르고 문수보살이 복갑을 두르고 있는 모습은 1655년 혜희가 조성한 다른 작품들과 비슷합니다. 보석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복장물이나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수 없습니다.
대웅전 편액은 조선4대 명필 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를 이은 정읍 출신 호남의 대표 서예가 창암 이삼만(蒼巖 李三晩 1770~1847)선생의 글씨입니다. 그는 독특한 서체인 '창암체'를 완성시켰으며, 순천 송광사의 육감정, 구례 천은사의 보제루, 해남 대흥사의 가허루의 편액도 썼습니다.
조사전
전각 중앙에는 진락산 개산조 조구 대사를 가운데로 좌우에 사명 대사와 서산 대사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의선각(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9호)
의선각(毅禪閣) 편액 순조의 부마(임금의 사위)인 창녕위 김병주(1819~1853)의 글씨이며, 절 입구에 있는 의승병장비도 그가 썼습니다.
등운선원(騰雲禪院)과 심검당( 心劍堂)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주로 선실(禪室)이나 강원(講院)으로 사용되는 건물에 많이 붙이는 이름입니다.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우남 정행진( (又南 丁幸鎭)이란 분이 글씨를 썼는데, 정행진 선생은 특이하게도 독일로 유학을 가서 '그림으로서의 서도'를 익히고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돌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그 위로 기둥을 세운 다음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러 2층 누각을 만든 뒤 보석사 현판을 걸었습니다.
보석사(寶石寺) 편액의 글씨는 조선 말기에 영친왕의 붓글씨 스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인 '천연당 사진관'의 설립자 '해강 김규진'이 가운데 글씨를 쓰고, 고종의 대령숙수(수랏간 주방장)였고, 명월관과 태화관의 설립자인 '죽농 안순환'이 양쪽에 난초와 대나무를 그린 편액입니다.
누각 아래층의 양옆은 판벽으로 막았고, 가운데는 터서 해탈문 현판을 걸고 통로로 사용합니다.
부도
보석사 일주문과 주차장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