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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평전
삼균사상가
김삼웅 (지은이) 채륜 2017-06-15
양장본
366쪽
140*210mm
512g
일제치하/항일시대
책소개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 김삼웅. 그가 이번엔 조소앙 삶과 업적을 이야기한다. 조소앙의 생을 좇으며, 그가 남긴 작은 흔적까지 놓치지 않고 살핌은 물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평론을 덧붙이고 있다. 조소앙은 평생을 독립운동과 삼균주의 사상 구현에 힘 쏟고, 해방 후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납북되어서는 중립화 통일론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목차
여는 말_ 오늘에 더욱 필요한 조소앙의 삼균주의 사상
추천하는 말_ 균등한 21세기를 꿈꾸며
1장 출생과 학문, 일본 유학 시절
2장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의 길에 나서다
3장 두 가지 ‘독립선언서’를 작성
4장 임정 외교활동, 시민주의 현장체험
5장 한국독립당 창당 참여와 각종 저술활동
6장 국무위원으로 임정의 진로를 제시
7장 민족혁명당 참여와 재건한국독립당 창당
8장 피난기 통합운동과 임시정부 외교위원장
9장 대일 선전포고문 작성하다
10장 ‘대한민국건국강령’을 기초하다
11장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주도, ‘카이로선언’에 큰 기여
12장 임정 승인 위한 치열한 외교활동
13장 일제 항복 전후 임정의 국제관계 대책 세워
14장 격동하는 해방정국에서 신념 지켜
15장 단정 반대의 격류 속에서
16장 삼균주의청년동맹과 학생동맹 결성
17장 혁신정당 사회당 창당과 제2대 총선참여
18장 정계 진출,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고 득표
19장 납북과 사망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
닫는 말_ 거대한 이념의 용광로 정제된 실천논리
책속에서
P.39~40
이 시기에 조소앙은 독특한 활동을 하였다. 국내외 동포의 대동단결을 정신적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종교통일의 방안으로 ‘육성교’를 제창한 것이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육성교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통 유학과 근대 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기독교에 입문하고서도 불교와 이슬람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P.58
「3·1독립선언서」가 비폭력적인 저항을 선언한 데 비해 「대한독립선언」은 한민족 전체의 ‘육탄혈전’을 촉구하여 무장전쟁론을 제시한 것이다. 국내와 국외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국망 이후 지도급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선언’에 ‘육탄혈전’을 천명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조소앙의 무장전쟁론의 의지를 살피게 하는 대목이다.
P.120~121
조소앙은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다. 구하기 어려운 국내의 각종 자료와 통계를 조사하여 식민지 조선의 참상을 밝히고 용어 하나에도 독립운동가로서의 굳은 신념을 내보였다. 일본을 ‘적’이라 호칭하고, 일제의 한국침략을 ‘병탄’이라고 썼다. 독립을 하고도 오랜 세월 동안 ‘을사보호조약’이라 쓰고, 지금도 일부 사학자들이 ‘5조약’이니 ‘합병’ 또는 그나마 ‘강제합병’의 용어를 사용한 것과 비교하면, 그의 투철한 역사관을 보게 된다.
P.319
한 개인의 정견이라기보다 큰 정당의 당책이나 대통령 후보의 경제정책에 손색이 없는 당면 국가정책 전반을 담고 있다. 당대 정치인 중에 이만한 국정현안 인식과 경제·민생정책을 이해하고 정책으로 준비한 인물은 흔치 않았다. 그는 탁월한 이론가이고 경세가이면서 큰 사상가였다. 경제정책의 큰 줄기는 역시 삼균주의에 바탕하고 있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삼웅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김재규를 말하다>,<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할 말이 있다> … 총 193종 (모두보기)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힘써왔다. 제3회 민족일보 조용수언론상과 제2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송건호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수운 최제우 평전』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 『운암 김성숙』 『이승만 평전』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할 말이 있다』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위기의 자본주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조소앙의 삼균주의 사상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 김삼웅. 그가 이번엔 조소앙 삶과 업적을 이야기한다. 조소앙의 생을 좇으며, 그가 남긴 작은 흔적까지 놓치지 않고 살핌은 물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평론을 덧붙이고 있다. 조소앙은 평생을 독립운동과 삼균주의 사상 구현에 힘 쏟고, 해방 후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납북되어서는 중립화 통일론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특히나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민족·국가 간의 균등을 이루자는 그의 삼균주의는 근 1세기 전에 태어났지만 오히려 오늘날 더욱 생각해보아야 할 정치이념이 되었다. 현대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불균형을 타파할 길이 ‘삼균’ 사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 평전이 삼균주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우리에게 이런 정치사상가가 있었음에 경탄을,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는 양극화 사회에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좋겠다. 거대한 이념의 용광로 그 속에서 제련된 사상 조소앙은 매우 특출한 인물이다. 민족사에 불멸의 문건으로 남을 몇 건의 ‘선언문’을 작성하고, 생애를 바쳐 삼균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삼균주의란 개인 간, 민족 간, 국가 간의 균등을 말하고,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의 실현으로 ‘삼균’을 이루어 세계일가의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평등주의 사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뿐만 아니라 좌우 독립운동 진영의 이념적 기틀이 되었다. 이런 엄청난 사상이 어느 날 문득 생각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삼균주의는 어떤 동력으로 태어났을까? 조소앙은 어릴 적부터 전통적인 한문교육을 수학했으며 황실유학생으로 뽑혀 근대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동서양은 물론 고전과 현대의 모든 학문을 섭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교·기독교·대종교를 경험하고, 불교·이슬람교와 소크라테스 철학을 간접으로 경험했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유럽 현장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단군·공자·예수·석가모니·마호메트·소크라테스, 여섯 성자를 아우르는 육성교를 제창하기도 한, 별난 경력과 이력을 갖고 있었다. 삼균주의 이념은 바로 이와 같은 체험과 간접경험에서 우러나온 경륜의 집대성이라고 할 것이다. 조소앙의 사상체계는 민족주의의 터전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지만, 안으로는 봉건적·신민적 굴종의식을 청산하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주의를 분쇄하면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 3균에 기본하는 고루 잘사는 민주공화국가를 세우는 국제주의였다. 그는 즉 중국의 노장사상과 영국노동당의 정책뿐만 아니라 고드원·푸르동 등 아나키즘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이념의 용광로와 같았다. 그 용광로에서 단련되고 정제된 것이 삼균주의 사상이고 실천논리가, 좌우합작·남북협상·통일정부 수립·중립화 통일론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소앙은 우리의 ‘지나간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소앙과 삼균주의 그의 ‘균등’을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제강점기.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다. 누군가는 무기를 들고, 누군가는 펜을 들고 누군가는 굳센 마음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맞서 싸움과 동시에 독립운동단체의 이념과 정책을 만들고 앞선 시각으로 해방 후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소앙이 그랬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이 법통상으로 연계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련한 임시정부의 당헌과 건국강령이 대한민국 헌법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소앙의 신념체계와 정책기조는 삼균주의이다. 일부는 그의 정치이념에서 ‘균등’이라는 단어만 떼내어 사회주의, 회색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소앙의 균등주의는 공산주의의 ‘균등’이 아닌 독립 국가, 민주정부의 전제로 가능하다. 즉 목표가 아니라 수단의 균등이다. 출발점이 다른 달리기 경주가 불공정하고 결과가 뻔하듯, 수단이 균등하지 못하면 목표가 균등할 리 만무하다.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지 못하면 정치권·경제력의 균등이 불가능한 이치와 같은 셈이다. 상류층의 아이와 빈곤층의 아이가 얻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같지 않듯 말이다. 그러므로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저 그는 일제강점기 눈앞에 벌어지던, 그리고 해방 이후 닥쳐올 사회의 문제를 예견하고 ‘잘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것뿐이다. 삼균주의가 당시 좌·우익 모든 독립운동 진영의 공통된 지도이념이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힌 대한민국이기 때문일까? 혹여 그의 사상을 잘 몰라 조소앙을 조금이라도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평전을 추천한다. 그의 일생을 알고 사상을 알고 배경을 알면 ‘균등’이라는 단어로 그를 판단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왜 그의 사상이 이 나라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여 불균형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 한탄스러울 테니 말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균형 현상 부디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기를 우리는 흔히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압축적으로 성취한 나라라고 자부한다. GDP는 세계 11위, 잠시 퇴행하긴 했었으나 대한민국은 엄연한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우리의 가장 큰 위기는 지나치게 벌어진 빈부격차 곧 양극화 현상에서 왔다. 그래서 택한 것이 집단자살이고 ‘묻지마 범죄’로 나타난다. 자살률 세계최고라는 불명예는 ‘경제강국’의 반사경이기도 하다. 상위 1%가 99%의 대중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이 사회는 과연 얼마나 버티고 설 수 있을까? 위가 지나치게 무겁고 아래가 가벼우면 침몰하는 것은 비단 세월호 뿐이 아니다. 실정이 이런데도 지도자들은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양극화와 불균형이라는 병리현상을 보이는 한국 사회를 우려하며,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우리 시대의 가치, 추구해야 할 정책이 되어야 함을 절감한다. 조소앙의 삼균주의 원칙을 오늘에 그대로 실행할 수는 없다. 수정할 부분도 있고 버려야 할 대목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침몰을 막기 위해 ‘삼균’ 정신을 되새길 필요는 분명 있다.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도서가 전부터 많이 보인다. 아마 대부분 외국 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다. 경제이론, 사회이론의 근간은 많은 부분 외국의 학자들이 정립한 것일 테니.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학자가 있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조소앙이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된 루소가 되었을 것이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퍼슨이 되었을 것이고, 중국에서 태어났으면 민족주의·민권주의·민생주의의 삼민주의를 내건 국부 손문이 되었을 텐데, 민족사의 불운 탓에 그의 학식과 경륜을 살리지 못해 한스럽다고. 삼균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렸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이런 암담한 현실을 마주했을까? ‘삼균주의’는 근 1세기 전에 태어났지만 오히려 오늘날 더욱 생각해 보아야 할 정치이념이 되었다. 이 평전이 삼균주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우리에게 이런 정치 사상가가 있었음에 경탄을 그리고 ‘삼균’ 사상을 잊은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빙* 2017-06-30
조소앙 선생은 책 첫머리에 나오듯 본명이 "용은"입니다. 김삼웅 저자께서는 "아호가 본명보다 더 유명한 경우"라고 규정하는데, 이런 경우가 한국에서 아주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체로는 독립 운동가들의 경우, 한 번의 의거로서 이름을 떨친 분들을 제외하면 "아호와 본명이 함께 유명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안창호 선생, 김구 주석 등에 대해 그 호를 함께 기억합니다. 오히려 "도산 안창호" 등으로 자주 부르지 이름만 거론하는 적이 더 드뭅니다. 심지어 독립 운동과는 매우 거리가 먼 어느 작가에 대해서도 "춘원 이광수"로 호칭하는 게 더 잦을 정도죠.
"조소앙"을 본명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그 함자 앞에다 "삼균주의"를 마치 대명사나 수식어처럼 붙일 만큼, 그의 독창적인 이념은 유명합니다. 만약 "삼균주의"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아마 "조소앙"에 대해서도 모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대개 김삼웅 작가님의 전작 평전들은 이처럼 인물 이름 앞에 아호를 붙인 제목으로들 나왔는데, 이 책만큼은 "소앙 조용은 평전"이란 문구가 어색했는지 보다시피 이런 제목입니다.
조소앙 선생의 일생과 그 의의를 새기자면 필수적인 전 단계라 할 것이, 대체 삼균주의가 무엇이며 그의 현대적 해석과 자리매김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삼균주의가 오늘날에 와서 다시 재조명 받는 이유는, 남북이 서로 비생산적이고 파멸적인 대치를 이루는 지금, 양쪽 모두에서 큰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상당한 공감을 형성할 만한 이념적 중간지대를 모색할 만한 사상이랄까 이데올로기가, 이 이른 시기에 조 선생이 마련해 놓은 것만큼 성숙하고 큰 체계를 지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소앙 선생은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바와 달리, 38선 이남, 오늘날의 경기 파주(당시 지명 교하라고 책에 나옵니다. 물론 이 지명은 오늘날에도 행정 구획만 달리해서 살아 있습니다)에서 탄생했습니다. 김구와 이승만보다는 십여 년 아래 세대이며, 몽양 여운형 등과 비슷한 또래입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대개 출신 성분이 다양한데 경기 일대에서 부농 출신으로 생계에 큰 곤란이 없었으며 조부모로부터 정통 한학을 교육받았다는 내용 말고는 그의 가계에 대해 자세한 바가 밝혀지지 않은 듯합니다. 그가 중요 인물로 부상하게 된 건 대한 제국 체제 하에서 영재 소년들을 선발하는 과정에 그가 두각을 나타내어 어린 나이에 황실(고종 칭제 이후) 후원을 받아 엘리트 교육을 이수했으며, 이후 일본 명치 대학에 입학하여 서양식 현대 문명에 눈을 뜨게 되고부터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전통 한학과 근대 문물에 대한 이해"에 고루 밝은, 균형 잡힌 지성을 갖춘 보기 드문 인재로서 그를 높이 평가합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김삼웅 저자가 특히 소앙의 행적과 사상에 후한 점수를 주는 까닭이, 1) 중상층 부농 출신으로서 자신의 영달과 출세에 집착하기보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민족의 앞날이 밝게 창달될 길이 무엇인지에 천착하고, 이를 실천할 방안을 연구한 점 2) 사상적으로는 오늘날의 시선으로도 급진 좌파에 가까운 혁신 노선이었다는 점 3) 방략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 막연한 주의주장이 아닌 구체적 수치를 거론하며 방법론을 구상한 경세가였다는 점(대원칙뿐 아닌 디테일을 제시한 정책 전문가였다는 점) 등입니다.
2)와 관련해서는 특히 독자로서 제가 재미있게 본 게,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을 두고 소앙은 "광주 혁명"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광주 혁명"이라고 해서 "웬 5.18 예언?"이란 생각도 잠시 스쳐갔는데, 그건 물론 아니고 당시 민중들이 일제의 폭압적 처사에 들고 일어난 의의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한 소이겠죠. "학생"을 굳이 뺀 이유는 소앙 본인부터가 학생 시절부터 열혈 혁명 분자로 활동해 온 동질감이 있기에, 어린 학생들이 구태여 "학생"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물론 "그 학생"들보다야 자신이 3. 40년 가까이 선배지만, 영원한 학생으로서의 정체감이 그의 내면에 자리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책을 좀 넘겨 가며 김이 약간 빠지는 게, 이분은 심지어 이하응의 집권마저 "혁명"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하응의 혁신 조치가, 종래의 구체제(심지어 자기 기득권마저 못 지킬 만큼 낙후하고 부패했던) 폐단을 일소한 면이 있긴 하나 오늘날의 어느 학자도 그의 집정을 "혁명"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용어가 그리 엄정한 기준에 따라 쓰이지는 않았구나 하는 다소의 실망이랄지. 이후 김옥균 등의 갑신정변도 그는 "귀족, 벌열 출신에 의한 혁명"으로 주저없이 명명합니다. 오히려 3. 1운동은 그의 시각에서 "실패"로 보였는지 혁명 범주에서 제외됩니다.
3. 1운동 실패의 원인을 그는 "평화적 수단"에서 찾을 만큼, 그의 성향이나 사상이 온건하다거나 절충, 유화적이라곤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말도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오늘날 가장 유망하고 장래가 안정적일 직업은 바로 혁명가로서의 삶이다." 어느 혁명 노선에 가담하든, 혁명 자체를 어떤 관점에서 보든, 혁명가만큼 극도로 불안정한 삶이 없음은 자명할 텐데 정말 역설적인 표현이며, 이 한 마디가 그의 성품과 지향성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그는 상당한 반대 의사 표명,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하긴 확고한 반공 노선을 걸었던 백범 밑에서(국무령 시절) 외무부장을 지낸 분이기도 하니요.
책은 장덕수 암살 등 해방공간에서 그의 활동은 아주 자세히는 다루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야당 성향으로 유명한 성북구에서 소앙은 전국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그 이전 한독당과 결별하면서도 백범과는 연계를 유지하며, 백범과는 차별되는 노선으로 단정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한독당 분당이 어느 정도는 백범의 묵인 하에 이뤄졌으리라는 추측을 내어놓습니다. 하긴 이후 백범의 방북 행렬에 그도 김규식 등과 함께 수행했으니 말입니다. 단 책에서는 이 부분(남북 협상)에 대해 역시 그리 소상히는 저술하지 않습니다.
보통 백범의 사망 당시 "서거"라든가 심지어 "시역'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도 있었는데, 소앙은 진술에서 담담히 "김구의 피살"이란 표현에 그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성명서와 저술 속에서 "...향후로는 명망가 중심의 결사체가 아니라, 이념과 노선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지고 활동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같은, 시대를 근 반 세기는 앞서간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적은 대로 그는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代)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는데,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새로 원 구성이 될 때 국회의장 피선이 유력했다고 합니다. 이러던 게 느닷 6. 25가 터지고, 그는 납북 인사 대열에 끼고 만 불운을 맞이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죠. 책에서는 최신 연구 결과로 러시아측 보고서를 인용하며 "김일성의 노선에 협조 않던 그가 자살을 선택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계획 경제를 통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번영해야 국가가 일어설 수 있음"을 일관되게 주장한 그의 노력 덕에, 사실 우리 현행 헌법도 제헌 당시부터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을 지향한다 봐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그의 지조와 소신 때문에 김일성이도 끝내 그를 포섭, 회유하는 데 실패했던 거겠죠.
dj****l 2017-06-21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시대입니다. 나라는 허무하게 망했고, 나라를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파, 백성들은 나몰라라하며,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 급급했던 관료들과 기득권층, 하지만 위기에서 피어나는 강인함이 있듯,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격동의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세력이나 물리력이 일본에 비하면 미비했지만, 민족정신과 애국계몽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고,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독립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더 많은 독립지사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특히 임시정부가 세워지며, 사상적 뒷받침이 된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 우리는 역사책에서 아주 짧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 다른 방향의 독립노선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를 생각할 때, 무장독립투쟁이나 애국계몽계열을 쉽게 생각합니다. 잘 알려진 분들이 많고, 역사책에서도 자세하게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분들의 보이는 공이 너무 컸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소앙 선생처럼 보이지 않지만, 전반적인 교육수준이나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기여한 분들도 많았습니다.당장의 독립이나 주권회복을 위해서는 무장투쟁이 효과적이지만, 일제가 떠났을 때,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헌법도 필요하며, 국민들을 통합시킬 사상이나 통합적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는 인재양성을 위해서도 핵심적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조소앙 선생을 깨달았고, 자신이 배운 모든 학문적 지식을 전파하며, 일제의 탄압을 비난했고, 민족정신 고취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만의 철저한 신념과 주관으로 모든 일에 진지했으며, 많은 분들에게 교훈을 주기도 했습니다.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교육이며, 국민계몽입니다. 또한 외교적인 역량을 중요시했고, 실제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렸고, 이를 통한 임시정부의 위상강화,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며, 장기간에 걸친 독립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삼균주의는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안목과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며, 오늘 날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해석과 재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런 분들의 노력도 잊지말아야 합니다.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이 대단했지만, 조소앙 선생도 지조를 지키며, 하나의 신념으로 일생을 바쳤습니다.그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사람들이 독립을 원했고, 이런 염원이 통했는지, 우리나라는 뜻하지 않게 독립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념이라는 무서움이 들이닥쳤고,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분단을 겪게됩니다. 이런 어지러운 정국과 혼란속에서 조소앙 선생은 납북되며 생을 마감하지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이런 분들에 대해 더욱 알려야 합니다.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조소앙 평전을 통해서 독립노선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이에 대한 관심과 발굴노력, 재평가 등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알고 조소앙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미*** 2017-07-04
위기의 자본주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조소앙의 삼균주의 사상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지켰던 많은 사람들중 내가 알고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학창시절 워낙 역사를 어렵게만 생각했기에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지 않은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흥미도 갖지 못했던 탓도 있는 듯 하다. 오히려 내가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건 30대 중반이 넘어서였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많아지는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한 발악이기도 했지만 그보단 책을 읽을때마다 알게되는 역사의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시작했고, 일부러 평전이나 위인전 등 인물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던 중 「조소앙 평전」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조소앙 선생님은 독립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국민주권에 기초하여 임시정부수립 이론을 전개하신 분이다. 성균관을 2년만에 졸업하고 황실 특파 유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해 도쿄부립 제일중학교에 입학한다. 재학 중에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통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한국 유학생들을 모욕하는 가츠우라 교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되고 유학생들끼리 회합을 거듭한 끝에 동맹 휴교를 결의하고 기숙사의 퇴사를 결행한다. 결국은 퇴학이 확정되고 자유의사에 따라 진로를 정하게 되는데 덕분에 조소앙 선생은 중학 1년만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던중 한국 정부에서 복교 명령이 나왔고, 복교 대상인 조소앙은 중학교에 재입학하게된다. 조소앙은 졸업후 메이지 대학 법학부에 다시 입학한다.어린나이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줄 알았으며, 인권 사상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한국 병탄 전이에 대한 반대운동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극심한 신문을 받기도 하였으며, 유학시절 이미 삼균주의의 핵심요소인 평등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조소앙 선생님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중국 망명을 준비한다. 조소앙 선생님에 대해 많은걸 알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 제2대 국회의장이 되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삼균주의사상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균주의 사상이 현시점에 맞게 수정되면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조금은 단순한 생각을 해보았다.나라를 위해 노력했지만 남과 북이 갈라지는 6.25전쟁이 터지고 선생님의 꿈도 깨져버렸다. 전쟁 후 납북된 선생님은 1958년 9월 10일 서거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려진건 없지만 아마도 삼균주의 사상을 널리 알리다 마지막 생을 다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구름** 2017-07-02
조소앙 평전. 삼균 사상가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 개인, 민족, 국가 간의 균등김삼웅 지음. 채륜. 2017낯선 이름의 인물을 따라 읽어간 책이다. 익숙지 않았던 이유, 우리는 근현대사 역사의 비중을 너무나도 빠르게 얕게 공부하며 입시를 준비하여 왔었기에 굵직한 인물과 사건에만 익숙했었기에 이 책은 꼭 읽어보고픈 책이었고 만나보고픈 인물이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건 이렇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된다는 것과 그들이 추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조명해보는 시간은 값지게 간직됐다는 것이다.이 책은 양장본이다. 많은 키워드들을 담아내고 있음 직한 예감은 적중했고 적당한 묵직한 무게로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내용들은 충분하여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묘한 이끌림으로 넘겨간 인물 평전이기도 하다. 적절히 저자의 사유도 함께 공존해주었기에 저자가 주장하고 이루고자 한 세상을 향한 바램들은 더욱 조명 받게 되는 책이 되어간다. '삼균 사상가'라는 조소앙이라는 인물을 만나본다. 위기의 자본주의라고 명명할 만큼 시대의 불균형과 불평등한 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그 극명한 간극의 차이는 더욱 또렷해지는 사회이기에 조소앙의 책은 특별하게 조명된다. 삼균이라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라는 사상이 가진 의미가 이 사회에 얼마나 투영되었는지 잠시 떠올려보면서 읽어가게 된다. 인물이 성장한 집안의 배경, 집안의 재력, 인물이 가진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재능들이 소개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유학생활도 하게 되고 관심을 가졌던 학문들도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많은 종교들과 인물들, 많은 책들을 읽어낸 인물이라는 사실도 책은 전해준다.연령별로 그가 행한 것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한 페이지도 담겨 있어서 더 특별하게 인물을 바라보면서 읽은 책이기도 하다. 인물이 보여준 학문적 관심과 주장들은 그의 행보와 집필된 책들의 목록들과 만남을 가졌던 여러 유명한 인물들과의 일들은 점점 흥미롭게 책 내용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직접 보고 느꼈을 경험들과 사상들은 그에겐 적잖은 영향력이 되었음을 책은 전해준다. 그리고 법을 공부한 이력이 이후에 많은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전한다. '대한 독립선언서'의 집필 배경과 서명자들의 명단들은 57쪽에 소개되어 있다. 이 인물이 납북이 되지 않았다면 이승만 정권 시대에 친일 세력들이 정리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들은 흥미롭기까지 했다. 인물에 대한 여러 업적과 주장들이 신선하게 다가와 준 책이다. 저자도 이 인물이 주장한 것이 완전한 내용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가 꿈꾸어온 밑바탕의 세상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기에 인물이 주장한 삼균 사상은 특별하게 조명된다. 납북된 문학가들도 떠올리면서 읽어간 책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 속에 많은 인물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조소앙이라는 인물과 삼균 사상가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을 또 하나의 인물이 된다.
스토***악 2017-07-04
다시 주목받는 '균등' 의 가치 - 조소앙 평전 _ 스토리매니악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불도저로 밀어 버리고, 자신들만의 논리를 세우려한 이들이 벌인 일이다. 성숙한 시민들은 그런 상황을 두고 보지 않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촛불을 들고 모였다. 다행히 사람이 바뀌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며, 민주주의라는 나라의 근간을 다잡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거창한 문장 몇 구절로 설명할 필요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난 겨울부터 봄바람부는 시기까지의 과정을 너무나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이들이 이 현상을 분석하려 하고, 그 문제점을 짚어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이에 대한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를 잠깐 돌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우리를 지탱했던 근간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나라가 망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상실할채 제국주의의 군화에 짓밟혔다. 그 암흑의 시기를 벗어나 나라를 새로 세우고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만들고자 노력헀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근간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는가? 수많은 이념과 사상이 새로운 나라를 위해 등장했고, 격렬히 충돌했다. 그 중에 하나가 조소앙의 삼균주의다.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사 책이나 한국사검정능력시험책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으로 짤막하게 등장하는 것이 조소앙의 삼균주의다.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개념적으로 살펴보면, '독립운동 내부의 좌우익사상을 지양, 종합하여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해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다. 개인간, 민족간, 국가간에 균등생활을 실시하려는 주의로 일부는 균등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사회주의적 정치이념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 사상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써 수단의 균등을달성하려는 색채가 강하다.여기서 조소상의 삼균주의를 자세히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사실 나도 잘 모른다). 간단한 문장 형태로만 인식하고 있는 삼균주의 사상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또 그 사상을 탄생케한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조소앙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이룬 업적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가 걸어온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쓰고 있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삼균주의 사상 구현에 힘쓴 인물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어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채찍질했는지, 책을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었다.인물을 알면 그가 만든 사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조소앙이라는 인물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삼균주의 사상이 가진 가치를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가의 뜻을 담기엔 책이 좀 부족했다 보인다. 조소앙의 주요 삶의 부분들을 잘 짚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 깊이가 평전이라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조소앙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사상가로써의 독립운동가로써의 조소앙의 모습과 더불어 좀 더 다른 부분들을 같이 보여주는 과정이 있었다면, 그의 삶을 더 깊게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조소앙이라는 인물이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분명하다. 그 화두를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조소앙이라는 인물의 삶을 따라가보고, 그가 이루고자 했던 사상의 모습과 가치를 만져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비록 그 사상의 깊이와 인물적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아쉬운 감은 있지만, 조금 더 관점의 각을 넓히는데는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하겠다.
or*****r 2017-06-29
조소앙 평전 최근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알려지고 재해석되고 있어 참으로 반갑기만 합니다. 대통령 한사람이 바뀌었을뿐인데 세상은 이렇게나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네요. 민주주의라는것이 정말 좋다는게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아마 그런 영향도 일정정도 미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최근엔 박열이라는 숨겨졌던 독립운동가가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조소앙 선생도 이렇게 평전을 펴내면서 새로운 재조명이 되고 있으니까요. 이 두분의 공통점은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는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자진 월북이든, 납북이든 북한으로 간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작업이 부족했던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정권차원에서 터부시하는 경향이 컸었죠. 사실 중요한것은 그인물이 독립운동을 한것이 사실이냐인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그인물이 우리 정부의 시책과 공감하느냐로 독립운동가를 평가해왔었죠. 그인물이 남쪽에서 사망했든 북쪽에서 사망했든 혹은 민족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무정부주의자건 그의 사상적 이념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인물이 '독립운동'을 한 팩트가 있느냐 없느냐로 독립운동가를 판단했어야하는데 이또한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겠죠. 여전히 독립운동가보다는 친일파들이 잘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기 때문이겠죠. 이또한 갈수록 변화되리라 믿어요. 우리 사회가 변화되는것처럼...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는 예전 학창시절 역사교과서에서 잠깐 들었던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도 조소앙 선생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 평전을 통해서 조소앙 선생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조소앙이라는 이름조차 본명이 아니고 '소앙'은 호라는 사실, 조소앙 선생의 본명은 '조용은' 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삼균주의는 개인간, 민족간, 국가간의 균등을 뜻하며, 경제적 균등, 정치적 균등, 교육적 균등의 '삼균'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가 되는 평등주의 사상입니다. 독립운동시기 많은 이론과 정책들이 주장되던 시절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사상은 임시정부의 이념적 근간으로 정립되었고 또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헌법은 삼균주의에서 영향을 받아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소앙 선생은 북한에서 반김일성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망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6.25전쟁때 납북되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그의 삼균주의 사상을 더욱 연구하고 사회에 접목시켰다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사회발전의 이론적인 토대가 생겨났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책을 통해서 조소앙 선생의 일대기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감사하네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도 더 연구가되어서 대한민국의 이론적 토대에 크게 적용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부* 2017-08-16
조소앙 : 삼균 사상가평전 :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조소앙의 삼균주의. 한국사시간에 굉장히 주의깊게 들은 부분이었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당황했다.이 책을 보여주면 '뭐 이런걸 읽어? 재미없게 생겼네.'라는 반응이었고 '조소앙의 삼균주의!! 그 조소앙이야! 한국사시간에 배운거!!'라고 말하면 '조소앙? 삼균주의? 그걸 배웠다고?'라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학교 시험에서는, 수능에서는 중요시하지 않지만, 교과서에 나온 한줄이 기억나 내겐 흥미가 당기는 책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삼균주의를 기초로하였다.]이 교과서 속 한 줄을 잊지 못해 이 책까지 왔다.일단 책을 처음 펼치고 알게된 건 조소앙이 이름이 아니었다..... 소앙 조용은. 소앙은 호였다. 평전임에 알맞게 소앙 조용은의 가족관계, 학창시절부터 시작해서 그의 독립운동, 그의 사상이 주욱 지나간다. 그의 사상들, 그가 쓴 것들이 책에도 친절히 옮겨져있다. 다행히도 한글로.(가끔 어떤 책들은 한자그대로라 읽기 힘들었다..)그가 썼던 것들을 토대로 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 지 알 수 있다.요즘에도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시절에 남녀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녀가 평등하다, 동등한 권리를 갖는 다 등등 양성평등에 관한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평등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한 것 같다.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교육권도 그는 그때부터 주장했다. 더이상 지배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을 누릴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육권이 지금은 보장되고 있긴 하지만, 돈때문에 못받는, 돈에 의해 교육권이 차등분배되는 것은 아직도 고쳐나가야할 숙제다. 그의 삼균주의를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아직도 평등하지않고, 아직도 평등하게 고쳐나가야할 것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는 백년을 앞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몇백년 혹은 천년을 넘게 앞서 생각한 것 같다.앞으로 존경할 애국지사가 한 분 더 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