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라이프 600호 특집 - 유적지 기행>
표충(表忠)의 길을 따라
표충비와 사명대사 생가를 찾아
최근 엇갈리는 일본 역사관 속에 표충의 길을 더듬어 본다. 표충의 대명사인 사명대사는 살생금지란 불교계율을 어기고도 추앙받는 승려다. 사명대사는 풍천 임씨로 속명은 응규(應奎),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이다. 1558년(명종 13)에 어머니가 죽고, 1559년에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승병을 이끌고 왜병과 싸웠고, 1604년 8월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000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표충비(사명대사비)와 생가를 찾아 나선 길은 무척 더웠다. 밀양의 아스팔트가 타이어에 달라붙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표충비를 찾는데 홍제사가 나타났다. 들어선 사찰에 4m에 달하는 표충비가 건물 속에 들어 있었다. 표충비는 사명대사가 1610년 8월 26일 입적하자 제자들이 다비하여 홍제암(弘濟庵) 옆에 세운 것이다.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비석은 올 2월 14일에도 땀을 흘렸다고 한다. 2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다 너무 더워 아마 올해 날씨가 너무 더울 것을 미리 알고 땀을 흘리지나 않았는지 생각도 들 지경이었다. 앞마당엔 표충비를 세울 때 심었다는 향나무가 동그란 모양으로 잘 가꿔져 있었고, 표충각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땡볕에 달궈진 차량에 탑승하다 엉덩이 살이 익을 뻔했다. 그래서 넓은 주차장에 태양광 패널을 올리게 지붕 있는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아래 주차장을 만들수는 없을까? 이런 날씨면 아주 효율 좋은 태양광 발전일 것이다.
다시 사명로를 따라 사명대사 생가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도로변에 백일홍(배롱나무)을 가로수로 식재한 것을 많이 본다. 백일홍이 피면 연상되는 게 바로 벌초다. 예쁘게 핀 백일홍 가로수가 끝없이 벌초를 각인시키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도착한 생가터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익숙한 소리가 떼로 몰려들었다. 모기들이 한꺼번에 반기는 통에 생가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직 유원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밀양 관광안내도에는 마치 유원지가 한창 개장 중인 것으로 오인하게 되어 있다. 안내도가 성급한지 아니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인지 몰라도 보다 친절한 안내도였으면 했다.
표충비와 생가로 이어지는 표충의 길에서 광복절의 의미와 대한민국 건국일, 그리고 위안부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에 살면서 너무나 다른 역사관에 대한 생각이 일었다. 광복절 당시까지 우리 백성이 일본의 신민들이라 광복이 아니라 48년 정부수립 이후 비로소 광복을 맞았다는 주장이나, 위안부가 자발적 돈벌이에 나선 조선 여인들이란 주장들을 사명대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 예성탁 발행인