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교회는 장로교회가 다수를 이루고 성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혁파의 대표적 신조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해설하는 성찬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성찬의 의미를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5문) 그대는 그대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신 제사와 그의 모든 은덕들에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 성찬에서 어떻게 교훈 받으며 확신을 얻습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모든 신자들에게 그를 기억하여 이 떼어진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시면서 이런 약속들을 덧붙이셨으니, 첫째는,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며 잔이 내게 전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몸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드려지고 찢겨졌으며 그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졌다는 것이요, 둘째는, 주님의 떡과 잔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분명한 표로서 목사의 손에서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과 똑같이 확실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거기서 흘리신 피로써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의 영혼을 먹이시고 양육하사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성찬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논의하면서, 우리는 먼저 이 성례에 적용되는 다른 명칭들을 주목하며, 그 다음 이것이 무엇인지를 몇 마디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것을 가리켜 주의 성찬(the Lord's Supper)이라 부르는데, 이는 최초에 이것이 제정될 당시의 정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만찬을 나눌 때에 제정되었는데, 교회는 이 성례의 시간적 정황을 자신의 권위와 자유를 행사하여 바꾼 것이다. 최초의 성찬이 오전도 정오도 아닌 저녁 시간에 제정된 것은 단지 유월절 양을 먹는 의례 때문이었는데, 율법은 그 의례를 저녁에 행하도록 규정하였으나 이 새로운 성례에서는 그것이 폐지될 것이었다.
바울은 이를 주의 만찬(the Lord's table)이라 부른다. 이것은 또한 언약 혹은 회(會: assembly)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이 만찬을 나누기 위해서는 몇 사람이 함께 이를 위하여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정될 당시에는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고, 그들을 향하여 주께서는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 22:17)고 말씀하셨다. 이로 볼 때에, 몇 사람이 함께 있어야 했던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성찬 제정 시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데서도 확증된다.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나니"(고전 11:20),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전 11:33) 이 만찬을 나누기 위해서는 몇 사람이 반드시 함께 모여야 한다는 사실은 그것을 사랑의 띠요 사랑의 표가 되도록 하고자 하는 그 의도에서도 볼 수 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
또한 이것은 감사의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유카리스트(Eucharist)라 부르기도 한다. 교부들은 이것을 제사(sacrifice)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이 상상하듯 화목 제물이나 공로를 세우는 제사의 의미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성찬은 그리스도의 화목을 위하여 드리신 제사를 엄숙하게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미사(mass)라 불려졌는데, 이는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드린 헌물에서나 또는 설교 후에 회중을 해산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설교 후 회중이 해산하기 전에 성찬을 행하였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후에 좀 더 충실하게 논의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사용하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여, 그것을 주의 성찬이라 부를 것이다. 본 요리문답은 성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인데, 그는 나와 모든 신자들에게 그를 기억하여 이 떼어진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시면서 이런 약속들을 덧붙이셨으니, 첫째는,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며 잔이 내게 전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몸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드려지고 찢겨졌으며 그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졌다는 것이요, 둘째는, 주님의 떡과 잔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분명한 표로서 목사의 손에서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과 똑같이 확실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거기서 흘리신 피로써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의 영혼을 먹이시고 양육하사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혹은 다음과 같이 좀 더 간단하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의 성찬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떡을 떼어서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표로써 자신의 몸이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이 찢기고 피가 흘려졌다는 것과 그가 영생에 이르도록 신자들을 먹이시고자 그들에게 이것들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하신다는 것과 또한 그가 그들 속에 거하셔서 영원토록 양육하시리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례는 의례와 또한 거기에 덧붙여진 약속에 있으며, 혹은 표와 그 표가 나타내는 것들에 있다. 의례 또는 표는 떼어서 먹는 떡과 부어서 마시는 잔이다. 표가 나타내는 것들은 그리스도의 찢겨진 살과 흘려진 피요, 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고, 그리하여 마치 가지들이 포도나무로부터 생명을 이어받듯이 그에게서 영생을 이어받게 만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표와 또한 그 표가 나타내는 것 사이의 유비에 의해서, 또한 표와 연결되어 있는 약속에 의해서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연합과 교제를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비는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또한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된 교제를 선포하며 또한 특수한 방식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떡이 떼어질 뿐 아니라 먹도록 우리에게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떡을 떼는 일이 이 예식의 일부인 것은, 그것이 그 나타내는 것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곧,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떡을 가지사…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한다(고전 11:23 24). 마찬가지로 잔은 떡과는 별개로 그의 몸에서 피를 흘리시며 당하신 그리스도의 잔혹스런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pp.306∼307.
첫댓글 유럽의 개혁교회와 한국의 장로교회는 칼빈주의라는 중심을 공유하지만 한국 장로교회는 개혁교회에 비해서 더 개혁과 생략이 일어나서 성찬을 덜 강조, 시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계제에 위 우르시누스의 해설은 작은 번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습니다.
네, 저도 공감합니다.
성찬에 담긴 복음과 구원의 의미가 잘 설명되고 더 자주 시행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성찬에 대한 여러 견해들
https://cafe.daum.net/1107/YDR0/77
잘 읽고 공부합니다.
칼빈의 성찬에 대한 설교
우리는 육체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능력으로는 주님과 가까이 있게 됩니다. 주님은 성만찬을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며, 우리는 이 교리를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짐승 같은 사람들처럼 성찬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위해 음식을 주신다고 이해하게 되어도 그것은 이미 축복입니다.
그러나 배부르도록 성찬의 음식을 먹고 마셔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성찬에서 육체적인 생명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먹고 마실 집(고전 11:22)이 있으므로, 우리의 육체를 양육하기 위해 성찬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찬을 통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하고자 하신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주와 떡이 우리 영혼의 음식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후략)
https://cafe.daum.net/1107/Y4OQ/16
칼빈의 성찬에 대한 풍성한 설교에 매우 감동을 받습니다.
성경의 근본 권위를 중시한 인물로 여전히 기억되는 그는 취리히 성경(1529)의 출간을 도왔으며, 이는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독일어 성경 번역본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의 지도력이 커져감에 따라, 츠빙글리는 특정 부분들에서 마르틴 루터와 의견 충돌을 빚게 되었다.
///그들은 특히 성찬 시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해 상이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 문제는 츠빙글리가 루터의 공재설에 맞서 기념설을 옹호했던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핵심쟁점이 되었다. ///
또한 츠빙글리는 세속 국가의 권위를 강하게 지지했는데, 이는 초기에는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던 일부 재세례파들을 몹시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는 각 지역 정부가 교회 내의 모든 변화를 승인하게끔 했으며, 스위스 종교개혁이 진전됨에 따라 일부 주들은 츠빙글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주들은 개신교를 강제하였고 비성경적인 것으로 간주된 미사 등의 관습을 금지했으며, 이는 로마 가톨릭을 지지하는 주들과의 충돌과 전쟁을 불러왔다.
https://cafe.daum.net/1107/Y4OK/58
다시 잘 읽고 공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든지 내 살과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할 수 없다고 하시며 다시 오실 때까지 이것, 성만찬을 기념하라고 하셨죠.
성찬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먹은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며 주님을 기념하고 전하는 성찬이 되어야겠죠.
칼빈의 종교개혁 시대에는 교황주의자들의 왜곡된 미사로서의 성찬이 아닌, 복음적인 성찬을 지키고자 비밀리에 모여서 아주 감격스러운 성찬을 시행하였지요. 칼빈은 성령님의 임재 속에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이뤄지는 것을 강조하였지요.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